수고하고 무거운 짐 (2)

마태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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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 (마12장 1-8절) / 20200719 주일설교
기도: 3.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네게로오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다 내게로 와라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하늘아래 하나밖에 없는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보혈의 피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죄의 값을 치루시고 우리에게 죄사함, 자유와 해방을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핏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짜리입니다. 그 만큼 우리는 존귀한 존재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한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들어가는 글) 우리나라 명절 중에 대표적으로 설날과 추석이 있죠.
설날은 새해의 시작의 의미합니다. 설날에 먹는 음식은 떡국, 다식, 약과등이 있습니다. 설날에 하는 놀이에는 윷놀이, 칠교놀이, 제기차기, 널뛰기, 투호 놀이등이 있습니다. 설날에 기독교인은 추도예배를 드리죠. 교회를 안다니는 분들은 차례를 지냅니다. 세배, 설빔, 덕담등이 있습니다.
추석은 음력8월 15일이죠. 단어의 뜻은 가을저녁입니다.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때 농사 일도 거의 끝나고 햅쌀과 햇과일 나오기 시작합니다. 햅쌀로 밥도 짓고 송편도 만들어 먹습니다. 수확의 기쁨을 누리며 차례를 지내거나 산으로 가서 성묘를 합니다.
설날이든 추석이든 가족과 함께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가 기뻐하고 행복해야 할 명절이 부담이 되고 스트레스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명절증후군이란 말도 나왔습니다.
네이버에 찾아봤습니다. 화면을 볼까요? <장기의 귀향 과정, 가사노동 등의 신체적 피로와 성 차별적 대우, 시댁과 친정의 차별 등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는 산업화 이후 전통적 가족제도가 사라지고 핵가족의 개인주의 문화가 정착되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증상으로는 두통, 어지러움, 위장장애, 소화불량 등과 같은 신체적 증상과 피로, 우울증 증상이 있다.> 명절증후군을 겪는 대상은 대부분 주부였지만, 최근에는 남편, 미취업자, 미혼자, 시어머니 등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심지어 명절이 끝나면 이혼소송 상담이 급증한다고 합니다.
몇 년전부터 이런 현수막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화면을 볼까요? ‘애미야~설거지는 시아버지가 다 해주마’ 나름대로 배려해주는 메시지입니다.
행복해야 할 명절이 왜 짐이 되고 부담이 되고 스트레스가 될까요? 목적을 잘 설정해야 합니다. 목적은 행복, 사랑, 나눔입니다. 그런데 목적을 잃어버린 채 해야 할 당위성만 많아지면 부담이 되기 시작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먹는 것은 간소화하고 간족끼리 산책이나 여행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명절과 안식일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안식일도 좋은 의도입니다. 안식일은 쉼이 있는 날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재충전하는 날입니다. 정말 좋은 제도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잘 지키기 위해서 너무 많은 규례를 만들었습니다. 목적은 상실한 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를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즉 안식일의 정신, 목적을 상실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안식일에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유대인들은 중요하게 여기는게 있습니다. 1. 안식일 2.할례. 3 음식규례입니다. 이 세 가지는 특별히 유대교의 기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규례가 무너지면 유대교도 무너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교의 삼대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 베드로, 바울입니다.
예수님 – 안식일을 폐지했다고 여깁니다.
베드로 – 부정한 음식을 먹었다.
바울 – 할례를 부정했다고 말합니다.
유대교는 진짜 복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껍데기만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야로 왔는데 그들은 알아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만들죠.
오늘 본문말씀의 사건은 안식일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식사 때를 놓친 것 같습니다. 아니면 먹을게 넉넉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마침 밀밭사이로 지나가다가 이삭을 잘라먹었습니다. 1절 말씀을 볼까요?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제자들이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이삭을 잘라먹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보면 과거에 남이 농사한 사과, 딸기, 참외 등을 몰래 따서 먹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정말 많이 먹지 않는 이상은 그냥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서리하면 몇 배 이상으로 벌금을 낸다고 합니다. 요즘은 조금이라도 남이 농사한 것을 가져가면 안 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제자들은 생계형 범죄 해당합니다. 생계형범죄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생계를 위해 저지르는 범죄를 말합니다. 보통 범죄는 많은 돈을 가지고 위해 저지르는 계획적인 범죄가 많습니다. 생계형범죄는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고 합니다. 생계형범죄라고 죄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형량을 좀 감해줄 수 있겠죠.
그러나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먹는 행위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왜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신명기 말씀에 나옵니다. 신명기23장 24-25절 말씀입니다.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구약의 정신은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자비와 긍휼을 베풀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자가 남의 밭의 포도를 먹어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 대신 그 포도를 집으로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그 자리에서만 먹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따서 가져가면 안 됩니다. 사실 포도를 먹으면 얼마나 먹겠습니까?
이삭도 따서 먹을 수 있습니다. 그 대신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라고 말합니다. 돈도 없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이 허기져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남의 것을 가져오거나 가져온 것을 다른 사람에게 팔면 안 되겠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면 이 땅에 굶어 죽는 사람은 없어야 합니다.
(예화) 일부 대형교회에서 코로나19바이러스 어려운 교회에게 월세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로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많은 어려움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일부 교회도 월세내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유가 있는 교회에서 자발적으로 몇 개월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모범이 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구약의 정신은 긍휼과 자비입니다.
그러면 결국 예수님의 제자들은 죄가 됩니까? 안됩니까?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바래새인들이 예수님께 따지기 시작합니다. 왜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느냐? 2절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바리새인들 눈에는 잘못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비판하고 고발하기 시작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정신은 생각하지 않고 행위로 판단합니다.
(설명) 바리새인들은 누구일까요? 예수님 당시에 유대 사회에는 여러 당파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당파가 바래새인파와 사두개파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분리된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부정한 것으로부터 분리해서 나온 무리를 말합니다. 율법을 매우 엄격히 지켰던 당파입니다. 이들은 엄격한 율법 준수와 모범으로 유대인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한테 엄청난 책망을 받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형식주의, 율법주의, 권위주의, 특권의식 때문입니다. 자기 신앙을 최고라고 자랑하는 사람은 항상 조심하십시오. 그러면 바리새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권위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권위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곡식을 따 먹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물론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가 책임을 지는게 당연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반대하고 공격하기 위해 일부러 이 일을 문제 삼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볼까요? 3-5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예는 다윗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도망 다니다가 너무 배가 고팠고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나게 됩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성전 안에 있는 제사장만이 먹는 떡을 줍니다. 이 떡은 성소안에 있습니다. 화면을 볼까요? 보이는 것이 진설병입니다. 누눅을 넣지 않은 빵입니다. 일주일마다 한번씩 떡을 올려놓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떡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위급할 때 진설병을 먹었어도 하나님이 징계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배고픈 사람을 살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예는 제사장은 안식일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전 안에서 안식일에 소나 양을 잡는 일을 했습니다. 죄를 범한 백성들이 있는 경우에 안식일이라도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성경은 성전 안에서 안식일을 범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안식일은 히브리어로 솨바트입니다. (따라하겠습니다) ‘중지하다, 멈추다, 휴식하다’의 뜻입니다.
안식일의 뿌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 창조에서 안식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2장 1-3절 말씀입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은 6일 동안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7째날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시작하셨을 뿐 아니라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7째날 안식하고 그 날을 복되게 하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창조를 완성하신 후 안식하셨을까요? 하나님이 피곤하셔서서 그럴까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피곤 하실 수도 없고 피곤하시지도 않습니다.
안식일은 단순히 날자의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6일동안 수고하신 모든 것을 내가 믿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겠습니다. 이런 고백입니다.
안식일을 안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의미가 됩니다.
두 번째 구원에서 안식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안식일의 의미는 이스라엘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명기5장 15절 말씀입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안식일은 창조 완성 후 안식이라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노예로 있었습니다. 화면을 볼까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펼치십니다. 애굽에서 구출해주시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노예생활을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비참한 인생입니까? 얼마나 고달픈 삶입니까? 노예에게는 주권이 없습니다. 일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어떤 보상도 없습니다. 종살이에서 건져내어주신 하나님이 그 날을 기억하며 안식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주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기억하며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성찬식을 많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더 못하고 있습니다. 성찬식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생각하고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10계명 중에 제4계명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의 시작을 해 질 때부터 봅니다. 즉 오늘날로 말하면 토요일이 안식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안식일을 안 지키고 주일을 지킬까요? 정확히 말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부터 점차 주일에 모여 예배드렸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안식교단은 십계명중 4계명을 안 지키는 교회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지금도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와 사도들은 주일을 지켰습니다. 사도행전20장 7절 말씀입니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그 주간의 첫날은 바로 주일을 말합니다.
주일에 떡을 떼며 성찬식을 했고,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고린도전서16장 2절 말씀입니다.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매주 첫날이 바로 주일입니다. 주일에 헌금을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시대에 자연스럽게 주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면 주일일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1. 즐거워해야 합니다.
시편118편 24절입니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이 날은 구원의 날을 말합니다.
주일은 그냥 쉬는 날이 아닙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예배하며, 경배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일은 기쁨의 날입니다. 주일을 우울한 날로 만들면 안 됩니다.
또한 안식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내가 은혜받고 살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2. 쉼이 있어야 합니다.
안식이란 단어의 뜻이 쉼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노동은 축복입니다.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직장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만약 쉼이 없다면 축복이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쉬신 것처럼, 사람도 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출애굽후에 하나님이 안식일을 제정하셨습니다. 애굽에 노예 생활을 회고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고된 노동에서 쉼을 주셨습니다.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쁜 삶을 살아갑니다. 고단한 인생입니다.
식당도 가보세요. 주문하면 3-4분이 밥이 나옵니다. 그 시간에 밥이 나온다는 것은 얼마나 빨리 준비하는 것일까요? 먹는 것도 무지 빠르죠. 어떤 분은 5분도 안 되서 먹습니다. 여유가 없습니다.
병원가보세요. 어떨 때는 1분도 진료하지 않고 처방을 내립니다.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뒤에 환자가10-20명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쉰다는 것은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계도 중간중간 멈추어야 고장이 없습니다.
인삼밭도 6년, 7년이 되면 한해는 아무것도 안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땅이 쉬어야 합니다.
책에는 여백이 있죠, 음악에는 쉼표가 있습니다. 축구경기도 전반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있습니다. 여러분 빨리만 달려가지 마시고~ 차 한잔의 여유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너무 빨리 달리면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놓치게 되어 있습니다.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일수록 휴식이 필요합니다. 쉬지 않고 오르기만 하면 어느 순간 갑자기 강제로 멈춰서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몸도 마음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바로 주일은 쉼이 있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3. 살리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노동으로 해석을 하고 비난을 했습니다.
마태복음12장 10-12절 말씀입니다.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바리새인들은 구덩이에 빠진 양은 구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양은 재산이니까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소홀히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더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손마른 자를 고치셨습니다.
주일은 선을 행하는 날입니다. 주일은 살리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구전 토라에 보면 안식일에 관해서 39개의 금지목록과 234개의 부칙이 있습니다. 즉 본질은 사라지고 자기들이 많은 놓은 규례, 문자적 열심에만 빠져버렸습니다. 우리는 본질과 목적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본질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안식일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들어보셨나요? 화면을 볼까요? 솨베트엘리베이터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버튼을 누르는 것을 노동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각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입니다. 20층에 살면 어떻게 합니까? 각층마다 서기 때문에 기다리면 됩니다.
그러면 모든 유대인들이 다 지킬까요? 이스라엘에 가면 다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정통 유대인들다 지키고 있습니다.
만약에 안식일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는 어떻게 할까요? 옆에 탄 이방인들한테 눌러달라고 합니다. 그것도 웃기죠.
주일은 살리는 날입니다. 주일은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고치고 치유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주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네게로 오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다 네게로 오라”
골로새서2장 16-1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먹고 마시는 음식법이나 절기법은 예수님를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그림자의 실체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실체로 오신 이상 그림자는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의식법은 폐지가 되었습니다.
구약의 음식법으로 하면 우리는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 됩니다. 되새김질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음식법으로 하면 오징어, 문어도 먹으면 안 됩니다. 비닐과 지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무수한 짐승들을 잡아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이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또 짐승을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에 동물의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이젠 예수님이 안식일에 주인이십니다.
로마서14장 17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돼지고기를 먹어도 돼냐? 먹지말아야 하나? 이런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우리교회는 강요가 별로 없습니다. 새벽예배 나와라~수요예배 나와라~ 헌금하라~
교회이름자체가 은혜누림교회 잖아요.
강요하면 예배출석률은 높아질 수 있습니다. 강요하면 헌금이 많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이 없어집니다. 자꾸 율법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기쁨이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6.25이후 한 번도 교회를 문을 닫지 않았는데 왜 정부에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게 하느냐고 항의를 했습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가 정말 심해지면 영상으로 또는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꼭 예배당에 나와야 주일을 지키는 것일까요?
내가 몸이 아프고 병에 취약한 상황이라면 영상으로 예배할 수 있습니다. 영상으로 예배하지만 교회에 올 때보다 더 사모함으로 예배한다면 더 귀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예화) 그러면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내 마음대로 해야겠습니다. 교회오고 싶으면 오고~ 힘들면 쉬고....다른 교회 가고 싶으면 가고.....그런 것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이 있습니다.
예를들어 내가 낚시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주일밖에 시간이 안 됩니다. 그래서 새벽예배만 일찍 드리고 매일 낚시를 간다고 합시다. 그러면 성령님이 어떤 마음을 주실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가 방종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주일은 단지 일하지 않고 노동하지 않는 날이 아닙니다. 은혜 받는 날이고 생명을 살리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입니다.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입니다.
(예화) 제가 예전에 사역했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남편 집사님이 군 출신입니다. 주일날 예배를 올 때 시간이 칼입니다. 예를들어 10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하면 그때까지 아내집사님이 안 나오면 그냥 혼자 출발합니다. 그러면 아내집사님이 어떻게 할까요? 택시타고 교회에 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면 마음이 편할까요?
여성들은 준비하는 시간이 길잖아요? 밥도 차리고 설거지해야죠. 호박 같은 얼굴이지만 화장도 해야죠. 아이들이 있으면 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빨리 준비를 안 한다고 싸우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오면 말씀이 은혜가 되겠습니까? 그러면 온전한 예배가 되겠습니까?
마태복음12장 7절 말씀입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나님은 긍휼과 사랑의 마음 없이 예배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부부간에 싸우고 교회에 일찍 오는 것보다 서로 기다려주고 아껴주고 늦게 오는게 맞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어떤 분은 1년 52주 예배를 한 번도 안 빠졌다고 자랑합니다. 정말 훌륭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배드리다가 형제에게 화를 낸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그 형제와 화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일성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말합니다. 장로님이 왜 새벽예배에 안 나오시냐고 합니다. 장로님이 새벽예배에 나와야 하고 성도는 안 나와도 됩니까? 못 나오시는 입장은 생각해보셨나요? 더 마음이 무거울 수 있습니다.
자꾸 이해하려고 하고
자꾸 용서하려고 해야 합니다.
가능한 살리려고 해야 합니다.
안식일에 대하여 원칙만 가지고 남을 정죄하기 보다 남의 배고픈 상황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몸이 아픈 상황을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유대인들한테 배워야 할 모습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진정한 안식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날짜를 지켜서 안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을 그친다고 안식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할 때 평안이 주어집니다.
(예화)저희 아내의 사촌언니가 서울에 살다가 은퇴를 하고 시골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노후를 좀 평안하게 살고 싶었겠죠. 시골에 내려 온지 5년이 넘은 것 같은데...최근에 들려온 소식이 있습니다. 한때 우울증은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전원주택으로 이사한다고 쉼이 있고 평안이 있는게 아닙니다. 여러분 큰 집으로 이사간다고 쉼이 있는게 아닙니다. 진정한 쉼, 진정한 안식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일 무거운 짐이 아니라 기쁨이고 안식이고 선을 행하는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찬양하겠습니다.
영원한 안식은 예수님안에 있습니다. 안식은 예수님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안식입니다. 예수님이 평강의 왕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 안에서 교통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살리는 일을 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우리나라도 일부 교회에서는 주일에 마트나 식당에 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오락을 즐기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일부 목사님은 주일을 강조하기 위해서 항상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아무게 성도님이 주일날 예배 안드리고 놀러가다가 사고나서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1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주일성수를 잘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놓치고 형식만 따지면 안 됩니다.
어떤 분은 대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합니다. 대예배가 어디 있고 소예배가 어디 있습니까? 어떤 분은 11시예배가 대예배라고 합니다. 그 예배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미국의 한인교회는 대부분 미국 현지교회를 렌탈해서 오후에 예배를 드립니다. 11시가 매인예배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내가 11시에 시간이 안 되면 새벽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매일같이 놀러가려고 새벽예배만 드리고 가면 그것도 이상하겠죠.
(예화) 예를들어 강원도 속초에서 친척 결혼식이 주일11시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1번 안 간다.
2번 토요일에 간다.
3번 속초 근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결혼식에 참석한다.
저는 모두가 괜찮다고 봅니다. 그런데 3번을 안 좋게 보는 분도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도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면 괜찮습니다. 어떤 분은 장로라면 본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너무 율법적으로 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양심에 따라서 결정하면 됩니다.
분당 우리교회 이찬수목사님은 작은교회에 가서 예배드려주고 헌금하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교회가 중요합니다.
저희 교회도 커지면 1년에 1-2번은 작은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헌금하기 운동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감동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작은 교회를 섬기는 기쁨도 있고 우리교회에 대한 감사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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