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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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의 중요성 / 마태13:1-9 / 20200726 주일설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하겠습니다)나는 하늘아래 하나밖에 없는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버림받았습니다. 상처 중에 가장 큰 상처는 가족으로부터 받는 상처입니다. 그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요셉은 그 아픔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요셉은 과거의 상처를 믿음으로 해석 합니다. 형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다고 합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지만 형들을 복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고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보시기에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존재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들어가는글) 목사님들의 실수 중 한 가지가 성도들한테 받은 상처를 설교를 통해서 표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본인은 억울한 감정을 표출했기 때문에 좀 마음이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설교를 들은 성도는 또 다른 상처를 받게 됩니다. 예배를 드리는 그 1시간동안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 들고 죄책감, 분노의 감정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성도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성경을 선택해서 순서적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은 마태복음1장, 다음 주는 마태복음2장 이런 식으로 본문을 정하고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한 사람을 타켓으로 말씀을 전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느끼는 순간 말씀이 제대로 들려지지 않고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도들한테 꼭 권면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감정이 안 좋을 때 그 메시지를 전하면 은혜도 안 되고 마음만 더 불편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들은 설교를 통해 성도들을 까면 안 됩니다. 설교를 통해 불편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목사는 성숙하지 못한 목사입니다. 내면에 상처가 많은 목사 일수록 여과 없이 감정을 표출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예화) 제가 몇 주 전에 목장식구와 함께 심방을 갔습니다. 심방간 집사님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몇 주 동안 목사님설교가 나한테 하는 설교였다’ 그래서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최근에 무슨 설교를 했지? 몇 초 동안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알고 보니까? 그 집사님의 말은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내가 많이 힘을 얻고 나를 뒤돌아보았다는 고백이였습니다. 부정적인 표현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나에게 주신 말씀이란 고백입니다.
그 집사님은 최근 몇 달 동안 인생의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창피해서 어디다가 이야기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통이 찾아오면 우리는 자연적으로 인간적인 생각을 합니다. 죽고 싶고, 복수하고 싶고, 따지고 싶고, 그것도 안 되면 절망의 늪에 빠져서 우울하게 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벌써 어둠의 터널을 다 통과하고 빛 되신 주님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똑 같은 설교를 들어도 어떤 분은 목사님이 나를 깠다고 말합니다. 어떤 분은 자신을 뒤 돌아 보기도 합니다. 말씀이 나한테 잘 들리고 말씀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첫 번째 목사님과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목사님이 싫으면 말씀이 은혜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기쁨이 없습니다.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목사님하고는 싸우지 말자~
두 번째 내 마음이 편해야 합니다. 마음이 복잡하면 말씀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세 번째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박사가 성경을 읽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강경에서 사역 할 때입니다. 80세가 넘은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수준을 보면 박사수준입니다. 한번은 심방을 갔는데 자기가 예전에 이동원목사님 설교를 설표 테이프를 통해서 많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동원목사님의 설교는 복음주의적 설교입니다. 예수님 중심적인 메시지입니다. 설교가 체계적이고 논리적일뿐 아니라 깊이 있는 말씀입니다.
보통은 웃기고 재미있는 설교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초등학교도 안 나오신 분이 말씀을 깨닫고 은혜받는 것 보면 성령님이 깨닫게 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의 역사로 시작됩니다.
말씀의 열매가 잘 맺기 위해서는 밭이 좋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의 마음 밭에 관한이야기입니다. 내가 어떤 마음의 밭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말씀의 열매가 달라집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씨는 무엇을 말할까요? 말씀입니다. (화면을 볼까요?)
밭은 무엇일까요? 마음입니다.
씨를 뿌리는 분은 누구일까요? 예수님입니다.
말씀은 문제가 없습니다. 씨는 문제가 없습니다.
베드로전서1장 23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썩지 않을 씨이신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말씀으로 뿌려져 우리가 거듭났습니다. 이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이 있습니다.
씨앗이 어느 밭에 떨어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성경은 4가지 밭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길가입니다.
4절 말씀입니다.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씨가 옥토에 정확히 떨어져야 하는데 길가에 떨어집니다.
길가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길가는 땅이 딱딱합니다. 땅이 딱딱하므로 뿌리가 내리기 어렵습니다. 땅이 부드러워야 씨앗이 잘 싹 틀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렸을 때에는 마음이 참 부드럽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죄를 짓고 잡다한 지식과 경험을 쌓으면서 강팍해지기 시작합니다. 강팍 해진 마음에는 복음의 씨앗이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마음이 굳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 18세 이전에 복음을 들은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할 확률이 80%라고 합니다. 성인이 돼서 예수님을 믿기는 확률적으로 더 어려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어릴 때 복음을 들을 수 해주어야 합니다.
씨가 길가에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새들이 와서 먹어 버립니다. 4절 말씀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새는 말씀을 방해는 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즉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영적 세력이 있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악한자가 빼앗간다고 말합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하늘 나라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사탄이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가 버린다. 이런 사람은 길가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이다.’
개혁성경은 악한자라고 말합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사탄이 와서라고 말합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결국 어떻게 됩니까? 사람들의 발에 밣히고 새들의 밥이 됩니다. 결국 씨는 뿌리를 땅에 뻗어보지도 못하고 죽습니다. 즉 이들은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성경지식은 많은데 말씀에 깊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밭이 길가 처럼 강팍한 마음이 되면 안 됩니다.
두 번째 돌밭입니다.
5-6절 말씀입니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돌밭은 특징은 무엇일까요? 얼른 보면 부드러운 흙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파면 밑이 돌이 많이 있습니다. 돌 때문에 식물이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땅이 많이 있습니다.
돌밭 같은 사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20-21절 말씀입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믿음이 있기 한데 약한 사람입니다. 믿음의 뿌리가 약하기 때문에 잘 흔들립니다. 이런 사람들의 신앙은 기복이 있습니다. 말씀의 뿌리가 없기 때문에 쉽게 넘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즉시 기쁨으로 받되’
처음에는 기쁨이 있고, 열정이 있고 헌신이 있습니다. 아멘~아멘~ 합니다. 자기에게 맡겨주면 다 하겠다고 합니다. 본인이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보겠다고 합니다. 혼자 다할 것처럼 말합니다. 비젼이 있고 꿈이 있습니다.
이런 분은 간증도 많습니다. 천국을 본 사람도 있습니다. 심각한 질병 가운데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성도들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분을 성가 대장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목자를 시켜야 하고 위원장을 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주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길어야 1-2년입니다. 어느 순간 성장이 멈추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돌밭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잘 할 줄 알았습니다. 목사도 속고 장로님 속습니다. 돌 때문에 더 이상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돌밭은 감정적인 사람, 충동적인 사람입니다. 믿음의 기초가 없는 사람입니다. 냄비 같은 신앙입니다. 쉽게 뜨거워졌다고 쉽게 식는 사람입니다.
돌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시련을 만나면 그냥 쓰러집니다. 오늘 성경은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 넘어진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환난이 면제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환난이 있다~ 그러나 쫄지마라~ 환난이 있다~ 담대하라~ 환난이 있다 포기하지 마라~......아멘 할때까지..... 환난이 있다 나를 믿어라
돌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못 넘어갑니다.
우리는 돌밭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잘 돌봐주어야 합니다. 은혜도 잘 받지만 삐지기도 잘 삐집니다. 쉽게 삐지고 상처받고 서운하다고 하는 사람은 돌밭 같은 마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저는 은혜누림교회 성도들이 뿌리 깊은 나무가 되길 바랍니다. 뿌리가 깊지 않으면 이리 넘어졌다가 저리 넘어졌다가 합니다. 영적근육이 튼튼하길 축복합니다.
세 번째 가시떨기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이 경우에는 땅에는 별로 문제가 없습니다. 흙도 좋고 돌도 없습니다. 토양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씨는 뿌리면 잘 내리면서 성장합니다. 그러나 그 주위에 억센 가시나무들이 땅 위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씨가 줄기를 뻗치고 위로 올라가려고 하지만 가시덤볼 때문에 결국은 죽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가시떨기는 잡초와 같습니다. 잡초는 정상적인 식물보다 생명력이 강합니다. 농사짓는 분들 보면 풀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풀 약을 줘도 몇 일 있으면 또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가시떨기는 햇볕을 막습니다. 햇빛을 받아야 광합성작용을 하고 식물이 잘 자랄 수 있습니다. 가시떨기는 영양분을 빼앗아가고 수분을 빼앗아갑니다. 결국 식물이 비실비실 잘 자랄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왜 가시가 생겼을까요? 사실 하나님이 만든 에덴동산은 완벽한 곳입니다. 가시떨기가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땅에 가시와 엉겅퀴를 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가시는 신앙을 방해하는 악마의 역할로 나타납니다. 타락한 인간들 가운데는 은혜는 단절되고 가시떨기는 풍성해졌습니다.
성경은 가씨떨기의 구체적인 이름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세상의 염려입니다.
13장 22절 말씀입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염려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따라하겠습니다. 염려는 백해무익이다. 여기서 ‘염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메림나오’입니다. ‘분열되다’, ‘나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걱정과 염려로 마음이 여러 갈래로 분열된 상태를 뜻합니다. 이 염려에 빠지면 올바로 볼 수 없게 됩니다. 마치 염려는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염려에 빠지면 말씀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인생의 행복을 갉아 먹는 벌레 두 마리가 있습니다. 첫 번째 지난 과거에 대한 후회요, 다른 하나는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염려입니다. 염려는 우리의 신앙을 갉아 먹습니다.
좀 대학에 늦게 들어가면 어떻습니까? 시험에 좀 떨어지면 어떻습니까? 취업이 좀 늦어지면 어떻습니까? 교회부흥이 좀 늦으면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맡기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염려가 있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둘째 재물의 유혹입니다. 물질자체가 가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재물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딤전6장 10절 말씀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성경은 돈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순간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가시밭에 씨가 떨어지면 싹이 납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기는 어렵습니다. 신앙생활 20-30년해도 열매가 없다면 내 마음밭을 점검해야 합니다.
네 번째 옥토밭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좋은 땅은 옥토를 말합니다. 옥토밭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농사짓기 좋도록 미리 가꾸어 놓은 땅입니다. 옥토는 흙이 부드럽습니다. 부드럽게 씨를 받아들이고 싹이 쉽게 올라올 수 있습니다.
결국 옥토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닫고~ 순종하여 결실을 맺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이 쑥쑥 자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결국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천국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어린아이처럼 좋아하고 흡수하며 그 말씀을 자기 것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예화) 우리가 큐티 말씀을 호세아를 보고 있죠. 호세아9장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무화과 나무의 첫 열매’과 같다고 말합니다. 농사를 져보신 분들은 경험했을 것 같습니다. 나무에서 첫 열매가 맺혔을 때 그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죠. 과실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기쁘고 행복합니다. 말할 수 없는 신비스러움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무화과 나무의 첫열매’ 같다는 것은 그 만큼 하나님이 사랑했고 기대하고 있고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23절 말씀입니다. ‘그런데 좋은 땅에 뿌린 씨는 말씀을 듣고서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데, 이 사람이야말로 열매를 맺되, 백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결실을 낸다."’
천국인란 씨가 옥토에 떨어져서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결실을 맺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보잘 것 없는 씨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만큼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농부가 추수할 때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추수 할 때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행복합니다. 농부는 한해의 수고가 수고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 안에 열매를 보시고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 밭이 옥토 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기경해야 합니다.
호세아10장 12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묵은 땅을 기경하라~ 오랫동안 묵은 땅은 상태가 어떨까요? 잡초가 무성합니다. 여기저기 돌이 쌓여있습니다. 딱은 완전히 딱딱한 상태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삽으로 갈아 없어야 합니다. 아니 트렉터로 완전히 갈아 없어야 합니다.
자주 욱하고 버럭 화를 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사정없이 마음을 갈아 없어야 합니다. 죽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죠.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그런 마음은 갈어 없어야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모두 갈아 없어야 합니다.
2.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마음이 한번 무너지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잠언4장 23절 말씀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교회도 밭농사나 텃밭을 가꾸시는 분이 있습니다. 한번심고 열매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매일 같이 가서 풀 뽑고 관리를 해줍니다.
마음을 잘 관리하는게 중요합니다. 특별히 열받지 말고 화내지 마시고 아무 잘못도 없는 리코컨 집어던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도 감사를 찾아야 합니다.
(예화) 여러분 아내가 운전하다가 혼자 전봇대를 박았습니다. 견적인 100만원 나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화부터 내지 마시고 그 속에서 감사를 찾아보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혼자 사고나서 감사~
사고는 낫지만 보험으로 처리하면 저렴하게 차를 고칠 수 있어서 감사~
차는 망가졌지만 사람은 다치지 않아서 감사~
(예화) 고등학생 아들이 술 먹고 밤12시에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죽일 놈, 살릴 놈~ 호적에서 빼서 나가가~ 그렇게 하지 마시고 그 속에서 감사를 찾아야 합니다.
술 먹고 사람 때리고 경찰서에 갈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고 집에 들어와서 감사~
술 먹고 아예 가출할 수 있는 그래도 집에 들어와서 감사~
술 먹고 길거리에서 잠을 자다가 경찰한테 연락 올 수 있는데 그래서 집에 오니감사
열 받는다고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심한 욕을 하면 안 됩니다. 내 영도 죽고 상대의 마음도 죽습니다.
(예화)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누구입니까? 사울왕입니다. 하나님이 기름부어주셨고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마음을 끝까지 지기지 못했습니다. 사울왕의 마음밭은 돌밭, 가시밭과 같았습니다. 자신의 감정 따라 살았습니다. 시기, 질투, 분노했습니다.
마음이 무너진 결과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충성스러운 신하이자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원수로 보고 죽이려고 시도를 했습니다. 나중에 악신이 사울을 괴롭히죠. 마귀의 밥이 됩니다.
반대로 다윗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진리를 붙잡았습니다.
백성들이 다윗을 칭송할 때 거기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 할 때 대적하지 않고 오히려 피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쉬운 것이 결코 아닙니다. 누가를 나를 욕하고 비난하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한바탕 싸우거나 따지겠죠.
다윗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인정하고 그를 미워하거나 복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맞장뜨자고 하는 사람은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은 옥토 같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수준 높은 신앙입니다. 다윗이 진를 붙잡고 마음을 지키니까 하나님이 요나단을 붙여주십니다. 내가 억울해도 진리의 편에 있는 나를 돕는 손길이 생깁니다. 억울한 시간이 있다면 잘 견디고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시고 하나님이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3. 성령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마귀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들어가면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5장 18-21절 말씀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의 결과가 19절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찬양이 있고 노래가 있고 감사가 있고 서로 복종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갈급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메마른 영혼에 성령의 단배가 내리면 기름진 땅이 되고 옥토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 밭이 항상 옥토밭일 수는 없습니다. 4가지 밭이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예화) 청소년 범죄를 보면 가정 환경이 불우했던 사람들이 대체로 많다고 합니다. 건강한 가정, 건강한 부모 밑에 자란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인류역사에 위대한 일을 했던 사람을 보면 과거가 불행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신 분도 있습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상처를 받고 자란 사람도 있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환경이 불행했기 때문에 더 훌륭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따라하겠습니다)
언제까지 부모를 탓하면 살겠습니까? 언제까지 가난을 탓하며 살겠습니까? 언제까지 내 인생을 비난하며 살겠습니까? 언제까지 환경만 탓하겠습니까?
내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마음을 지키면 생각이 바뀝니다. 생각이 바뀌면 삶이 바뀝니다. 삶이 바뀌면 인격이 바뀝니다.
4.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골로새서2장 6-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예수님이 중심이 되고 그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그 속에서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뿌리가 튼튼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 안에 있는지~ 예수님 밖에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200명, 300명 부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업장이 번성하는 것도 축복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과 함께하면 자연적으로 열매가 맺게 되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 밭이 옥토로 기경이 되어서 아름다운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