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화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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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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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 마13장 44절 / 주일설교 20200809
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리도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하늘아래 하나밖에 없는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부자는 거지처럼 살아도 부자이고, 왕자는 거지처럼 살아도 왕자입니다. 성도는 아무리 부족한 허물이 많아도 하나님의 자녀이고, 거룩한 존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보시기에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존재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화) 세계에서 부패한 심한 나라중 한 곳이 중국입니다. 중국의 관리들이 뇌물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뇌물을 돈으로 받으면 자금추적으로 들통이 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현금이나 귀금속으로 받는다고 합니다.
보통 어디에 숨길까요? 베게 속, 침대 밑, 천장 등입니다. 이런 곳은 너무 평평한 곳입니다. 이런 곳은 중국 공한들이 수색을 하면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집 밖에 땅을 파서 숨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특이한 것은 커다란 생선 뱃속을 비우고 그 안에 고액권, 귀금속을 채워놓고 냉동실에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죠.
오늘은 감춘보화의 비유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는 재물과 보물을 관리하는 방법이 오늘날과 달랐습니다. 오늘날 같이 은행이나 금고가 없었기 때문에 땅속에 항아리니라 궤짝을 땅에 묻고 귀중품을 숨겼습니다. 그래야 도둑이 와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전쟁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물의 주인이 갑자기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도 보물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한 채 보물은 땅에 묻혀 버리고 맙니다.
땅에 보물을 묻어 둔 주인이 부인이나 자식에게 가르쳐 주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도 그 보물이 영원히 묻히고 맙니다. 이런 일들이 그 당시에 종종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합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입니다.
천국의 보화를 경험하고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 보화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4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농부입니다. 농부인데 소작농입니다. 자기 땅이 아니라 남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어느 날 열심히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뗑소리가 났습니다. 보통은 돌소리가 나야하는데 좀 특이한 소리였습니다. 농부는 느낌이 이상해서 그곳일 집중해서 팠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항아리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농부는 가슴이 꿍꽝꿍꽝 띠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보물을 숨길 때는 땅을 파서 항아리를 묻고 그곳에 숨겼기 때문입니다. 항아리 뚜껑을 열어보았습니다. 농부는 더 깜짝 놀랐습니다. 항아리를 뚜껑을 여는 순간 보석이 반짝반짝 강렬한 빛을 발했습니다. 그는 재빠르게 항아를 뚜껑을 덮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다행히 아무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천국의 보화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천국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농부가 밭의 보화를 발견했다면 주인한테 그 사실을 알려야 되는 것 아닐까요? 당시 관례에 따르면 땅 주인이 반을 가지고 발견한 사람일 반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농부는 주인과 나누어 가질 마음이 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발견한 사람이 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부는 그 보물을 땅에 그대로 숨겨두고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내용입니다.
가치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예화)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예수님을 보화로 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지 않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은30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예수님을 은30의 가치로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님이 너무 행복해하시고 칭찬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아주 정확한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야 즉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댓가를 치루셨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많은 유대인들은 이 땅에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셨지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1장 10-11절 말씀입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천국을 누리기 위해서는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예화)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왜 팔았나요? 장자권을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배고프다고 팥죽 한 그룻에 팔아버립니다. 그까지 돈 몇 푼하고 장자권하고 바꾸면 되겠습니까?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에서를 망령된 자라고 합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했습니다. 에서는 육신의 지배를 받은 사람입니다.
야곱이 장자권을 팔라고 했을 때 에서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내가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장자의 명분은 팔 수 없어’
농부는 굶어죽어도 종자는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종자를 먹으면 다음해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종자는 먹지 않습니다. 종자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종자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화) 제가 얼마 전에 대학설명회가 있어서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강사가 ‘대학에서 어떤 사람을 뽑는지 잘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떤 학생이 의대에 가려고 지원을 했는데 점수가 좀 낮아서 수의학과에 지원한 학생이 있습니다.
또 한명의 학생은 어려서부터 동물을 사랑해서 수의학과의 꿈을 가지고 공부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 학생이 점수가 더 높습니다. 그러면 대학에서 누구를 뽑을 까요? 첫 번째 학생을 뽑지 않을 수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 학생은 처음부터 의대를 가고 싶어 했기 때문에 수의학과에 와도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대학도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고 합니다.
즉 대학도 점수만 높다고 뽑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학생들의 꿈과 비젼, 열정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소서나 생기부가 중요하다고 강조를 했습니다. 대학도 겉으로 드러난 것만 평가하지 않고 학생들안에 감춰진 보물을 보고 뽑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영원한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길 축복합니다.
우리는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천국의 보화를 볼 수 있길 축복합니다.
두번째 천국의 보화를 경험하고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번째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밭의 보화를 발견한 것은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일방적으로 베풀어주신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거져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풍성히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버리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농부는 밭의 보화를 얻기 위해서 어떻게 했습니까? 아예 그 밭을 샀습니다. 4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문제는 돈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있는 돈으로 밭을 도저히 살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이것저것 돈이 되는 것은 다 팔았습니다. 여기저기 돈을 끌어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밭을 샀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바보라고 비웃었습니다. 별로 좋아보이 않는 땅을 왜 사냐고 했습니다. 가족들이 비난했습니다. 왜 비싼 돈 주고 그 밭을 사냐고 했습니다. 보화를 얻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진주 비유를 볼까요? 마태복음13장 45-46절 말씀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값진 진주 비유는 쌍둥이 비유라 불릴 만큼 유사점임 많이 있습니다. 둘 다 세상에서 지극히 귀한 것, 지극히 소중한 것을 발견하여 기뻐하였고 자기이 모든 것을 아끼 없이 다 팔아서 그것을 샀다는 내용입니다.
보화를 발견한 농부도 자기 소유를 팔았습니다.
값진 진주를 발견한 사람도 자기 소유를 팔았습니다. 댓가를 지불했습니다.
우리는 양다리를 거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도 좋고 세상도 좋고~
축복은 원하는데 희생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성공은 원하는데 희생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고난이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예수 믿고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예수님 믿고 예수님처럼 살아보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내 인격이 되고 예수님의 꿈이 내 비전이 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구원을 받습니다. 즉 출애굽을 합니다. 그리고 첫 번째 만나는 관문이 무엇입니까? 홍해입니다. 홍해는 침례입니다. 침례는 자기부인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가 첫 번째 통과해야할 문은 자기부인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살겠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혈기, 분노, 자기고집, 자기주장, 원망, 불평으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죽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적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죽었습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기부인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꾸 축복만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부인하고, 말씀으로 공급 받어서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자기부인에서 진도나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많은 간증을 보십시오. 축복 받은 간증이 많습니다. 성공한 간증이 많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서울대에 들어 가는게 중요합니까? 졸업이 중요합니까? 졸업하고 어떻게 사느냐구 중요합니다.
대기업에 취업하는게 중요합니까? 취업해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 믿고 자기를 버렸다는 간증은 별로 없습니다. 예수 믿고 혈기를 부리지 않는다는 간증은 별로 없습니다. 예수 믿고 멍멍이 같은 성질을 버렸다는 사람은 많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포기하셨나요? 여러분은 무슨 댓가를 지불하셨나요?
천국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천국을 얻기 위해서는 소중히 여기는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화) 예수님을 만난 사도바울의 고백을 볼까요? 빌립보서3장 7-9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니까 학벌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출신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학벌, 출신, 가문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 만난 사람의 고백입니다.
예수 믿고 돈 자랑하고 학벌 자랑하는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 와서 돈 자랑하는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자기부인이 안된 사람입니다. 목사가 돈 많은 성도들만 좋아하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모세의 고백을 볼까요? 히브리서11장 24-25절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를 무엇을 거절했습니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모세는 인정받을 수 있는 명예를 포기했습니다. 명예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명예는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선택했습니다. 모세는 말합니다. “왕국에서 호의호식하는 것보다 차라리 백성과 함께 고난 받겠다” 멋지지 않습니까? 왜요? 하늘의 보화있기 때문입니다.
공주는 모세를 살려준 사람입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생명의 은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세에게 더 소중한 분은 하나님입니다.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바로의 공주를 만나게 하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 내 인생의 참 목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죄악의 낙을 누리기보다 차라리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기를 선택했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아닌 것은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천국의 보화를 본 사람입니다. 히브리서11장 26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애굽의 보화가 아니라 천국의 보화를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 땅에 보화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천국의 보화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 여러분은 요즘 무엇을 선택하시고 있습니까?
다윗의 고백을 볼까요? 시편84편 10절 말씀입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춤주고 삐틀어지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한다면 성전문지기도 좋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버리셨나요? 여러분은 무엇을 포기하셨나요?
보화를 발견한 농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1)기뻤습니다. 날아갈 것처럼 기뻤습니다. 오늘 성경은 기뻐했다고 말합니다. 44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기쁨이 있습니다. 천국을 소유한자는 기쁨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믿고 뭐라고 달라졌습니까? 변화가 없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내적인 평안을 경험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어떤 사람은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어떤 분은 예배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면서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예수님 믿고 변화가 없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식으로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 하고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예수님 안에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담대함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기쁨도 있지만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내가 빚쟁이라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직장에서 짤려도 두렵지 않습니다. 나를 무시하고 조롱하던 사람들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나를 왕따 시켰던 인간도 두렵지 않습니다. 왜요? 나에게는 보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 있죠? 왜 그럴까요? 내 속에 보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결혼을 했어도 애인이 따로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왜 그래요? 내 속에 보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만족이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기억하십니까? 수취심, 죄책감, 열등감이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어젠 물을 길러왔습니까? 아무도 사람이 없는 가장 더울 때 나왔습니다. 즉 남몰래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상처가 많았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수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담대해졌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둥이를 던져버렸습니다. 물을 안 먹어도 살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물보다 더 귀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 있게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선포합니다. 이 분이 바로 구원자이십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천국이 되십니다.
요한복음4장 28-29절 말씀입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사마리리아 여인은 오늘날로 말하면 우울증, 피해의식, 대인기피증에 걸린 사람입니다. 예수님 만나고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람을 만나기 시작합니다.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왜 잠을 못 주무시나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걱정하시나요? 예수님을 더 깊게 만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살짝 믿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예수님을 온전히 믿을 때 내 마음이 흔들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트리우마가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검색해봤습니다. ‘과거 경험했던 위기, 공포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당시의 감정을 다시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을 말한다.’
(예화) 제가 전도사 때 있었던 일입니다. 예전에도 한번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교회 건축 때문에 하우스에서 예배드리고 하우스를 사무실로 쓸 때가 있었습니다. 겨울에는 하우스가 무지 춥지 않습니까? 그래서 난로 2개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는 전기난로, 하나는 가스난로입니다.
어느 날 가스난로를 틀었는데 불이 붙었다가 커졌습니다. 그래서 막흔들었습니다. 그랬더니 불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또 2-3분 후에 난로불이 껴졌습니다. 이번에는 더 힘차게 흔들었고 불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왠 일입니까? 불이 정상적인 불이 아니라 불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우스 교회가 불나면 무슨 망신입니까?’
옷으로 덮었다가 뺏다가 몇 번을 해서 당해서 불을 컸습니다. 그 이후로 가스난로는 쓰지 않습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가스난로를 쓰지 않겠습니다.
어떤 분은 성폭행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폭행에 의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배신, 억울함, 따돌림, 천재지변, 교통사고등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개한테 물리 충격 때문에 애완견도 가까이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면 트리마도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갑니다.
보화를 발견한 농부는 무엇이 두려워겠습니까?
인류의 영원한 숙제는 죄와 죽음의 문제입니다. 이 두 가지는 어느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도, 어떤 철학도, 어떤 종교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해결해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나라를 예비해주셨습니다.
천국의 영광이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로마서8장 18절 말씀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현재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가 안 된다고 말합니다.
고난과 영광을 비교할 때 영광이 휠 씬 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고난을 바라보십니까? 장차 받게 될 영광을 바라보십니까?
왜 우리가 낙심합니까? 현실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영광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십시오.
(예화) 저희 부모님이 과거에 가난하게 살다가 열심히 저축해서 처음으로 연산초등교위쪽에 있는 땅을 샀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저축해서 집을 산다든지, 땅을 살 때 행복이 있지 않습니까?
저희 어머니는 너무 행복하고 기뻐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그 땅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누가 훔쳐가는 것도 아닌데 새벽마다 그 땅을 보기만 해도 엔돌핀이 생기는 것입니다.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았습니다.
누가 욕해도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많은 땅을 가지고 있어도 부럽지 않습니다.
왜요? 내가 산 땅에는 눈물과 정성과 인생이 담긴 땅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땅을 산 것 아니라 꿈과 비젼을 산 것입니다.
지금은 벌써 팔아서 없습니다.
우리는 땅 몇 평만 사도 그렇게 행복하고 기쁜데~
하늘나라를 소유한 우리는 어떻습니까?
왜 죽는소리하며 사십니까?
돈 좀 있으면 자신감 있고 돈 좀 떨어지면 죽을 것 같고.....
이러면 왕의 자녀에 체통에 안 맞잖아요~
(예화) 로마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돈은 바닷물과 같아서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목마르다’ 이 땅에 있는 것들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될 보화가 되지 못합니다. 가져도 만족이 없습니다. 만족해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냥 있는 만큼 자족하며 살면 됩니다.
우리는 이미 천국의 보화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이젠 누리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감사로 기쁨으로 은혜로 행복으로 사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비록 땅을 벗하고 살지만 동시에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특별히 이 땅에 삶의 버거운 성도님들 있습니다.
하나님~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주시고 피할 길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안에 기쁨과 감사와 담대함이 회복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는 육신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병들 수 있습니다. 때론 사업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때론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천국의 보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자신감 있게 살 수 있습니다.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여기 농부는 보화를 직접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보화를 사기 위해 밭을 사야 했습니다. 비싼 댓가를 지불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샀습니다. 예수를 얻고자 하는 자 교회생활을 사야합니다. 복은 받고 싶고 예수는 얻고 싶은데 교회생활 상처받는 것 싫다. 교회 생활 버리면 예수도 떠나갑니다. 헌신과 봉사를 사야합니다. 시간을 내고 기도하고 말씀 듣는 자리를 사야합니다. 상처받아도 소그룹에 나아가 함께 교제를 사야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목숨까지라도 내어놓는 것입니다. 살고자 하는 자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 산 생명의 신비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우리교회는 목장하고 선교사님하고 결연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목장에서 선교헌금도 보내고 선교사님을 위해서 기도도 합니다.
‘장로님이 그래도 해야되는 것 아녀요?’
말씀을 준비하면서 아 누군가 희생하기 때문에 교회는 세워져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무 계산하는 사람은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어떻게 고백합니까?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다른 것은 배설물로 여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발견한 사람은 다른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팔아서 영원한 것을 삽니다. 농부는 재산을 다 팔아서 밭을 샀습니다. 이유는 밭 속에 있는 보물 때문입니다. 보물만사는 것이 아니라 밭을사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불필요한 일들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불필요한 인간관계 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조직 속에 있기도 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때로는 희생의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보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