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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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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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삽니다 (마16장 21-24절) / 2020년 9월 20일 주일설교
*3.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네게로오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다 내게로 와라
<나는 하늘아래 하나밖에 없는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종종합니다. ‘난 왜 이런 몸으로 태어났을까?
그러나 내가 성숙하고 성장하면 질문이 바뀝니다. ‘이런 몸으로 태어나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아무리 거울을 열심히 보아도 외모는 바뀌지 않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인정할 때 그때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들어가는 글) 엄마 반성문이란 책을 보셨나요? 화면을 볼까요? 엄마가 손을 들고 있죠. 저자는 이유남교장선생님입니다. 책은 제목처럼 엄마가 아이들한테 잘못했음을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고3아들이 전교에서 1등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교회장, 부회장뿐 아니라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고3이 되었는데 어느 날 학교를 안가겠다고 합니다. 1년뒤 딸도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1년 동안 게임만 했다고 합니다.
저자인 이유남교장선생님 큰 충격을 받고 울기도 많이 기도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자신을 뒤 돌아 보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주로 했던 말은 ‘숙제했어, 밥먹었어, 빨리 먹고 학원가’
주로 엄마의 역할은 관리자, 감시자, 통치자였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자녀교육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소통과 공감의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한테 정식적으로 사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최고의 코칭 기본은 내려놓음이고, 가장 훌륭한 코칭 스킬은 믿음과 기다림이다’(⛌2)
저는 이 내려놓음이 자기부인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나의 참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긴 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될 대로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맡긴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자기부인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하느냐’ 질문했습니다.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예수님은 내 구주가 되십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의 동기는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병고침 받기위해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해결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되길 소원하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의 평안을 경험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예배합니까? 좋은 대학가기 위해서 입니까?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입니까? 병고침 받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내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아주 정확한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해줬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내가 복이 있다’ 아마 예수님은 너무 행복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소원을 이야기 합니다. ‘내 교회를 세우리니’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각 지체가 되어 몸 된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천국을 열쇠를 네게 주노니’ 이 말씀은 베드로가 1대 교황이란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 고백한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을 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거침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합니다.
최고의 칭찬을 받은 베드로가 바로 뒤에 예수님으로부터 꾸중을 듣습니다. 23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를 야단치고 있습니다. 아니 야단 정도가 아닙니다. 더 심한 말을 합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베드로가 사탄이란 말은 아닙니다. 베드로를 교묘하고 이용하는 방해 세력을 꾸짖는 말입니다.
어떻게 온유하고 인자하신 예수님이 심한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이 21-22절 말씀에 있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어제의 신앙이 오늘의 신앙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어제 은혜 받았다고 미래가 보장 된게 아닙니다.
10년 전 부흥회 때 은혜 받은 것으로 지금을 살아가면 안 됩니다.
10년 전 기도원에서 불 받은 것을 가지고 지금을 살아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말씀으로 공급받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제가 공급받아야 살릴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해서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은 보통 하루세끼를 먹습니다. 하루3끼를 먹는 남자를 삼식이라고 합니다. 제때 밥을 주지 않으면 성질을 부리는 남자도 있습니다. 이런 분은 용감한 남자입니다.
게다가 중간에 간식까지 챙겨먹습니다. 그러면 영의 양식은 얼마나 드시고 있습니까?
말씀으로 공급받고 기도로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선한 일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구제사업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병 고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죄 값을 치루기 위해서 이 땅에 육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보혈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덮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십니까?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안 된다고 말렸습니다. 베드로의 생각은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관해서 말합니다.
첫 번째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는다.
두 번째 고난뿐 아니라 죽게 될 것이다.
세 번째 하지만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자기부인이 필요합니다.
24절 말씀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어부출신인 제자들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물을 버렸다가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했습니다. 제자들은 핍박도 당하고 배고픔도 경험했습니다.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습니까? 이 정도면 합격 아닐까요? 예수님은 아니라고 합니다.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십니다.
자기부인은 무슨 뜻입니까?
부인하다?라는 뜻을 찾아봤습니다. ‘어떤 내용이나 사실을 옳거나 그러하다고 인정하지 아니하다’
헬라어로 ‘아파르네오마이’ 완전히 자신을 포기하다, 아주 거절하다
deny(디나이) =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다
자기 부인이란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2) 하나님이십니다.
즉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통치를 받는 삶, 그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삶입니다. 나를 죽이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인간은 자기를 죽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면 자연히 자기가 죽습니다.
한국교회의 대부분 간증이 무엇입니까? 내가 교회 건축했다. 내가 병고쳤다. 내가 전도했다. 이런 분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 잘 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은 내가 건축을 5번 했다고 자랑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자랑할 내용이고 칭찬할 내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더 중요한 것을 물어보십니다.
<너는 훌륭하게 건축을 했는데 내가 궁금한 것은 너 자신을 부인했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너가 선교사고 목사고 장로인데 ...... 잘하긴 잘 했다. 그런데 너를 부인하고 있느냐? 어떤 목사님은 집에서 사모를 때리고 자녀들을 폭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어떤 직분을 가졌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장로님은 목사의 멱살을 잡고 끌어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장로님은 교회와 목사와 성도를 섬기는 분입니다. 그런데 장로님들이 주로 하는 일이 뭡니까? 목사를 내 쫓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게 문제가 있잖아요.
무슨 일이든 문제가 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걸림들은 나입니다. 제일 무서운 싸움의 대상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못 이깁니다. 김집사가 문제가 아닙니다. 박집사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나입니다.
(예화) 3-4살짜리 아이들을 보면 이런 말을 잘 씁니다. ‘내 꼬야’ ‘나 이거 좋아하는데’ 자기중심적이지~ 내 장난감, 내 과자, 내 옷, 내 책이 중요합니다. 누가 자기 것 만지면 싸우죠.
아이들이 성장하면 이젠 자기를 주장하지 않죠.
(예화) 성경에 자기 부인이 안 된 사람은 누구일까요? 종교지도자들입니다. 특별히 서기관, 바리새인들입니다. 마태복음18장 11-14절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기도합니다. 바래새인은 자기를 자랑하며 기도합니다. ‘나는’이란 말을 강조합니다.
반대로 세리는 어떻게 기도합니까?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무슨 뜻입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게 바로 자기부인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의롭다고 말합니까? 오히려 세리가 의롭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교만은 자기부인 아닙니다.
(예화) 물론 우리가 자랑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자랑하는 분들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우리교회 개척했어~ 내가 건축헌금 5천만원 했어~ 돈 자랑, 자식자랑, 남편자랑....다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 남편이 회사에서 부장으로 승진을 했습니다. 자기부인이 안된 아내는 어떻게 말할까요? 내가 내조를 잘했잖아~ 월급도 100만원 올랐어~ 이번에 차도 바꾸기로 했어~
자기부인이 된 아내는 어떻게 말할까요? ‘모든게 하나님의 은혜였어~’ 그리고 집사님이 기도해줘서 고마워~ 내가 이번 주에 교회에 간식사기로 했어’ 나를 강조하는 사람은 넘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출애굽기를 4부분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은혜입니다. 구원사건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했습니다.
2. 자기부인입니다. 출애굽 후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홍해를 건너게 하십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10장에서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침례라고 해석을 합니다. 침례가 바로 자기부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았다는 고백입니다.
우리중에 세례나 침례를 다 받았죠. 의식적으로 세례나 침례는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침례를 받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진짜로 내가 죽었는지가 중요합니다.
(예화)제가 출애굽기 성경공부 하면서 자기부인에 관한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자기부인의 반대는 자기주장, 자기과시, 혈기, 분노, 뚜껑열림, 똥고집입니다. 제가 좀 원색적인 단어를 쓸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 설교에 딱 걸리신 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은 아프지만 그 것을 소화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반대로 더 열을 내시는 분이 있습니다. 왜 열을 낼까요? 자기부인인 안되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3. 말씀훈련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계시해줍니다.
4. 예배훈련입니다.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시내산으로 내려오십니다. 산으로 내려오신 하나님은 땅으로 내려오십니다. 성막을 통해서 우리를 만나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통하길 원하십니다.
문제는 두 번째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어디에서 걸림니까? 두 번째 단계를 넘어가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첫 번째 십자가는 있습니다. 첫 번째 십자가는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두 번째 십자가가 없습니다. 자기부인입니다. 내 십자가가 없습니다.
첫 번째 십자가는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내가 살고
두 번재 십자가는 내가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은 경험이 있습니까?
(설명)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고난이 찾아옵니다. 어느 순간부터 종살이를 합니다. 바로가 주는 녹을 먹고 삽니다. 바로를 위해서 국고성을 쌓습니다. 인구가 많아지자 남자가 태어나면 죽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기적적이 방법으로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이젠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바로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이젠 애굽의 문화, 사상, 우상,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몸뚱이는 나왔는데 변화가 없어요. 하나님은 광야를 통해서 그들을 다루시죠. 광야는 무엇입니까? 훈련의 장소입니다. 하나님 의지하라~ 하나님께 주권을 드리라~
그러면 자기부인의 삶을 살았던 성경의 인물을 볼까요?
(예화) 모세를 볼까요? 모세나이 80세 때 하나님은 호렙산 떨기나무 가운데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떨기나무가운데 임재하시고 모세에게 말합니다. ‘네 신을 벗으라’ 신을 벗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 주권을 내어드린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자기부인입니다.
모세는 나이40이 될 때 자기 힘으로 히브리인들을 도왔습니다. 힘있고 능력있고 스피드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80세에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신발 벗는 사람 만들기 위해서 80세까지 기다리셨습니다. 모세는 40년 광야생활 했습니다. 처가 살이 했습니다. 모세가 나올 때 가지온 것은 지팡이 하나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자기부인 아닐까요? 하나님~ 내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예화) 다윗을 볼까요?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 할 때 다윗은 바위 밑에 숨고, 때론 동굴에 숨으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깊은 동굴에 숨어있는데 사울왕이 모르고 동굴에 들어왔습니다. 다윗이 보복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어떤 결정을 내립니까?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살짝 베어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음자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폐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게 바로 자기부인입니다. 자기주장, 혈기, 분노로 했다면 복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보고 후손을 축복하십니다. 내가 칼자루를 가지고 있으면 내 왕국이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칼자루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예화) 바울을 볼까요? 바울은 수없는 고난을 당합니다. 40에 하나감한 매를 5섯번 맞았습니다. 냄새는 나고 칙칙한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성경은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고난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고린도후서1장 9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다윗의 고난의 바다가운데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환경 탓하고 아내 탓하고 남편 탓하고 부모 탓하는 사람들은 다 자기부인이 안된 사람입니다.
바울은 환상과 계시를 본 사람입니다. 바울은 셋째 하늘에 갔다 왔습니다. 즉 다윗은 천국을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자랑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오히려 약한 것을 자랑하겠다고 말합니다. 이게 바로 자기부인입니다. 나를 높이지 않는게 바로 자기부인입니다.
(예화)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신앙부분에 있어서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머지는 양보할 수 있어야합니다.
너는 커서 의사가 되라, 선생님이 되라~ 그리고 일일이 간섭하고 협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잘 될 것 같죠. 의외로 삐툴어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예화) 이런 부모도 있습니다. 엄마, 아빠는 너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너가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지? 너가 어떤 대학에 가야할지? 너가 어떤 배우자를 만나야 할지?
너가 기도하면서 결정해봐. 엄마는 잘 몰라도 확실히 아는 것은 우리 딸이 최상의 결정을 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면 이런 아이들이 되는 데로 살 것 같지만 의외로 자기 길을 잘 찾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중간에 헤멜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잘 찾아갑니다. 자녀도 내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잠시 나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면 자기부인은 어떻게 가능합니까? 나의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도를 닦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죽으려고 하면 속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진리는 믿음으로 취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자아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듯이 자아의 죽음도 믿음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비로소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내가 죽어야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기부인은 한 번의 결단으로 가능할까요? 아닙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을 볼까요?
고전15장 31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도 바울은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학벌 좋죠, 가문 좋죠, 열정있죠. 그런 것 자랑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만 자랑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날마다 예수님 바라보겠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 의지하겠다.
내가 손해보고 내가 죽으면 배우자가 살아납니다.
내가 죽으면 자녀들이 살아납니다.
목사가 죽으면 교회가 살아납니다.
목자가 죽으면 목장이 살아닙니다.
내가 칼자루를 잡고 좌지우지 하면 나는 살지만 내 주변 사람은 죽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첫 번째 십자가는 있는데 두 번째 십자가는 어디있니?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옛습관 대로 살때가 많습니다.
내 주장, 내고집, 혈기, 분노로 살아 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죽고 내안에 예수님으로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생명의 부양자로 사용하지 주시옵소서~
(동영상시청)
*부부 돕고 살겠습니다. - 부부 맞춰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쳐서 살라고 합니다.
연예인들의 이혼을 보면 이해가 안 갈때가 많습니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끼리 결혼했습니다. 돈도 있고 명예도 있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왜 이혼을 할까요? 서로 맞춰야 하는데 맞추기 싫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매여 살기 싫다는 것입니다.
가정은 훈련소가 아닙니다.
*동영상시청
하나님을 만나기 전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I'm somebody. 난 괜찮은 사람이야~ 난 배울만큼 배웠어~ 난 중산층이야~ 이만하면 신실하게 살았어~ 과거에 꽤 잘 나갔어~ 어깨를 세우고 주님앞에 섭니다 'I'm somebody.
그렇다가 어느 날 날 구속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어느날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그때 우리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I'm nobody’ –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죄인중에 괴수였습니다”
나는 먼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주셨을 뿐 아니라 우리와 만나길 원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하다“ “내가 너를 잘 안다” “내가 너의 상처를 안다” “내가 너를 지켜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그때 고백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I'm everybody.' - 나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수준이 'I'm everybody.' 되길 축복합니다. 나는 질그룻입니다. 깨지기 쉬워요~ 하지만 내 안에 보배이신 예수님이 계시다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능력이 그분안에 있습니다. 기적이 그분안에 있습니다. 축복이 그분안에 있습니다.
'I'm somebody. ‘I'm nobody’ 'I'm everybod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