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8장 18-28 고린도와 에베소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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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8장 18-28 고린도와 에베소 전도
사도행전 18:18-28
바울이 안디옥으로 내려가다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아볼로가 담대히 전도하다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할렐루야 수요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고린도에서 바울이 어떻게 사역했는지 하나님께서 어떠한 위로를 주셨는지 함께 나누었습니다.
영상으로 송출할 때 참 좋은 것이 혹시 지난주에 어떤 내용인지 기억이 안난다거나 어떠한 사정으로 예배를 못드렸을때도 다시 되돌려 볼 수 있다는 점이지요
혹시 생각이 안나는 분들은 지난주 영상을 보시면 도움이 될것입니다.
지난주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바울이 고린도에서 행한 사역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두려워말라라고 하시며 바울의 사역을 보장하십니다.
지난주는 11절까지 말씀을 나누었고 12에서 17절까지는 고린도 사역의 후기에 있었던 소요사태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인 18절부터는
사도바울이 2차전도 여행의 종료와 3차 전도여행의 시작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의 큰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일 년 육개월 동안 머물면서 고린도 교인들과 형제의 우애를 나누었습니다.
또한 당시는 갈리오 총독의 옹호까지 받게 된 상황이라 바울로서는 가장 편하게 사역 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인간관계와 당시 상황을 볼 때, 바울은 그곳에서 더 오래 머물면서 편하게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형제처럼 지냈던 교인들을 떠나 수리아 안디옥으로 떠납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깍았더라”
이 구절로 미루어보아 바울이 고린도 선교 사역과 관련해서 어떤 목적을 두고 일정 기간의 나실인 서원을 했고, 이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그의 서원을 들어주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 6장에 보면
일반적으로 나실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기로 서원하고 포도에서 산출되는 모든 것을 먹지 않고, 어떠한 시체도 만지지 아니하며,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습니다(민 6:1).
서원은 일평생일 수도 있고, 최소 30일 이상의 특정기간을 정할 수 있었는데, 특정기간이 끝날 때 율법에 정한대로 서원기간동안 자란 머리카락을 하나님께 바치고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민6:13-20).
따라서 18절 말씀을 통해 바울은 고린도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 늘 기도하는 삶의 살았고,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사실과 함께, 바울은 눈앞에 보이는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린 서원이 이루어졌음에 감사하며 이별의 아픔을 감내하고도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는 신실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본문의 바울의 모습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 기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사역을 하면서 자신의 지혜나 생각에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매달렸습니다. 오늘이라는 하루를 새벽기도로 시작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고린도 사역을 위해 바울이 전심을 다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 주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역이 나의 사역이 아닌 하나님의 사역임에 감사하며 이 사역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권능의 옷을 덧입혀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상황과 사람의 뜻에 민감했다면 그는 고린도의 사랑하는 형제들과 좀 더 있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서원을 들어주셨음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고린도 형제들을 뒤로 하고 떠났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편안함을 누릴때가 있습니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이럴때는 분명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명이 있는 사람은 그러한 편안함을 다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이 편안함 때문에 나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안디옥으로 가는 도중에 잠시 들렸던 에베소 교인들의 더 머물러달라는 간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21)하고 에베소를 떠난 바울의 모습에서도 그가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안함과 어려움은 늘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곳으로 가야 하고 하나님께서 있길 원하시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러한 자리로 계속 나아갔던것입니다. 바울이 선택한 자리는 나를 편하게 하는 자리라던지 나를 돋보이게 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고난을 찾아다닌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찾아다닌 자리는 복음이 필요한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자리에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갈급해 하는 사람들에게로 갔습니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우리는 어느 자리에 있어야 하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게는 가정에서 또한 직장에서 우리의 교회에서의 봉사자리에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새해가 시작되었고 각 부서의 담당자들이 정해졌습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로 인해 그런일이 없었는데 많은 교회들이 매해 말이 되면 직분에 대해서 고민이 많습니다. 보통은 나 이거 시켜주세요 보다는 나 이거 그만하게 해주세요입니다. 가만히보면 그런 사정들이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오랫동안 책임을 맡아왔고 봉사로 인해 지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바울과 같은 자세입니다. 바울처럼 선교를 다녀야하는 것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내가 편안한 자리가 아닌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 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께 부탁드리는 것은 2021년의 삶이 주님께서 바라시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다음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24-25)
에베소는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로서 동쪽으로는 예루살렘과 수리아 안디옥으로, 서쪽으로는 헬라와 로마로 나아가는 산업의 중심도시이며, 당시 고대 근동의 풍요의 신인 아데미 여신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우상 숭배가 만연한 에베소에 바울이 떠나자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라는 유대인이 왔습니다. 성경은 아볼로의 고향을 알렉산드리아라고 굳이 밝히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이 애굽을 정복한 후에 애굽 북쪽 지중해 연안에 건설한 도시로, 상업의 중심지요,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B.C. 280년경에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서인 70인역(LXX)이 이곳에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오리겐 같은 유명한 신학자도 알렉산드리아 출신입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아볼로는 당시 수사학에도 능통하여 언변이 좋고, 학문적인 배경도 좋을 뿐만 아니라 구약에도 능통한 자라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성경을 펼치지 않고도 즉석에서 본문을 인용할 수 있으며, 그것을 성경의 어느 부분에서 인용하였는가 까지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성경에 능통한 자'였고,
그는 성경 본문의 뜻과 의미를 이해하였고 그것들의 사용법과 적용법을 알고 있었으며, 성경을 근거로 강력한 변론을 전개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유대인인 그가 어려서부터 주의 도를 배웠다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상당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 곧 회개의 차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회개만으로는 신앙의 뿌리가 온전하지 못합니다.
신앙의 뿌리는 회개를 거쳐 '예수님께서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고백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까지 내려져야 합니다. 회개의 세례만 알아가지고는 하나님의 성령이 아볼로의 사역에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율법교육을 잘 받았으며,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가르치고, 다방면에 학식이 풍부하나,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본질을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볼로를 복음의 세계로 이끌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바울이 고린도에서부터 함께 했다가 에베소에 남겨두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였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천막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한 사람입니다. 회당에서 아볼로의 설교를 듣고 있던 아굴라 부부는 그가 복음의 핵심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볼로를 집으로 초대해서 그에게 하나님의 도(복음의 본질)를 더 정확하게 풀어 말해주었고, 이후 그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겼습니다”(28).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쓰면서 1:12에서 고린도 교회 안에 ‘아볼로 당’이 있음을 언급합니다. 비록 한 교회에서 이러한 파당이 있다는 것이 부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으로 아볼로가 고린도에서 상당한 존경을 받았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볼로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고 동역자로 여겼습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3:6에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말했으며, 고린도전서 3:9에서 자신과 아볼로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바울과 아볼로가 힘을 합하여 일했는데, 바울이 기초 사역(씨를 뿌림)을 했고, 아볼로가 심화 사역(물을 줌)을 했음을 의미한다.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점이 있습니다.
1. 바울의 말씀 사역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정책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한 번 배운 것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하며, 사역자는 말씀을 계속하여 가르침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성장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말씀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며, 사역자는 말씀 교육에 최고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2. 아볼로의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모습입니다.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곧 그는 온전한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아볼로에게 성경을 풀어 주어서 아볼로가 온전한 성경 지식을 가지도록 도와주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볼로는 겸손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만처럼 위험한 생각은 없습니다. 정상에 올라갔다 추락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자만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사람에게도 겸허하게 배울 수 있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겸손한 모습은 아름다운 동역을 이끌어내었습니다. 그것은 먼저 배운 자가 나중에 배우는 자를 도와주는 모습이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동역해야 할 필요성과 중요성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3. 자격을 갖춘 사람이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볼로가 고린도로 건너가고자 할 때 에베소의 형제들은 고린도의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아볼로를 영접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볼로가 고린도에서 일할 때 매우 적절하고 필요한 추천서였습니다. 아볼로가 성경 교사로서 합당한 신분과 자격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 주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당시에 거짓교사들이 순회하면서 잘못된 말씀을 전하고 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적절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 귀하고 또한 자격을 증명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의 형제들은 고린도의 제자들에게 아볼로를 추천하는 편지를 쓴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가르칠 자격이란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구성원으로써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갑니다.
나는 가르칠 자격이 안되니 못해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그 자리에 맞는 자격을 얻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오늘은 두가지 사건에 대하여 나누었습니다.
바울이 겐그레아에서 서원하며 2차전도여행을 마치고 바로 3차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생각이나 바램과는 다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곳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곳이 우리가 가야할 곳입니다.
또한 아볼로의 사역을 보았습니다. 아볼로는 성경에 능통했고 말을 잘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가르침을 받아 고린도 교회에 가서도 말씀 전하는 사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답입니다. 각박해보이고 말씀을 거부하는 것 같은 세상이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그리스도를 필요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멀리는 선교지가 될수도 있지만 가까이는 우리의 가족이나 친구들 직장동료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의 말씀을 배워가는동안 그러한 복음 전하는 일에 대하여 알아가고 배워갈텐데 온전히 주께 붙잡힌 우리가 되어 선한일꾼으로 쓰임받길 소망하며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온전한 주님의 일꾼이 되기 원합니다. 바울같을순 없고 아볼로 같을수는 없지만 바울과 아볼로를 통하여 배우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아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곳에 함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연약하고 무지한 우리지만 주께서 강하게 하시고 지혜를 주셔서 주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선한 일꾼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찬양 말씀하시면
주기도문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우리 함께 찬양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