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오신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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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요 2:1-12절
제목 :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
본문 목적 – 독자로 하여금 가나 혼인 잔치 기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새 시대를 여시기 위해 오셨고 증거로 이적을 행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해 기록함.
본문 주제 – 예수님은 새 시대를 여시는 메시아시며 그분을 믿어야 한다.
설교 목적 – 성도로 하여금 본문의 목적을 살피게 하고 예수님이 여신 새 시대의 의미들과 그것을 깨달아 구원에 대한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함.
설교 주제 – 새 시대를 여신 예수님을 믿읍시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저는 몇 년 전에 목사님 결혼식에 축하하러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식을 하기에 출장뷔페를 불렀는데 예상 보다 너무 많은 하객이 축하해주러 와서 음식이 다 떨어져 밖에 식당에서 밥을 먹은 경험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와 비슷하게 오늘 본문에서 당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어머니 그리고 제자들이 가나에서 열리는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이 당시에 혼인잔치는 종종 1주일간 지속되었습니다. 근데 여기서 이 잔치의 꽃인 ‘포도주’가 다 떨어져버린 것입니다. 일주일동안 먹을 양을 계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한주간의 잔치비용을 신랑이 부담 했습니다. 그렇다면 신랑이 책임을 지고 이 일을 수습해야 했는데 이 때 갑자기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에게 ‘저들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까지 이 혼인잔치에 초대된 걸로 보아 혼인을 올리는 사람과 예수님의 가족이 가까운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이 문제를 도와주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장남이었던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아버지 요셉은 누가복음에 등장한 12살 때 예수님 이후로 등장하지 않기도 하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자신의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마리아는 과부가 된 듯합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장남인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아왔고 이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예수님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떻게 반응하셨나요? 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예수님은 나와 상관 없다면서 거절하시지만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하라는 대로 그대로 하라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의 거절을 들었음에도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그대로 할 것을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마침 거기에는 큰 돌 항아리 6개가 있었습니다. 이 항아리는 유대인의 정결 예식에 필요한 물을 담는 항아리였습니다. 그 크기는 두세 통 드는 항아리라 했는데 한 통은 약 40리터 한 항아리에 두세 통 들어가니 약 80-120리터 6개 합치면 약 700리터의 물이 들어가는 큰 항아리였습니다. 거기에 물을 아귀까지 꽉 채워 그냥 연회장에 갔다 주라 명하십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었고 그것을 먹었을 때 사람들은 좋은 포도주를 왜 이제 가지고 오냐 하며 감탄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가나 혼인 잔치 포도주의 표적은 예수님 공생애 시작 첫 표적입니다. 첫 표적이 중요할까요? 중요하지 않을까요? 여기에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의미가 잘 드러난 본문입니다. 이 말씀 가지고 설교를 들어본 일이 있으시죠? 보통 예수님의 명령과 하인들의 순종이 강조되곤 합니다. 하지만 이 본문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11절 말씀에 명확히 드러납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이 포도주 표적을 나타낸 목적이 뭐에요? 예수님의 영광과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해 나타냈습니다. 이 본문은 마리아와 하인들의 믿음과 순종이 초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입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을 베푸십니다.”
6절 말씀 한번더 읽어보겠습니다.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유대인에게 있어서 정결은 굉장히 중요한 법이었습니다. 레위기 말씀에도 있듯 정결과 부정을 구분했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은 정결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 정결 예식으로 음식을 먹기 전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듯 위생적인 행동을 넘어선 정결 예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식탁의 자리가 하나님 나라의 식탁이라고 생각했으며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는 정결해야만 했습니다. 그 정결을 나타내는 의미로 밥을 먹기 전에 그 항아리에서 물을 떠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정결 예식을 위해 갖다 놓은 물이 여섯 항아리나 되었다면 그곳에는 이 정결 예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인이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 잔치에 문제가 생깁니다. 가장 중요한 기쁨의 상징인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그 정결 예식을 위해 준비된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 하시며 그것을 포도주로 바꾸십니다. 예수님이 그 잔치를 회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더 이상 정결 예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정결해지며 기쁨이 넘치는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누가 이 잔치를 회복할 수 있습니까? 누가 이 기쁨의 구원을 우리에게 선물하실 수 있습니까? 우리가 열심히 정결하게 살아서요? 우리가 열심히 선한 일해서요? 우리가 나름 착하게 살면요? 이것은 포도주가 떨어져버린 잔치가 될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제 말은 정결하게 살 필요가 없단 말이 아니라 정결하게 살아서, 열심히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누구를 통해서만요? 예수님만을 통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구원을 받은 우리가 정결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지요. 우리 정산교회가 예수님만을 나의 구원자로 인정하는 교회되길 소망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3절 4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요 2: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요 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자신의 장남이었던 예수께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어떻습니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르며 매정하게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대답 합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봤을 때는 매정한 아들의 태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자신을 향한 모든 인간적 조언과 제안, 조종으로부터 자신이 자유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다른 어머니들이 자신들의 아들을 바라보는 식으로 자신을 바라보아서도 그 자식에 대해 어머니로서 특권을 주장해선 안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아들로서 역할을 다 하시지 않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후 목수로서 가정을 돌보셨고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 자신의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때’에 대해 언급합니다. 예수님에 관해 이 “때”가 사용될 때는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영광 받을 부활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인 죽음과 부활에 집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와 부활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는 단순히 사람들을 먹이고 병 고치고 낫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바로 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승천으로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에게 무엇을 선물로 주실까요?
따라해 보겠습니다. “구원은 천국 잔치의 초대입니다.”
오늘 가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은 새 포도주를 만드셔서 기쁨의 잔치가 되게 한 것은 우리가 맞이할 천국 잔치를 보여줍니다. 이 구원의 잔치는 구약성경에서도 잘 보여줍니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사 25: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여러분 잔치, 연회 하면 떠오르는 것은 풍요로움, 배부름, 기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무한한 부요함과 기쁨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곳에는 결핍이 없고 고난도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안과 부요함과 기쁨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도 설명해주셨습니다. 이 탕자의 비유는 집 밖의 탕자와 집 안의 탕자가 등장합니다. 두 번째 아들은 아버지의 품을 떠나게 됩니다. 그 유산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떠난 아들은 결국은 모든 재산을 탕진한 후 방탕과 궁핍의 길로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떠난 아담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아들은 아버지의 환영과 그를 위해 풍족한 잔치를 베풀어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아버지와 함께하는 감격을 누리셨나요?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제 우리는 다시 하나님 아버지와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 잔치는 죽어서 갈 천국에서도 완전히 누릴 것이지만 이 땅에서 이 아버지와 함께하시는 삶도 누리시길 바랍니다.
때론 이 감격을 잊어버리고 맏아들처럼 하나님께 함께 하는 삶을 너무 당연히 여길 때가 저도 너무 많습니다. 힘들고 지치고 고난을 만날지라도 아버지와 함께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1:1-7절 말씀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계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