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합당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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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골 1:9-14
제목 : 주님께 합당한 삶
찬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찬 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
오늘은 “주님께 합당한 삶”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삼일간 평안하셨습니까? 반갑습니다. 뉴스를 보니 다시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보니깐 지역에서 31명 해외 입국자가 20명해가지고 신규확진이 51명이 되었더라고요. 감기처럼 여름이면 조금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점은 날씨가 더워 온도가 높은데도 외출할 때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덥고 답답하고 숨도 잘 쉬어지질 않습니다. 미세먼지에 이어 참 마음껏 좋은 공기를 마시며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니다.
이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간다고 합니다. 포스트는 ‘이후’라는 말인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고 난 후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이다는 겁니다. 코로나 전과 후를 구분하는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삶에 가져온 변화가 크기 때문입니다. 이 변화는 세상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교회 또한 많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교회 안으로는 어떤 변화가 찾아왔습니까? 현장예배를 드리기 어려운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이로 인해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도 합니다. 또 현장예배 드리기 힘든 상황이니깐 다른 모임들도 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회가 성도들을 돌아보고 양육하고 훈련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이 논의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모이는 예배뿐만이 아닌 흩어지는 예배 즉 삶의 예배에 대한 중요성들도 다시금 부각되고 있습니다.
교회 밖에서는 교회에 대한 인식에 어떤 변화가 찾아왔죠? 이 코로나로 인해 절대 다수가 최대한 방역에 협조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교회로 인해 교회 전체가 비난을 받는 상황입니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교회에 대한 인식은 꽤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알려드릴게요 방법은 비난하는 말을 향해서 논리적인 대답이나 변론이 아닙니다. 그들의 입을 막는 것은 바로 우리의 선행입니다. 우리 교단의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장 2항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함으로 행하는 이 선행은 참되고 살아있는 믿음의 열매요 증거이다. 그리고 신자들은 선행으로 자기들의 감사를 드러내고, 확신을 굳게 하며, 형제의 덕을 세우고, 복음의 고백을 단장하며, 대적들의 입을 막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니, 라고 말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의 선행 즉 삶의 합당한 모습이 모든 대적들의 입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 계속해서 지향해야 되는 것은 바로 참된 예배와 우리의 합당한 삶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갈 때 교회는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합당한 삶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본문이 바로 오늘 살펴볼 골로새서 1장 9절부터 14절 말씀입니다.
골로새서는 우리가 알다시피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게 쓴 편지입니다. 골로새라는 도시는 현재는 터키 지역인데,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 도시 사이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사도 바울이 아닌 골로새 사람 에바브라가 설립한 교회입니다. 그는 사도 바울이 3차 선교여행 때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에바브라는 바울과 함께 사역하다가 고향인 골로새로 돌아가 복음을 전했고 교회가 세워졌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며 편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의 상황은 로마에 있는 가택에 연금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얼굴을 본적도 없지만 에바브라를 통해 골로새 교회 소식을 들었고 그들을 향해 편지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을 형제라 부르며 그들을 위하여 서신을 보냈고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골로새서 1장 3절부터는 그들이 주님을 향한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듣고 감사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9절부터인 오늘 본문에서는 그들을 위해 어떤 기도제목을 가지고 중보기도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9-10절 말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골 1:9, 개정)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 1:10, 개정)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편지에서 어떤 기도제목을 가지고 계속해서 중보하고 있는지 말합니다. 그는 골로새 교회를 설립하지 않았고 방문한 적도 없지만 그 교회를 주 안에서 형제로 여기며 그들을 위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이 기도의 내용은 14절까지 이어지는데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주님께 합당하게 살도록 간구합니다. 두 번째는 구체적으로 그들이 어떤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기도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첫 번째 한번 따라해보겠습니다.
합당한 삶을 위해 기도합시다. 여러분 기도의 중요한 목적은 행복과 성공의 삶이 아닙니다. 또는 단순히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의 합당한 삶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이 가진 여러 어려움과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기 전에 그들이 하나님 뜻을 알게 되는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채움 받아 합당한 삶을 살도록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해야 할 기도라는 것이죠.
우리의 기도에는 지금 내가 어떤 것에 큰 관심이 있는지, 바램과 소원이 있는지 분명히 드러납니다. 요즘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까? 요즘 다들 코로나 바이러스가 끝나길 기도하잖아요 그치요? 그렇다면 왜 코로나가 끝나길 기도하십니까? 코로나가 끝나면 1번 경제가 활성화되기 때문에 2번 여행을 마음껏 다닐 수 있기 때문에 3번 고통 받는 사람들 때문에 4번 자녀들의 학업 때문에 /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어떤 이유가 있겠지요 그럼 그 이유는 하나님과 어떤 상관이 있습니까? 경제가 활성화 되는게 하나님의 뜻입니까? 경제가 활성화 되면 하나님께로 모든 사람들이 돌아옵니까? 그럼 뭐에요? 경제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살만해지겠지요? 그럼 살만해지면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깁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합니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의 신은 돈입니다. 이 맘몬이라는 신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립니다. 또 이 신을 가지기 위해 일단 자연과 사람 두 가지 모두를 파괴합니다.
오히려 바이러스가 일어나기 전 우리가 누렸던 자유, 경제적 풍요, 쾌락을 추구하는 삶.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없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기도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냥 단순히 내 눈 앞에 있는 어려움, 문제,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을 넘어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근본적인 이유를 가지고 기도해야하는 것이죠. 이게 정말 하나님을 위한 일인가?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위해 내가 기도하는 것인가? 질문해봐야 합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도 자신의 육체의 연약함, 즉 겪고 있는 고통 때문에 기도합니다.
(고후 12:8, 개정)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고후 12:9, 개정)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고통을 위해, 육체의 가시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때 주신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진다. 이 응답을 받자 어떻게 했어요? 그가 고통 때문에 근심하던 그의 마음에 큰 기쁨이 임했습니다. 오히려 기도를 통해 자신의 삶의 모습에서 자신의 약함을 통해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내는 신비를 깨달았습니다. 바울이 이 기도제목으로 또 기도했을까요? 저는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목적은 주님께 합당한 삶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나의 삶을 면밀하게 세심히 살피는 것이죠, 정말로 이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아주 사소한 말과 마음, 행동이었을지라도 주님께 합당한 행동이었을까? 그렇지 못했다면 마음이 답답하고 무겁고 불편하고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여러분 주님께 합당한 삶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이 문제에 관심을 갖으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두 번째입니다. 따라해보겠습니다. 합당한 삶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인내로부터 시작합니다. 뭘로 시작합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과 인내 본문 10절 볼게요.
(골 1:10, 개정)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골 1:10, 새번역) 여러분이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여기서 합당하게 살아간다와 똑같은 내용은 바로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고” 합당하다는 의미는 마땅하게, 어울리게, 가치있게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합당하게 사는 것 이냐? 어떤게 가치 있고 마땅한 삶이냐?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합당한 삶이에요. 합당한 삶의 기준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합당한 삶이에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합당한 삶이에요. 그렇다면 반대로 합당한 삶이 아닌 것이 뭐에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삶. 기준은 하나님이에요. 합당한 삶의 기준은 주위 사람들이 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될 수 없습니다. 합당한 삶, 가치 있는 삶, 어울리는, 마땅한 삶은 내가 원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나에게 원하는 삶, 자식이 부모에게 원하는 삶이 합당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합당한 삶이에요. 물론 같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같지 않을 때가 저는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면밀하게 살펴도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에 관심이 없거나 내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인 것 마냥 포장하는 것이 문제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알아야 할거 아닙니까.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합당한 삶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어떤 사랑을 베풀어주셨는지, 하나님은 어떤 일을 기뻐하시는지 기준이 있어야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분이 기뻐하시는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여기서 알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을 넘어선 인격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저희 아내를 안다고 했을 때 안다는 것이 단순히 지식적으로 이름이 무엇이고 키는 얼마고 몸무게는 얼마고 이게 진짜 아는겁니까? 아니잖아요 우리가 적어도 사람이 사람을 안다고 할 때도 서로 만나기도 하고 시간도 보내고 밥도 먹고 대화도 하고 이렇게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고 교제하면서 그 사람이 가진 생각이나 가치관, 성격, 마음,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점점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거잖아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그분에 대한 앎이 풍성해집니다. 이 앎이 풍성해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알아가길 힘쓰시길 소망합니다.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합당한 삶을 위해 뭐가 필요해요? ‘인내’가 필요합니다. 11절 읽어보시면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그 다음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인내가 필요한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해요?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신다는 거에요. 능하게 하시는 목적이 바로 인내입니다.
여러분 인내 잘 하십니까? 잘 참습니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 인내를 어떻게 해요? 기쁨으로 하라 말씀하십니다. 인내할 때 기쁘신분 손들어보세요 여기서 인내는 우리가 이를 갈며 울분을 참아내고 속으로 미워죽겠는데 말로는 용서하는 그런 인내를 말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기쁨이 충만하여져서 모든 것을 견디고 인내하는 것을 말합니다. 합당한 삶은 내 기분 좋을 때 한번 한턱내고 와 나 잘했죠? 이런 삶 아닙니다. 결코 한번 행하는 일이 아니라 지속해서 내 온 인생을 통틀어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셔야 합니다. 능력 주십시오. 기쁨으로 인내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지속적으로 기도해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입니다. 따라해볼게요. 합당한 삶은 감사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합당한 삶은 감사하는 삶입니다. 제가 왜 자꾸 삶이라고 하냐면 이것은 한번하고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전 생애의 삶이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80세를 살던 100세를 살던 온 인생이 감사의 삶이여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 합당한 삶입니다.
여러분 지금껏 살아오면서 아 지금 생각해봐 크게 감사한 일이 있으십니까? 그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감사하다 그런 일 말이죠. 생각해보면 몇 가지씩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있습니다. 아직도 그 기억만 생각하면 다행이다 감사하다 라는 일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인데 몇 살 때인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가족끼리 해수욕장을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너무 깊은 곳까지 가버려서 바닥에 발이 안 닿아서 정말 물에 빠져 죽을뻔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 기억으로는 작은아빠가 와서 구해줬는데 그 때만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그 때 절 구해주셔서 제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더라구요. 이건 지금까지도 제 생애에 있어서 감사한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일들 살아오면서 한번씩은 다 있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왜 했냐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정말로 평생 동안 감사해도 감사해도 메마르지 않는 감사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바로 13-14절 말씀입니다.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골 1:13, 개정)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4, 개정)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아멘. 이 이유가 바로 평생에 아니 영원토록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냥 감사의 삶을 살아가라 말하시지 않습니다. 정말로 영원토록 감사할 이유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다음 감사해라 말씀하시죠.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이게 우리가 영원토록 감사할 이유입니다. 여기서 흑암은 악을 나타내는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흑암의 권세는 결국 사탄의 권세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어디로 옮기셨어요? 번역이 사랑의 아들의 나라인데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라고 해야 맞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셨다는 것이죠. 감사하십니까? 평생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4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셔습니다. 죄의 형벌인 영원한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셔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기셨습니다. 이 사실만 생각하면 우리는 감사라 터져나와야 합니다. 이 일을 넘어설 감사의 제목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 때문에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우리게 되길 소망합니다. 이번 한주간의 삶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최근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시금 성횡하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를 통해 온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는 시간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영혼들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이 어려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 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바이러스 때문에 교회에 오지 못한 많은 성도님들 기억하여 주시고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실한 성도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이 어려움의 시간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귀한 시간 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이 시간 계속해서 다음 세대들을 위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코로나로 인해 성경학교를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염려스러운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 가운데 일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이번 성경학교주제가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인데 그 시간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아이들을 만나주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믿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들을 이루어 나가는 다음세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시고 섬기시는 교사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약함 가운데 있는 김옥춘 집사님과 여러 연로하신 어르신들을 위해, 또 영적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교회가 후원하는 선교사님들과 교회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이 시간을 예배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설교하는 저를 위해 또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님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시간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달라고 통해 기도해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