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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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마 25:14-30
제목 : 달란트 비유
찬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찬 176장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
삼일 간 평안하셨습니까? 오랜만에 이 자리에서 성도님들을 뵈니 반갑습니다. 오늘 드디어 그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했는데 조금 완화된 생활 속 거리 두기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아직 바이러스가 종식 된 상황은 아니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루 빨리 이 고통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벗어나고 자유롭게 모여 예배하며 교제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달란트 비유’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려본 적이 있으십니까? 누구나 다 있었을 겁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총각이었는데 그 때 결혼할 날을 기다렸습니다. 군인들은 전역을 간절히 기다리구요, 고3 학생들은 대학갈 날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손주 볼 날을 기다리고 자식들이 결혼할 날을 간절히 기다리기도 합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많은 사람들은 이 상황이 끝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시지요? 우리는 무엇을 계속해서 기다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제가 왜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냐면 바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간절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립니까? 예 맞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심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정말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아직은 오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혹시 여러분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오심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유는 바로 주께서 이 땅을 심판하러 다시 오시기 때문입니다. 심판하면 그 날이 기다려지십니까? 다시 오실 예수님은 억울함, 수고, 슬픔, 불안, 고통, 죄책, 불의와 죄로 가득한 이 땅을 심판하십니다. 이 심판은 분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원수 된 자와 우리의 원수들이 영원한 저주의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것이 심판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택한 백성들은 하늘의 기쁨과 영광으로 인도하여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합니다. 즉 심판은 분리입니다. 원수들은 영원한 멸망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한 생명으로. 이 날이 기다려지시지 않습니까? 기다려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재림을 기다리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주님을 기다리는 신자가 무엇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흔히 ‘달란트 비유’라고 하는 본문입니다.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주일학교 때도 듣기도 하고 이 본문은 어느 정도 익숙한 본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달란트’라는 단어가 영어로 ‘탤런트’ 즉 재능을 의미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가지고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한다. 라는 주제로 많이 들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더 정확하게 이 본문의 가르침은 주님의 재림과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의 태도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문맥을 잘 파악하는 것입니다. 앞 뒤 어떤 문맥 가운데 이 본문이 위치하고 있는지 성경을 읽을 때는 반드시 문맥을 고려해야 합니다. 드라마, 영화, 책, 소설 모두 다 마찬가지입니다. 흐름을 알지 못한 채 그 장면만 본다면 그 장면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성경도 문맥을 고려하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 달란트 비유의 문맥은 바로 예수님이 재림에 대해 가르치시고 있는 상황에서 말씀하신 비유입니다. 24장 3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마 24:3, 개정)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지막 때에 관한 질문에 대해 대답하십니다. 그 대답 중에 오늘 ‘달란트 비유’가 등장합니다. 달란트 비유 바로 전 비유도 ‘열 처녀 비유’이며 바로 뒤에 있는 비유도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가르침이 등장합니다. 이처럼 달란트 비유는 예수님께서 ‘재림’에 관한 가르침을 비유로 가르치고 계십니다.
비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한 주인이 타국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떠나기 전에 자신의 종들을 불러 소유를 맡깁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 한 종에게는 두 달란트, 한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고 타국으로 떠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달란트는 재능이 아니라 당시 금과 은의 무게를 측정하는 단위입니다. 한 달란트는 헬라의 달란트는 27kg 로마의 달란트는 약 31kg의 무게였습니다. 만약 금으로 한 달란트 즉 31kg였다면 금 31kg가 한달란트입니다.지금 금값으로 계산하면 금 값이 많이 올랐더라구요 1그램당 6만 7천원 쯤 하더라구요. 6만 7천원 곱하기 31,000그램은 20억 7천 7백만원입니다. 금 한 달란트가 현재 시세로 하면 20억이 넘습니다. 당시 시세로는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으로 약 20년 정도의 연봉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연봉 3,000만원으로 잡고 20년이면 6억입니다. 그 당시 시세로도 그들은 각각 30억, 12억, 6억을 받았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결코 한 달란트는 적은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은 종들을 신뢰하였고 타국으로 떠날 때 많은 돈을 그들에게 맡겼고 장사하게 했습니다.
주인이 떠나자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을 가지고 바로 가서 장사했습니다. 그리고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도 그같이 해서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땅을 파서 주인이 맡긴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종들을 불러 결산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와서 말합니다. “주인님 주신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제가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주인은 그를 칭찬하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말했습니다.
두 달란트 받았던 종도 똑같이 말합니다. “주인님 제가 주신 두 달란트를 가지고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주인은 똑같이 그를 칭찬하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칭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을 찾아와 이야기 합니다. “주인님 당신은 굳은 사람입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런 당신을 무서워하여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두었습니다. 당신의 돈이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인은 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느냐? 그러면 네게 맡긴 돈을 맡겨 이자라도 받으면 되지 않았겠느냐” 그를 책망하며 그가 가진 돈을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줄 것을 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익한 종은 어두운 곳으로 쫓겨났습니다.
이 비유가 주는 첫 번째 교훈 한번 따라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이 비유는 서두에 말했듯 예수님께서 “재림”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자신이 다시 오실 것을 계속해서 가르치십니다. 본문 전 장에 보면
(마 24:44, 개정)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 24:50, 개정)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열 처녀 비유에서도 밤중에 신랑이 갑자기 옵니다. 오늘 달란트 비유에서도 주인이 종들이 생각하지 못한 때에 와서 그들과 결산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셨던 것처럼 다시 오실 것을 계속해서 가르치십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을 믿고 확신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재림을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나 내가 살아 생전에는 오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성경 곳곳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을 약속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천사를 통해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계시록 마지막 22장에도 보면 7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20절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예수님이 속히 오신다고 말씀하셨는데 도대체 언제 옵니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지금 시대뿐 아니라 예수님 당시에도 또 승천하신 후 계속해서 사람들이 해온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주인이 타국으로 떠난 후 언제 돌아왔습니까? 19절에 보면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지금 시대에 외국에 나갈 때에는 짧은 기간이면 가는 편과 오는 편을 날짜에 맞춰서 미리 예약합니다. 당시에 타국으로 떠난 다는 것은 기약 없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언제 오겠다 말하지 않고 떠났습니다. 그 기간은 오래었지만 주인은 분명 다시 돌아왔습니다. 다른 재림에 대한 비유에서도 주인은 예기치 못한 때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는 알지 못한다고 밖에 답할 수 없습니다.
24장 36절에 보면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누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의 때를 안다고 해도 결코 속지 마십시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믿고 소망하며 기다리십시오.
(벧후 3:8, 개정)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9, 개정)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재림의 약속은 생각보다 더디지 않습니다. 우리의 매일 흘러가는 시간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오는 시간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리하여 이 재림을 소망하며 기다리며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따라해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의 모습은 바로 주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은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다가 무엇을 맡겼습니까? 각각 재능대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금액을 주인이 맡긴 이유는 맡기신 것을 땅에 묻어두고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살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자처럼 맡기신 것을 가지고 주인을 기다리며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맡기신 것을 가지고 일하라고 맡기신 것이죠. 이처럼 이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오는데 그 주님을 기다리는 동안 성실하게 맡기신 것을 가지고 일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의 모습은 결코 모든 삶을 중단하고 산 위에서 주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아닙니다. 1992년 10월 28일에 우리나라에 다미선교회라는 단체가 휴거를 주장하며 그 교회에 속한 신도들이 다니고 있던 직장도 그만두고 가정을 두고 자신들의 재산을 팔아 다미선교회에 바치는 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그 날에 오셨습니까? 안오셨죠. 그들은 잘못된 종말론을 가지고 특정 날짜를 재림의 날이라고 잘 못 주장했고요 그 재림의 날을 기다리는 모습도 잘못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 즉 재림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기고 종들은 그 달란트를 가지고 주인의 오실 미래를 바라보며 삶을 계획하고 주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모습을 가르칩니다. 이처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의 모습은 맡기신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 오실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일을 성실히 감당해야 합니까? 본문에 등장하는 단서는 많지 않습니다. 두 종은 주인이 맡기신 것을 가지고 성실히 일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인이 맡긴 것을 종들이 성실히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본문에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18절 말씀 한번 읽어볼까요.
(마 25:18, 개정)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그는 주인이 맡긴 것을 땅 속에 파묻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는 주인이 없는 틈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지냈습니다. 이 사람이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당시 아주 귀중한 물품을 땅에 묻어두곤 했습니다.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로 표현하기도 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온전히 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한 큰 잘못은 자신이 주인의 종이며 그 종에 대한 의무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일을 또는 인생을 즐기는 일 또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아주 열심히 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종에 대한 주인의 평가는 바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었습니다. 그는 주인이 맡긴 일을 성실히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의 모습은 내가 원하는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주인의 뜻에 대한 종의 의무를 저버린 모습입니다. 오히려 그는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맡기신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에 신실하며 성실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자신의 종들에게 맡기신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맞습니다. 주 예수께서 주신 직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봉사의 자리 모든 것이 맞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자신의 종들에게 맡기신 일입니다. 맡기신 일에 성실하고 충성되이 감당하는 것이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의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이 일은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일은 바로 달란트 비유 뒤에 말씀에 등장합니다.
뒤의 말씀은 주께서 이 땅에 임하실 때 일어날 일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둡니다. 그 때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 “복 받을 자들이여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말씀합니다. 35-36절 말씀 함께 읽어볼까요.
(마 25:35, 개정)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마 25:36, 개정)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러니깐 의인들이 저희가 언제 이렇게 했습니까? 물어보니 임금이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주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은 바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은 구체적으로 형제를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거창하게 TV에 나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당부하신 것은 네 형제에게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고, 헐벗을 때에 옷을 입히고 병 들었을 돌보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는 삶입니다. 이것인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간의 삶은 사실 특별하게 엄청난 업적을 남기신 삶이 아니었습니다. 병든 자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고치셨습니다. 귀신들린 자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고쳐주십니다. 소외받고 손가락질 받는 죄인들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백성을 죄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자신의 몸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그가 행한 일은 자신의 형제를 사랑하는 일이었고 그것이 삶의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닌 주께서 맡기신 일에 성실하신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며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며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며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도움을 주며 주께서 오실 때 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 받는 정산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