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안에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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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골 2:6-10
제목 : 예수 안에 사는 삶
찬 257장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찬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오늘은 ‘예수 안에 사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전하겠습니다. 삼일간 평안하셨습니까? 참 요즘 무더위와 코로나로 인해 참으로 어려운 생활하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또 엎친데 덮친격으로 태풍 ‘바비’까지 북상해 큰 강풍과 비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참 이런 것을 보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참 없다고 느껴집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에 모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응답이 임하는 귀한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골로새서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를 위해 얼마나 힘쓰며 사역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렇게 수고하는 사역의 목적이 무엇인지 밝혔죠. 그 이유는 그들을 격려하며, 연합하게하며,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편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골로새 교회 상황을 들었던 바울이 구체적으로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바로 예수 안에서 행하라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의 상황을 듣고 본격적으로 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이것이 그들에게 권면한 실질적인 지침입니다. 여기서 예수 안에 사는 삶의 가장 중요한 전제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입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분명히 합니다.
바울은 조금 전까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에 대해 명확하게 말했습니다. 1장 15절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만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다” 또 만물이 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를 위해 창조되었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골로새 성도들이 바로 주님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이라는 말은 ‘퀴리오스’ 즉 주인을 의미합니다. 원래 ‘주님’이라는 명칭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치만 신약성경에서 ‘주님’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지만 예수님을 가리키는데 훨씬 더 많이 사용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라는 것은 신약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만물의 주인이자 교회의 머리되십니다. 더 나아가 이 예수님은 신자 개인의 주님이 되십니다. 이 사실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예수 안에서 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종은 주인의 말에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 되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예수 안에 행할 수 있는 승패는 우리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달려있습니다.
이 땅에서 신자가 경험하는 영적 전투는 끊임없이 이 주인의 자리에 누가 앉는가에 대한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이 주인의 자리에 예수님이 앉지 못하도록 우리를 종 삼고자 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교묘하게 다른 것들을 이용해 자신에게 종노릇하도록 주인의 자리를 자신에게 내어주도록 우리를 유혹합니다. 사탄이 유혹하는 것들에 대부분은 바로 이 땅에 있는 영원하지 않는 자신과 함께 사라질 것들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의 것들을 주인으로 섬기며 살아갑니다. 그것들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내 가족을 보호할 것이다. 나에게 참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 착각하고 말이죠. 때로는 신자라 할지라도 현실과 이 세상이 너무나 크게 보여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그것들을 주인 삼아 살아가기도 합니다.
한번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십시오. 명예와 부를 주인삼고 그것들이 자신을 지켜줄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때로는 신자들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주인 되신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불법이라도, 말씀을 저버리는 행위라 할지라도 아무 의식도 없이 행하며 영적으로 어두워진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는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마귀는 40일간 금식하여 육체적으로 심적으로도 극한 상황에 있는 예수님을 시험하죠. 돌이 떡이 되어 먹게 하라.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봐라, 마지막 시험이 무엇이었죠? 예수님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이 말은 마귀를 자신의 주인으로 섬기고 그에게 절하면 세상 모든 것을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마귀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마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여러분 예수님만이 나의 주인 되심을 기억하십시오. 그분께만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만물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십니다. 세상의 어떤 것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인도하십니다. 남은 한주간의 우리의 참 주인되신 예수만 섬기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 되길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안에서 행하는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일까요? 그것은 바로 거짓 가르침이 아닌 그리스도만 따르는 삶입니다. 본문 8절 말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행할 것을 강조하며 특별히 거짓 가르침에 대한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가 지금 어려움 가운데 있었던 부분이 바로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이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주의하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주의하라라는 의미는 조심하여 면밀하게 살펴보라는 의미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목적은 바로 본문처럼 그들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여러분을 노획물로 또는 포로로 잡아가지 않도록 조심하여 면밀하게 살피라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이 그들을 사로잡는 방법은 바로 철학 곧 헛된 속임수였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을 철학이라는 말로 포장했습니다. 철학이 무엇입니까? 철학은 헬라말로 “필로소피아” 필로(사랑)과 소피아(지혜)의 합성어입니다. 말 그대로의 의미는 지혜 사랑을 의미합니다. 당시 철학이라는 말의 사용은 세계의 다양한 사상 체계, 인생과 세상에 대한 가르침, 인간의 지혜, 종교적 교훈을 가리키는데 사용됩니다. 즉 거짓교사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이 아주 고상한 지혜를 가르친다고 철학이라고 포장했지만 그것을 사도 바울은 헛된 속임수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이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른 것이라고 말하며 결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이처럼 아주 고상한 지식처럼 보이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요즘 세상에서 진리의 기준을 과학과 이성에 합당한 것이 진리라고 말하죠.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들은 진리가 아닌 듯이 말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갑니다. 하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건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니 그냥 제자들이 환각상태에 빠져서 잘못봤다거나 아님 성경을 쓴 저자 자체가 예수님을 신격화 하기 위해 그런 이적 장면을 넣은겁니까? 아니잖아요. 성경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세상에는 과학과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도 명백히 과학은 한계가 존재하며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기상이변에 의한 여러 자연재해, 눈에 드러나는 이런 것들뿐만 아니라 과학과 기술은 발전하지만 사람들은 영적으로 피폐해지며 더욱 더 고통 받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갑니다.
이런 과학이라는 세상적인 학문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사상이라는 아주 고상한 말로 포장된 여러 이념들이 존재합니다. 민주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등 여러 이념들이 존재합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지지하십니까? 민주주의요? 민주주의가 과연 성경의 가치에 합당할까요?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세상 만물의 주인이라고 말하잖아요. 자본주의는요? 사유 재산제도, 생산 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가 대부분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이 사회가 성경에 합당합니까? 이런 사상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보면 정치적 이념, 보수와 진보를 지지하곤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십니까? 어느 한쪽을 택할 수 있겠죠. 하지만 어느 쪽이든 모든 것이 하나님 말씀에 합당한 가치가 맞는 곳은 결코 없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참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특히 요즘 코로나가 재확산 된 이유 중 하나가 광복절 집회, 사랑땡땡교회 참 많은 질타를 받고 있죠. 참 제가 이 교회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교회를 정치에 이용하는 이미지를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모 목사는 아직도 무슨 자신이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며 이것은 바이러스 테러라며 이상한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 교회 성도들이 뉴스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잠시 보았는데, 뭐 우리 목사님이 걸렸을 리가 없다고, 거짓말이라고 철썩 같이 믿으며 기자가 자녀 분들이랑 가족분들을 위해 조심하셔야 되지 않을까요? 하니깐 우리는 안걸려 안걸려 하는 것을 보았는데, 말씀을 묵상하며 아 이런 것들이 참 그 사람들이 잘못된 가르침으로 교회가 한 사람의 노략물로 전락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거짓 가르침을 전파하며 따르는 모습들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세상의 철학, 가르침, 사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9-10절 말씀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모든 신성의 충만이 있으며 우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음을 선포합니다. 그 신성은 하나님의 신성을 가르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그 안에 하나님의 권위와 우월성이 충만합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통치자와 권세에 절대 권위를 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분 안에 모든 것이 충만하여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거짓 가르침이나 헛된 철학을 따르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충만하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행하는 삶입니다.
마지막입니다. 예수 안에 행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7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골 2:7, 개정)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바로 감사하는 삶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바울은 4개의 분사절을 가지고 골로새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살아가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4가지의 절은 “뿌리가 내려졌고”, ”세워지고 있고“, 굳건하게 되고 있고”, “풍성한 감사를 드리면서”입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성도들이 행해야 할 것은 바로 맨 끝에 있는 풍성한 감사뿐임을 말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 앞에 있는 뿌리가 내려짐, 세워짐, 굳건하게 되어짐은 모두 수동태로 되어있습니다. 풍성한 감사를 드리는 것만 능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즉 앞에 있는 3가지가 수동태라는 것은 성도들이 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되어진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뿌리가 내려진 사람들입니다. 이 뿌리는 내가 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진 것입니다. 성도들은 포도나무처럼 그리스도 안에 심고 뿌리가 깊이 내려진 사람들입니다. 이제 뿌리 내려진 사람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영적인 은혜를 공급받습니다. 그리고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깊이 내린 신자는 유혹과 박해의 바람에 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세워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세워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토대 위에 건물을 세우는 것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건축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적 토대로서 우리는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세워지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우는 것도 결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세우시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굳건하게 되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는 세우실 뿐만 아니라 더욱더 견고하고 굳건하게 하고 계십니다. 나 자신이 결코 견고하게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견고하게 하십니다. 본문에 보면 이 견고함의 기초는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라고 말합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에바브라가 전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교훈 위에 믿음으로 굳건히 세워져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감사를 넘치게 하라”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감사를 넘치게 하라는 것은 풍성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아까 말했듯 이 부분만 능동태로 말하고 있습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뿌리를 내리게 하시고, 세워주시고, 견고하게 하셨으므로 풍성한 감사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안에 사는 중요한 삶의 모습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성도들이 할 것은 감사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감사 이외의 행동을 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더 이상 이뤄야 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주셨고 이루어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사해야할 근본적인 이유는 세상에 것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한 것 도 없지만 삼위 하나님은 우릴 불러주시고 세워 가시고 견고하게 하고 계십니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감사가 나오지 않는 현실을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나를 구원하시고 이 구원을 이루어 가실 하나님께 감사하시길 소망합니다. 거짓 가르침에 속지 마시고 그리스도만 따라가십시오. 그분께 모든 지혜와 충만함이 있습니다. 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감사의 삶을 사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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