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지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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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골로새서 4:2-6절
제목 : 기도, 지혜, 말
찬 458장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찬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오늘은 ‘기도, 지혜, 말’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전하겠습니다. 삼일간 평안하셨습니까? 감사합니다.
여러분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자의 가장 특징적인 행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기도라 말할 수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사실 신자의 가장 특징적인 행동이라고 했지만 기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곤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때에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어떤 상황이 오면 그제서야 누구라도 붙들고 기도를 하곤 하죠. 하지만 이런 기도와 신자가 하는 기도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들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가 어떻게 다를까요? 먼저 우리는 기도하는 대상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기도를 합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하지요. 세상 사람들의 기도는 대상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 대상이 어떤 존재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냥 막연하게 자신의 소원을 부르짖는 것이죠. 또 그들은 기도의 대상과 어떠한 관계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그들의 기도의 대상은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그분은 세상을 창조하셨구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여전히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런 분의 자녀가 되고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특권이며 큰 복입니다. 기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이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곤경에 처하거나 어려움에 빠졌을 때 누구를 찾으면서 웁니까? 바로 엄마입니다. 아이들은 울 때 꼭 엄마아 하면서 이렇게 울죠.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때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엄마임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죠. 이와 비슷한 현상을 우리는 주위에서 볼 수 있는데,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신 분들에게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은 바로 아버지입니다. 아주 조금만 위험하거나 어려운 일을 당해도 신자의 입에서 아버지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는 육신의 아버지가 아니죠. 바로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 가운데 나를 도와주시고 건져줄 수 있는 분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임을 고백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며 숨 쉬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 녹아들어 끊임없이 아버지와 교제하게 하는 영적 소통입니다. 여러분 이번 한 해가 이 기도의 특권을 누리시는 한 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도 골로새 성도들에게 이 서신의 마지막 부분을 기록하면서 그들이 기도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2절 말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골 4:2, 개정)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기도를 어떻게 하라고요? 계속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계속하라는 표현은 전념하라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 2:42절에 보면 초대 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을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라는 같은 단어가 본문에서 “계속하라”라는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기도에 전념할 것을 권면합니다. 전념하는 것은 진지하게 노력해서 무엇인가를 계속하거나 끈질기게 반복하는 것, 어떤 일에 열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기 시대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에 전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는 기도에 전념하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마음을 같이 하여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뒤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오늘 기도에 대해 권면하는 사도 바울도 기도에 전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을 중보했습니다. 골로새 성도들도 기도의 특권을 누리라고 바울은 권면합니다.
더 나아가 2절에는 기도를 전념할 뿐만 아니라 어떤 자세로 기도를 할 것인가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번 따라해보겠습니다. 감사하며 깨어있어 기도합시다. 그것은 바로 감사함과 깨어 있음입니다. 먼저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깨어 있는 것은 주로 성경에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와 관련지어 등장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자세로 세상의 유혹과 그릇된 가치 속에서 정신을 똑바로, 바로 잡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것을 항상 기억하며 세상 속에서 영적으로 깨어 주님의 뜻에 합당한 것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기도는 감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 골로새 성도들의 상황은 감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전하는 교훈들 때문에 교회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들이 감사하며 기도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들이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변의 환경을 넘어선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골로새 성도들을 택하셨고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들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에바브라를 통해 복음을 듣게 하셨고 그들은 복음을 믿음으로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고, 하나님의 죄 용서를 경험하게 했으며 자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는 이유었습니다.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의 외적 환경을 보십시오. 환경 때문에는 얼마나 감사하기 어려운 시기입니까 여전히 바이러스는 우리 주위에 있구요, 교회는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을 듣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자유롭게 모일 수가 없습니다. 교제도 못하구요, 꽉 막혀버린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푸신 그 크신 구원의 은혜만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이 기도에 전념하는 삶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앞에 깨어 기도하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남은 한주간의 삶이되길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골로새 성도들에게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를 부탁합니다. 3절 말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골 4:3, 개정)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골로새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이 시기의 바울은 사도가 된지 30년이 넘은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복음과 교회를 위해 사역한 사도입니다. 그가 나중된 사람들인 골로새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오랜 세월 복음을 위해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면서 깨달았던 사실은 성도들의 기도가 없이는 사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이 중보의 요청의 내용은 바로 “말씀의 문을 열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이 말은 주로 선교와 관련하여 복음 사역을 위한 기회를 말합니다. 즉 복음을 전한 기회가 열릴 수 있도록 자신들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바울은 현재 로마에서 가택 연금되어 있는 상태로 자유롭게 나가서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벗어나 더욱 더 자유롭게 그리스도의 비밀인 복음을 전하고 골로새 교회를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바울은 이 비밀을 마땅히 할 말로 나타내기를 원했습니다. 즉 복음을 계속 전하길 원했습니다. 자신은 비록 이 비밀을 나타내는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도무지 환경을 보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어 보이는 상황이지만 이 일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자신의 사명에 대해 분명히 알았고 골로새 성도들이 이 사명을 완수함에 있어 계속해서 중보해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후 황제와 고위 관원들에게 변론을 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을 터인데, 그들 앞에서도 그리스도의 비밀을 나타내기를 원했고 결국 이 일은 성도들의 중보로 인해 응답받게 됩니다.
이처럼 기도라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유익이나 소원을 넘어서 복음이 잘 전해질 수 있도록 중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함께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도 하지만 이것을 감당하고 있는 복음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이 그리스도의 비밀인 복음을 통해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역에 우리가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뉴스를 통해 사역자들이 심각한 문제나 범죄를 일으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그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기도에 전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을 위하여 기도로 중보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30년 넘게 복음 전하고 있는 사도 바울도 성도들에게 중보 기도를 요청합니다. 기도의 후원을 받지 못하는 사역자만큼 위태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역자도 실수를 하고 죄를 짓기 쉬운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후원으로 복음의 사역에 동참하는 모든 성도님 되시길 소망합니다.
본문 두 번째 단락인 5-6절 사도 바울은 외인들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권면합니다. 방금전까지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개인의 영적 자세인 기도에 대해 권면했습니다. 그렇지만 신자는 골방에서 기도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외부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신자는 외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혜롭게 행동하고 은혜롭게 말해야 합니다. 여기서 ‘외부 사람들’이란 쉽게 말하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 즉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골로새라는 도시에서 지속적으로 외부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웃집 사람들과, 자신의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 목욕탕에서 만나는 사람, 골로새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 살아가야 했죠. 성도들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지혜롭게 행해야 했습니다. 지혜를 말은 원래 당시에는 일상생활에서의 총명함, 이론적 지식, 사변적 사고와 능력 등을 의미했는데, 성경에서 지혜라는 말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영적인 지식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잠언 9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지혜롭게 행한다는 것은 어떤 우리의 자리이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경외가 무엇이에요? 두려워하는 것이죠.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분이 내 앞에 계신 것처럼 살라는 것이에요. ‘코람데오’라고 하죠. 하나님 면전 앞에서, 우리가 교회에 있던 집에 있던 일터에 있던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던 상관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외부 사람들의 모든 관계에서 적극적으로 기회를 선용하며 선을 행하고, 단정하게 행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복음이 전해질 기회와 문이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모든 삶의 자리에서 행하는 우리 되길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6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골 4:6, 개정)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마지막으로 성도는 모든 사람 앞에서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은혜’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호의나 친절을 의미합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모든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말로 나타태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외인들 앞에서 항상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람이 하는 말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말의 품격’이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물은 형체가 굽으면 그림자가 굽고 형체가 곧으면 그림자도 바르다. 말도 매한가지다. 말은 마음을 담아낸다. 말은 마음의 소리다. 말과 글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서려 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 말은 품성이다. 품성이 말하고 품성이 듣는 것이다.
격과 수준을 나타내는 ‘품’이라는 한자를 보면 입구가 세 개 모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쌓이고 쌓여 그 사람의 품성이 됩니다. 사실 말이 우리의 품성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의 품성이 말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죄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충만한 은혜를 경험한 자들입니다.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중생을 경험하였고 그 은혜는 우리의 말을 통해 드러나야 합니다. 그럴 때에 6절 마지막에 보면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단락에서 사도 바울은 외부 사람들에게 전도하라고 직접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외부 사람들을 향하여 지혜롭게 살고 은혜롭게 말하라고 요청합니다. 사도는 신자들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통하여 전도하는 것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복음 전도 방식입니다.
여러분 지금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정인이 라는 아이가 사망한 사건 아시나요? 최근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왔어요. 한 가정에서 생후 8개월 된 어린 딸 아이를 입양해놓고, 8개월 동안 그 어린 아이를 학대해서 그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 아이 시신을 부검해보니깐 온 몸의 뼈가 골절되어 있었구요, 대장 파열 심지어 몸 깊숙한 곳에 있는 췌장이 절단되어 있었다고 해요. 충격적인 것은 이 입양한 부부가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들도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입양을 해 아주 거룩하고 신앙 좋은 사람들처럼 자신을 내비췄지만 실제의 삶은 그들의 삶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아니었던 것이죠, 도무지 사람이 할 수 없는 짐승만도 못한 짓을 아이한테 하며 살았다는 겁니다.
이런 모습들이 바로 우리의 복음과 전도의 문을 가로 막습니다. 2세기에 ‘터툴리안’이라는 교부는 자기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약자를 돌보고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우리의 모습은 많은 우리 반대자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표지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보라 그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 가를,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를’
여러분 이번 한 해가 감사함으로 깨어 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시는 한 해 되시길 소망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이 교제함으로 누구를 만나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롭게 행하시고 은혜로운 말을 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통해 강팍한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계속 전파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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