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속에서 교회의 힘은...

출애굽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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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12 356
기도 김윤미 권사
출17장은 이스라엘이 만난 두 종류의 위기를 다루고 있음을 말씀드렸다. 지난 토요일 새벽에 17장 1-7절을 통해서 내부에서부터 발생한 위기를 살펴보았다면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르비딤이라는 곳에서 두번째 위협을 만났으니, 그 위협은 외부로부터 발생한 위협이었다. 오늘날 교회에도 여럿 외부로부터 찾아오는 위협들이 있다. 여럿 위기의 순간들이 외부로부터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위협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위기를 잘 극복해 나아갈 수 있을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보자.
본문은 ‘그 때에’ 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이는 앞에서 물 문제를 해결한 사건에 바로 이어서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음을 의미한다. 그 두번째 위기는 다름 아닌 아말렉 족속의 침략이었다. 아말렉 족속은 창36:12 를 보면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의 후예들이다. 그들은 에돔 사람들로부터 갈라져 나와서 시나이 반도에서 유목생활을 했는데, 거대한 무리의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고 르비딤에 이르게 되자 위협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된 것이다. 훗날 모세의 고별설교를 담고 있는 신25:17-19 를 보면, 아말렉은 야비하게도 이스라엘이 광야생활로 인하여 피곤할 그 때에 출애굽 대형에서 뒤쳐진 약자들, 힘없는 여자들과 노인들이 밀집된 행렬의 뒷부분을 기습 공격한다. 이에 모세는 출17:9 에서 여호수아에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여기서 우리는 첫번째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위기 속에서도 교회의 힘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다
분명 이스라엘은 위기를 맞았다. 아말렉은 지쳐있던 이스라엘 중 가장 약한 자들이 포진해있던 대열의 가장 뒷부분부터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대하여 선두지휘하던 모세가 보고를 듣자마자 여호수아를 불러 ‘지금 전쟁에 참여할만한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 싸워라 나는 내일 산 꼭대기에 서리라’ 라고 명한다. 생각해보라. 여호수아는 모세로부터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할만한 필승전략을 하사받은 것이 아니었다. 싸움에서 이길만한 강력한 무기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여호수아가 보기 좋을대로의 사람들을 골라서 나가 싸우라는 것이다. 더욱이 모세는 그들을 위하여 ‘내가 너희를 위해 지금 당장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 라고 하지 않았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겠다는 것이다. 즉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이스라엘의 병력들은 내일이 오기까지 모세의 도움 없이 전쟁에 임해야 했다.
모세는 내일이 되면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겠다고 말한다. 여기서 꼭대기에 ‘서다’ 라는 히브리어는 단지 아무 것도 행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확고하게 서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서다’ 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이 말씀은 이제 곧 사람들을 택하여 전쟁터로 나가는 여호수아에게 큰 의미로 와닿았다. 이스라엘이 이제 막 출애굽의 여정을 시작했지만 그간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어떠한 일들을 행하셨는지 여호수아는 지켜보았다. 그들의 선조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사 애굽에 큰 심판을 내리시고 바다를 가르시사 애굽의 병력들을 수장시키시며, 반석에서 물을 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면서 점점 그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래 모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해오셨듯이 아말렉과의 전쟁도 분명 이기게 하사 약속하신 바를 끝까지 이루실 것이다’ 이에 여호수아는 모세의 말에 즉각 순종하여 전장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교회의 위기’라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외부로부터 교회를 뒤흔들려 하는 여럿 위기들이 몰려온다. 교회를 향하여, 그리고 교회의 지체인 성도를 향하여 거센 파도가 밀려온다. 당장이라도 집어 삼킬 정도로 거대한 풍랑이 몰려온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실족하지 않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경 속에서 ‘인정하다’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야다’ 로서 이는 ‘친밀한 관계를 기반으로한 아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보통 이 단어를 부부사이에 사용하는데, 호세아 선지자는 이 단어를 하나님께 적용하여 ‘여호와를 힘써 알자’ 라고 주장할 때에 하나님을 그저 책을 통해서 지식적으로 알 것이 아니라 부부사이가 함께 살며 경험한 만큼 서로를 아는 것처럼 그분을 경험적으로, 인격적으로 알자는 의미로 사용했다. 즉 ‘여호와를 히브리어로 야다 하자’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깨닫고, 배우고, 그 하나님을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친밀하게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말렉의 공격도 하나님의 훈련과정 중 일부였다면,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다가오는 급작스러운 풍랑들도 하나님의 훈련과정 중 일부이다. 이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제한된 시각으로 볼 때에는 그 원인이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가장 선하시고 자비하신 능력의 주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제어하고 계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실 수 있기를 축복한다. 권능의 주님께서 세상의 여러 거센 풍파와 시련 속에서도 그분의 피 묻은 손으로 여전히 교회를 붙들고 계시며, 그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을 붙들고 계심을 확신하시길 바란다. ‘여호와를 야다하는 것’, ‘여호와를 아는 것’,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 바로 그것이 바로 교회의 힘이요, 저와 여러분의 힘임을 확신하시길 축복한다.
두번째로 외부의 위기 속에서 교회의 힘은 무엇인가?
함께 동역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다
모세는 지금 전쟁구도가 훤히 내려다보일 법한 산 꼭대기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쥐고 그의 손을 하늘을 향해 들었다. 성경에서 ‘손을 든다’는 표현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데, 유대 주석가들은 고대 히브리인들이 기도할 때에 손을 하늘로 향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였다고 해석하기도 하고, 자유주의 신학계열에서는 모세에게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 그가 직접 마술을 행했다는 허무맹랑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저는 그 어느 해석보다 모세가 손을 든 행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고백‘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보시다시피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이 백성은 400년간 종살이만 했지 전쟁을 할 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잘 단련된 무기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권능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이실 줄로 믿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오니 주여 이제 우리 가운데 일하여 주옵소서’
출17:11 을 보면 모세가 손을 들 때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서 ‘이기다’는 표현은 ‘강하게 되다’, ‘우세하다’ 라는 의미이다. 즉 모세가 자신의 어떤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강하게 한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손을 높이 드는동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병력들의 팔다리를 강하게 하셨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그 강해졌던 것이 다시 약해지게 하셨다. 여기서의 강조점은 단회성이 아니라 지속성이다. 손을 한번만 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드는 것이다. 단 한번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엎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어쩌다 한번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인정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군사들의 팔다리를 강하게 하셨고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점점 이겨가도록 인도하셨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세의 팔다리도 약해지기 시작한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앞에서는 힘이 들때는 손을 내렸다가 다시 힘을 모아 손을 번쩍 들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손을 들 힘조차 없어진 상태, 완전히 힘이 바닥나버렸다. 이때 두 사람이 등장하게 되는데 아론과 훌이다. 출17:10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는 전쟁하기 위하여 달려나갔고, 아론과 훌은 모세를 돕기 위하여 산에 오른다.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모세와 함께 산에 올랐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이 곧 드러난다. 그들이 상황을 지켜보니까 모세가 손을 들고 있을 때에는 이스라엘이 강해지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강해지는 게 아닌가. 그래서 모세가 계속해서 손을 들고 있을 수 있도록 아론과 훌이 모세를 지탱하기 시작한다. 먼저 하루종일 서 있어서 피곤한 모세의 다리를 위해 돌을 가져다가 모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은 피곤한 모세의 팔을 붙들어 힘껏 올리니 출17:12 말미를 보면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단어가 등장한다. 12절 말미에 ‘내려오지 않았다’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에뮤나(אֱמוּנָה)’ 인데, 이 단어는 내려오지 않았다는 의미보다는, ‘확고해지다, 확증되다, 안전하게 고정되다’과 같은 의미와 함께 ‘중요한 직분을 맡아 담당하다’라는 의미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 단어가 흔들리지 않게 강하게 고정한다는 의미가 있어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는 의미의 ‘아멘’이라는 단어도 바로 여기에서부터 파생되었다. 즉 아론과 훌이 모세의 두 팔이 해가 질 때까지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붙듬으로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함께 동역했다, 중요한 직분을 맡아 담당했다, 자기 분량에 충실히 임했다는 것이다.
모세는 분명 하나님께서 세우신 능력의 지도자였다. 그의 역할과 위치는 실로 대단했지만 점점 출애굽기 후반부로 갈수록 모세에게만 집중되었던 리더쉽이 점차 여러 믿음의 동역자들에게 나뉘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제부터 서서히 등장하게 되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그러했고, 또한 본문에서 등장하는 여호수아와 아론과 훌이 그러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위한 각자의 역할, 각자의 직분을 잘 수행함으로 모세와 더불어 동역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각자 맡은 역할을 배정받고, 그 공동체를 위하여 성실하게 자기의 직분을 감당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뛰어났던 모세라 할지라도 인간으로서의 한계가 있었다. 하물며 오늘날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 역시도 특출난 지도자 한 사람의 능력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물론 초반에는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겠지만, 인간으로서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친다. 결국 쓰러진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원수인 사탄마귀도 교회가 그렇게 세워져가도록 가만 놔두지 않고 온갖 시련을 가져다 준다. 결국 하나님을 인정하던 두 팔, 하늘을 향하던 두 팔이 내려올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의 몸된 교회를 한 명으로 세우시지 않고, 여러 지체들을 함께 두셨다. 주의 교회가 세워져 갈 때에 목사라는 직분만 주신 것이 아니라 다른 직분들도 허락하셔서 서로 동역하며, 서로 맡은 부분을 충실히 감당하여 주의 몸된 교회를 함께 세워 가도록 정하셨다. 많은 양이든, 적은 양이든 상관없이 모두가 함께 이 일에 동참하도록 정하셨다는 것이다.
느헤미야3장을 보면 느헤미야를 주축으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해당 말씀을 막상 찾아 보시면 죄다 ‘어느 지파 누구의 아들 누구가 무엇을 중수했고, 어느 지파 누구의 아들 누구누구가 무엇을 중수했고…’ 이 내용들이다. 성벽 재건은 느헤미야의 지휘 아래에서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양문을 건설하고, 그 양문을 시작으로 바톤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할당량의 성벽을 짓고 망대를 세우고 문짝을 달고 또 다음 바톤을 이어받은 자들이 어문을 만들고… 이런 식으로 성벽이 둥그렇게 완공되기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한다. 어떤 이들은 아주 짧은 구간을 세운가 하면, 어떤 이들은 아주 긴 구간을 담당했다. 어떤 이들은 완전히 무너진 곳을 새로 세우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일부 무너진 곳을 복원하였다. 어떤 이들은 거주하던 집 바로 앞자리의 성벽을 세웠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무려 18km나 떨어진 지역에서 살았지만 성벽재건을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여한 자들도 있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많이 가진 자나 적게 가진 자나, 능력이 많은 자나 적은 자나,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신분이 높은 자나 낮은 자나 상관없이 이스라엘에 속한 자라면 누구라도 예외없이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일이 이와 같다. 이는 특출난 지도자 한 두 사람만으로는 진행되지 않는다. 만약 하나님께서 특출난 지도자 한 두 사람만을 통해 그분의 나라를 이루어가셨다면 느헤미야3장은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고, 오늘 본문에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두 팔을 붙들어 올린 사건도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성도 여러분, 외부로부터 강한 위기가 찾아올 때에, 특별히 악한 마귀가 여호와 하나님만을 알고 인정하려는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거센 위협으로 다가올 그 때에, 교회의 힘은 주께서 허락하신 한 몸 된 지체들과 서로 동역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함께 같은 마음으로 우리 각자의 손을 내밀어 그 짐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 전4:12 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말씀한다. 이스라엘이 성벽을 재건할 때에 누구도 예외되지 않고 각자의 분량에 최선을 다했던 것처럼, 주의 몸된 교회 안에서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과 분량에 최선을 다하여 감당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는 주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에게 각기 다른 은사들을 주셨다. 그 은사들을 자기를 과시하는데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몸된 교회를 더욱 견실하게 세우도록 주셨다.
따라서 여러분, 이 시간에 잠시 나에게 한 몸의 지체로 주신 지체들을 생각해보길 바란다. 예배당에 계신 분들은 나의 앞뒤, 양옆의 성도들을 보시고, 인터넷으로 말씀을 들으시는 분들은 이 시간에 기억나는 성도들을 머릿 속에 떠올려보라. 바로 그들이 여러분과 동시대에 주의 몸된 교회를 함께 세워가도록 붙여주신 동역자들이다. 사도바울의 권면으로 말씀드린다. 그들과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주님의 기쁨을 충만케 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한다.
결론이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적이다. 하나님께서는 16절에 아말렉이 완전히 멸망하기까지 영원토록 그들과 싸우실 것을 선포하셨다. 사울 왕은 삼상14-15 장에서 아말렉을 효과적으로 물리쳤고, 이어서 다윗은 삼상27 장과 삼상30 장에서 아말렉의 전쟁능력을 확실하게 꺾어버렸으며, 히스기야 시대에 이르러 겨우 잔존해 있던 아말렉이 완전히 제거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이루셨다. 이스라엘의 대적 아말렉과 대대로 싸우셨고 완전히 멸하셨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보이지 않는 사탄권세는 여전히 교회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그들은 계속해서 교회를 덮치려 하고 있고, 아주 교활하게 교회의 가장 약한 부분들부터 치고 들어와서 그 피해가 극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의 적들과 영원히 대대로 싸우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닛시’, 곧 전쟁터에서 휘날리는 깃발이 되셔서 모든 대적들을 꺾으시되 완전히 꺾으시겠다고 선포하셨고 역사 속에서 이를 이루셨다.
교회의 힘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정하는 데에서 온다. 모세가 하나님을 인정하여 두 손을 높이 들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강하게 하셨던 것처럼 교회가 하나님을 인정하며 오직 복음만을 굳게 붙들때에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강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지상의 교회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죄인들이 모인 곳이고, 우리 모두에게 흠과 결함이 있다. 특출난 몇 사람이 힘있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교회를 세워가려 하지만 한계가 있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사탄에게 속한 세상은 교회를 집어삼키려고 여러 위협들을 가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를 붙여주셨던 것처럼,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의 한 몸으로 만나게 하시고 함께 교회를 세워가게 하시며 어떤 위기와 위협 앞에서도 서로 동역하게 하셨다. 이처럼 서로 동역하며 합심하여 함께 주님을 인정하고 신뢰하여 맡은 직분들을 감당한다면, 본문의 말씀처럼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강하게 하사 어떤 원수들의 공격에도 요동치 않게 붙들어 주실 것이다. 한 몸으로 부르신 지체들과 함께 주의 몸된 교회를 세워 나아간다면 어떤 강력해 보이는 위기도 교회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오직 우리의 힘은, 교회의 힘은 여호와 하나님을 힘써 알고 인정하는 것과, 한 몸되게 하신 지체들과 동역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 주의 몸된 교회를 함께 세워가시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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