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람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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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골 3:5-11절
제목 : 새 사람의 삶
찬 350장 우리들이 싸울 것은
찬 342장 너 시험을 당해
오늘은 ‘새 사람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지난 삼일간도 평안하셨습니까? 감사합니다. 저와 지난 시간에는 ‘위의 것을 찾으라’라는 내용으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더 이상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와 함께 죽고 다시 살게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속한 자로서 살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하늘에 속한 자로서 위의 것을 영원한 것을,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2020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날들도 위의 것을 추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혹시 중생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불교에서 중생들아 이렇게 말하는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가르킬 때 중생이 아니라 제가 말하는 중생은 rebirth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사람으로 완전히 다시 태어나는 것이죠. 이 중생은 구원의 여러 그림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다.라고 말할 때 구원의 의미는 참 많이 있습니다. 죄 사함 받았다. 자녀로 입양 되었다. 사탄의 손에서 건짐 받았다. 등등 여기에 아주 중요한 그림이 바로 우리가 다시 태어났다. 거듭났다라는 중생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에게 질문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셨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창조되셨습니까? 맞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이 중생, 다시 태어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다시 태어났다면 중생했다면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요? 여러분들은 무엇이 변하셨습니까? 예수님을 믿기 전과 믿기 후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사자성어에 보면 환골탈태라는 말이 있죠. 뼈가 바뀌고 태를 벗어버린다는 사자성어인데 몸과 얼굴이 몰라볼 만큼 좋게 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이런 환골탈태를 경험한 분이 계십니까? 얼굴이 아주 아름다워지고 키도 커지고 멋있어지고 예뻐지고 사실 우리가 중생을 경험한다고 해도 이런 놀라울만한 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의 무엇이 바뀌게 될까요?
우리가 중생을 경험하게 되면 가장 큰 변화가 바로 영혼의 성향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 믿기 전의 우리 영혼의 성향은 항상 죄를 향해 있습니다. 죄인의 성향 자체가 죄를 향해 있는거에요. 죄가 죄인지도 모르며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추구하며 갈아 가는 것이죠. 세상의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중생을 경험하게 되면 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선을 향해 말씀의 가치를 향해 나아가려고 하는 영혼의 성향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게 되면 이런 경험을 모두 하게 됩니다. 이제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고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이런 고백을 하죠.
(롬 7:22, 개정)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개정)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4, 개정)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처럼 우리는 중생을 경험하게 되면 내 영혼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고 싶어 하게 되는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죄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또 그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며 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을 권세잡고 있는 마귀는 계속해서 지금도 우리를 옛 죄된 본성을 자극하며 그것을 따르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새 사람이 되었음을 기억하며 그 마귀의 유혹들을 분별하고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성도들은 이제 새 사람이 되었으니 옛 사람의 모습들을 가차 없이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사탄은 아주 교묘하게 죄의 문제들을 알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그것을 인식시키고 자연스럽게 그것을 따라 살도록 유혹합니다. 성도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차리고 분별해야합니다. 그것들을 금하고 버려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새 사람의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두 개의 금지 명령이 등장합니다. 무엇을 버려버려야 하는지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첫 번째 5절 말씀 한번 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첫 번째 금지 명령은 바로 죽이십시오 라는 말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말이죠. 땅에 있는 지체가 뭐에요 뒤에 등장하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입니다. 이것들을 죽여버리라고 명령합니다.
따라해 보겠습니다. 음란과 탐심을 죽이자
바울은 앞에 문맥에 이어서 골로새 성도들에게 너희들이 하늘에 속한 영광스러운 존재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신분에 합당하게 살라고 권면합니다. 그들이 무엇보다 해야 될 일은 바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 땅에 있는 지체는 뭐에요?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입니다. 이런 것들을 죽이라고 강력하게 명령합니다.
여기서 각각의 단어를 요약하면 음란과, 탐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음란이라는 말은 음행인데, 넓은 의미에서 성매매, 간통, 근친상간을 포함하는 온갖 종류의 부도덕한 성행위를 가르킵니다. 부정은 “더러운 것”이라고 직역할 수 있는데 “음행”과 함께 나올 때는 부도덕한 성적 행위를 의미합니다. 사욕이라는 말은 “정욕”입니다. 욕망과 열정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는데, 성과 관련되어 사용할 때에는 무절제한 성욕이나 성행위를 의미합니다. 악한 정욕은 “악한 욕심”인데, 많은 경우 금지된 것을 추구하는 잘못된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죄인들은 추구싶어 하죠. 이것도 성에 대한 부도덕한 욕망을 가르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탐심입니다. 탐심은 탐욕인데, 재물이나 권력이나 성을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이런 땅의 지체들을 강력하게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것들은 더 이상 새 사람의 삶에 합당하지 못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죽이라는 표현은 아주 단호하고 강력한 표현입니다. 마치 이 명령은 예수님께서 죄 짓게 만드는 손과 발을 찍어 내어버리라 라는 준엄한 명령과 비슷합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하늘에 속한 새 사람으로서 더 이상 음란이나 탐욕을 추구해선 안될뿐더러 그것들을 단호하게 죽여버려야 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음란과 탐욕이라는 강력한 죄는 2천년전 사도 바울의 시대에만 성행하던 죄가 아닙니다. 2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똑같이 세상은 음란과 탐욕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음란은 아까 말했듯 부도덕한 성행위나 성욕을 의미합니다. 사실 성욕, 성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성이라는 것을 통해 남성과 여성이 만나 사랑을 통해 한 가정을 이루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되죠. 하지만 이 성욕이 부도덕하게 잘못되게 사용되어질 때는 죄악이 됩니다. 여기서 이 부도덕과 잘못된 사용은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기준을 벗어나서 사용될 때 죄악인 음행이 됩니다.
음란은 예전에도 지금도 강력하게 사탄은 도구로 사용합니다. 현 시대를 봐보십시오. 얼마나 성적으로 문란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TV를 봐도, 인터넷 사이트를 들어가도, 유투브에서 영상을 보아도 잘못된 성적 욕구를 자극하는 장면들이, 영상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또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아무런 기준 없이 그런 영상과 매체가 주는 성관념을 받아들이고 성욕을 단순한 쾌락의 도구로 잘못 사용되어지는 것을 봅니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불륜 즉 간통, 이혼을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대입니다. 결국 이러한 잘못된 성관념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실로 거대합니다. 성을 가정 즉 결혼한 한 남편과 아내에서 사용되는 것이 아닌 잘못된 곳에서 사용되어질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아니라 이 땅을 황폐하게 하는 죄악이 됩니다.
성을 상품화 하는 성매매, 잘못된 성 관념으로 인한 아동 성범죄, 성 착취, 동성애,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간통죄도 폐지되었습니다. 결국 불륜으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며 그로 인해 수많은 아이들이 정서적 불안을 안고 이 땅을 살아가게 됩니다. 더 나아가 결혼, 남성과 여성이 만나 한 가정이 이루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 자체를 알지 못하니 비혼주의, 출산하지 않는 가정. 이 모든 것을 결국 우리 사회 자체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20년 30년 후에는 반드시 이 저출산이 인구 절벽을 가져올거라 확신합니다. 아주 일부의 젊은이들이 수많은 노인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비정상적인 사회가 우리에게 도래할 것이에요.
신자는 단호하게 음행을 죽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하게 성을 사용하며, 음란에 물든 세상의 가치를 분별하고 정결을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들 자녀들에게도 확실하게 이것을 가르치셔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새로운 사람의 마땅한 삶의 모습이라거죠.
또 뭘 죽여야 해요? 탐심을 죽여야 합니다. 탐심은 재물이나 권력이나 성등을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을 뜻합니다. 먹을 것을 탐하는 것을 뭐라고 하죠? 식탐이라고 하죠. 먹을 것에 눈이 돌아버립니다. 주위도 보지 않고 그것에만 몰두하는 것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탐심 즉 이 재물에 대한 탐심은 사탄이 아주 강력하게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자본주의는 쉽게 말하면 사유재산제에 바탕을 두고 자본이 곧 계층이고 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깐 사람들이 이 돈에 눈이 돌아버리는 거에요.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니깐 한 사람이 최다 주택보유자가 몇 채였는지 나오더라구요. 한 사람이 1806채를 가지고 있더라구요. 가족도 아니고 한 사람이 1800여채를 가지고 있다니깐요. 2016년에 1250채 2018년에 1800채 좁은 땅 덩이에 어떤 사람은 자기 집 한 채가 없어서 집 값, 전세 값 폭등에 그거 내지 못해가지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에 어떤 사람은 1800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니깐요. 얼마나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탐욕에 눈이 먼 사람입니까.
5절 끝부분에 사도 바울은 이 탐심은 곧 우상 숭배라고 말합니다. 탐심은 오로지 그것만을 보게 합니다. 재물에 노예가 되어 하나님마저 돈을 버는 수단에 이용하는 것이 탐심이죠. 신자는 단호하게 탐심을 죽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돈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삶 그리고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주택을 1800채가 아니라 우주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모두가 다 자기가 주인 행세하고 있지만 주인이 바로 우리 아버지세요.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을 것을 탐하는 것에 우리의 마음을 뺏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탐심을 단호하게 죽여버리십시오. 음란과 탐심을 죽여버리시고 새 사람의 삶을 누리는 남은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두 번째 금지명령으로 벗어버릴 것을 강력하게 명령합니다. 8,9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골 3:8, 개정)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골 3:9, 개정)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바울은 강력하게 죽여버릴 것 그리고 뒤에서 벗어버릴 것을 명령합니다. 우리가 벗어버릴 것이 무엇입니까? 분함, 노여움, 악의, 비방, 부끄러운 말, 그리고 9절에 거짓말까지입니다. 따라해봅시다. 화와 비방과 거짓을 벗어버리자
5절에서는 특별히 성적인 것과 탐심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이 부분에서는 공동체 안에서 다른 구성원들과의 관계, 즉 인간관계와 관련이 있는 내용입니다. 새 사람된 사람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무엇을 벗어버려야 합니까? 먼저 분함과 노여움 이것은 분노, 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다른 사람을 향해 정당하지 않는 분노나 화를 단호히 벗어버리라고 명령합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많은 화들을 내었을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화를 낸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관계만 악화되고 후회만 남을 뿐이죠. 물론 거룩한 분노나 의에 대한 울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당하지 않은 분노는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그 다음 악의와 비방입니다. 악의는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악한 성향을 의미합니다. 비방은 사람과 관련해서 근거 없는 말이나 남을 헐뜯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 이 악의와 비방도 사람의 마음 가운데 있는 죄 된 본성입니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그 사람에 대한 확인도 되지도 않은 근거 없는 말이나 헐뜯는 것을 즐기는 것이 죄인의 본성입니다. 인터넷 상에서 얼마나 말도 안되는 악플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기도 하고 정신병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악성 루머, 악플, 비방 이 모든 것이 악한 본성에 의한 결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중하며 진중해야 합니다. 책임지지 못할 비방이나 말들을 삼가야 합니다. 그것이 새 사람으로써의 마땅한 모습입니다.
부끄러운 말은 상스러운 말이나 음란한 말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속이는 말이나 정직하지 않은 말을 의미합니다. 이런 화나 비방이나 부끄러운 말과 거짓말 같은 옛 사람의 행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런 행동들은 결국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고 관계를 틀어지게 만듭니다. 참 교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기에 이러한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화와 비방 그리고 부끄러운 말이나 거짓말은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게 불숙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일을 자연스럽게 행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깨어 있어 새 사람답게 이런 악한 일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이제 새 사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악한 행위들을 벗어버림으로써 새 사람으로 더욱 더 새로워지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되죠. 더 나아가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번 한주 간의 삶도 우리의 옛 사람의 모습들을 돌아보며 음란과 탐심, 분노와 비방과 거짓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의 삶을 누리는 이번 한 주 되길 소망합니다.
(엡 5:3, 개정)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엡 5:4, 개정)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엡 5:5, 개정)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엡 5:6, 개정)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엡 5:7, 개정)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엡 5:8, 개정)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