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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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골 2:11-15절
제목 :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
오늘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전하겠습니다. 삼일간 평안하셨습니까?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동쪽을 중심으로 피해가 이따라 있었습니다. 또 아직도 코로나가 잡히지 않아 명절까지도 여러 걱정이 많은 시기입니다.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이 어려운 시기에도 이 시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은혜로 충만해지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계속해서 저와 골로새서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삶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삶이며 세상의 거짓 교훈이 아닌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임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삼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이 감사가 나오기 어려운 시기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이런 상황에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구원이라는 어떤 것도 흔들 수 없는 절대적인 감사의 제목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에 뿌리박게 하시고 그 안에서 계속 자라가게 하시며 더욱 굳게 세워가십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이 구원,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을 더욱더 풍성한 의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미지가 사용되는데 할례, 장사 지냄, 문서를 지우고 십자가에 못 박음, 승리 이런 것을 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설명합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11-12절로 골로새 성도를 주어로 하여 그들이 받은 구원,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짐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13-15절로 하나님을 주어로 하여 하나님께서 골로새 성도들을 살리시고, 모든 죄들을 사하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이기신 것에 대해 말합니다.
첫 번째 11절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받은 구원을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라고 표현합니다. 여러분 할례가 무엇입니까?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라는 외적 표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내아이들은 난지 8일 만에 성기의 포피를 베는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 할례는 단순한 외적인 표징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율법의 순종이자 믿음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특징은 본문의 할례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입니다. 육신의 할례 이스라엘 백성이 받는 할례는 당연히 손으로 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손으로 행하지 아니한 할례는 바로 마음의 할례, 영적 할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뒤에 나온 곧 육의 몸을 벗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육의 몸을 벗는 다는 것은 이제 성도는 죄의 지배를 받는 옛 사람이 아니라 새롭게 거듭난 새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이 영적 할례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손으로 행하지 아니하는 할례, 즉 영적 할례 시행하는 주체는 바로 11절 후반에 보면 그리스도의 할례 즉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적 할례를 우리에게 행하십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가 주체가 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께서만 이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뒷장의 골로새서 3:9-10절을 보면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도 이 새롭게 하심의 주체가 인간 자신이 아니라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음의 할례를 받고 새 사람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이 일을 어떻게 이루셨습니까? 바로 다음절이 12절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번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골 2:12, 개정)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장사되었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 즉 부활을 통해 성도들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옛 사람에서 벗어나 새사람이 된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이 근거가 됩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새롭게 된 것이죠. 결코 이 새로움의 주체는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 모든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새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죽음 가운데 있는 죄인들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괜찮은 사람 선한 사람,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그들의 목적지는 영생이 아닌 영원한 사망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만 인간을 곤경과 고통을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곤경에서 우리를 이미 구원하셨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번한 주간도 이 놀라운 구원의 선물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이 넘쳐 흐르는 한 주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여기계신 분들은 구원을 받으신 새 사람이 맞으십니까? 자신있게 맞다고 대답하셔야죠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되셨습니까? 어떻게 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죽음과 부활이 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죽은건 죽은거고 부활하신건 부활하신거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또는 나에게 이런 사실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질문할 수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이 풍성한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시키는 수단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12절에 세례로,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라는 내용이 등장하죠.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죽음과 부활이 될 수 있는 수단은 바로 믿음이며 세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과 세례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죽게 하시며 다시 새 생명을 얻게 하십니다.
그럼 제가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믿음이 먼저 일까요? 아니면 세례가 먼저 일까요? 쉽게 말하면 믿고 세례를 받습니까? 아니면 세례 받을 때 믿음이 생길까요? 당연히 믿음이 먼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믿음의 증표로 세례를 받습니다. 믿음을 전제한 사람이 세례를 받는 것이죠.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안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례는 단순히 나이가 되면,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게 되면 받는 성례가 아닙니다. 실제로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어야 받는 증표가 세례입니다.
믿음은 그냥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단순히 예수님이 이러이러한 삶을 살았다드라가 믿음이 아닌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죽음과 부활이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고 그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며 그의 삶이 나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는 것도 사실 주체가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나라는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 받은게 아니라 사실 믿음도 성령께서 일으키신 선물입니다.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세례라는 성례를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여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결국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루신 구원의 세 가지 차원에 대해 13-15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했듯 이 부분에서는 주어가 하나님으로 바뀝니다. 구원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보여주며 그들이 받은 구원에 대해 더욱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골 2:13, 개정)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여기서 골로새 교인들의 과거 상태와 현재 상태를 묘사합니다.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들, 이 말은 그 골로새 성도들이 원래 불의와 음란과 부정을 일삼으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들이었음을 알려줍니다. 육체의 무할례는 특별히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과 무관한 이방인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가장 비참한 표현은 그들이 죽어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단절되어 영적으로 죽어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영적인 죽음의 영역에서 영적인 생명의 영역으로 그들을 옮기셨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죽음의 지배 아래에 있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의 전 존재가 변했을 뿐 아니라 이 모든 것의 근간인 죄의 문제까지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죄를 사하신 것은 골로새 성도뿐만이 아닌 바울은 우리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라는 것은 죄사함 받은 대상이 성도들뿐만 아니라 바울 자신 그리고 유대인 모든 신자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상관없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인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일부만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죄 사함의 용서를 더욱 생생한 용어들을 가지고 그들에게 설명합니다. 14절에서는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케이로그라폰”이라는 말로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지만 죄들을 기록한 문서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성 있는데,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죄인들은 그들의 죄들이 기록된 문서가 죄인들의 죄를 고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죄가 기록된 문서들을 어떻게 했다고요?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아주 생생하고도 강력한 표현입니다. 그 문서를 지우시고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시고 없애버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거하다라는 표현은 “에르켄”이라는 말인데 현재완료형 즉 과거에서 일어난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져온 일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 죄가 적힌 문서들을 제거하셨는데 그 시점부터 골로새 성도들에게 편지한 지금 순간까지 결과가 이어져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 지우다, 못 박다 이 두 가지는 “흔적이 남지 않게 없애다” “완전히 지워버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못 박다라는 것은 물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이 문서를 같이 못박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이것은 강력한 그림 언어적 표현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죄는 완전히 소멸되었음을 하나님은 선언하십니다.
마지막으로 15절에서는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하신 악한 영들에 대한 승리에 관해 말합니다. 여기서 이기셨다는 말은 로마의 군대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개선 행진을 떠올리게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장 해제 시키시고 그들을 개선 행진 중에 포로로 끌고 가심으로써 공개적으로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세상통치자들과 권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모든 악한 영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마귀의 지배를 받으면서 개인과 사회와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권세와 통치자들이 많은 이 시대 가운데서도 반드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탄의 종노릇 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를 건지신 것에서 끝나신 것이 아니라 그 우두머리를 잡아 심판하시며 승리하심까지 나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모습입니다.
참 이 시대는 교회가 어려운 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는 지금도 개혁되어야 하고 이 어려움을 통해서 많은 변화와 회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세력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통해 의심과 미움, 갈등과 다툼을 조장하곤 합니다. 또 세상의 정치와 경제 체제를 이용해 신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며 핍박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기억하십시오. 세상은 결코 교회에게 호의적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죄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최후의 멸망의 날이 올 때까지 활동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시대에 어려움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처럼 전쟁에서 승리하며 그들을 포로로 삼으시는 이 개선행진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마귀와 악한 영들의 권세를 이미 멸하셨습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 마지막까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을 것입니다. 거기에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굳건하게 하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우리는 대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놀랍게도 마귀가 우리를 피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우리보다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승리자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이미 모든 죄로부터 건짐 받아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믿으시길 소망합니다. 더 이상 옛 관습과 세상의 것에 메어 살아가질 않길 소망합니다. 지금도 생각합니다.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까. 어떻게 그분이 나의 주님이 되어주셨을까. 어떻게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게 되었을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혜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을 믿고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 된 때를 다시금 기억하십시오. 죄 사함의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