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세워가는 교회

출애굽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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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600 216
기도 백인숙 권사
사람 사는 세상엔 항상 크고 작은 문젯거리들이 발생하는 것 같다.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해서 중대한 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마찰들이 일어나고, 분쟁거리들이 일어나고, 때로 다툼도 일어난다. 어찌 보면 이렇게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시끌벅적해지는 것이 또 사람 살아가는 세상 같기도 하다. 지금 200만명이나 되는 거대한 무리들이 출애굽하였다. 언제 도착할런지는 알 수 없지만 수많은,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한대 모여서 대형을 이루어 행진하고 있다. 당연히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분쟁거리들이 발생하였을 것이고, 중재하는 사람 없이 시간이 흐를수록 그 분쟁거리들은 오해와 불신으로, 더 나아가 논쟁과 다툼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양한 삶의 문젯거리들을 가지고 모세를 찾아왔을 것이다.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아주 중대한 문제까지 모세가 혼자 도맡아 그들의 사연을 들어보고 그에 합당한 재판을 집행하였다.
이드로는 이처럼 혼자 재판하느라 고생하는 모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모세의 모습을 보며 17절처럼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라고 책망한다. 그래서 신실하고 믿을만한 사람들을 뽑아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으로 세워 그들로 하여금 일반적인 재판을 진행하게 할 것과, 그 중에서 특별히 어려운 부분에 대한 것만 모세가 맡아 재판하라고 조언한다. 이러한 상고심제도를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 미디안의 이드로가 모세에게 조언한 것이 특이한 부분인 것은 맞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이드로의 연륜과 지혜와 경험을 사용하셔서 모세에게 주신 규정이었다. 그래서 모세 역시도 24절의 말씀처럼 장인의 권고를 그대로 실행에 옮기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행정조직이 체계적으로 개편 및 확립 되게 된다. 이러한 체제는 모세를 과중한 재판업무 부담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또한 이전에는 모세 혼자 재판을 해야 했기에 자기 차례가 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이런 상고심제도를 통해 판결이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는 유익도 주었다. 합심과 협력의 유익함을 보여주는 본문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교회 공동체를 어떻게 세워갈 수 있을 것인지를 보여준다. 오늘 두 가지의 교훈을 말씀드리려 한다.
말씀봉사자는 그 고유의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교회는 뛰어난 지도자가 있다 하여서 그 한 사람만으로는 세워지지 않는다. 모세는 진실로 뛰어난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러나 그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홀로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이에 이드로는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라고 책망한다. 즉, ‘지금 너에게는 동역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간 어쩌면 모세는 그 일들을 자기 홀로 감당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었을는지 모른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들보다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인 모세가 더 합당다고 여겨서 모세에게 모든 일들을 위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다, 아름답지 못하다고 말한다. 왜인가? 교회는 특출난 어느 한 사람 혼자 세워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몸된 교회를 세워감에 있어서 직분을 허락하셨고, 그 직분들이 함께 연합하여 주의 몸을 세워가게 하셨다.
모든 직분들이 함께 동역하면서 주의 몸을 세워가게 하셨지만, 각 직분에는 고유한 역할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드로를 통해 주시는 말씀을 보면 여기서 모세의 고유한 역할이 드러나는데 출18:20 말씀에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율례’라는 말은 ‘법이나 규정’을, ‘법도’란 ‘교리나 교훈’등을 가리킨다. 즉 율례와 법도를 가르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과 교리 및 교훈, 곧 모든 말씀하신 명령을 가르치는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을 가르쳐서 갈 길과 할 일을 ‘보이라’ 하시는데, ‘보이라’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야다’이다. 이 단어는 전에도 몇 번 살펴본 바가 있지만 성경에서 ‘알다’ 라는 단어로 많이 번역되었는데, 마치 부부가 오랜 시간 서로를 경험하면서 그 친밀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아는 체험적 지식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이와 같이 경험적으로 체득할 수 있도록, 아주 익숙하게 알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모든 말씀하신 것들을 밝히 가르치는 것, 이것이 모세의 고유 역할이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가 그 말씀을 대언하고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전히 부차적인 일에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 공동체는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 말씀에 대한 교육도 충분히 받지 못할 것이다. 이는 결국 이스라엘이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는 지경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할 그분의 백성에게 이것만큼이나 비참한 상황이 또 있을까.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말씀을 맡은 자는 그 말씀을 바르게 전할 수 있기 위해 항상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을지에 대하여 다방면으로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말씀을 통하여 갈 길과 할 일을 경험적으로 체득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그 말씀을 공동체 중에서 가장 먼저 받아먹고, 그것을 소화하여 자기 백성에게 충분히 가르쳐야 한다.
여러분, 말씀을 맡은 목사에게 말씀을 연구하고 설교화시키는 과정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만일 교회가 말씀 외에 다른 일들을 목사에게 맡기기 시작한다면, 결국 교회의 손해이다. 또한 목사는 맡은 말씀 외에 다른 일에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맡기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을 바르게 교육함으로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분의 자녀로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말씀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교회의 말씀을 맡은 자들을 위하여 기도해달라. 다른 것들에 현혹되지 않고, 다른 일들에 지나친 관심을 쏟지 않고 오직 주의 몸된 교회와 맡기신 성도들을 위하여 오로지 말씀에 전념할 수 있는 우리 교회의 담임목사님을 비롯하여 모든 교역자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이를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배우며, 그 말씀 안에서 마땅히 행할 바를 찾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한다.
교회를 섬길 일꾼들을 어떤 원칙가운데 세울 수 있는가
주의 몸은 어느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한 부류만 홀로 세울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이 일곱 집사들을 세우는 과정에서도 잘 나타나지 않는가? 우리의 몸에도 오장육부를 비롯하여 손과 발과 같은 여러 지체를 두신 것처럼,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분의 몸 안에 다양한 지체를 두셔서 그분의 몸을 함께 동역하며 세워가게 하셨다. 이에 대하여 대표적으로 목사와 장로와 집사라는 항존직 직분을 뽑을 수가 있겠다. 또한 준항존직으로 권사라는 직분도 있겠다. 뿐만 아니라 역할과 섬김의 측면에서 보면 주방봉사도 있겠고, 주일학교 교사도 있겠고, 각종 부서와 기관의 임원들도 여기에 해당하겠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일꾼들을 세울 때에 우리는 어떠한 원칙에서 세워야 하는가? 21절을 중심으로 생각해 볼 것인데, 출18:20-21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자.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모세는 이스라엘의 대표자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로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해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된 자들 가운데 능력 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섬길 수 있는 리더로 세워야 했다. 여기서 ‘능력이 있다’ 라는 히브리어 ‘하일’의 의미는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는 특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주로 ‘군대나 병력, 힘, 가치가 있는, 용맹한, 물질이 넉넉한’ 과 같은 의미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의미이고, 오늘 본문에서는 이 ‘능력 있는 자’ 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는지 살펴보자.
첫째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이다. 히브리어 ‘야레’ 라는 단어를 사용하여서 이와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존중하고 공경하는 자가 첫번째 조건에 등장한다. 이 두려움은 마치 범죄자가 자신의 죄에 대한 판결을 두려워하는 측면에서의 공포가 아니라,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경건한 마음을 의미한다. 여러분, 세상은 돈이 많고, 힘이 강하고, 가진 재능이 많은 자들을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 같은 세상의 기준에 따라 ‘능력있음’을 정의하지 않고, 오직 그 첫번째 기준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로 말씀하신다. 돈이 많거나, 가진 힘이 강력하다거나, 달변가여서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많거나, 신분이나 지위가 높거나, 명예로운 자리에 있다거나, 용맹스러움과 같은 조건들은 세상이 말하는 능력있는 자들에 속한다. 때로는 우리도 연약하여 이러한 세상의 기준을 근거로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세상의 기준으로 투자대비 좋은 효과를 거두기도 하고, 겉으로는 엄청난 성장을 이루며 발전한 것 같아도 그 속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어서 패망하는 일들을 보게 되지 않는가? 그렇기에 여러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주의 몸된 교회를 세워갈 때에 세상에서 말하는 능력의 기준에 합한 자들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기준에 합한 자, 곧 그 첫번째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찾으신다는 것을 말이다.
둘째로 진실한 자이다. 히브리어 ‘에메트’는 본래 구약에서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진리와 진실하심’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이 단어가 사람에게 사용될 때에는 ‘확고함, 확실함, 진실하여 신뢰할 만함, 신실함’ 등의 의미를 가진다. 즉 이 말은 단지 ‘진실하다’ 라는 단어를 연상할 때에 떠오르는 ‘거짓말을 안하는 사람, 남을 속이지 않는 사람, 매사에 정직한 사람’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매사에 계속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인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인지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사람의 됨됨이와 성품, 그 사람의 인격과 내적 성숙 등에 대하여 공적으로 인정을 받는 자들, 리더로써 합당하다고 모든 백성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자들을 가리킨다. 세상은 리더를 선정할 때 그 사람의 외적 가치를 먼저 본다. 그 일을 감당할 만큼 학벌이 좋은 자인지, 어떤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용맹함과 카리스마가 있는 자인지, 함께 일을 추진할만한 군사들이나 자기 수하들을 거느린 사람인지, 일을 넉넉하게 진행할 수 있을 재력가인지 등을 본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원리에 지배받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몸된 교회를 세워갈 때에 세상에서 말하는 능력, 세상에서 말하는 스펙을 가진 자들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기준에 합한 자, 곧 진실한 자를 찾으신다. 그 사람의 됨됨이, 성품, 인격, 성숙함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는 곧 외적 소명이라고도 한다.
셋째로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이다. 히브리어 ‘베짜’는 성경에서 ‘약탈, 탈취, 탐욕, 부당한 소득’ 등으로 번역이 되었는데, 이는 정당한 방법과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얻은 재산이 아니라 강제로 남에게서 빼앗거나 혹은 뇌물로 받은 재물들을 가리킨다. 즉,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란 뇌물이나 청탁 뿐만 아니라 내가 정당하게 얻은 이득을 제외한 불법적인 이익 모두를 가증히 여기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뇌물 받기를 즐겨하고, 백성의 재물을 빼앗아 자기 배를 불리는 자들은 결코 현명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 수 없다. 이 부분에서 생각해 볼만한 주제들이 참 많이 있다. 내가 일한 만큼이 아니라 그 이상의 고수익을 원하는 로또나 복권, 소비자를 속이는 과대광고나 허위광고, 뇌물이나 청탁, 정당하게 가격을 지불하지 않은 채로 사용하는 프로그램 라이선스나 책의 저작권, 무절제한 소비생활로 인한 각종 신용대출 등이 이에 포함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적게 투자하되 많은 이윤을 남기는 자가 능력있는 자라고 말한다. 회사나 기업에서, 심지어 교회에서도 컴퓨터 프로그램을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인터넷에서 불법으로 다운받는 직원이 능력있는 직원으로 여겨진다. 할 수 있다면 단점을 최대한 숨기고 덮으며, 그 상품의 장점만 과대광고하여 상품을 많이 파는 쇼호스트들이 진정 능력있는 쇼핑 호스트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으시는 교회의 일꾼은 이런 부류가 아니다. 부당한 이득을 가증히 여기는 자들, 불법적인 이윤을 혐오하는 자들이 진정 능력있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말씀을 정리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교회에 속한 모든 지체들이 함께 세워가게 하시되 각기 고유한 역할을 주셨다. 목사는 목사로서, 장로는 장로로서, 집사는 집사로서, 또한 각기 부서와 기관에 속한 임원들이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통해 함께 주의 몸을 함께 세워가게 하셨다. 그리고 이러한 일꾼들을 세울 때에 반드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들을 살펴 백성 위에 세우라고 하신 것처럼, 마찬가지로 교회의 직분자들을 세울 때, 임원들을 세울 때 이러한 원칙과 기준으로 세워야 한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이런 사람들은 그저 실패자 같고 낙오자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실 때에 이런 자들이야말로 능력있는 자로 평가하신다. 바라옵기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공부하고 삶 가운데 체득함으로서 이러한 세상의 가치관을 내려놓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능력있는 일꾼들 되시기를 축복한다. 그래서 더욱 주님의 몸을 힘있게 세워가는데에 크게 쓰임받으시는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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