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의 주체가 되신다

출애굽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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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살펴보게 될 출19장은 홍해를 건넌 이후로 출애굽기 전체에서 가장 극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 곧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눈 앞에 가시적으로 임하신 사건을 다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셨던 10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사 마른 땅을 건너가게 하셨던 사건처럼 하나님의 시내산 임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강력한 경험이 되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와 더불어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율법을 받을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출19-20 장은 바로 이러한 내용이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이제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하며, 그 정점에 출20 장의 십계명 언약식이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드디어 시내산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부터 율법과 성막 건축에 대한 지침을 받게 되고, 이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기억하면서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자. 오늘 함께 봉독한 출19:1-6 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 언약을 맺으시기 전, 시내산 앞에 장막을 친 이스라엘에게 다시 한번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상기시켜 주신다. 그렇다면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의 주체가 되신다.
출19:4 말씀을 함께 읽어보자.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이끌어 내셨고, 또한 광야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셨으며, 계속해서 그들의 삶을 변화시켜 가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그들을 이끌어주셨음을 보여준다. 특별히 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행하였다’, ‘내가 너희를 업었다’, ‘내가 너희를 내게로 인도하였다’ 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그들을 업어 키우셨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이 바르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분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즉 이 모든 구원의 은혜에 하나님이 행하셨음을 강조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어떤 조건을 충족했거나 다른 민족에 비하여 뭔가 탁월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기 전까지 그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기 위하여 율법을 지키거나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먼저 다가와 주셔서 언약 체결 의지를 밝히신 것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언약 당사자가 될만한 그 어느 자격도 능력도 없다. 한낱 미련하고 완악한 죄인들에 불과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노예들이었고, 선한 공로나 업적과 자격을 전혀 갖추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사 지금 여기까지 인도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공로나 자격으로 인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선택과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로만 주어지는 것임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아담 이후로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그 앞에 나아갈 수도 없었던 우리는 오직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즉 우리 측에서 아무 것도 행하지 않았고,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으며, 어떤 작은 은혜조차 받을 자격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셨고, 죄의 수렁텅이에서 우리를 잡아 건져주셨으며,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게 씻으사 하나님의 자녀로 맞아주셨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그리고 새 사람된 우리의 변화된 삶에 대해서도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 구원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언약은 서로 동등한 조건의 당사자끼리 맺는 것이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과 우리가 어찌 동등한 조건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낮고 천한 우리의 눈높이까지 맞춰주셔서 언약의 당사자가 되어주셨다. 5절에서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소유 삼으시는 조건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것을 조건으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은 출19:8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라고 화답했다. 이제 상호간의 언약은 체결되었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잘 듣고 준행할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여기서 ‘소유’라는 말은 단순한 재산물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히브리어 ‘세굴라’는 아주 소중하게 감춰진 재산, 외부로부터 어떠한 피해도 받지 않도록 잘 보존된 보물인데, 이 보물은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 보존된 보물이다. 특정한 목적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세굴라로 삼으신 것에도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진다. 그 목적이 무엇인가? 출19:6 에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시고 이스라엘을 세굴라로 삼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제사장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은혜 사이에서 중재하는 역할이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타락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널리 전파하는 나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나라를 가리킨다. 70인역 성경에서는 이 ‘제사장 나라’를 의역하여 ‘왕과 같은 제사장’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였는데, 곧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요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중재자이며 이 세상을 대표하는 권세와 이 세상을 다르시는 권세를 허락받은 백성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특권인가? 도무지 잘난 것이 없는 노예백성이던 이스라엘이 온 세상의 대표자가 되고, 또한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중재자가 된다고 한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잘 순종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이 약속하신 언약을 성실히 이루사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고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겠다고 언약을 맺으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언약에 얼마나 충실하게 임하였는가? 우리는 결과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악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패역한 이스라엘은 그 언약을 스스로 파기하며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허망한 것들을 신으로 섬겼다. 그들은 언약당사자로서의 자격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상실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완전히 파기되었다. 언약의 당사자인 이스라엘이 먼저 그 언약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도 그 언약을 지키셔야 할 의무가 없어졌다. 그냥 그들을 내치시고, 온갖 저주와 심판을 그들의 머리 위에 쏟아 부으셨어도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그 이후로도 이스라엘의 역사는 언약당사자로서의 신실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언약을 스스로 파기하고 배반하고 반역하는 모습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이스라엘의 완악함에도,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신 언약을 성실하게 지켜 가셨다. 한번 세굴라로 삼으신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붙들고 가셨던 것이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장차 출애굽기에 기록된 율법들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겠지만 우리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 그 율법을 지켜야만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고 제사장나라가 되리라고 언약을 맺었지만, 나는 내 힘과 능력과 지혜로 그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다. 계속해서 실패하고 넘어진다. 우리의 행위로는 도저히 그 언약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셨는가? 계속해서 넘어지고 실패하는 언약당사자인 우리를 내어버리고 가셨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롬3:20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로 부패함으로 인하여 율법의 행위를 지킬 수 없음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무죄하신 독생하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그 아들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심으로 의를 이루셨다. 그리고 성령님은 성부께서 창세 전부터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자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통해 성자께서 이루신 의를 전가해 주신다. 우리에게 전해주신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무죄판결을 받게 되는 것이고, 이로 인하여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이 구원의 근거가 조금도 내쪽에서 이루어진 것이 없기 때문에 바울은 이 구원을 가리켜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였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라. 하나님의 언약 당사자로서 지금 우리의 모습만 보아도 너무나 형편없는 모습들 아닌가? 매순간 넘어지고, 매순간 실패하고, 매순간 하나님을 거역하는, 언약에 충실하게 감당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 뿐이다. 그러나 삼위하나님은 나의 어떠함에 영향을 받지 않으시고 오직 그분의 신실하신대로 언약을 이루어가신다. 우리의 약함에도, 우리의 실패에도, 우리의 넘어짐에도, 우리의 완악함에도, 그 시작하신 구원을 완성하실 그 날까지 끝까지 붙들고 가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생에 붙들고 의지할 바가 무엇인가? ‘전부터 계신 주께서 영 죽을 죄인을 보혈로 구해 주시니 그 사랑 한 없네’ 오직 삼위하나님의 사랑 밖에 없다. 우리의 거듭된 실패에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을 이루시는 삼위하나님의 은혜 밖에 없다. 이 사실을 확신하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신앙 여정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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