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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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
섬김
*동국대 – 체육교육학과 / 이번주 목요일 실기시험
천국에서 큰 자 (마18장 1-5절) / 2020. 10. 04 주일설교
1.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3 <나는 하늘아래 하나밖에 없는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산다는 것은 행복이고 즐거움입니다. 왜냐하면 찢긴 인생, 패배한 인생, 절망한 인생을 하나님이 아들의 목숨을 걸고 우리를 회복시켜줬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이젠 즐거운 인생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자꾸 환경 핑개되지 마시고 자꾸 사람 핑개되지 마시고, 자꾸 과거의 상처 핑개되지 마시고....당당함으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들어가는 글) 우리는 지난주에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화면을 볼까요? 예수님이 갑자기 변화가 되었습니다. 얼굴에 광채가 났고 심지어 옷에도 광채가 났습니다. 제자들은 강렬한 빛 때문에 눈이 부셨습니다. 너무 신비스러워서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1300년 전 인물 모세와 800년 전 엘리야가 나타났고 예수님과 대화를 합니다. 제자들은 더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 꿈을 꾸는 듯 한 느낌을 받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신비한 체험은 우리의 신앙을 더 견고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신비주의자가 되면 안됩니다. 제자들은 천국에 대한 확신, 부활의 확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베드로는 너무 신비스럽고 황홀한 경험을 해서 더 오랜 동안 머물고 싶었습니다. 심지어 초막 셋을 짓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려가길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천국에 대한 확신은 가졌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면 누가 큰 자인지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서열, 권력, 계급입니다.
제자들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관심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주로 무엇을 말합니까? 직업이 변호사래~ 직업이 의사래~ 직업이 연구원이래~
아니면 연봉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연봉이 1억이래~ 연봉이 2억이래~
사업을 하시는 분이 있다면 한 달 매출이 10억 이래~ 100억이래
아니면 집으로 이야기합니다. 세상에 집이 100평이 넘는데~ 우리의 관심은 크기, 서열, 권력에 있습니다.
교회도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대형교회 출석하는 성도님들은 자부심이 높은 편입니다. 우리교회는 사역자만 50명이 넘어~
한국교회는 규모와 크기를 자랑했습니다. 세계 10대 교회 중 절반 이상은 한국교회라고 자랑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 19바이러스 때문에 몇 천 명씩 예배드리는 공간에 50명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화려한 건물이 남는게 아닙니다. 내 인격을 자랑하고 내 삶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비극은 무엇입니까? 천국질서 대신 세상질서를 좋아하는데 있습니다. 교회의 타락은 천국질서를 포기하는데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똑같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규모와 크기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존귀한 존재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화)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비교의식입니다. 비교는 자살폭탄과 같습니다. 비참한 인생은 가난이 아닙니다. 바로 비교의식입니다.
비교하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있는 것에 만족을 못합니다. 없는 것에 불평을 합니다. 결국 행복할 수 없죠. 우리는 축복을 꿈꾸지만 동시에 현재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의 소망이 있지만 이 땅 가운데 은혜를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내 남편, 내 아내, 내 아이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순간 불행의 비바람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독특성이 있습니다. 절대 비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어떻게 비교의식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창조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나만의 길이 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어’ 우리는 함부로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더글러스 마록의 글이 있습니다.
“만일 네가 산 위의 장송이 되지 못하거든 계곡의 자목이 되어라. 개울가에 자라서 누구나 사랑하는 나무가 되어라. 만일 나무가 되지 못하거든 떨기나무가 되어라. 만일 떨기나무가 되지 못하거든 작은 풀이 되어라. 그래서 거리를 아름답게 하여라. 만일 네가 작은 풀이 되지 못하거든 억새풀이라도 되어라. 물가에서 자라는 제일 좋은 억새풀이 되어라.
우리는 모두가 선장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선원이 되는 것도 좋다. 우리 모두에게는 할 일이 있다. 큰 일이 있다면 작은 일도 있다. 그리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있다. 만일 네가 큰 거리에서 피어나지 못한다면 작은 거리에서 피어나라. 만일 네가 태양이 되지 않으면 별이 되어라. 실패와 성공은 커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지 가장 좋은 것이 되어라.”
무엇을 하든지 자부심을 갖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시길 바랍니다.
(예화)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여인들은 노래하고 춤을 주었습니다.
사무엘상18장 7-8절 말씀입니다.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여인들은 뭐라고 말합니까? 사울은 천천히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그러면 사울왕은 인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심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국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 다닙니다. 결론은 사울은 불행한 왕, 실패한 왕이 됩니다.
우리의 관심이 서열, 권력, 비교의식에 있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서열에 있습니다. 누가 크냐? 누가 높냐? 사실 제자들뿐 아니라 타락한 죄인들의 관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십니까?
1. 겸손한 사람입니다.
4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천국에서 큰 자는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헬라어로 파이디온입니다. 즉 어린아이는 유아를 가리킵니다. 유아기의 아이에게는 야망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불러 제자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실물 교육을 하고 있죠. 심지어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감사하고 겸손해집니다. 겸손하다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겸손은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의 증표가 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좀 당황했을 것입니다. 당시 여자와 아이들은 사람의 숫자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아이들은 그냥 부모의 소유물로 취급했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은 무시당하고 심지어 팔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겸손은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즉 상대방을 높이는 것입니다.
(예화) 예수님의 겸손을 볼까요? 빌립보서2장 6-8절 말씀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으셨다는 사실은 겸손의 최고봉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화) 최고의 크리스천 지성인 C.S 루이스 교수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을 때, 한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이 세상에는 왜 그렇게 고통과 재난이 많습니까?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왜 인간에게 고통을 주십니까?” 그때 루이스 교수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형제여, 그러잖아도 교만한 인간들에게, 고통과 재난마저 없다면 얼마나 더 교만하겠는가?”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교만을 깨뜨리고 겸손한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서 고난 학교에 입학을 시킵니다.
세상에서 풍파가 많으신 분 있죠. 그 과정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세워가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의 실패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모세는 40년 왕궁에서 생활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어디로 보냅니까? 광야로 보냅니다. 광야에서 뭘 배웠을까요? 외로움을 경험합니다. 자기의 연약함을 발견합니다. 내려놓는 훈련을 합니다. 그런 훈련을 통해서 자기를 자랑할 수 없는 겸손한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인기보다 중요한 것은 인격입니다.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성품입니다.
광야를 통과하면 자기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높이게 됩니다.
(예화) 자기를 드러 내길 좋아하시는 분들 있죠.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은 훈련을 통해서 우리를 낮추십니다. 하나님의 훈련을 잘 받고 통과한 사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설명) 겸손의 또 다른 표현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입니다. 아이들은 힘도 없고 몸도 작아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치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부모를 의지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품안에서 참된 평안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8가지 복에 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 무엇이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예수님은 복에 관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복이 아닙니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큰 예배당을 건축해야 하고 자식이 대기업에 취업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진짜 복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가난은 ‘절대적 극빈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궁핍’을 말합니다..... 즉 심령이 가난 한다는 것은.......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힘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고 하나님만이 나의 전부입니다. 진짜 복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시편125편 1절 말씀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시온 산과 같아서, 흔들리는 일이 없이 영원히 서 있다.’
(예화)여러분 침례요한을 기억하십니까? 침례요한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침례요한을 선지자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침례요한은 말합니다. “나는 빛이 아니다. 나는 빛에 대하여 증거하는 자다” 자기가 높아질 수 있고 자기를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단지 광야에 외치는 소리이다. 나는 주님의 신발끈을 풀 자격이 없다. 우리는 여기서 침례요한의 영적인 태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습니다. 예수님을 최고의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침례요한은 사람들이 주목할 때 자신은 빠졌습니다. 이런 겸손이 우리가운데도 있기 바랍니다.
*어떻게 겸손해질 수 있습니까? 방법은 하나입니다.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겸손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죽고 살면 편하다. 자기주장만 하면 관계는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부부도 이기려고 하면 매일 싸워야 합니다. 부부는 한쪽 눈 감고 살아야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2종류의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의 필요한 것을 채워 달라’ 축복의 기도입니다. 또 하나는 ‘온전히 순종하게 해주세요’ 십자가의 기도입니다. 우리에게는 축복의 기도와 십자가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축복의 기도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두 번째 십자가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사방의 우겨싸임을 당해도 믿음을 놓치 않겠습니다. 이런 겸손의 자세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길 축원합니다.
두 번째 천국에서 큰 자는 누구일까요? 첫 번째 겸손한 자였습니다.
두번째는 섬기는자입니다.
마가복음10장 43-45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크고자 하면 ➩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섬기는 자가 되라.
으뜸이 되고자 하면 ➩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종이 되라
예수님도 섬김을 받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 당시는 종이 주인이나 손님의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이 제자의 발을 씻어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역의 특성상 발에 먼지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말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요한복음13장 14-15절 말씀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예수님이 친히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예화) 브라더 로렌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611년 프랑스에 태어났고 10대 시절 전쟁에 출전했다가 다리를 다쳐 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나이 50대 넘어 카르멜 수도원의 주방 일을 맡게 됩니다. 비록 다리는 불편했지만 최선을 다해 주방 일을 했습니다.
로렌스는 음식을 만들면서 부엌을 작은 천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음식을 수도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항상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부족한 요리솜씨로 귀한 천사들을 섬길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렌스는 주방에서 일하는 일들이 수많은 교인들 앞에서 설교하는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20여년의 세월을 한 결 같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방 일을 했고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수도사들은 점차 그를 존경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그를 수도원 원장자리 까지 올랐습니다. 사실 평신도 수도사는 원칙으로 수도원 원장이 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도원의 원장이 됩니다.
로렌스는 인간적인 행복의 조건은 없었습니다.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습니다. 몸도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부엌일을 하면서 ‘나는 참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국왕 루이 12세가 수도원을 방문해 그에게 행복의 비결을 묻자 그는 대답했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섬기는 일입니다.”여러분은 누구를 섬기고 있으시나요?
(설명)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섬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를 죄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예수님은 왕이나 대통령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갑질하기 위해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바로 천국에서 큰 자는 이 땅에서 섬기는 자입니다.
(예화) 교회직분도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목사, 장로, 권사, 목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장로직분을 빨리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섬기기 위해서 직분을 받는 것인지? 아니면 자랑하고 싶어서 직분을 받는 것인지?
(예화) 부부도 서로 섬겨야 합니다. 배우자를 고치려고 하지마세요. 고치려는 순간 그때부터 고장 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시고 그리고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하와를 붙여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돕는 사람이 되어라~ 부부는 공격의 대상이 아니라 돕는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약점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약점을 고치려고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서로 힘이 듭니다. 약점이 보이면 ‘내가 도와야 겠구나’ 성경은 부부가 서로 도우라고 했지만 고치라는 말이 없습니다. 적은 때려 잡아야 하고 아군은 협력해야 합니다.
요즘 젋은 사람들은 개성이 너무 강합니다. 개성이 강하다 보니 양보를 하지 않습니다. 연합을 하려면 누군가 한 쪽이 손해보고 져 주어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거예요. 엄마들이 잘 못 가르쳤어요. ‘넌 어디가든지 기죽지 마라~’ 그랬더니 분열하고 갈등을 합니다.
대부분 가정은 누군가가 십자가 지는 사람이 있으면 깨지지 않습니다.
남자가 은퇴를 하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그러면 좋을 것 같은데 부부간에 갈등이 심해진다고 합니다. 어떻게 섬겨야 할지 모릅니다. 어떻게 대화할 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잔소리만 늘어납니다. 잔소리는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도 서로 섬겨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설명) 마태복음25장에 달란트의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에 종에게 한명은 5달란트, 한명은 2달란트, 한명에게는 1달란트를 주고 떠납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결산한다고 합니다.
결산할 때 얼마를 남겼느냐고 물어보십니다.
5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열심히 장사해서 5달란트를 남겼습니다. 2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열심히 장사해서 2달란트를 남겼습니다. 1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냥 땅에 묻어났고 남긴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5달란트와 2달라트 받은 자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러면 1달란트 받은 종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아’
여기서 달란트는 재능, 은사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달란트, 은사, 재능을 주셨습니다. 얼마를 받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몇등했냐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를 남겼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것이 있습니다. 은사, 재능, 건강, 배움의 기회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잘 섬기시길 바랍니다.
(설명) 우리는 섬기면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늘나라 상급으로 쌓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리더로 세우십니다. 어디 가도 얇밉게 자기 것 챙기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리더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25장 40절 말씀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나그네와 헐벗은 자, 병든자를 돕는 것이 돕는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10장 42절 말씀입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결국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돈 없다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못 배웠다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병들었다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지극히 자은 자를 섬기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예수님을 닮아가야 정상입니다. 예수님은 겸손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섬김의 왕이십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데 계속 교만해지고 내 것만 주장하고~ 내 것만 챙기고 있다면 예수님을 잘 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믿고 무엇이 바뀌었나요?
언어가 바뀌어야합니다. 원망, 불평, 짜증이 감사로 바뀌어야 합니다.
꿈이 바뀌어야 합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안 됩니다.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하고 생명의 부양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 앞에 섰을 때 이런 말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날이 갈수록 더 겸손하게 하여주시옵소
날이 갈수록 더 양보하게 하여주시옵소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섬길 수 있는 믿음도 은혜도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야고보서에서도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계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시면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안아 주시고 안수하셨다고 했습니다.
(예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면 됩니다. 출애굽이후 그들은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바로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었습니다. 이젠 누구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즉 말씀이 원칙이 되고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몸뚱이는 출애굽했는데 사고는 아직 애굽에 있습니다. 아직까지 애굽의 가치관과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어린아이를 불러 가운데 세우시고 “이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결코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은 너나할 것 없이 부족하고 약합니다. 아무도 내일을 모릅니다. 그래서 교만해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낮추면 하나님이 높여주십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고난이 필요 없을 만큼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벧전 5:5)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은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마 18: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할렐루야! 여러분의 죄의 빚도 이렇게 탕감해 주셨습니다. 탕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탕감하여 주었다”는 의미는 ‘무엇을 퇴거시켜서 멀리 보낸다.'는 뜻입니다. 죄를 멀리 옮겨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그렇게 처리해주셨습니다.
(시 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미 7:19)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우리의 죄과를 멀리 옮기셨다’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셨다’ 이것은 완벽한 사죄의 은총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용서를 구하는 자의 죄를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를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의란 평생에 태어나서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의와 똑같은 수준입니다. 그러면 그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습니다.
(창 45: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단지 용서한다는 차원을 넘어 그 형들의 장래까지도 책임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그 수많은 고통의 세월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도 죄 사함 받은 기쁨으로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합니다. 용서할 때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용서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용서는 이웃을 자유하게 합니다. 용서는 자신을 건강하게 하는 명약 중에 명약입니다. 용서하는 순간 마음의 병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마땅히 제자들이라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수난을 생각하고 죽음을 앞둔 안타까움으로 같이 고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에 제자들은 천국에서 누구ㅏ 크냐의 문제로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병으로 죽어 가는 아버지의 병상에서 자식들이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을까를 토론 하는게 아니라 아버지가 죽으면 누가 더 많이 상속받는가를 토론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상황이 임박했는데 제자들은 이런 토론을 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치 그 옆을 지나가던 어린아리를 부르시고 앞에 세우셨습니다. 그러고는 “너희가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리”하시면서 아주 강조를 하셨습니다. 결단코라는 표현을 써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절 말씀에 보면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지 되지 아니하면” 겸손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을 의지적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나를 낮추어야 합니다. 나보다 크신 분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에게서 우리는 진정한 겸손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