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하는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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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마23장 13-22절) / 20201011주일설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는 하늘아래 하나밖에 없는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릇과 같습니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그릇의 이름이 달라집니다. 밥을 담으면 밥그릇, 국을 담으면 국그릇이 됩니다.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시면 우리는 인생은 성전으로 바뀝니다.
우리는 비록 연약한 그릇이지만 질그릇 속에 보배이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존귀한 존재가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당당하게 살아가길 축복합니다.
성경에는 말하는 복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복하고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동양적인 복의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양적인 복의 개념은 물질적이고 현상적인 결과에서 찾고 있습니다. 오래살고, 잘 살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을 복 된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도 분명히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말하는 복은 차원이 높습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복은 영적인 복이고,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복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축복의 산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산상설교의 말씀을 하십니다. 산상설교를 천국의 대헌장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8가지 복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적인 복이 아닙니다. 한번 화면을 통해서 볼까요?
1. 심령이 가난 자
2. 애통하는 자
3. 온유한 자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5. 긍휼히 여기는 자
6. 마음이 청결한 자
7. 화평케 하는 자
8.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자
여러분은 8가지 중에 몇 가지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말하는 진정한 복은 무엇입니까? 마음에 있고 존재에 있고 영적 것에 있고 영원한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 세상적인 복으로 평가를 하니까....행복하지 않고 실패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복은 하나님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 이런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복에 관해서 선포하셨던 주님이 이젠 화를 선포합니다. 저주와 심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7번에 걸쳐서 저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1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15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16절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2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25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27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29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누구에게 화를 선포하고 있습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은 3년 반 동안 천국 복음을 전했지만 이들은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서기관은 누구입니까? 율법을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보존하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율법의 전문가라고 보면 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목회자 같습니다.
바리새인은 유대종파에게 가장 큰 집단입니다. 특별히 구별된 존재로 살아갔던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율법준수에 있어서 엄격하게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킨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괜찮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의로운 사람입니다.
우리교회 주소가 연산면 송정리입니다. 송정리에 자랑 거리중에 하나가 양지서당에 있습니다. 철길 건너 산쪽에 있습니다. 훈장님은 지금도 갓을 쓰고 다니시죠. 인성에 교육 중요하게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한문, 서예, 검도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을 잘 이어가고 있는 분입니다. 정말 대단한 분이죠. 논산시에서 행사가 있을 때 훈장님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양지서당은 논산시에 자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양지서당은 부정적인 측면으로 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리새인들도 철저하게 일반 사람들과는 구별되게 살았습니다. 정말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저주가 선포되었을까요?
첫 번째 자기의 의를 추구했습니다.
서기관과 바래새인의 모습을 볼까요? 마태복음23장 5-8절 말씀입니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고자 했습니다. 어디가든지 윗자리를 앉기를 좋아했습니다. 시장에도 문안 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살았습니다.
자기주장, 자기의 의, 자기고집, 자기자랑은 모두 옛 성품입니다. 드러내길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나를 드러내지 말고 예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옛 성품은 하나씩 사라져야 합니다. 물론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설명) 속담 중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벼가 익이면 익을수록 알이 꽉차고 무거워집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숙여지게 됩니다. 사람도 속이 꽉찬 사람은 더 겸손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빈 깡통은 요란하다는 말이 있죠. 들은게 없어서 그렇습니다.
신앙적으로 말하면 내가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자기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자기를 드러내길 좋아하는 사람은 신앙이 성숙하지 못했음을 말합니다.
보통 남자들은 60-70세가 넘어가면 힘이 약해집니다. 그러다 보면 아내들한테 꼼짝하지 못하죠. 사실 그것도 맞는 말은 아닙니다.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똥고집은 못 버립니다.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요? 내가 진리의 편에 서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교회 오래 다닌다고 내 자아가 죽는게 아닙니다. 내가 결단해야 합니다. 11월1일부터 다니엘 기도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예배하고 기도하며 결단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내가 살리는 자로 살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자꾸 나는 죽고 내 속에 예수님으로 채울 때 우리의 성품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게 됩니다.
에베소서4장 22-24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즉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옛날 잘못된 사고, 감정들은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사울 왕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왕입니까? 그런데 옛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했습니다. 사울왕은 기분 나쁘다고 어떻게 했습니까? 혈기를 부립니다. 심지어 다윗을 죽인다고 쫓아다닙니다. 이게 전형적인 육체의 소욕대로 사는 삶입니다. 사울왕은 감정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결국 사울왕은 점점 몰락해 갑니다.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 다윗을 볼까요?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감정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선택했습니다. 감정대로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잠자고 있는 사울을 날카로운 창으로 사울의 심장을 찔러 단번에 죽이면 됩니다.
그런데 다윗은 감정대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진리를 선택했습니다. ‘감정을 선택하지 말고 진리를 선택하자’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왕이니 내가 폐위시킬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월권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기분 나쁘다고 뻑하면 이혼하자고 하면 사울왕 같은 사람입니다. 물론 살다보면 한 두번은 말할 수 있죠. 그런데 걸핀하면 갈라지자~ 때려치자~
기분 나쁘다고 욕하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사람은 사울왕 같은 사람입니다.
이젠 새로운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옛날 방식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구원 받았으면 모든 것이 끝이 아니라 이젠 이 땅에서부터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격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야 합니다.
‘똥고집 부리지 말자~ 망하는 지름길이다’옆사람 한번 말해주세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기 의를 추구했습니다. 결과는 무엇일까요? 13절 말씀입니다.
13절 말씀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자기도 천국에 못가고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누구보다 잘 지킨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천국에 못 들어갈까요? 잘 못된 열쇠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4장 6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 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예화) 예전 주일학교 찬양중에 ‘돈으로도 못가요’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천국은 율법으로도 못갑니다. 우리가 율법을 완전히 다 행할 수 있다면 율법을 통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율법을 완전히 행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로마서3장 2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기에 하나님은 이 땅에 죄없으신 예수님을 보내십니다.
율법의 중요한 기능은 무엇일까요? 죄를 깨달게 하는 역할입니다. 율법을 통해 의롭게 된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율법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마치 거울과 같다고 했죠. 거울 보면 내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죠. 머리가 흩어져 있는지~ 고춧가루가 이빨에 끼었는지~ 화장은 잘 되었는지...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통해 자랑했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율법은 자시과시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 죄성과 연약함을 보라고 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지적해서 변하는게 아닙니다. 사람은 지적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변화됩니다.
(결론) 결국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도 천국에 못가고 다른 사람은 천국에 못가게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천국문을 닫는 사람이 아니라 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거침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너뜨리는 자가 아니라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살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죽이는 사람은 자기만 죽는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같이 죽습니다.
(예화) 신천의 이만희, 통일교의 문선명, 정명섭, 안산홍 이런 사람들은 천국문을 닫는 사람입니다. 자기도 천국에 못가고 다른 사람도 못 가게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성경에 말씀을 다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어떨까요? 복음이 아니죠~ 율법이 우리를 구원해주는게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은혜이고 믿음입니다.
요한복음5장 24절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예수님을 믿는 자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오직 율법만 강조했고 자기 의를 추구했습니다.
두 번째 왜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저주를 선포했을까요? 외식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외식은 우리가 자짱면 사먹고 돈가스사 먹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어사전에 외식은 ‘겉만 보기 좋게 꾸미어 드러냄’
헬라어로 휘포크리테스 ‘연극배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배우들은 인물에 따라 말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실제 자신의 모습은 아니지만 역할에 따라 모습을 바꾸게 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중인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마태복음6장 1절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올여름 태풍으로 경상남도쪽에 피해가 컸습니다. 그러면 정치인들이 찾아갑니다. 찾아가서 돕는 것은 좋습니다. 일부 정치인들이 공무 장갑끼지 장화신고 사진을 찍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정치인들은 사진만 찍고 갑니다. 이런 것을 외식, 위선이라고 합니다. 진짜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인기와 명예를 위해서 행동을 합니다.
사업목적으로 큰 교회에 등록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순수한 목적으로 교회에 등록하는게 아니라 자기 사업을 위해서 교회를 선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내가 화장품 장사를 합니다. 그러면 작은교회 보다 큰 교회에 등록하면 성도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이 위선의 모습입니다.
27절 말씀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무덤에다 하얗게 회칠합니다. 그리고 빛을 받으면 눈이 부실정도로 하얗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무덤이 예쁘게 보입니다. 물론 이 당시에 무덤이라는 표시로 하얗게 회칠했다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회칠하면 무덤의 겉은 예쁘죠. 그런데 무덤 속은 어떻습니까? 해골이 보일 수 있고 아니면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겉과 속이 다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화) 얼마 전에 추석이었는데 중문 교회집사님 부부가 작은 선물을 가지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지금은 타지로 이사를 해서 다른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2시간 동안 고민을 이야기 했습니다. 내용의 핵심은 목사님의 부족함이 보이는 것입니다.
사실 목회자는 만나는 사람들이 거의 성도입니다. 자기 교회 성도를 만이 만나죠. 예전 교회 성도들하고도 가끔씩 소통을 합니다. 말이 소통이지 내용은 거의 목사님이 까는 이야기입니다. 문제 있는 목사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도들이 목사에 대한 실망감을 이야기하면....제가 그렇죠. 어떻게 목사가 그럴 수 있냐고~ 맞장구 쳐줍니다.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까? 우리교회 성도 중에 다른 교회 목사님에게 나의 단점을 말하고 있진 않는가? 사실 100점짜리 목사는 없잖아요. 나 역시 부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목사에 대한 불만이 무엇일까요? 이유는 다양합니다. 저는 그중에 하나가 겉과 속이 다른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말은 화려하게 하는데 삶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강대상에서 말하는 것하고 실제하고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성도입장에서 따라가기 쉽지 않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목사는 설교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삶이 어려운 것입니다. 야고보서3장 1절 말씀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목사, 교사는 위선자가 되기 쉽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처방은 무엇입니까?
26절 말씀입니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내면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현상보다 본질이 중요합니다. 얼굴에 화장만 예쁘게 하지 말고 마음의 화장좀 해라. 얼굴을 뜯어 고칠생각만 하지 말고 마음을 뜯어 고쳐라~
(예화) 요즘 아이들은 옛날에 비해서 아토피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환경이 오염된 것도 있고 인스터트 식품을 많이 먹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을 먹고 약을 말라도 잘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어렸을 때 아토피가 있어서 한의원에 간적이 있습니다. 아토피가 있는 사람은 장의 열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의원에서 장을 치료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효과를 받습니다. 요즘 의학도 현상을 치료하는게 아니라 원인치료를 많이 하고 있죠. 그래서 요즘은 대체의학이 많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철저하고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소홀히 했습니다. 율법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의와 인과 신입니다. 23절 말씀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그들은 십일조를 아주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십일조가 잘 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것을 말합니다.
의는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인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신은 하나님의 신실함입니다.
미가서 6장 6-8절 말씀입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 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을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 앞에 갈 때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까? 일년된 흠이 없는 송아지~ 천천의 수양~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의식적 행위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공의, 사랑입니다.
성경의 율법은 613개입니다. 613개의 율법을 10개로 줄이면 뭐가 되죠? 10계명입니다. 그러면 10계명을 2개로 줄이면 뭘까요?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2개를 1개로 줄이면 뭡니까? 사랑입니다. 율법의 핵심정신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사랑은 없고 행위만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과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예화) 여러분 정서적 이혼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정서적 이혼은 실제로는 혼인관계를 유지하지만 마음과 심리적으로는 이혼한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
법적으로만 부부지만 실제 소통이 안 되다는 것입니다. 정말 심각한 부부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한마디 말도 안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같이 살까요? 경제적 이유 혹은 자녀가 걱정되서 혹은 사회적 위치때문이라고 합니다.
한 집에 살고 있지만 정서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진정한 부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어려울 때 같이 아퍼할 수 있어야합니다. 즐거운 잡담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성격적으로 말이 별로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분은 정서적 이혼 상태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부도 마음이 중요합니다.
남자들은 돈만 벌어오면 다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아내들은 마음을 원합니다.
남자들은 청소해주고 쓰레기 버려주면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남자로 살아가는 것은 참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들이 나이를 먹으면 돈만 줘도 행복해 하는 것 같습니다. 여성들에게 질문합니다‘나는 남편이 돈만 많이 갔다 주면 좋겠다’ 손들어보세요. (없을 경우? 돈이 아니라 마음을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일주일에 한번 예배하지만 하나님은 매일매일 우리와 교통하길 원하십니다. 요한복음15장 4절 말씀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여기서 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기서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 가운데 있음을 의미 합니다’ 누가 열매를 맺을 수 있냐면 결국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어느 한 순간의 관계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폭죽같이 화려한 인생이 아니어도 예수님 꼭 붙들고 사시길 바랍니다.
세상적으로 나를 드러내길 것이 별로 없어도 예수님 꼭 붙들고 사시길 바랍니다.
돈자랑, 자식자랑, 남편자랑, 건강자랑, 학벌자랑 할 것 없어도 예수님 꼭 의지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안에 자기의와 외식의 모습이 있습니다.
늘 겸손하게 하여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우리의 중심이 늘 하나님을 향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안에 거하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래서 이 땅에 예수님의 향기로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씨뿌리는 밭의 비유가 있습니다. / 씨앗은 말씀입니다.
길가밭 ; 씨앗이 못들어갑니다. 새는 마귀는 씨앗은 말씀입니다. 말슴을 깯다지 모합니다.
돌밭 : 흩이 얇ㅎ습니다. 해빛 때문에 마르는 것이 아닙니다.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햇빛이 세도 뿌리만 내리면 죽지 않습니다. 말씀이 들었으면 얇게 내리면 안됩니다.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시련이 오면 올수록 더 잘자랍니다. 시련 때문에 신앙이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뿌리를 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븜으로 받습니다.
가시떨기 밭 멋있게 자랍니다. 뿌리도 잘 내렸습니다. 신앙은 멋있게 자랍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열매입니다. 가시가 기운을 눌렀습니다. 염려와 두려움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 족할 줄로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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