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비유

마태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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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

달란트 비유 (마25장 14-18절) / 20201025 주일설교
4.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하늘아래 하나밖에 없는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보혈의 피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의 핏 값으로 구원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짜리가 됩니다. 그 만큼 우리는 존귀한 존재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한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예화) 우리 집사 중 한분은 수술을 4번이나 받으신 분이 계십니다. 어느 날 수술을 받기 위해서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간호사들이 침대를 밀고 들어갑니다. 수술실은 대체로 온도가 낮습니다. 그리고 천장에 조명이 있죠.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은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의사가 간단하게 질문하고 마취를 합니다. 그 짧은 10-20초 정도에 온간 생각이 다 들죠. 이게 내 생의 마지막이 되면 어떻게 될까?
본인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면서 주르륵 흘렀다고 합니다. 저는 그때가 가장 겸손할 때가 아닌 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누가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끊임 없이 죽임 있다고 말합니다. 죽음이후 심판이 있고 영원한 세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마태복음24장 25장은 종말에 관한 설교입니다. 끝이 있다고 말합니다.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있으라는 말은 잠 안자고 교회에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언제 오셔서 좋은 준비된 신앙상태를 말합니다. 주님이 언제 오셔도 부끄럽지 않게 하루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세상 재미에 푹 빠져 살면 안 됩니다. 술 먹는 재미에 푹 빠져 살면 안됩니다. 드라마에 푹 빠져 살면 안 됩니다.
오늘 말씀은 달란트 비유에 관한 말씀입니다. 아마 한번 이상은 들었던 익숙한 말씀입니다.
주인이 종들에 자기 소유를 맡깁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여기서 주인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주인이 타국에 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음을 말합니다. 승천하신 주님은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사들을 동원해서 다시 이 땅에 오십니다.
주인이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깁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소유를 가지라고 주었습니까? 아니면 맡겼습니까? 주인은 종에게 소유를 준 것이 아니라 맡겼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가져온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코끝에 호흡이 멈추고 주님 앞에 갈 때 동전 한개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디모데전서6장 7-9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우리는 가지온 것도 없고 가져가지도 못합니다.
잘 생각하면 모든 게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감사가 사라집니다. 우리는 아무리 많이 벌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아무리 많이 배워도 만족이 없습니다. 아무리 높은 권력에 앉아도 만족이 없습니다. 지금 있는 것에 감사할 때 만족할 수 있습니다.
행복의 파랑새를 쫒지 말고 지금 이곳 있는 자리에서부터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예화) 어떤 분은 5년 뒤, 10년 뒤 꿈을 이야기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좋습니다. 우리는 멋진 꿈을 꾸고 꿈을 이루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렇다고 행복을 미루면 안 됩니다. 행복은 5년뒤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지금 이곳에 있습니다. 행복은 주님과 함께할 때 누릴 수 있습니다.
(예화) 저희 아이들이 벌써 고2, 중3, 중1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크면 친구들하고 노는게 좋고 공부한다고 바쁘죠. 어릴 때 처럼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가끔 쉬는 날 산책 가자고 하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같이 가면 아이스크림사준다고 하고~ 맛있는 것 사준다고 해도 갈까~ 말까~ 합니다. 그래서 같이 있을 때 감사하고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맡기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가져가시면 우리 인생은 끝나게 됩니다.
건강 할 때는 건강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건강을 잃어버렸을 때 비로서 내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돈이 있었을 때는 그 돈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이 수중에서 다 빠져나갈 때 돈이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자식이 내 자식인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식이 자기 마음대로 살거나 먼저 떠날 때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심각한 병에 걸리면 그때야 비로서 생명도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생명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주인이 부르시면 오늘밤이라도 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게 필요한 것은 청지기정신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뜻에 따라 주인이 맡긴 것을 일시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시간, 물질, 재능, 건강, 가정, 직분등을 잘 괸리하시길 바랍니다.
예를 들어 누가 빈집이 있어서 1년 동안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집을 잘 관리하며 살아야죠. 청소도 안하고 쓰레기를 쌓 놓고 물건을 파손시키면 되겠습니까?
주인이 종들에게 무엇을 맡겻습니까? 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얼마씩 맡겼습니까?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납니다. 달란트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축복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고귀한 삶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1달란트는 얼마정도 될까요?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입니다.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1루 품삯입니다. 하루 일당 10만원을 잡으면 6억이 됩니다. 하루 20만원을 잡으면 12억이 됩니다. 1달란트는 대략6-12억 정도로 보면 됩니다. 1달란트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종에게는 어마어마 한 돈입니다.
사실 얼마를 받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재능에 따라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공평하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평등입니다. 다르게 준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능력과 재능에 따라서 주셨습니다.
한 달란트나 두 달란트 받았다고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다섯 달란트 남긴 것하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두 달란트를 남긴 것하고 동일하게 칭찬을 하셨습니다. 많이 가졌다고 자랑할 필요 없습니다. 많이 가졌다는 것은 많이 내놓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얼마를 받고 싶습니까? 얼마를 받았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주인을 신뢰하는게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자는 무엇을 했을까요?
1. 최선을 다해 장사했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장사를 했습니다. 2달란트 받은 자도 역시 바로 가서 장사를 했습니다.
이들은 달란트를 받자마자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이들은 바로 가서 장사를 했고 이윤를 남겼습니다. 이들은 주인의 뜻을 알았습니다.
(예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미션을 주셨습니다. 어떤 미션일까요? 창세기1장 2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조의 목적을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 생명력 : 생육, 번성, 충만
2. 통치력 : 정복하라, 다스리라
한 단어로 말하면 우리는 살리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고 노아에게도 미션을 주셨습니다. 노아에게는 무슨 말을 했을까요? 역시 똑 같습니다. 창세기9장 1-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1. 생명력 : 생육, 번성, 충만
2. 통치력 :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똑 같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합니다. 이게 바로 생명력입니다. 그리고 땅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부동산 부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치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기대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길 원할까요? 생명력과 통치력을 행사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싸움을 일으키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유가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잘 못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육, 번성, 충만하라고 했습니다. 살리라고 했잖아요~그런데 분열하고 분쟁하는 것은 반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영화) 미국의 첩보 영화를 보면 항상 스토리가 비슷합니다. FBI요원이나 CIA요원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이미 은퇴를 했거나 손을 띤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중요한 미션 떨어집니다.
<적들이 위험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 무기를 무력화 시키지 않으면 나라가 무너질 수 있다. 이 일은 당신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때부터 이젠 싸움이 시작됩니다. 적의 요지까지 들어가려면 때론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갈등을 합니다. 내가 죽을 수 있는데~ 내가 꼭 가야하나? 동료들끼리 갈등하고 분열도 일어납니다. 때론 동료가 죽기도 합니다. 온몸의 영광의 상처가 남을 때도 있습니다. 결국에는 어떻게 합니까? 미션을 완수하죠? 그들은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FBI요원과 비슷합니다. 창세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미션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선택했다~ 너가 가정을 복음화 시켜라” 미션을 완수하는게 쉬울까요? 작전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때론 남편의 눈치도 봐야 합니다. 때론 시아버지, 시어머니 눈치도 봐야 합니다. 때론 아니꼽게 분위기 맞쳐야 합니다. 때론 버럭 화를 내야하는데 미션에 실패할까봐 꾹 참을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속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너가 왕같은 제사장이 되라~
‘우리는 검사가 아니라 제사장입니다’ 검사는 조사하고 따지고 묻습니다. 제사장은 살리는 자입니다. 때론 한쪽 눈을 감아 주어야 합니다. 때론 한쪽 귀를 닫아 주어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자와 두 달란트 받은자는 최선을 다해서 장사했습니다.
돈에 대한 세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돈을 벌기 어렵고, 모으기가 어렵고, 가장 어려운 것을 돈을 잘 쓰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주인으로 부터 칭찬을 받습니다. 21절 말씀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다섯 달란트 받은자와 두 달란트 받은자의 칭찬이 똑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면 한 달란트 받은자의 모습은 볼까요?
1. 땅을 파서 달란트를 감추어 두었습니다 18절 말씀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돈을 땅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하나님이 맡겨 주신 것을 땅에 묻어 두면 안 됩니다.
예수님 당시 보석이나 돈을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처럼 은행이 없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방법이 땅에 묻어두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이 결산하러 다시 온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땅에 묻었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의 의도를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주신 어마어마 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시시하다고 생각하고 땅에 묻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가 그것을 결산하기를 원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주인은 다시 돌아옵니다. 돌아올 뿐 아니라 결산하신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24장, 25장은 예수님이 다시 온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눈팔지 마라~ 믿음을 지켜라~ 사명을 완수하라~ 깨어있으라~
나에게 맡겨주신 일이 큰지, 작은지 따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에게 맡겨주신 것이 위대한 일인지 보잘 것 없는 것인지 따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일에도 충성하는 것입니다.
목동시절에 다윗은 양 한 마리에 충성을 다 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양 한마를 지켰습니다. 사자의 입에 들어가는 양 새끼를 끄집어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작은 한 방울의 빗물이 모여 냇물이 됩니다. 그 냇물이 모여 강물이 됩니다. 강물이 모여 바닷물이 됩니다.
2. 주인을 오해했습니다.
24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와서 '주인님. 나는 주인님이 아무 수고도 하지 않고 남이 심고 뿌려 놓은 것을 거둬들이는 지독한 분이라고 알았습니다.’ 주인을 지독한 분으로 알았습니다.
개혁개정 성경은 ‘굳은 사람’ 현대인의 성경은 지독한 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스클레로스입니다. ‘난폭한’이란 뜻이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주인을 악덕업자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자의 잘못은 이윤를 남기지 않는게 잘못이 아닙니다. 주인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주인이 다시 온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많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복수하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하나님을 공포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로마서8장 32절 말씀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에게 최고의 보물은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최고의 것을 주신 하나님은 다른 것도 다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시길 축복합니다.
3.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25절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하나님이 두려워서 숨겼다고 합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속성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책임전가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선악과를 따먹은 후 어떻게 했습니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자신의 책임을 주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언제까지 하나님 탓하고 살겠습니까? 언제까지 부모님 탓하고 살겠습니까?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말이 많습니다. 할 말이 그렇게 많습니다. 억울하게 그렇게 많습니다. 감사는 없고 불평이 많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말이 별로 없습니다. 주인이 왔을 때 한마디만합니다. 내가 5란트를 남겼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를 보십시오. 깔끔하게 주인님 내가 잘 못했습니다. 이러면 됩니다. 그런데 내가 주인을 악독한 분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인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땅에 숨겼습니다.
달란트 받은자를 주인은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습니다. 26절 말씀입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어떻게 보면 책망이 좀 지나쳐 보입니다. 원금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주인은 무엇 때문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평가했을까요? 주인의 뜻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요?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충성은 아닙니다.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충성해야 천국 간다는 것이 아닙니다.
더 근복적인 것은 믿음을 끝까지 지키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믿음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행위로 받는게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헷갈릴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12장 33절 말씀입니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달란트를 남겼기 때문에 주인의 즐거움에 참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나무란 무엇일까요? 예수님과 연결된 나무입니다.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 삶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하루에 10시간씩 기도원에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가서 봉사활동도 합니다. 그런데 종종 사기치고 다닙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런 사람은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입니다.
물론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열매가 이상하다면 점검해야 합니다.
열매가 없다면 진단해야 합니다.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이 병들었거나 가짜이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라지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도 행함을 강조합니다. 야고보서2장 22절 말씀입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입술로만 믿는다고 하면서 행함이 전혀 없는 신앙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믿음과 행함은 같이 간다고 말합니다. ‘믿음과 행함은 같이 간다’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깨어있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깨어있으라는 것은 소극적인 기다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기회를 활용해야 합니다.
(예화) 보통 남자들은 기다리는 것을 잘 못합니다. 저는 성격유형으로 보면 원리, 원칙, 정확한 시간을 좋아합니다.
저희 아내하고 약속하고 늦게 나오면 제가 잔소리를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좋은 방법이 생겼습니다. 늦게 나오면 막연하게 기다리지 않고 걷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하루에 만보씩 걷기를 하는데 한 번에 만보걷기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짜투리 시간에 걷기를 합니다. 만약에 5분 늦게 나온다~ 그러면 5분 동안에 500보정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19절 말씀을 보면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주인이 금방오지 않았습니다. 오랜 후에 왔습니다. 종말이 더디올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시간이 섬김의 시간, 섬김의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시간이 용서의 시간, 용서의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시간이 사랑의 시간, 사랑의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시간동안~ 이 인간 언제 죽나? 이 인간은 건강해서 죽지도 않을 것 같은데~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지 말고 적극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소극적인 기다림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과 연결되고 예수님으로 공급받아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도전)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창에 찔리셨습니다.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흔적을 남기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주님을 위한 흔적이 있습니까? 그 흔적은 영광의 흔적이 됩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섬기는게 버거울 수 있습니다. 용서가 무담 될 수 있습니다. 직분을 감당하기 벅찰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자체가 힘이 들 수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그 날을 바라보시고 사명을 잘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땅을 벗하고 살지만 동시에 천국을 바라보게 하여주시옵소서
이 땅에서의 삶이 막여한 삶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영향력, 통치력을 행사하며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는 충성한 자에게 상급이 주어짐을 믿고 일해야 합니다. 때로는 직분을 감당하는 일이 벅찰 때도 있습니다.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힘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주실 상급을 생각하십시오.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계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사도바울이 그토록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그 날에 주님이 주실 상급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 날에 주님이 주실 상급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상급에 대한 약속도 믿으십시오. 비록 작은 일 같아도 주님이 시킨 일이기에 충성하면 큰 상급을 주십니다.
󰁖 내하는 일들이 하도 적어 큰 열매 눈앞에 안 뵈어도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 얻으리라
찬송가 597장을 부릅니다.
마태복음7장 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중에도 가라지가 있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모릅니다. 시간이 되면 드러나게 됩니다. 심판 때가 되면 다 드러나게 됩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다 드러나게 됩니다. 환난을 만나보면 실체가 드러납니다.
거짓 사랑은 혀끝에 있고, 참 사랑은 손끝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헤이즈(D. H. Hayes)는 믿음과 행함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울은 뿌리를 보고, 야고보는 열매를 보았다.” 믿음의 문제를 볼 때 뿌리나 열매를 모두 볼 줄 알아야 잘못된 믿음으로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18절에 행위를 강조하고 믿음을 강조하는 두 파가 있다고 했습니다.
행위파는 믿음이 없이 행하기만 하고
믿음파는 행위가 없이 믿기만 합니다.
믿음이 없는 행위파는 자기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율법주의자들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파는 교인들 중에 “나는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 행위는 필요없다. 변화도 필요없다. 바로 살려는 노력도 필요없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하고 반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아무 상관이 없는 행위파도, 믿는다고 하는데 행위가 없는 믿음파도 둘 다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죽으면 바로 심판이 있습니다. 죽는 순간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예수 믿는 사람의 영혼은 천사들에게 받들려서 천국까지 에스코트 됩니다. 반대로 예수 안 믿는사람의 영혼은 악령들에게 끌려서 지옥으로 내려갑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 영혼과 육체가 다시 합쳐져서 부활체로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영혼과 육체가 합쳐진 상태로 지옥 불구덩이 속에서 영원히 고문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전혀 행함이 없으면 내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아무런 변하가 없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5.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날이 온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계 20:13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책들이 펴져있다. 첫 번째 생명책은 천당이냐 지옥이냐를 구분하는 명부가 있는 책이다. 그러나 또 다른 책 행위대로 심판받는 책이 있다. 믿음 심판은 이미 끝이 났다. 이제 우리가 받을 심판은 행위 심판이다. 우리의 행위록에 기록되어있는 행위들은 어떤 행위들이겠는가?
하나님은 충성된 종들에게 상을 주신다.
1)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했다.
2)작은 일에 충성했다고 칭찬했다.
3)더 많은 것을 맡기겠다고 했다.
4)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고 했다.
충성된 종은 주인의 신임을 받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더 많은 재산을 맡게 되었고 주인이 베푸는 잔치에 초대된 것이다. 종은 수종드는 사람이지 참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이 종은 주인의 즐거움에 함께 참여한다. 마지막 때에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 날을 생각하며 충성을 다하자.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강조점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 즉 명색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결국 쫓김을 당합니다.
18절 말씀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자마자 땅에다 집어 넣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섭섭한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무슨 일에든지 감사하고 감격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을 만나든지 신경질을 내고 짜증을 내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 많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얼마나 맡겨 주셨는가? 결산하는 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인생의 문제를 하나님 탓으로 돌리거나 부모님 탓과 환경 탓하는 것에서 벗어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달라트를 감사와 충성,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부익부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내용을 분석해 보면 세 가지 칭찬과 두 가지 보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선 세 가지 칭찬은 1. 잘하였다 2. 착하다 3. 충성되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보상은 1.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
2.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날이 온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계 20:13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책들이 펴져있다. 첫 번째 생명책은 천당이냐 지옥이냐를 구분하는 명부가 있는 책이다. 그러나 또 다른 책 행위대로 심판받는 책이 있다. 믿음 심판은 이미 끝이 났다. 이제 우리가 받을 심판은 행위 심판이다. 우리의 행위록에 기록되어있는 행위들은 어떤 행위들이겠는가?
하나님은 충성된 종들에게 상을 주신다.
1)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했다.
2)작은 일에 충성했다고 칭찬했다.
3)더 많은 것을 맡기겠다고 했다.
4)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고 했다.
충성된 종은 주인의 신임을 받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더 많은 재산을 맡게 되었고 주인이 베푸는 잔치에 초대된 것이다. 종은 수종드는 사람이지 참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이 종은 주인의 즐거움에 함께 참여한다. 마지막 때에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 날을 생각하며 충성을 다하자.
마 25:14-18 주님의 즐거움...
-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준비성이다.
-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청지기적인 삶이다.
이와 동시에 열 처녀 비유는 모든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일반적인 책임을 다룬 반면, 달란트 비유는 개개인에게 맡겨진 특수한 책임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에게 있는 건강, 지혜, 물질, 재능 등을 하나라도 소홀히 다루거나 묻어두지 말고 항상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하게 선용하는 충성된 청지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각자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을 교훈해 준다. 실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재능과 은사가 다르며, 또한 맡겨진 사명이 다르다 할지라도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충성뿐이다(고전 4:2). 만일 주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해서 하늘만 쳐다보며 허송세월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마치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땅속에 파묻어 두었던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무익한 종이라 일컬음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여김을 받아 영광된 하나님 나라에서 추방되는 비극을 맛보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에 주신 사명을 깨달아 충성되게 감당하자. 그리하여 주님의 천국 잔치에 참예하는 복을 누리기 바란다.
**적용
충성해야 합니다.
천국은 위대한 일보다는 보잘 것 없는 일에 관심을 가진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24장과 25장에 계속된 주제는 마지막 때에 관한 것입니다. 주인이 언젠가 반드시 돌아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반드시 오십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처음 오실 때는 구원의 주님으로 오셨으나 마지막 때에는 심판의 주님으로 오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에 대한 보상이 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자에게 축복의 보상이 있고 악하고 게으른 자에게는 징벌의 보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자신들에게 맡긴 돈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이라는 사실을 잘 깨닫고, 주인의 의도를 잘 알아, 선한 청지기로서, 다시 말해 주인이 아니라 종으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주님의 즐거움에 참예할 기회가 그에게 주어집니다. 영적축복과 육적 축복이 있습니다. 하늘의 기쁨과 천국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자기 소유를 종들에게 맡겼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두셨다. 그렇다고 해서 그 물질이 그들의 것은 아니었다. 분명 소유주는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달란트에 관하여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소유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똑같은 기회를 갖지는 않지만, 모두가 제각기 자기에게 적합한 임무를 하나님은 부여하셨다.
악하고 게으른 종에 대한 벌이 있습니다. 26-27절 말씀입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절 말씀입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이것이 심판입니다. 없는 자의 것을 빼앗아 있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골고루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가 아닙니다. 행한 대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몸의 근육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발달합니다. 피곤하다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은 더 약해집니다. 영적인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말씀가운데 있으면 우리의 영혼은 더욱 거룩해 지고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님을 체험하는 일도 심은 대로 거두는 일입니다. 성령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영적세계의 원리입니다. 29절 말씀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성경은 있는 자는 더 있을 것이고 없는 자는 더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맡은 은사와 재능이 큰고 작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맡겨주신 것에 충성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할 뿐 아니라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엉뚱한 일에 바쁜 것 그것이 게으름입니다. 「게으름」이란 책에서는 이것을 부지런함을 가장한 게으름이라고 했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바쁜 것은 충성의 열매가 아니라 육체의 열매입니다. 자기 일에 바빠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하는 것 이것이 게으름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낮잠만 잤을까요? 아마 뭔가 자기 일에 분주했을 겝니다. 자기 인생목적을 상실하고 엉뚱한 세상일에만 바쁜 것이 게으름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루종일 T.V.만 봅니다. 문득 T.V.가 고장이 났습니다. 금방 T.V.를 들고 수리센타 이곳 저곳을 헐떡거리고 뛰어다닙니다. 이처럼 바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부지런함을 가장한 게으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게으름을 포기하지 아니하면 영적 거인이 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전쟁 중 게으름 때문에 넘어졌습니다. 게으름은 어떤 사람의 성향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이 맞서 싸워야 할 영적 전쟁입니다.
여러분, 충성의 열매를 보기 원하십니까? 게으름과 맞서 싸우세요. 하나님의 우선순위에 따라 당신 삶을 재조정하십시오. 당신을 게으름 속에 붙들고 있는 그 환경을 싸워 이기세요.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섬기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빼앗아 가고, 비전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환경과 싸워서 이기란 말입니다. 예배의 자리, 영적 모임에 나가는 것은 힘이 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편해지려고 합니다. 그것이 육체의 열매요 불충성입니다. 그러나 게으름의 유혹을 이기고 그 모임에 나가면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십니다. 큰 보상을 주십니다. 그것이 충성입니다.
이제 결론은 자명해졌습니다. 충성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게으름을 이긴 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열매, 예수님의 성품,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2. 평가? 악하고 게으른종
한 달란트 받은 종에 대한 주인의 평가는 다섯 달란트 및 두 달란트 받은 자들에 대한 평가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인의 평가에서 ‘게으르다’는 말은 쉽게 이해가 되지만, ‘악하다’는 말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맡은 한 달란트를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본절을 그와 같이 피상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이익을 남기지 않고 한 달란트만을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준 것은 그 중심이 완악하여 그 주인의 선한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불신과 반항심이 그 마음에 자리잡고 있덨던 까닭이다. 따라서 그에 대해 ‘악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 내용을 분석해 보면 세 가지 칭찬과 두 가지 보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선 세 가지 칭찬은 1. 잘하였다 2. 착하다 3. 충성되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보상은 1.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
2.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소인은 크고 특별한 것에만 충성하고
위인은 평범한 것에도 충성하고
성자는 작은 것에 크게 충성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십시요. 여기 충성의 반대되는 말이 "반역"이 아니라 "게으름"이라고 말씀합니다. 원래 "게으름"의 반대말은 "부지런함"이어야 하는데 "충성"이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여기에 깊은 교훈이 있고 영적세계를 꿰뚫어 보시는 주님의 관점이 있습니다. "충성"의 대적 - 그 역적의 정체를 벗겨보니 "게으름"이었다는 것입니다. 충성된 삶은 착한 성품과 관련이 있고 악한 성품은 게으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 붙어 나오고 "악하고 게으른 종"이 붙어 나옵니다. 처음부터 충성은 하나님을 위해 바쁘게, 신나게 살라는 부름입니다. 신령한 삶, 영적 승리를 위한 고단한 삶으로의 부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번도 그의 제자들의 삶이 쉬울 것이라고 편안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길은 처음부터 좁은 길이었습니다. 충성은 내게 댓가, 절제,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은 그것들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것이 불충이요 악입니다.
받은 것은 얼마이며 현재까지 얼마를 남겼는가?
하나님은 작은 일에도 충성스럽게 섬기는 태도를 보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인의 영원한 기쁨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한달란트 받은 사람은 심리적으로 열등감을 느꼇을지 모릅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아마 자존심 상하고 기분이 나빴을지 모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속성을 오해했습니다. 많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복수하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행동을 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사마리아 여인이 있습니다. 간음하자 현장에 잡혀 죽을 뻔 한 여자가 있습니다. 키가 작아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삭개오가 있습니다. 각종 병과 귀신들려 고생하다 치료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필요한 자센느 충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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