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9장 1-7절 수요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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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세례와 예수의 세례
사도행전 19장
1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할렐루야
오늘 또한 사도행전 말씀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날씨가 며칠 또 추워졌습니다.
그래도 봄이 다가오니 금방 따뜻해질것이라는 희망이 있는거 같습니다.
자연의 섭리라는 것이 추울때도 있고 따뜻할때도 있는데 특히 한국의 날씨는 추운날과 따뜻한 날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번갈아가며 반복됩니다.
사도행전또한 그렇습니다.
사도행전의 내용도 기쁨과 아픔이 반복됩니다.
지난주에는 아볼로의 사역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지난주 18장의 내용은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사역했고 이후에 고린도에 가서 사역을 했다고 나옵니다.
27절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라는 표현이 고린도로 간다는 뜻입니다.
한국에서 호남 영남 또는 강건너 이런 지역을 표현하는 여러 방법중에 하나인거죠
바울은 에베소로 다시 갔습니다. 2차 전도여행에서 에베소에서 잠시 지냈었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이거든 너희에게 다시 돌아오리라라고 약속했었고 하나님의 뜻대로 다시 에베소로 온것입니다.
이때에 아볼로는 없는 시점입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은 전도여행중에 가장 긴 기간인 3년동안 선교사역을 감당합니다.
18장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했던 사역들만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초기의 성령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성령의 음성을 듣기 전에 에베소 교회가 자리잡고 있던 에베소 도시와 그 교회의 유래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에베소란 뜻은 ‘욕망과 소망’이라는 양면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에게는 욕망의 도시이지만 신자들에게는 영혼구원을 위한 소망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일단 에베소를 잠깐 설명 드리면 에베소는 아시아의 로마 라고 불릴정도로 발달된 도시였습니다 고대인데도 인구가 30만명이나 되었고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갈때 들리게 되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그리고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는데요 지금도 에베소 그러니까 에페소스로 검색하면 나오는게 아르테미스 신전의 유적입니다.
신들을 섬기는게 특산물인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보다도 네배나 큰 세계7대 불가사의중에 하나인게 바로 성경에는 아데미 신전으로 적혀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입니다. 아르테미스는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구약에서 아세라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전문직 신이었죠
그리고 29절에도 등장하는 대형 연극장이 있었습니다.
지금 에베소에 가면 볼 수 있는 극장은 성경에 나와있는것과 다르긴 한데 기록에 의하면 무려 2만5천명을 수용하는 극장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촌놈이라 큰데를 별로 못가봤는데 대전에서 지낼 때
부활절 예배 사진
부활절 연합예배를 월드컵경기장에서 드린적이 있어요 그렇게 큰 곳은 처음가봐서 절말 감탄하고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주위를 둘러서 좌석이 있는게 4만명규모였으니까 경기장을 3분의 2로 자른 만큼이 에베소의 극장이었다니 정말 엄청난 극장이었던것이죠
또 큰 체육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리는곳이었다고 합니다.
역시 다른 신약에 등장하는 도시들과 비슷하게 에베소는 번화했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풍요로웠던곳이 바로 에베소입니다.
이 에베소에는 아볼로가 예수님에 대해서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린도교회에서 등장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가 이 아볼로를 보고 정확한 하나님의 도를 알려줘서 사역이 시작된 것이죠
그런게 있잖아요 사람이 처음부터 다 알 수는 없기에 점점 알아가는것이 다릅니다.
산수만봐도 처음에는 더하기 빼기만 배우고 곱셈 나눗셈까지만 배워도 왠지 충분할꺼 같은데 실제 사회에서는 그것보다 훨씬 복잡한 수식들을 가지고 사는데 사칙연산만 아는 사람은 누가 알려주기 전까지 그것을 알기 어렵습니다.
아볼로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알았고 또 열정도 있어서 에베소교회의 좋은 교사였지만 결국은 정확한 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인정하지 않은 시점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시라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가르쳐줬습니다. 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근데 그 아볼로는 고린도로 이동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아볼로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없을때에 에베소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바울이 에베소 교회 제자들에게 질문한것이 세례를 받았느냐였습니다.
세례라는 표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의 용어는 보통 원래는 쓰이던 용어를 쓰는데 사회에서는 사회가 변하는거에 따라 안쓰고 교회에만 남는 경우가 많거든요
목사라는 직책도 원래는 중국에서 번역된 용어이다보니 중국의 벼슬에서 따왔습니다.
중국에서 뛰어난 관리에게 주어지는 칭호였다고 합니다.
조선에서 사용하던 목사와는 한문이 약간 다른데요
우리 구세군도 정교나 부교라는 말은 현재 구세군에만 남아있지만 원래는 대한제국시절 정식 군인 직책이었습니다
지금은 조선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서 목사가 교회에만 남아있는 직책이 된거죠
우리에게 세례라는 단어는 교회에서 쓰는 용어밖에 생각나지 않을텐데 이런 단어가 있죠 폭탄세례 정도만 현대어에서 남은거 같습니다.
세례의 원어는 헬라어 ‘밥티조’(βαπτίζω)에서 왔습니다
‘씻는다’ 또는 ‘깨끗하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씻는다라는 표현은 씼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씼어서 어떤 모습으로 만든다는 의미겠습니까?
에베소교회 사람들이 알고 있던 요한의 세례는 회개였습니다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라고 외치면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물로써 세례를 배풀고 죄를 용서하는 의식을 가진것입니다.
어찌보면 위협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너네 망한다 지옥에간다 회개해야 천국이 있다고요
자기의 능력이 부족함을 깨닫고 온전히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깨닫는것이 바로 요한의 세례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기에 지옥에 가지 않으려고 아니면 지옥을 유예하기 위해 받는 세례가 바로 요한의 세례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임시였죠 요한도 그 세례를 평생 배풀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예수님께서 오시고 진정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은 능력이었습니다 희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것에 대한 실현이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1차적인 세례에서만 머물고 있었다는것이죠
이건 일종의 신앙의 흐름입니다. 과거로부터 깨끗해지는것과 앞으로를 살아내는것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없이도 되고 물이 없이도 됩니다 회개하면 그뿐입니다.
중요한것이 성경을 정확히 보면 성령을 듣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안수하자마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해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열두명쯤 되는데 이건 열두제자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적은 수를 이야기합니다
전도가 잘되던곳에서는 수천명씩 돌아왔는데 대도시인 에베소에서는 불과 열두명만이 에베소교회의 초기 멤버가 되었다는것이죠
성령이 임하는 현상은 여러가지가 있긴 합니다.
구약에도 성령에 능력으로 일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죠
§꿈을 해몽한 요셉
§시내산에서의 모세
§300용사의 지도자 기드온
§블레셋을 무찌른 삼손
그리고
이와같이 방언과 예언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현 시대에서 이런경우보다 그냥 겉으로 보기에 크게 티가 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꼭 방언을 받아야 성령을 받았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방언을 받았으면 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 시대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방언이 필요했기에 그리고 초기에 성령의 능력을 드러내야 했기에 이렇게 눈에 보이는 현상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것이고 특별한 현상없이도 성령님은 충분히 일하고 계십니다.
어쩌면 이 에베소교회 사람들에게 이미 성령님은 임하고 계셨을수도 있습니다.
다만 성령님의 존재를 몰랐을뿐이죠
다만 성령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바울은 안수를 했고 하나님은 선교초기 필요에 의해 이들에게 명확한 성령의 능력을 부여해 주신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순간 우리의 심령에 거주하십니다.
이것을 알 수도 모를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미세한 차이일수도 있죠
사진을 비교하는
저는 사진을 좋아하는데 카메라가 폰카와 큰 카메라의 사진 결과물을 그냥 놓고 보면 크게 차이가 안나게 보일수도 있습니다.
근데 저는 알아요 아니 이것은
아니 이 렌즈는?!
이렇게 부드러운 사진을?!
하면서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도 비싼걸로 찍었구나 아니면 이건 좀 오래된 사진이구나.
성령님도 그렇습니다 이미 우리안에 내주하고 계시지만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냥 그렇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무엇을 해야하는지 잘 모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헛발질을 합니다.
등산화와 슬리퍼
마치 좋은 등산화가 집에 있는데 그걸 모르고 쓰레빠를 신고 산에 오르는것과 같습니다.
신앙 생활이라는 산을 오르는데 등산화같이 내 발목을 잡아주고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오를 수 있는 성령님을 의지해야하는데 쓰레빠같은 나를 의지하니 자꾸 미끄러지고 다치고 실수합니다
요한의 세례에 핵심은 뭐냐면요 요한이 어떻게 살았는지 아시죠? 착하게 살았습니다 금욕적으로 살고 죄를 안짓는거자체가 목적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져서 분쟁한다고 하는데 아볼로파사람들의 생각이 이런거였던거죠
나는 아볼로한테 배웠어 라는거보다는 나는 아볼로의 생각에 동의해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지 그게 중요해라고 말하는것이죠
네 착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긴 하고 그리스도인으로써 선한 행실의 덕을 쌓는 것이 중요하긴 한데 그것만 중요한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이 중요합니다 뭐가 더 중요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정직하고 바르게 살면서 그것에 구원이 있는것이 아니라
회개하는거 그거 자체에 구원이 있는게 아니라
바로 예수님에게 구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도를 하는데 그냥 교회에 앉아있는게 천국가는 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것이 천국가는길이고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는 길이라는것이요
그리고 그 구원의 삶을 성령님께서 인도해주신다고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내 의지가지고 뭐가 되지를 않습니다.
성령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내 뜻이 아닌 내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무조건 무언가 해내는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힘을 주시는데 우리의 삶을 지탱할 힘과 하나님의 일을 해낼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계시는데 내 힘으로 하기도 합니다.
마치 급할때는 맨발로 바깥에 나가듯이 성령님을 의식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할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무언가 불편해서 발을 보게 되죠 그러면 신발을 신고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내가 무시하고 지나친 성령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산을 오를 때 올바른 등산화를 신는것처럼
신앙생활이라는 산을 오르는데 성령을 의지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에베소교회는 그렇게 성령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위의 수많은 교회를 개척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비록 12명정도만이 초대멤버였지만
바울과 함께 그들은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일곱교회가 바로 이 에베소교회를 통해서 개척된것입니다.
에베소를 거점으로 모교회처럼 지교회로 개척되었습니다.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대전중앙영문도 여러교회를 개척했죠
구세군에서 ‘중앙’이라는 수식어는 5개이상의 영문을 개척한 영문에만 붙일 수 있습니다.
삼성, 소망, 용촌, 청성, 서대전, 논산, 도마, 금산
등의 굉장히 많은 영문을 개척했습니다.
대전중앙영문이 사람이 많아서 가능했던걸까요? 돈이 많아서 가능했던걸까요?
그게 가능한것은 성령님이 계셨고 성령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햇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있다고 남들이 모르는 돈 버는 법을 알게 되는게 아니고 사업을 잘하는게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고 이 거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게 해주는것이죠
그 성령의 은사들은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을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을 의지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는 한분한분이 되시고 또한 그런 사람들이 모인 우리 교회가 되길 소망하며 말씀 마치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이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아버지 우리의 소망가운데에 함께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에베소교회를 통하여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소서
우리가 성령님을 바로 알고 의지하며 순종의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주를 위한 삶 가운데에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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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