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의 자녀인가?

복있는사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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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8:39–47 NKRV
39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1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들어가며

1950년대, 미국 인디언 보호구역에는 유난히 마약과 알콜 중독, 폭력문제가 심각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인디언들이 웬 마약? 알콜?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궁금증은 저만의 궁금증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을 중심으로 한 연구팀이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들어갔답니다.
에릭슨은 거기서 묘한 상황에 처한 인디언 아이들을 발견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백인교사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 교사들이 아이들이 자신의 뜻대로 교육이 되지 않을 때마다 “인디언 짓”을 한다며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 아이들이 집에 가면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백인같이 군다”며 야단을 쳤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이 둘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혼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해야만 했습니다. 인디언도 아닌, 백인도 아닌, 그런 삶을 살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서서히 자신감을 잃어갔고, 자기 존재를 지워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는 무력감과 좌절만이 남아있었고, 마약과 알콜에 손을 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정체성이라는 것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체성이 확립되는 청소년기를 잘 보내어야 한다고 종종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정체성

오늘 본문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들은 유대인들입니다. 39절에 이 유대인들은 자신을 아주 당연하게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며 그를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혈통으로 따졌을 때는 틀린말은 아닙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피를 물려받은 자손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나아가 41절에 자신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스스로를 칭합니다.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예수님께서는...

하지만 우리가 본문 읽으며 살펴보았듯이,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생각하는 자아정체성에 딴지를 거십니다.
아브라함의 자녀라고 자처하는 이들에게, 39~40절에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너희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42절에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늘 아버지께서 보내신 나를 너희가 사랑하지 않는데, 너희가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이냐?라고 반문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녀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의 주장을 반박하십니다. 그리고 반박하실 뿐만 아니라 너희들은 ‘마귀의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유대인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자녀라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아마도 엄청나게 화가 났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마귀의 자녀와는 완전히 다른 족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 나름대로 종교적 행위들도 잘 해왔을 것입니다. 장로의 전통을 잘 따랐을 것이며, 절기도 잘 지켰을 것입니다. 이방인들과 피가 섞인 사마리아 사람들과는 말도 섞지 않고, 사마리아 사람은 개취급을 하며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온 혈통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마귀의 자녀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조금 부족한 것은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마귀의 자녀라는 것은 그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여러분들이 생각하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이들에게 마귀의 자녀라는 평가는 너무 야박한 평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왜, 실제로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자녀들이고, 출애굽기에 하나님의 장자라고 한 유대인들에게 이런 야박한 평가를 내리셨겠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이 도무지 아브라함을, 하나님을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많은 부모들과 자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짝짓는 것은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부모를 닮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하실 때, 이 점에 착안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부모와 자녀는 닮았다는 아주 기본적인 개념에 착안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는 아브라함과 닮지 않았다! 너희는 하나님과 닮지 않았다! 너희가 아브라함과 닮았다면 나를 죽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닮지 않았다! 너희가 하나님을 닮았더라면 성부께서 나를 사랑하시듯 너희도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녀는 부모를 닮습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닮아있습니까? 육적으로는 당연히 각자의 육신의 부모를 닮았겠지만, 우리의 영은, 우리어 성품은, 우리의 말은, 우리의 행실은 누구를 닮아있습니까?
교회는 열심히 다니고, 종교생활은 잘 하고, 교회에서 누구보다 열심으로 섬기더라도 하나님을 닮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계신 누구하나 하나님을 닮지 않고 싶은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은헤를 베풀어 주시기를....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더 닮아갈 수 있기를 위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47절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자라면,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서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세워져 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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