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주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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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1 에베소 교회, AG2 예수님, AP 마음으로 노래, CP 술취함, PW 성령님, MIW 충만하라, SC 방탕에서 벗어나 충만함으로 삶, A 충만, C 방탕
S1. 환영과 인사
S1. 환영과 인사
청년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은 지난 번에 이어서 에베소서 5장 18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이 이 청년 시절에 꼭 마음에 두고 우선적으로 힘써야 할 삶에 대해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을 같이 읽어 봅시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21절입니다.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S2. 분문 주제
S2. 분문 주제
바울은 먼저 앞 부분에서 삶을 자세히 주의하여 살펴서 삶의 카이로스들을 힘써서 구하라고 교훈했습니다. 특별히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항상 분별할 것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 성도들은 하루의 삶을 돌아보면서 내 삶의 중요한 때를 잘 활용하고 있는지, 아버지의 뜻에 내가 순종하고 살아가는 지 항상 분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송하고, 사람들과는 서로 순종하는 삶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이 말씀을 같이 묵상하고 우리가 젊은 시간에 마음에 힘써야 할 것에 대해 같이 살펴 봅시다.
S3. 문제 제기
S3. 문제 제기
먼저 우리는 이러한 삶의 열매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에 말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종종 이런 설교를 듣고 말씀을 공부하면서 오히려 마음에 상처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열심이 원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데 안되기 때문입니다. 나도 노력하는 데 또 잘 살아야 한다고 하면 마음에 상처가 생길 수 있는 것이지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렇게 살 수 있단 말입니까? 방향과 방법도 알겠는데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어떻게 내게 임합니까? 하고 묻게 되는 것입니다.
J1. 하나님의 마음
J1. 하나님의 마음
사도는 이런 이유에서 18절 말씀을 통해 이 모든 삶의 능력이 어떻게 가능한 지를 알려줍니다. 아버지의 뜻에 닿아있는 영적 기회들을 잘 분별하여 구하고, 항상 찬송과 경배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 18절 말씀을 봅시다.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지난 첫 주에 살폈던 말씀은 15절부터 17절까지에서는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에 초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이 나타나는 시간들을 잘 분별하여 선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9절과 21절에는 마음으로 찬양하고, 감사와 순종의 삶을 살 것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오늘 18절은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술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하는 삶을 열거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모든 삶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어떤 삶을 살아라고 말씀하실 때 능력도 함께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죄인으로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인 우리들도 우리 안에 죄성에 의한 연약함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힘으로만 살면 아무리 카이로스가 와서 아버지의 뜻이 임해도 그것을 제대로 분별하기가 어렵고, 그 때를 알아도 내 것으로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후에 오히려 후회나 근심만 늘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러한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 하나님의 성령님을 우리 안에 주십니다.
18절은 술취하지 말라고 말씀하면서 이것은 방탕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방탕은 아소티아라는 말인데 어떤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결과를 생각하거나 책임지지 않고 행동하게 됩니다. 술에 취한다는 말은 술이 나를 지배한다는 말이고, 내가 술에 의존한다는 말입니다. 내 삶의 외로움과 힘듦, 고통과 기쁨의 모든 순간을 술의 힘을 빌어 사는 것이 취해 사는 삶입니다. 문제는 술에 취하면 책임을 내가 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술이 나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충만은 이와는 다릅니다. 성령님은 내가 술이나 물질에 의지하여 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영의 선한 뜻을 따라 살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아버지의 카이로스를 따라 행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J2. 예수님의 신성
J2. 예수님의 신성
우리가 아는데로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신 보헤사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아버지의 심판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성과 연약함을 지고 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먼저 우리의 죄를 대신하실 참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는 분이십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로 보내십니다. 우리 요한복음 14장 16절 말씀을 봅시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여기에서 ‘다른’이라는 말은 뜻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hetero라고 해서 정말 성격이나 성질이 different 한 다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른 보혜사라고 하실 때 다른은 another를 말하는 것으로 다 똑같은 것이나 그것은 아니라는 뜻의 다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속하시는 보혜사이시기에 자신의 영이신 성령님을 우리 안에 보내셔서 자신과 똑같은 보혜사의 일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로 인해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그 분의 영이 우리에게 오심으로 인해 새롱룬 피조물, New Being이 되는 것입니다.
J3. 예수님의 인성
J3. 예수님의 인성
예수님은 이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저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의 죄값을 다 지불하심으로 이제 우리에게 성령님이 오시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육체 안에 나의 실체인 영의 탄생을 경험하게 됩니다. 죄로 인해 우리의 영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끊어지게 되었고, 이는 곧 영적인 죽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영이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내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과 나의 영이 서로 교제하며 아버지의 뜻과 사랑을 알게 되고 그 사랑 안에서 강건하게 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하나님과 우리의 모든 담을 허시고 하나님과 우리를 언약의 관계, 사랑과 하나님의 다스림의관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W1 . 예수님은 성도들 안에 성령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W1 . 예수님은 성도들 안에 성령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은 우리의 영을 새롭게 부활의 삶을 살게 하심으로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과 우리가 이제 서로 교제하고 하나가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도는 이제 영인 나의 존재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예수님 안에서 서로 사귀며 충만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술취하지 말고 성령으로충만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성령님에 의해 충만해지고 술이나 다른 세상의 물질이나 행위에 중독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몰라도 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영이 항상 육신의 부족한 그것을 넘어 갈망하고 소망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 나의 이 영에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셔서 내가 하나님과 깊은 연결을 누리며 충만한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여기에 우리 성도의 삶의 비밀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의 가난과 결핍이 풍요로움으로 바뀝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해 질 때 카이로서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의 눈이 열리고, 성령님으로 풍성할 때 삶에는 많은 재능과 은사들의 기회들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W2. 충만은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임재입니다.
W2. 충만은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임재입니다.
우리가 충만을 말할 때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성령님 안에서 주시는 풍성한 임재를 말합니다. 영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육으로도 예수님의 임재 속에서 거룩한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 안에 주신 영의 갱신이기 때문에 성도인 우리가 영으로 갱신이 될 때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 되게 하십니다. 이제는 삶이 물질이나 습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히자는 몸으로 변화를 경험합니다. 본문 19-21절을 봅시다.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무엇보다 우리 안에 찬송의 삶이 얼닙니다. 육체로 찬송을 부르는 삶은 참된 경배의 모습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두 손을 들고 몸을 굽혀 드리는 예배의 삶이 내 속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감사의 삶이 드러납니다. 하루를 살게 하신 은혜를 묵상할 때 우리의 입술과 삶에는 감사의 노래와 기쁨이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충만의 은혜로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형제들 간에는 피차에 복종하는 순종의 삶이 나타납니다.
W3.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W3.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중생을 얻고, 주신 성령님께 충만하여 삶의 모든 자리에서 경건을 향해 더 달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육신 안에 거하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의 의지와 감정은 우리를 실패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도인데도 술에 취해 살거나 다른 물질이나 습관에 의지하여 중독된 삶을 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몸의 중독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술이 문제라고 하긴 하지만, 술은 적절하게 취하면 오히려 건강의 길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에 술만이 아니라 도박이나 인터넷 서핑이나 성적인 중독 등은 다 위험한 것입니다. 성도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것이지만, 잘못 중독이 되면 헤아릴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한 의존과 중독적 습관을 내 힘이 아닌 성령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우리는 이 모든 문제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영을 주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구속들에게 자유케 하시고 참 영적 기쁨과 풍성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T1. 사도 바울은 성령님에 충만하여 그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의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T1. 사도 바울은 성령님에 충만하여 그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의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교회를 향해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라고 말합니다. 성령님을 충만케 하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도는 성령에 충만하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우리가 아버지께 기도하고 구할 때 아버지께서는 자녀된 우리들에게 성령님으로 충만한 삶을 주신다는 약속을 붙들라는 말입니다.
T2. 오늘날 우리 시대는 많은 중독에 노출된 삶을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T2. 오늘날 우리 시대는 많은 중독에 노출된 삶을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 자신들도 어떤 이는 술에 취해 살기도 하고, 인터넷에 중독되어 몇 시간을 서핑에 보내기도 하고, 성적으로, 혹은 돈만을 바라는 돈 중독자가 되기도 합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종교도 중독이라고 해롭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행동이나 물질에 중독되어 열심히 운동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등산을 하는 등 우리의 삶의 시간들을 그런 것들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우리 나라에 중독자는 1,000만이 넘는다고 하는 보고도 있습니다. 모두가 중독자이기 때문에 다들 중독을 격려하고 중독적 삶을 칭찬하지 성령님으로 충만한 삶을 격려하지 않습니다.
T3. 그러나 성도인 우리에는 성령님이 충만히 함께 하십니다.
T3. 그러나 성도인 우리에는 성령님이 충만히 함께 하십니다.
물론 우리도 육체 안에 삽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도 다 물질적인 것들과 어떤 행동들에 중독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는 이러한 삶이 해결됩니다. 내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붙들면 성령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육체적 습관들을 끊을 수 있게 해 주시고, 새로운 삷의 습관을 주십니다. 사도는 교회인 성도들이 성령님 안에서 신령한 노래로 예배할 것을 명령합니다. 우리는 이제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내 삶에서 음악, 찬양, 경배의 노래들이 항상 내 주위에 충만하게 할 수 있고, 나의 내면 역시도 참된 예배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참된 감사가 충만하게 됩니다. 내 삶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새로운 존재로 나를 불러 주신 예수님께 감사를 가지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세상의 것과 중독으로 인해 무의미하고 살패한 것 같지만 이미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으로 인해 구원과 참된 성품의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 모두는 다 새로운 존재로서 새로운 삶의 습관을 가질 수 있는 이들이 된 것입니다.
또한 서로 순종할 수 있는 마음과 삶도 가지게 됩니다. 이제는 말하고 주장하기보다는 들을 수 있는 여유, 그래서 경청할 수 있는 힘이 내 속에 생기게 됩니다. 헬라어로 ‘순종한다’는 말은 아래에서 듣는다는 말입니다. 오늘 성령님이 충만한 성도는 예배와 감사, 그리고 경청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어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참된 삶의 교제를 누릴 수 있는 이들이 될 수 있습니다.
L5.그러므로 청년 여러분!
L5.그러므로 청년 여러분!
내 삶에 성령님이 충만하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소원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중생의 자리로 인도하셨을 때 가장 먼저 회복되고 변화되는 것은 의지입니다. 내가 죄를 짖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는 여전히 죄가 강해서 우리가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죄 아래에서 행하게 됩니다. 이것을 바울이 많이 고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로마서 8장에서 아버지께 주신 성령님 안에서 우리는 죄를 죽이고 거룩한 영광을 누리는 백성이 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미 구원의 순간, 내가 죄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주셨을 때 성도는 이미 영광의 자녀가 되었고, 이제 우리 속에 오신 성령님으로 우리는 죄를 이기고 술이나 다른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성령님만을 의지하여 사는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L6.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L6.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런 까닭에 우리 주의 자녀들은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의로운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죄를 단절하고 거룩을향해 나가고자 하는 소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이미 우리 안에 소망을 주심으로 우리의 구원과 회복을 시작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미 주신 그 소망으로 결단하고 성령님의 충만함을 구할 때 우리 모두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화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우리 가운데 화답이 되고 마음으로 주를 찬양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모든 일에 감사가 넘치고 충만함이 함께 합니다. 더 이상 물질이나 습관이 아니라 회복의 영의 뜻과 의지를 따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에 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님의 충만을 구하는 삶, 그래서 찬양과 감사와 순종이 드러나는 삶, 나아가 아버지의 뜻을 분별하여 행하는 삶을 살기를 결심해야 합니다. 청년의 때에 참된 에배와 감사, 그리고 순종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결심하고 기대하는 모두가 되셔서 참된 은혜의 삶에 힘쓰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