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믿습니다. (17-18문 사도신경의 전 구조 및 믿음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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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오늘 본문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도입: 모든 사람이 가진 ‘믿음’
도입: 모든 사람이 가진 ‘믿음’
신념과 가치관을 따르는 자들의 모습
신념과 가치관을 따르는 자들의 모습
사람은 저마다의 신념 혹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신념과 가치관은 때로 사람을 용감하게도 만들고, 때로는 가장 어리석은 존재로 만들기도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의 신념을 따라 군대를 가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 혹은 가치관인 살인하지 말라라는 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고, 이에 이들은 집총거부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기 지키라는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이들은 알파벳 두 자 이상 쓰지 않기, 알파벳 두 자 이상 지우지 않기를 비롯한 39가지의 규정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신념이라는 것, 그리고 가치관이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신념과 가치관 : 소비주의
이 세상의 신념과 가치관 : 소비주의
‘FLEX하다’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다들 아시죠?
이 말은 ‘과시하다, 자랑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말입니다.
FLEX하다라는 말은 ‘근육 꾀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팔을 구부려서 과시하는 모습’에서 나온 말로, 이 말이 오늘날 비싼 물건을 사고 그 물건을 자랑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라는 것이죠.
플렉스 하다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신념이자 가치관입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게 회사에서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며, 하기 싫은 일을 꾸역 꾸역 참으며 일 해야 할까요?
또, 하기 싫은 공부를 꾸역 꾸역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플렉스 하는 사람 즉, “소비하는 사람" 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이 하고 있는 공부를 보면, 그 공부의 비중은 100% 대학진학을 위한 공부입니다.
왜 이 아이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서 공부해야 할까요?
그것은 성공하기 위해서 이죠. 그렇다면 왜 성공해야 할까요?
성공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공했을 때의 그리는 모습이 답을 주는데, 바로 플렉스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좋은 집에 살면서, 내가 가지고 싶은 물건들을 플렉스 할 수 있으며, 명품시계와 명품백이 즐비한 삶, 매일 아침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여는 삶, 저녁에는 가족들과 외식하고, 주말엔 멀리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삶을 우리는 성공한 사람의 삶이라 여깁니다.
스타벅스에 갈 때 필요한게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맥북을 들고 가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즉, 스타벅스 출입권을 맥북이라 말하면서, 맥을 가진 사람을 많은 사람들은 ‘오, 좀 있어 보이네’, 혹은 ‘오, 괜찮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 신념을 아주 철저하게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사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고, 많은 돈을 벌려고 하니까 더 높은 자리, 더 강한 권력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죠.
이 신념과 가치관이 마음에 드십니까?
세상을 살아보시니 세상이 추구하는 이 신념과 가치관을 따라 사시는 삶이 어떠신가요? 행복하십니까? 만족스러우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플렉스하는 것이 결코 우리에게 즐거움과 자유를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벗어날 수 없는 마치 다람쥐가 도는 챗바퀴와 같은 일상에 구속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를 잃게 되고, 억압받고 틀에 매인 삶을 살게 됩니다.
신념과 가치관을 따르는 이유 : 믿음
신념과 가치관을 따르는 이유 : 믿음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야 할까요?
왜 우리는 세상의 신념과 가치관을 따라 살아갈 수 밖에 없을까요?
왜 우리는 세상의 신념과 가치관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에게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믿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신념과 가치관을 의지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신념과 가치관이 영향력이 있어서 우리를 흡수하고 빨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신념과 가치관을 선택하고 집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의 결과로 인하여 가지게 되는 신념과 가치관이 있습니다.
심지어 저는 아무생각 없이 살아갑니다 라고 말하는 그러니까 참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그 사람도 신념과 가치관 즉, 믿음이 있다는 것이죠.
본론
본론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본문 주해
본문 주해
오늘 본문은 믿음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오늘 본문은 믿음을 2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이 구절을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
그리고 원문을 직역하자면,
“이제 믿음 그는 희망의 실체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아직 이해가 안되시죠.
이해 하실 수 있도록 좀 더 상세하게 번역해보자면,
“이제 믿음 그는 우리가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의 실현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주는 증거입니다.”
본문이 소개하는 믿음1 : 믿음의 대상
본문이 소개하는 믿음1 : 믿음의 대상
오늘 본문은 믿음과 관련해서 두 가지를 강조하며, 두 가지를 말합니다.
첫번째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라는 것으로 우리가 기대해야하고, 희망해야 할 마땅한 것에 대한 것입니다.
바로 믿음의 대상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첫번째 조건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보통 ‘이데아’ 혹은 가장 이상적인 세계를 말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떠올리며 그것을 말하게 됩니다.
전쟁이 없고, 질병이 없으며, 고통도 없고, 슬픔도 없으며, 차별도 없고, 차이도 없으며, 가난도 없는 그런 이상적인 모습을 우리는 희망하고 기대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적인 세계는 누구나 원하는 모습입니다.
즉,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바라고 기대하며, 누구나 원하는 그것과 관련되어 있는 존재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전쟁이 없고, 질병도 없으며, 고통도 없고, 슬픔도 없으며, 차별도 없고, 차이도 없으며, 가난도 없는 그런 완전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하여, ‘이데아' 혹은 이상의 세계를 말한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상의 세계를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완전한 존재가 반드시 실제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절대적인 존재로부터 우리는 믿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이러한 존재를 인식하고,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라고 말합니다.
즉, 믿음이 우리가 바라고 원하고 희망하는 모든 것들의 실제 모습을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리의 생각을 자극하여 우리는 좋아 보이는 것, 그러니까 가장 이상적이고, 완전한 그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희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이 소개하는 믿음2 : 참된 믿음
본문이 소개하는 믿음2 : 참된 믿음
다음으로 두번째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라는 것으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만들어주는, 확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어야 할 믿음의 대상에 대한 두번째 조건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세상은 여러분들의 눈에 보이는 것을 믿어라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교육의 결과로 인하여 과학을 신뢰하고, 과학적 증명이 이루어질 때, 그것을 믿게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을 믿음의 대상이라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학적 추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경험에 의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입으로 맛을 보며, 촉감으로 느끼는 행위에 의해 밝혀진 사실들을 우리는 과학적 추론이라 말합니다.
그러니까 과학이라는 것은 바로 우리의 감각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을 보며, 촉감으로 느끼는 그것이 완전하지 못하다라는 점입니다.
바로 우리의 감각이 불완전하다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눈은 보지 못하는 것이 많고, 우리의 귀는 20Hz~20,000Hz를 벗어나는 소리를 듣지 못하며, 우리의 촉감으로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는 점입니다. 특히 우리는 우리가 볼 수 있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에서 조차도 혼동한다라는 점입니다.
즉, 과학적 추론에 의해 입증된 것이라 해도 우리가 믿어야 할 대상에는 들 수가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오늘 본문이 말하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우리의 감각을 초월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느낄 수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는 있습니다.
종합하기
종합하기
앞에서 말했던 믿음의 두 가지 조건을 종합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들, 우리가 좋은 것을 떠올릴 때 그 좋은 것들의 원인이자 실체이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그 존재.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지금 믿음이라는 것을 말하면서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만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시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죠.
왜 하나님만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실까요?
우리의 감각을 초월해서 존재해야 하고,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하며, 우리가 바라는 모든 좋은 것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존재,
그 존재가 바로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34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결론
결론
소비하라! 플렉스 하라!
소비하라! 플렉스 하라!
자,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떤 믿음을 따르시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한다 하여도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세상의 신념과 가치관을 벗어나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소비주의를 떠나서는 우리가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세상이 말하는 믿음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믿음을 통해서 이 소비주의, 그러니까 우리를 옥죄이며, 우리를 다람쥐 챗바퀴도는 것과 같은 무한 경쟁의 시대 속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역설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분명 우리는 소비주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그 소비주의라는 신념 아래 무릎 꿇고 복종하여 노예처럼 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소비주의라는 것을 마치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듯 우리가 조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권면드리고 싶습니다.
도전 드리고 싶습니다.
소비하십시오. 단, 하나님의 방식을 통해서 마음껏 소비하시기 바랍니다.
이 소비에 대해서는 다음에 한 번 깊이 다뤄보도록 하고,
우리의 소비를 통해서 회복이 있을 수 있는 곳에 다른 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곳에마음 껏 소비하시며, 기꺼이 소비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소비주의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같은 플렉스 하다라는 가치관이 중시되는 삶을 살아가지만 우리의 플렉스함은 다른 이들의 생명을 살리고, 이 세상의 오염되고 깨어진 모든 부분들을 살리는 곳에 회복시키는 일에 플렉스 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