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계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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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수련회 설교 2
일시 : 2021.02.07
본문 : 창세기 45장
제목 : 하나님의 계획 (2)
설교자 : 윤영준 목사
주제: 하나님은 나를 통한 공통체를 향한 계획이 있으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 시편 37편 23-24절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허락하신 최고의 은혜 중에 하나는 자신의 삶을 해석할 수 있는 눈과 지혜를 주신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왜 이런 일들이 내 삶 가운데 일어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신기한 것은 시간이 가면서 하나님 안에서 자연스럽게 해석되어지는 것이다.
“아~ 하나님께서 그래서 이렇게 하셨구나!”
“아~ 하나님께서 이런 방법을 사용하셨구나!”
“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를 돌보셨구나!”
우리는 오늘 내 인생 전체를 해석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오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다보면,
거대한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서
내 이야기가 해석되어지고,
놀라운 사실은
내 삶은 내 것인줄 알았는데
내 것이 아닌 것을 알게되어지고,
나는 내 삶을 살아갔을 뿐인데
돌아보면 내 주변 사람들이 변해있다는 것을
경험할 때이다.
메시지 : 하나님의 계획은 나에게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최종 목적지는 내가 아니다.
나를 향한 또다른 누군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시다.
오늘 본문은
온갖 어려움과 고난을 뚫고
애굽의 총리- 2인자가 된 요셉에게
어느날, 자신들의 배다른 형제들이 곡식을 꾸러오는 장면이다.
만약에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었다면,
이 부분이 클라이막스가 될 것이다.
갈등이 최고조로 올라가는 것이죠.드디어 칼을 갈고 칼을 갈아서 드디어 복수를 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것아마 시청자들은 요셉이 어떻게 복수할지 손에 땀을 쥐고 볼 것이다.
여러분도 생각해보세요.
우리에게 갑질을 하던 사람이 이제 을이 되어서 내 앞에 엎드린다면,
‘와~ 역시 신은 살아계시는구나’ 여기면서 통쾌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얼마전에 웹툰을 하나 보게 되었는데…
‘이런 설정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한 여자아이가 남자들을 망가뜨리는 것이죠. 자신과 엄마를 어떤 한 남자로 인해서 인생이 망쳐진거에요. 그래서 모든 남자들을 증오하면서, 주변의 남자들을 사용해서 남자들에게 복수하는 캐릭터였다.
- 또 하나의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천일야화’의 ‘어부이야기’였다.
어느 날, 늙은 어부가 배를 타고 나가 그물을 던졌는데 꽤나 묵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끙끙대며 올리자 황동으로 된 항아리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항아리를 열어보니 지니가 아니라 마신이 나왔다.
그런데 이 마신은 늙은 어부를 해치려고 했다.
아니 갇혀있는 것을 구해주었다면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이 마신은 처음 100년은 누구든지 나를 꺼내주면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주어야 겠다고 생각했고, 100년이 지나고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나 400년이 지난 지금에는 ‘내가 여기서 나가서 처음 만나는 사람’을 죽여서 내 기분을 풀어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원한과 분노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커지고 커지며,
또한 복수의 대상도 불분명해져서 마치 번져가는 산불처럼
우리의 원한과 분노는 커져간다는 것이다.
요셉 안에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요?
복수하고 싶다. 17살 때는 힘이 없어서 형들의 손에 죽을뻔하기도 했고, 구덩이에도 빠졌고, 노예가 되었다. 애굽의 노예일때는 힘이 없어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과 모함에 빠져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눈에는 눈이고, 이에는 이.
너가 나를 종으로 팔아버렸으니, 너희는 이제부터 종이다.
적어도 내가 고통당한 순간만큼 너희도 고통을 받아보아라
애굽의 2인자, 실질적인 모든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인 실권을 가지고 있다. 내가 굳이 행동하지 않아도,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짓만 한번 찡긋해도, 대신 복수해 줄 사람들이 넘치도록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 같은 상황은 어이없게 끝나버린다.
용서라는 마무리…
요셉이 형들을 용서해버린 것이죠.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요셉은 그들을 용서했고, 그들을 품었다.
요셉은 그 누구에게도 복수하지 않았다.
단순히 그가 아무도 해칠 수 없는 착한 천사와도 같은 사람이여서 였을까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5-8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당에 이 년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이 온갖 어려움들 속에서도 복수의 칼날을 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천사와도 같은 마음을 가져서가 아니다.
감정이 메말라 취급을 당하든지 상관없이 일어서는 철인과도 같은 사람도 아니다.
요셉이라고해서 고통당하면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허허하하 웃기만 했던 사람이였겠는가? 아니다. 그도 충분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외로움에 눈물도 흘렸을 것이고, 분한 마음을 싹히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그런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 안에서 받은 상처입은 상처가 치유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안에서 상처가 메워졌다.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상처를 받아본 적이 있나요?
저는 예전에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이 노래를 듣는데 너무 공감이 되는거에요.
총 맞은 것처럼 너무 아프고, 구멍난 상처에서 감정들이 마구 쏟아져나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상처받으면 아프다.
그러나 요셉은 어두운 그늘이 없다.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다.
“내가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졌노라”
바울이 고백한 것은 무엇인가요?
나에게는 상처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에요.
그 상처가 무엇이냐를 이야기한것이죠.
바울에게는 상처가 아문 자국은 무엇이죠.
바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사역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함께 하다가 난 상처였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건지시고 치유하셨다는 훈장과도 같은 것이였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고 계신가요?
기독교는 고난이 없는 삶을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과 하는 그 길이 꽃길만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진흙탕 , 발이 푹푹 파지고, 날카로운 나뭇가지들을 헤치면서 가는 것처럼
내 몸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을 하나님께서 함께 가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요셉도 마찬가지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꿈을 품고 하루하루 하나님과 동행하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전의 요셉은 트러블메이커였다.
하는 말마다 / 하는 행동마다 갈등을 일으키고,
사고를 내는 문제덩어리, 골치덩어리였다.
온갖 편애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타인들의 마음과 생각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공감성이 제로였던 사람이였다.
형들의 마음을 전혀 살피지 못하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행동했던 공감성 제로였던 요셉은 어디있나요?
깊은 어둠과 고난을 통과했던 이의 상한 마음과 어두움은 어디있나요?
오히려 요셉은 형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킨다.
하나님과 함께 시련을 통과한 이의 말과 행동에는 이처럼 따뜻함과 평안이 있다.
그러나 그가 하루하루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자 어떤 사람이 되었나요?
자신의 원수였던 형들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 되었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형들을 배려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근심하지 말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며 배려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완전히 변화되었다.
갈등을 일으키는 자에서
갈등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가져오는 사람
트러블메이커에서 피스메이커가 되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가운데 있다.
요셉은 이야기하죠.
“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은 형들의 과거 잘못을 형들에게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님 안에서 상처가 메워졌다. 이해되지 않는 고통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였고, 그 하나님의 계획들이 이루어지는 것들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더이상 인생의 실패자가 아니다.
형들로부터 버림받은 인생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쓰임받는 인생이다.
그렇기에 그는 남들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자신의 원수조차도 품을 수 있게 된 것이죠.
갈등 속에서 평화를 가져오는 자가 되었다.
보디발 아내를 거부할 때도,
그리고 감옥에 갇혔을 때도,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해주었을 때도,
그리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었고,
그 계획들을 깨닫게 되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간구해왔고, 지금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자들이다.
우리 친구들 모두가 이런 사람들로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의 꿈은 단순히 나 한 사람을 세우는데 있지 않다.
더불어 같이 세워지고 함께 사는 것에 있다.
우리도 갈등 안에서 살아간다.
나로 인해서 생긴 갈등이 있을 수 있고,
아니면 내 주변이들로 인해서 생긴 갈등이 있을 수 있다.
갈등은 우리를 시험하여서 우리가 정말로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진짜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우리는 그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
갈등의 중재자가 되어본 적이 있나요?
어떤 사람의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서 꽂히고,
머리에서 맴돌고, 삶의 의욕들을 다 빼앗아간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의 자신감들도 무너뜨리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하면 할수록 갈등은 배가 되고, 수렁 속으로 허우적대면서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게 되나요?
진정한 은혜를 깨닫게 된다.
원수였던 나를 위해서 나의 죄를 짊어지시고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분을 보면, 진짜 용서가 무엇인지…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복수가 아닌 진짜 용서와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죠.
단순히 문제와 갈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꽹가리 같은 소리가 그치고, 싸움이 그치는 것뿐만이 아니다.
그 속에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진정한 평화와 사랑과 섬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 붙들린 인생을 산 사람의 고백이다.
자신의 정욕대로, 욕망대로 살아간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요셉이 언제 하나님께 먼 나라의 애굽 총리를 시켜달라고 했을까?
그저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의 철부지와도 같은 막내 아들이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총리로 세우셨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그의 가족들을 모두 구원하셨다.
우리의 인생이 나의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은혜가 있다.
우리는 각자 개인을 위한 삶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로 부름을 받았다.
내가 현재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이든지, 부정적인 욕망에 사로잡히는 사람이든지,
게임에 중독되어서 꿈속에서도 게임을 하는 사람이든지…
하나님께 붙들리면, 우리는 그 분의 길을 준비하게 된다.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원석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가공하기 전의 원석은 어떤가요?
그냥 돌댕이에요.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돌덩이, 시꺼먼 아무 가치 없는 돌댕이죠.
그런데 가공되어지면, 빛을 내는 보석이 되죠.
하나님 안에서 가공이 되어지면, 놀라운 보석이 된다.
하나님의 빛을 내는 보석같은 인생을 살게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평화를 드러내는 사람이 된다.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꿈을 받은 이는 그 꿈을 실현해내는 도중에 수많은 여러움과 고난을 만나게 되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품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져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통해서 진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성취되는 것이다.
“공동체의 회복과 구원이다”
나 한 사람을 통해서 공동체가 함께 사는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oo야, 너는 나를 따르라”는 부름을 받았다면,
그 부름은 나 개인 홀로를 위한 부름이 아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한 부름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면서, 내가 속한 가정, 공동체를 함께 부르시는 것이다.
나라는 통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흘러가기 시작하고,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이 서있는 그 곳이 바로 여러분이 부름받은 자리이다.
가정에 불화가 있으신가요?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들 간의 갈등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에 소망이 없고,
메말라가고 있나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요셉과 같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일하실 것이다.
우리는 몇 주전부터 수련회를 계획해왔다.
사실 코로나라는 이 시기에 수련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아니 하긴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다는 것을 믿음으로 한 주 한 주를 거듭해왔다.
팀을 나누어서 각자 역할들을 감당하고, 함께 기도해오고, 함께 참여했다.
그리고 마침내 짧고도 긴 수련회가 마무리되어 간다.
신기하고 놀랍지 않으세요.
그 누구도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의 작은 지혜를 보태고, 작은 아이디어를 보태고, 작은 헌신을 보태었을 뿐인데 하나의 그림은 완성되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작은 퍼즐 조각들이 맞추어져서 나라는 사람이 되고,
각양 각색과 빛나는 존재들이 맞추어져서 교회를 이룬다
그리고 그 교회들이 맞추어져 하나님 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가 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왕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조각들을 하나 둘씩 맞추어가시는 것이다. 그 분을 믿으며 신뢰하며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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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라는 여성이 있다.
그녀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영상을 통해서 함께 바라보자.
케이티 데이비스는 “사람들은 나를 엄청난 사람으로 생각하곤 한다. ‘정말 용기가 대단해! 정말 강인한 아가씨야! 정말 특별한 사람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그저 미국 테네시 주 출신의 평범한 아가씨일 뿐이다. 나는 틈만 나면 실수를 저지르는 부족한 사람이다. 아무리 봐도 특별한 점이라곤 없다.
딱 하나, 늘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점이 특별하다면 특별할 것이다. 당신도 할 수 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비범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평범한 사람.”
또 사람들이 이 여인에게 말한다.
“당신은 정말 좋겠어요.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찾았잖아요?”
그러나 그녀는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을 바라보며,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죠.
“저는 당신의 질문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내가 찾은 것이 아니에요. 이미 성경에 나와있습니다.
성경에 나와있는 바를 따라서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에요.”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평범 그 자체일 뿐이라고,
아무리 똑똑하고 지혜롭고 용기있는 사람이라도
그저 한 명의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기뻐하시는 그 분의 뜻을 따라서 하루 하루를 살아갈 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주신 환경에 불평하지 않고,
그것에 교만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나태하지 않고,
나에게 주신 환경 안에서 작은 것들을 충성으로 섬기고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매순간 주님을 택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주님께서 어떻게 끌고 가실지 함께 보세요.
오늘 본문의 요셉은 처음부터 내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가족들을 먹어살리고, 사람들을 도와야지 계획하지 않았다.
미국의 소녀였던 케이티도 처음부터 우간다에 가서 내가 불쌍한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주어야지 계획하지 않았다.
단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을 뿐이다.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곳 가운데 보내셨을까?’
말씀 가운데 하루하루 살아가다보니, 어떤 아이가 마음에 들어왔고,
마음에 들어온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고,
또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덧 14명의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었으며,
어느덧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우간다 지역주민들의 ’엄마’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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