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계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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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수련회 설교 1
일시 : 2021.02.06
본문 : 창세기 37장
제목 : 하나님의 계획 (1)
설교자 : 윤영준 목사
주제: 하나님은 나를 향한 계획이 있으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 시편 37편 23-24절
0) 서론 : 위대하신 하나님, 그 분은 꿈이 있으시다.
영상 잘 보셨나요?
‘두부 한 모와 같은 우리의 뇌로
거대한 우주의 크기를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세우는 계획과 꿈들이
해변에 쌓아놓은 모래성처럼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인지를 바라본다.
인생의 풍랑이 몰아쳐왔을때, 다 쓸려내려갈 것들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온 우주 만물을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가운데 놓였다.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오늘 식당을 접을까 말까’하는 고민을 하시기도 한다.
한주 한주 버텨내는 것이 쉽지 않은 힘겨운 상황이라는 것이죠.
남일 같지 않은 것은 저희집도 예전에 잠깐 식당을 운영했었는데
장사가 안되면, 열어놓아도 인건비가 더 나와서 적자운영이라 이 식당을 어떻게 할까
늘 부모님이 고민하셨던 것을 본적이 있어서 더 공감이 된다.
그런데 어른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학생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다.
유학생들은 학기가 다가오는데 다시 해외로 나갈지, 휴학할지를 고민하고,
학생들은 학원을 갈지말지,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고 새장 안에 새처럼 갇혀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기에 다시금 생각해보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계획이 있으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근시안적이라 내 눈앞의 현실과 문제 밖에 바라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고,
역사를 주관하시기에 이러한 시기에도 하나님은 계획이 있으시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위대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이 땅위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나 자신과 공동체에게도 맞닿아있다.
그것을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함께 알아가고자 한다.
세 꼭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데
첫번째로, 하나님의 꿈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꿈은 어려움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세번째로, 하나님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는 하나님의 꿈을 품은 한 인물이 등장한다.
요셉이라는 인물이다.
1)본론1 : 하나님의 꿈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꿈’을 품은 사람이라고 하면 대번에
“와~ 이 사람이 얼마나 노력했으면,
와~ 이 사람이 얼마나 열정적이면, 와~ 얼마나 똑똑하면
하나님께서 꿈을 주시고 사용하실까?”
그 사람에게 집중한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꿈은 사람이 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품는 것은 내가 아닌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말이며,
다시 말하자면, 우리 중 누구든지 하나님의 비전을 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에이, 목사님, 그래도 이정도는 갖춰야하지 않을까요?
에이, 그래도 가정환경은 이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요?
좋아요 좋아 그래도 성품, 가정환경, 재력 다 떠나도 뭐 교육은 제대로 받아야 될 것 아닐까요?”
아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앞에서 나열한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임한다.
요셉의 가정환경과 어린 시절을 보라.
요셉의 집안은 한마디로 ‘콩가루’집안이였다.
요셉은 아빠는 야곱으로 한 명이지만, 엄마는 네 명이나 되었다.
배다른 형제들도 11명이 있었죠.
여기까지만 들어도 얼마나 골치아플지 어느정도 ‘각’이 나오지 않나요?
친형제자매 한 두명만 있어도 갈등이 있고, ‘치킨 한조각’ 더 먹자는 치열함이 있는데…네명의 아내들은 남편에게 사랑받기 위해.
열두명의 형제들은 아버지의 관심에 들기 위해서
치열한 기싸움과 갈등이 있었다는 것이죠.
치킨 한 조각이 아니라 머리채 잡고 싸우지만 않았지 보이지 않는 피튀기는 암투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첫째 부인은 남편의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애정결핍의 소유자였다.
둘째 부인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 했으나 자녀를 낳지 못하는 불임이였다.
그러다가 늦은 나이에 아이 둘을 낳았는데 그게 요셉과 베냐민이죠.
그러나 베냐민을 낳고 얼마 있지 않아 라헬은 죽고 말았다.
둘째 부인을 향했던 야곱의 사랑과 관심은 이제 자연스럽게
그녀의 자녀인 요셉에게 쏟아지게 되었다. 요셉은 자녀들 중에서 유일하게 신상 명품을 입고 다녔다. 혼자 쿠찌, 프라닭, 루이비똥, 샤날을 입고 집안을 돌아다니니 형들 눈에는 얼마나 꼴배기 싫었겠는가? 그 옷만 보아도 속에서 부글부글 용암이 끓었을 것이다.
그러면 요셉은 알아서 눈치껏 형들 앞에서 설설 기어야 하는데
마치 요셉은 공감능력을 잃은 사람과 같다. 타인을 전혀 생각하지 않죠.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편애 속에서 자라서 남들의 기분과 감정에는 상관없이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이야기해야 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했다.
남들의 생각과 마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눈치없이 형들이 싫어하는 일들은 다하는거죠.
군대에서는 이런 친구를 전문 용어로 ‘고문관’이라고 해요.
남의 가정사를 너무 깊이 파헤쳐서 미안하지만…
어쨋든 하나님의 꿈이 누구에게 임했나요?
갈등이 가득한 한 가정.
그 속에서 작은 평범한 아이.
아니, 오히려 눈치없고 타인을 향한 배려없고 사회성이 떨어져보이는 이 아이에게 임했다.
목사님, 저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래요.
제가 얼마나 입에 욕을 달고 사는대요.
혼자 있을 때 얼마나 이상한 생각을 하는지 몰라요.
목사님, 저희 가정에 대해서 몰라서 그래요.
저희 가정에 하루만 사셔도 진절머리를 내시면서 짐싸서 나가실걸요.
맞다. 나는 여러분에 대해서 여러분의 가정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보다 더 한 이들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여러분보다 더 한 가정들 속에서 평안 가운데 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준을 우리보다 더 잘알고 계신다.
우리의 죄 모습들 생각들 우리 가정의 갈등들 숨기고 싶어하는 수많은 내적인 것들도 모두 알고 계신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꿈은 사람이 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하나님이 완성시키시는 것이기때문이다.
요셉의 가정을 볼까요?
어느날, 수면 아래에 숨어있던 갈등이 뻥하고 터지고 말았다.
요셉이 꾼 꿈이 계기였다. 형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눈치없이 형들에게 해버리고 만것이죠. 이제 형들은 미움과 시기를 넘어서서 죽이고자 하는 증오까지 나아간다. 여기서 두 번째 메시지가 나온다.
2)본론2 : 하나님의 꿈은 어려움을 통과한다.
요셉의 형제들은 자신들이 의도하였는지 의도하지 않았는지 알수 없지만,
요셉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을 조롱하며 시험하였다.
멀리서 걸어오는 요셉을 보며, “저기 꿈꾸는 자가 온다”며 비아냥거렸고,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보자”며 요셉이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시련을 주었다.
그를 영원히 눈 앞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죠. 애굽에 노예로 팔아서, 그의 꿈이 절대로 실현되지 못하도록, 물거품처럼 사그라지도록 한 것이죠.
우리가 다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꿈을 주시지만, 하나님의 꿈을 꾼다고 해서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흔히 하나님의 비전 안에 있다면, 더 잘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제가 얼마전에 장례를 다녀올 때 미니 버스를 탄 적이 있었다.
버스 전용 차선으로 우리가 탄 차가 가는데,
꽉 막힌 도로 알죠. 근데 우리만 빨리가는거에요. 기분이 얼마나 좋아요.
놀이공원 좋아하죠? 일년전에 사파리 타러 1시간 30분 기다렸는데 5분만에
근데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보니 Q패스를 돈주고 산사람들은 안기다리고 탈 수 있대요.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면 이래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막힌 차선이 뻥 뚫리는 것처럼, 닫혀있던 문들이 활짝활짝 열리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시선으로 보고 으쓱대고 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안그렇죠.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요셉의 인생 스토리는 엉망진창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꿈을 품게 되면서, 오히려 더 심한 미움과 시기를 받게 되었고,
자신의 형제들의 손에 팔려 이웃 나라의 노예로 끌려갔고, 노예로 성실함을 인정받나 했더만, 그를 미혹하는 여주인에게서 정결을 지키려다가 모함을 당해서
감옥에 갇히는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또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의 꿈을 해석해주어서 풀려나나 했더만, 어떻게 되었죠?
그 사람이 도와준 요셉을 완전히 잊어버려서 오랜 기다림에 처하기도 했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인생인가? 이정도 되면, 삶에 대한 의욕도 사라지고, 손을 놓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것이다.
여러분도 이런 삶을 원하시나요?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를 원하시나요?
그래서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이러한 일들을 계획해놓으셨다면,
감사합니다! 좋아할 수 있을까요?
아니겠죠. 아마 이야기를 듣자마자 외칠지도 모른다.
“하나님, 듣기 싫습니다!
하나님,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니에요~ 당장 바꾸어주세요. 수정해주세요!
하나님의 꿈을 취소해주세요!”
말하지 않겠나요? 맞아요. 누가 인생 중에 고난을 원하고, 아픔과 슬픔을 원할까?
그런 걸 원하면, 사이코패스이겠죠.
많은 사람들이 비전의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눈 앞의 간증하는 분의 현재의 모습만을 놓고 보기 때문이다.
풍요롭고 풍족한 모습만 보기 때문이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결과만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꿈을 품고 산 사람들의 대부분은 배척받고 힘든 삶을 살았다.
그들이 품은 꿈을 통해서, 그들이 만난 하나님으로 인해서, 다른 이들에게 조롱당하거나 무시받거나 배척당하는 삶을 살았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어떠하신가요? 사람들에게 조롱받으셨고, 억울한 모함을 받으셨으며, 완전히 벌거벗겨진채 죽임을 당하시기도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꿈이 세상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을 좋아라 하면서, 세상은 박수치면서 좋아할까요? 아니에요. 오해를 당하기도 하고, 거절을 당하기도 하고, 차별당하기도 하고, 핍박을 당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이렇고저렇고 구체적인 계획을 1부터 100까지 제시해주시지 않았다.
단지 어릴 적에 뜬금없는 볏짚 꿈과 해와달과별 꿈을 보여주셨을 뿐이다.
그리고 요셉의 꿈과 말을 통해서 형제들은 더 그를 미워했고, 죽이려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사람들의 악한 마음과 행동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요셉을 포기하실 수 없으셨다.
그렇다면, 무엇이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의 꿈이 무엇인가요?
일차적인 목표는 요셉,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꿈의 일차적인 목적이 무엇이에요?
바로 나이다.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도 굴곡들이 있다.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이루어가시며, 완성시키실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없애고 없애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없어지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의 악한 생각과 계획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계획을 이루신다.
하나님의 꿈은 먼 애굽에서 진행되고 있었고,
차가운 감옥 안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3)본론3 :
하나님의 꿈은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꿈은 단기간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 속에 이루어진다.
제가 항해사로 일하면서 경험했던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을
안전한 항구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이다.
가끔 태평양과 대서양과 같은 대양에 나가게 되면,
태풍과 같은 폭풍우를 만날 때가 있다.
우리가 육지에 있을 때에야 땅에 발을 딛고 있고,
숨을 곳들이 존재하지만,
대양에서 폭풍우 - 거센 비바람과 너울들을 만난다는 것은
삶의 존재를 뒤흔드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세상이 흔들린다. 양쪽 창문이 있는데 양쪽 창에서 하늘이 보였다가 바다가 보이기도 하고, 온갖 물건들이 다 떨어져서 뒹굴러다니며, 롤러코스터를 계속 타고 있는 것과도 같다. 무엇보다 나의 존재가 위협받고 마음이 녹아내린다.
엔진 출력이 낮은 배들은 어떤 일이 있냐면, 하루종일 기름을 때서 엔진을 풀가동해서 24시간 앞으로 나아갔는데 나중에 위치 확인을 하면, 오히려 전날 보다 뒤에 가있는 경우도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여러 경험들 속에서 깨닫게 된 바는
회피하고 흔들리고 요동하고 마음이 녹아내려도
이미 예정한 시간을 넘었을지라도
목적지만 잊지 않고 나아간다면,
결국 항구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간다는 것도 이와 같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매일의 일상 살아가지만,
이것은 세상의 성공의 요건을 갖춘다고 할 수 없다.
때로는 하나님을 생각하느라
또 하나님의 가치를 붙드느라
억울한 일을 당하고 실패한 것 같아 보일 때도 있고,
어려움 속에서 인내해야 될 때도 있을지 모른다.
어렵게 한 걸음 왔는데 두 세걸음 물러나야 할 때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한 순간일지라도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나요?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실패한적이 없다.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완성된다는 것이다.
어느 날, 사람들이 테레사 수녀에게 찾아와 인터뷰를 했다.
“ 테레사 수녀님, 어떻게 그 척박한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오랫동안 견뎌내실 수 있으셨나요? 역시 수녀님께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시도록 명료하고 분명하게 말씀해주셨겠죠?
그러나 테레사 수녀는 말했다.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명료한 것을 받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신뢰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요청한다.
“하나님, 명료하고 분명하게 말해주세요. 환상으로 보여주세요.
그러면 제가 그 길을 따라갈게요.”
“하나님,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세요.
나를 향한 계획을 1년, 5년, 10년, 20년 그림으로 보여주세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면, 정말로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정말 행복해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니다. 요셉과 같은 고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우리는 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것들을 보여주시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보여주시고, 말씀해주신 것이 있다.
바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서, 그 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신다.
“너는 나를 따르라”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그 하나님의 계획에 응답할 차례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나요?
하나님을 따라 그 길을 걸어가시겠나요?
아니면 아직도 분명한 것을 바라며 머뭇머뭇 거리며 주저하시겠나요?
사랑하는 청소년 친구들,
명확한 것을 바라며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명확한 것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리고 나의 값을 다 치루셨다는 것이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지셨으며,
앞으로의 모든 삶 또한 예수님께서 함께 하실 것임을 이야기하고 계신다.
우리의 출발은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에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계획이 있으시고,
그 계획은 단순한 그것이 단순히 우리의 세상적인 성공, 지위, 명예,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존재에 있다. 이 사람이 얼마나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느냐에 있다. 이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느냐에 있다. 우리의 존재의 변화에 일차적인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변화되어 갈때, 우리의 주위의 변화나 능력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있다.그것이 하나님께서 오늘 하나님 나라를 경작해가시는 원리이다.
여러분은 굉장히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요셉이 꿈을 받은 나이가 언제였죠?
바로 17세였다. 17세는 어떠한 나이냐?
청소년의 나이이죠.
우리가 청소년 시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청소년 시기는 사실 불명확한 시기, 완성되지 않은 시기라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보여주신 꿈처럼,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불명확한 시기이다.
방황하는 시기이다.
청소년은 낀세대라고 하죠.
어린 아이와 성인 사이에 끼어서 대접받지 못하고 어설픈 시기라고 생각되어지지만
사실 이 청소년의 시기이다.
어린이를 벗어나 부모의 품을 조금씩 떠나면서 자신의 것들을 만들어가지만,
아직 어른들만큼 분명하지는 않고 완성되지 않았다. 정체성을 확립하는 나이이다.
따라서 이 청소년 시기에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하느냐
이 시기에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무엇을 체험하는가
나의 인생의 방향과 목적성이 변화돨 수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이 시간 내가 어떠한 꿈을 가져야 할 것인가
내 욕망과 세상이 지시하는 방향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것 하나님께서 내 안에 진짜 소망을 불어넣어주시는 것
꿈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이 부족하다고 연약하다고 해서 절망하지 마십시오.
“나는 작심 삼일도 아닌, 작심 세시간 밖에 안되는 사람이야”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여러분 한사람한사람이 보통 사람들처럼 그저 태어났고,
이자리에 어쩌다보니 흘러들어와버렸다고 생각되어지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알고계시고,
이름을 불러주시며,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 앞에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며, 들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오늘 나에게 주신 사명이며,
나의 정체성이다.
그 사실을 기억할 때
오늘 나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내 미래가 보이지 않아도
10 20 30년 미래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그 분이 나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나를 붙드신다는 것을 신뢰한다면,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 앞에 나아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어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시며, 함께 동행해주신다. 그것을 기대하십시오.
처음에는 그 꿈은 내가 기대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꿈은 원대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명료하고 분명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테레사 수녀가 고백했듯이
나는 하나님께 명료한 것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신뢰한 것 뿐입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녀는 그 자리에 있었고,
그 매일매일을 살아감이 우리가 아는 그녀의 모습이였다.
우리가 테레사 수녀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제2의 요셉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우리는 OOO,
바로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잡은 손을 잠시 놓으면
한 두개를 놓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놓치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을 붙들면 모든 것을 붙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