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종에 관한 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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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543 어려운 일 당할 때
본문 출21:1-11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복된 아침을 열어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아름다운 날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염려와 불안을 붙들어 주시고, 속히 코로나를 거두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시기에도 택한 백성들의 믿음이 도태되지 않게 하여주시고, 게으르고 악한 종이 되지 않도록 우리를 날마다 붙들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새벽의 시간에 말씀을 듣습니다. 오직 주님께만 집중하는 우리의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당시 고대근동 사회에서 나라와 나라 간에 언약을 맺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강대국이 세력을 넓혀가면서 약한 나라들이나 약한 소수민족들을 흡수하기 시작한다. 이때 강대국의 왕은 그들을 포용하고 흡수하되 자신의 통치권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하여 그들과 언약을 맺는다. 그래서 그들에게 자신의 언약서를 읽게 하고, ‘너희가 이 내용들을 지킬 때에 나는 너희에게 이러이러한 약속을 이행하겠다’ 하는 조항을 준다. 예를 들어 왕만을 섬기고, 왕에게 조공을 바치며, 왕에게 충성하겠다고 하면, 왕은 약소국의 영토를 지켜주고, 그 백성들을 자기 나라처럼 보살피며, 강대국의 여러 복지 혜택들을 누리도록 해준다. 이것은 쌍방간의 언약이다. ‘너희가 나의 말을 지키면 나는 너희의 왕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지 않으신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말씀이다. 출19:5-6 에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와 같이 말씀하시고, 이어서 출20장에서 십계명을, 그리고 이어서 여러 율법들을 주신다.
그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본문인 출21장부터 23장까지는 계약법전, 혹은 언약서 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행동원칙들을 다룬다. 그래서 이 율법을 소위 ‘시민법’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 시민법은 그 내용의 중요성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법을 수여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보통 시민법은 한 나라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 그 백성들의 삶을 강력하게 통제하기 위해 제정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하나님께서 그 법을 제정해주셨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됨을 선언하신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그래서 본문의 시민법을 일컬어 신정법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막상 이 율법서들의 내용을 보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남성중심적인 시스템, 여성들의 낮은 사회적 지위,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당한만큼 갚아주라는 어떻게 보면 무자비해 보이는 동해보복법, 노예 제도를 인정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어떤 부류들은 성경의 율법서들의 내용이 오늘날과는 너무나도 맞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은 아예 무시해도 좋다고 주장한다. 혹은 이 율법들이 오로지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참고사항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 극단적인 어느 부류들은 이 율법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기에 무가치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깊이 공부하면 할수록 저들의 주장이 너무나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을 보면 물론 당시 주변국가들의 언약서와 비슷한 부분들이 나타난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도 남성중심적인 사회를 원하시고, 노예제도를 인정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만든 제도들을 어느 정도 존중하셔서 허용해 주신 것 뿐이지, 이를 두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제도들을 원하셨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율법에 담긴 의미들을 살펴볼수록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당시 사회의 문화적 배경, 사상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다룰 때에, 특별히 율법을 해석할 때에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이 율법들이 이스라엘의 역사적 정황이라는 배경에서 주어졌다는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으로 이동하고 있다.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에 정착하게 될 것이고, 땅을 기경하며 농경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배경 속에서 이스라엘에 율법을 주셨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율법을 살펴볼 때에 이런 배경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두번째로는 하나님의 율법이 이스라엘의 정황적 배경에서 주어진 것이지만, 그 율법의 의미와 정신들은 시대와 배경과 지리와 민족을 초월하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 ‘시민법’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법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본문이 말씀하시는 삶의 원리들을 동일한 삶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의도와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이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자. 본문의 말씀은 빚 때문에 팔린 히브리 종에 관한 규례를 다룬다. 본문에서 말하는 종은 재산으로서의 노예 개념은 아니다. 빚을 청산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빚에 대한 배상의 개념으로 자신이나 가족을 값을 매겨 팔 수 있었고,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생계가 어려운 자들은 종종 스스로 노예를 자처하여 생활의 안정을 찾기도 하였다. 주인은 6년간 노예를 부린 후에 그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당시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은 노예들을 사람이 아닌 재산 정도로만 취급하여 함부로 대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 노예의 보호를 말씀하신다.
먼저 2절의 말씀을 보면, 빚에 팔린 히브리 종을 일곱째 해가 되면 해방시키는 제도에 대해 말씀하신다. 왜 일곱째 해에는 값없이 나가 자유할 것을 말씀하시는가? 히브리인이 빚 때문에 노예가 되었는데 그 빚을 충분히 갚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기간이 6년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신15:12-15 를 보면 이와 같이 남종에게 자유를 주는 경우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남종에게 자유를 줄 때에 빈손으로 내보내지 말고 어느 정도의 재산을 챙겨서 내보낼 것을 말씀하신다. 왜그러한가? 노예로 살던 자가 자유를 얻는다 해도 당장 먹고 살 대책이 없다. 그렇게 되면 또 다시 다른 집의 노예로 들어갈 가능성이 다분하다. 따라서 그가 해방된 이후에 장사라도 해서 먹고 살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재산을 챙겨서 자유를 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7년이 되어 남종에게 자유를 줄 때, 세 가지 세부 사항을 말씀하신다. 첫째는 3절처럼 노예의 결혼관계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홀로 들어왔다면 홀로 나갈 수 있고, 또한 만일 아내를 데리고 들어와 함께 노예가 되었다면 똑같이 아내를 데리고 함께 나갈 권리가 있다. 둘째는 홀로 들어왔다가 주인의 배려로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룬 경우이다. 이런 경우 남종이 7년째 되어 자유를 얻게 될 때에 가족들은 두고 혼자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배우자로 허락해 준 아내는 법적으로 주인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번째로, 그가 주인을 사랑하고 또한 주인이 허락한 배우자를 사랑하여 갈라서기를 원치 않는다면 6년 간의 섬김이 끝나 자유를 앞두었다 할지라도 스스로 영구적 노예가 될 수 있었다. 그러한 노예들은 성전이나 장막의 기둥에 가서 증인들 앞에서 귀를 뚫어야 했다. 이는 항상 종이 상전의 요구를 듣기 위해 귀를 열어놓았음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앞에서는 남종에 대한 규례였다면 이어지는 7-11절까지는 여종에 대한 규례이다. 여종의 경우는 남종과는 달리 6년이 지나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일부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들은 이 구절을 곡해하여 하나님께서 여성들을 차별하시고 하대하셨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성차별적인 대우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여성에 대한 배려를 볼 수 있다. 당시 이스라엘을 포함한 주변국가들에서 여성의 입지가 매우 좁고 낮았던 것은 사실이다. 여자의 경제권이 거의 인정되지 않던 당시 사회에서 노예에서 해방된 여자는 생계수단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당장 주인의 집에서 내보내지게 되면 그가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몸을 파는 일 뿐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본문의 말씀은 여종이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하도록 배려하시기 위해 주신 것이지 여성을 차별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여종에 대한 세부규정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8절에 보면 어떤 남자가 아내로 맞기 위하여 여종을 샀다가 그 여종과의 결혼을 포기할 경우 적절한 보상을 해서 친정으로 돌려 보낼 것을 말씀하신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여종을 사올 때의 조건이었던 ‘결혼’이 성사되지 않은 것에 대한 보상적인 의미가 있다. 또한 9절에 한 남자가 여종을 며느리를 삼기 위해 샀다면 그녀를 딸처럼 대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말씀하신다. 비록 여종이 노예신분에서 출발했지만 결혼을 통해 가족 구성원이 되었으니 그녀가 누릴 수 있는 모든 법적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10절에 한 남자가 여종을 아내로 삼았다가 시간이 지나 다른 여종을 아내로 또 둘 경우 남자는 첫번째 아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죽는 날까지 다해야 한다. 만일 그 의무를 소홀히 할 경우 남자는 아무 조건 없이 그 여종이었던 아내를 자유인으로 내보내야만 한다.
여러분, 본문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아무리 빚을 상환하지 못해 노예가 되었다 할찌라도 노예라는 신분보다 인간의 존엄성이 먼저이며, 또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박탈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그러한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존귀하신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존재이고, 또한 2절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규례가 ‘동족 히브리인들’에 대한 규정으로서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동일한 주님을 섬기며, 동일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한 몸이다. 비록 잠시 어려움에 처하여 일시적으로 노예 신분이 되었지만, 그 역시도 우리와 한 형제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말씀을 정리한다. 이제 얼마 후면 이스라엘은 약속에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기 기업을 배정받고 그 땅을 경작하며 농경사회로 들어갈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번성하는 지파와 가문들도 있을 것이고, 그 중에서는 궁핍해지고 어려움을 겪는 가문들도 생길 것이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노예로 자처하여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야 할 자들도 생겨날 것이다. 이스라엘은 분명 약속의 땅에서 이와 같이 살아가지만, 주변 국가들이 하는 것들과는 구별되어야 했다. 이방국가들은 노예들을 짐승처럼 여기며, 사람이 아닌 재산물품처럼 취급하여 그들을 학대하고, 억압하며, 착취하였다. 이스라엘은 그러한 이방의 풍조를 따르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율법대로 구별되어야 했다. 비록 잠시 잠깐의 어려움으로 인해 자신을 노예로 팔았지만, 그들도 내 동포요, 내 형제요, 나와 한 식구된 자들 임을 기억하여 그들을 돌보고 보살펴야 했다.
여러분, 마찬가지로 이 땅의 교회는 세상 가운데에 있지만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풍조, 세상의 유행을 따르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오직 이 땅의 교회가 따르고 순종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뿐이다. 세상은 어떻게 하든,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든, 어떤 관습으로 살든, 그들을 따르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만 살아내어야 한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해야 한다. 오로지 그분의 말씀만이 삶과 신앙의 유일한 규범이 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본문에서 명하신 것처럼 우리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약자들을 보살필 줄 알아야 하겠다. 사회적 약자들이 그들의 궁핍함으로 자존감이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그들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다. 갈6:10 에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말씀하셨다. 우리가 약자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돌보아야 하겠는데, 특별히 믿음의 가정들,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하는 지체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한 몸을 이루는 지역교회들, 그리고 해외에서 주님을 전파하는 선교사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감사하게도 우리 강남일교회가 힘을 다해 어려움을 만난 성도들을 구제하고, 또한 각 기관에서 힘써 미자립교회와 선교사님들을 돕고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 우리가 지난 주일 오후예배에 이슬기선교사를 통해 선교사들의 현황과 특별히 선교사 자녀에 대한 문제들도 들었다. 오늘 이 새벽에 우리보다 약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함께 신앙생활하는 지체들 중에 여러 어려움을 만난 성도들, 또한 여러 어려움을 만난 주변의 이웃교회들, 그리고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하자. 주님께서 그들을 붙들어주시고, 모든 어려움과 부족함들이 해결되고 채워질 수 있기를, 비록 코로나로 인하여 다 같이 어려운 시기이지만 그럼에도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들도 공급받을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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