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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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본문: 마태복음 1:21
수요예배 본문: 마태복음 1:21
이렇게 수요예배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은 지난주에 이어서 사도신경 두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에 우리의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지난 한주간 혹은 예배 시간의 사도신경 고백은 어떠셨습니까? 조금 다름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오늘은 그 두번째 시간으로 “나는 유일하신 아들, 우리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있는게 있다면 이름입니다. 이름이 있어야 출생신고가 가능합니다. 아이를 낳으면 이 이름때문에 고민을 많이 합니다.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 해서 이름을 지어 줍니다. 성경에는 이 이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름이 하나님의 계시와 같은 위치를 지닙니다.
성경에서 절대 빠질수 없는 이름이 있습니다. 예수, 예수님입니다. 예수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헬라어식입니다.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약성경에 이 이름을 정해 주셨는데요 그 이유는 뜻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1:21절 말씀에 보시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더라” 구원을 쉽게 말하면 살려주는 겁니다.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상태에서 건져주는 것을 말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9문에 보시면 이렇게 질문합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을 예수, 곧 구주라 부릅니까? 답은 그가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고, 그분 외에는 어디에서도 구원을 찾아서도 안되며 발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30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구원과 복을 소위 성인에게서 혹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데서 찾는 사람들도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를 말로는 자랑하지만 , 행위로는 부인합니다. 예수가 완전하 구주가 아니든지, 아니면 참된 믿음으로 이 구주를 영접한 자들이 그들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그에게서 찾든지, 둘주의 하나만 사실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하이델 베르크 문답은 16세기에 기록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실정과 비슷합니다. 물론, 성경은 그 이전에 기록되엇죠, 사람은 한결 같다는 겁니다.
각설하고, 위 문답에 보시면 예수님을 정확하게 소개합니다. 유일하시며, 완전하신 구주, 구원할 자, 구원해 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한단계 뒤로 가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왜 구주가 필요 합니까? 뭔가 문제가 있어야지 구주가 필요 합니다. 죄입니다. 죄인일 때 구주가 필요 합니다. 우리는 죄인입니까? 처음 인간을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난 번에 제가 죄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죄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들어본 일이 있겠지만, 죄의 히브리어는 ‘핫타트’입니다. 원뜻은 빗나가다, 과녁을 맞히지 못했다‘입니다. 즉, 하나님의 올바른 길에서 벗어는 것을 죄라 합니다. 그럼 우리는 죄인인가? 그렇습니다. 원죄가 등장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과녁에서 벗어나 자신의 꽈녁으로 나아갔지요, 그 결과 죄과 모든 인간에게 들어오게 됩니다. 로마서 3:23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 결과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원죄입니다. 이 원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독생자 아들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절입니다. 다 암송하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앞 구절은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성부 하나님입니다. 두 번째 구절 독생자인데요, 이 독생자를 영어로 보시면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nasv 여러분 많이 가지고 있는 성경 niv 에서는 ‘the one and only’ 로 기록합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niv 표현이 더 가깝다 할 수 있습니다. 여기 독생자라는 것은 성삼위 하나님 가운데 한분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우리를 위해 성육신 하신 것입니다. 이 독생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히드’ 라고 합니다. 구약에서는 독자로 쓰이는데 아브라함의 유일한 아들 이삭을 가리킬 때 사용한 표현입니다.
여러분,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럼으로 구원자가 필요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자를 설정합니다. 최근에 나타나는 이단들이 그러합니다. 29문에 어디에도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는데, 다른 존재를 찾고 만듭니다. 왜 그럴까? 인간은 죄인이기에 그렇습니다. 눈에 보여야 믿습니다. 내가 만져봐야지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 내죠, 구약에 여러 차례 등장하지 않습니까? 대표적인 게 시내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의 믿음과 신앙의 상징인 모세가 안보이니 불안합니다.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왜 금송아지인가? 애굽 땅에서 본 신상 중의 하나를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달리 생각해 봅시다. 신이라면, 나를 구원할 존재라면 내가 만들 수 있구나, 누군가가 만들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만들 수 있고, 어디든 볼 수 있다면 그 또한 우리들처럼 공간과 시간에 갇혀 있다는 것인데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습니까?
그리스도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시편 2:2)입니다. 구약에서 머리에 기름을 붓는 예식이 있습니다. 이예식은 왕, 제사장,을 세울 때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칭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는 왕이되시며,제사장이 되시며, 또한 선지자가 되시기에 그렇습니다. 31문: 그분을 왜 그리스도 곧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 부릅니까?
답: 왜냐하면 그분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임명을 받고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큰 선지자와 선생으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감추인 경영과 뜻을
온전히 계시하시고,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으로서
그의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려
우리를 구속(救贖)하셨고,
성부 앞에서 우리를 위해 항상 간구하시며,
또한 우리의 영원한 왕으로서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위해 획득하신 구원을 누리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보존하십니다.
그럼므로 예수계서 우리의 참된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심을 인정하는 것이 그분을 그리스도,곧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고백하는 것이며, 이는 매우 풍성한 의미를 지닌 다. “선지자로서 그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시고, 선지자로서 그는 하나님에게 사람을 대표하고, 왕으로서 그는 통치권을 행사하시고 사람의 본래적인 통치권을 회복시키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