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하심을 구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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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기도 - 기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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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장 9-14절(기도2 – 올바른 기도)

S. 환영과 인사

반갑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고 의의 백성이 되어 항상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를 힘쓰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안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긍휼을 구합시다' 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성도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존재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큰형님으로, 혹은 큰오빠로 모시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는 기도라고 하는 큰 영적인 특권이 주어집니다. 여러분과 저도 기도라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늘을 움직여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새롭게 하고 변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인 우리들은 이 기도의 권세를 잘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내 삶이 그 나라를 누리는 영적인 소망을 가지고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S2. 본문의 주제

이런 놀라운 기도의 특권을 가진 우리들은 올바른 기도 생활에 힘을 다해야 합니다. 올바른 기도 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성도인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권세가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없이도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여 새 일을 행하실 때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무엇이나 하실 수 있으신데도 특별히 아무런 힘도 없고 보잘 것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기도로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절대적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조건적이고 상대적인 우리의 기도 생활과 궤를 같이 하시는 놀라운 영광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 편에서만 생각하면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측면에서 보면 기도 없이는 삶의 아무것도 제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무엇을 구하기 이전에 어떤 마음으로 구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어서 온 세상을 구할만한 어떤 큰 간구를 드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맡기시는 기도가 다릅니다. 우리 모두는 맡은 은사와 직분과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각기 다른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르심에 합당한 기도뿐만 아니라 성도의 본질을 잃지 않는 올바른 기도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긍휼을 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에 대해 묵상하고자 합니다. 성도의 올바른 기도는 긍휼함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잘 익히고 기도 생활에 승리하시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기도를 예로 들었으나 교만한 자들에 대한 경고로 주어진 말씀입니다. 누가는 이 말씀이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비유라고 밝힙니다. 우리 9절 말씀을 봅시다.
누가복음 18장 9절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멸시하는 자들이 기도하는 자세와 내용을 들어 비유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올바른 기도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우선 예수님께는 우리 하나님이 자신을 의롭고 옳다고 믿고 타인은 부정하거나 그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교만을 매우 싫어하신다고 하십니다. 구약의 지혜서인 잠언에 보면 교만하고 거만하고, 게으르고, 미련한 사람에 대해 많은 교훈을 합니다. 특별히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잠언 16장 18절 말씀을 한 번 봅시다.
잠언 16:18
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은 개인에게 욕도 가져옵니다. 잠언 11장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잠언 11장 2절
2.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겸손이 지혜이고 권면을 듣는 마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입니다.
잠언 13장 10절
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이처럼 백해무익한 교만한 마음이 종종 신앙생활을 파고 들어 옵니다. 특별히 아버지의 양자된 자들에게 주신 기도가 교만으로 인해 응답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교만한 기도,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여기며 드리는 기도가 무의미한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먼저 바리새인의 기도를 봅시다. 11, 12절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1, 12절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비유에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 데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경건한 바리새인의 기도를 의인의 기도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의 기도는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특별히 이 세리와도 다름을 감사합니다. 그는 토색, 불의, 간음하지 않고, 세리와 같이 민족에 대해 반역도 범하지 않은 의로운 자라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도 하고, 소득의 십일조 등 신앙적 의무를 다 잘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삶이 이처럼 악이 아니라 선한 일들에 힘쓰고 있기 때문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물론 우리는 이 바리새인의 기도에 나타난 삶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분명히 성도는 악을 저지르지 않고, 신앙생활에 힘을 쓰고, 민족과 국가에 해를 입혀서는 안됩니다. 남에게나 공동체에 해를 끼치지 않고 신앙의 규정들을 잘 지키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분명히 이런 바리새인과 같은 삶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것들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담 아래에서 범죄하여 타락한 죄인인 우리가 타인에 비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선하고 성실하다고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의로움의 근거로 주장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금식을 행하며 신앙의 삶은 신앙인의 당연한 삶입니다. 그것들이 결코 우리를 의롭게 하는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과 같이 우리들은 이런 행위들을 가지고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주님 나는 저 더러운 인간들과 달리 의롭기 때문에 아버지 앞에 이렇게 담대하게 서서 간구할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하여 하나님께 기도로 요청하는 것이 정당하고 하나님은 그것을 다 들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응답하지 없으면 왜 하나님이 내 기도를 안들어 주시냐고 따지고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내가 의롭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무슨 알라딘의 램프의 종이나 된 것처럼 그렇게 아버지께 요구할 수 있는 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 바리새인이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했다고 말씀하십니다. 14절을 볼까요?
누가복음 18장 14절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 바리새인, 스스로 의인으로 생각하고 당당하게 아버지께 기도하러 나온 이 사람이 결코 의롭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고 가르치십니다. 물론 상대적인 기준에서 바리새인은 세리보다는 의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아무런 의가 없는, 궁핍한 거지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S3. 문제제기

여기에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간구해야 합니까? 세상에서 내가 잘 살아서 의를 쌓고 당당하게 아버지께 가서 기도하는 것을 의롭다고 안 해 주시면 어떻게 우리가 기도할 수 있습니까? 내가 의인이 되어 하나님 앞에 간구할 자격을 갖추지 못하는데 어떻게 기도할 수 있으며, 어떤 기도를 해야 하나님이 들이신다는 말입니까?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그리고 방법

우리는 여기에서 매우 심각한 신앙적이고 영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셔야 하실 만큼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있는 종교 생활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목사가 되고, 혹은 내가 신학자가 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셔야 하는 것인가 말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자기 힘으로 의로울 수 있고,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모든 기도를 들어 주셔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들처럼 내가 제대로 살고 내 인권이 동등한데 왜 내 하나님은 다른 사람과 나를 차별을 하시는가요? 하고 하나님의 공정을 요구하는 이들이 많아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이후 처음 우리의 모습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가진 아담은 하나님과 함께 같은 생각, 같은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의 삶에는 기도와 응답이 구분되지 않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에 인간은 죄로 인해 모든 영의 기능을 상실했고, 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죽음의 길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만한 종교적인, 혹은 도덕적인 의를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 죄인이 타인을 운운하고 도덕과 윤리를 논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은 오직 눈물과 탄식 외에 아무것도 없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세리의 기도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누가복음 18장 13절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세리는 가슴을 치고 탄식하며, 긍휼을 구합니다. 그는 감히 하늘을 쳐다 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그곳을 감히 쳐다보며 눈을 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발견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는 불쌍히 여겨달라고 긍휼을 구합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보혈로 성도가 구원을 받았고,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의가 전가되어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의, 곧 의로운 자라는 법정적인 선언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인이 된 것입니다. 만약 내가 의인이라면 바리새인처럼 좀 교만해도 되는 것 아닐까요? 아니 나는 저 도둑놈들하고 다르고 거짓말 일삼는 사람들하고 다르고 교회도 다니고 헌금도 하는 데 나는 저런 인간들하고 다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게 기도 내용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에 우리의 오류가 있고, 기도의 실패가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세상보다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당연히 들어주셔야 하고, 그것은 아버지의 뜻과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합니다. 그래서 응답이 없으면 기도 잘못한 것에 대해 회개하지도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비난하고 기도에 대한 불신을 쌓아갑니다. 사도는 교회를 향해 성도들이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에베소서 2장 8, 9절 말씀을 봅시다.
에베소서 2장 8, 9절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은 것 때문에 주어진 은혜이지 우리의 공로로 된 것이 아니기에, 우리에게는 아무런 자랑거리가 없습니다. 내 옆에 사람보다 내가 좀 나아도 그것이 의가 된지 않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 속이고, 거짓말도 쉽게 하고, 또 큰 불행을 당하는 것 같아도 나도 그와 다름 없는 그래서 결코 자랑할 것 없는 죄인입니다.

J3.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을 때 사람의 몸으로 온갖 고통을 당하신 것은 나의 죄의 값을 대신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를 위해 뿌려졌는데, 우리가 무엇으로 그 값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값을 지불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생명을 내놓으신 것인데, 우리가 무슨 다른 의를 찾아서 그것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주장하는 의인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만들지 못합니다. 오히려 죄인으로 가슴을 치고 긍휼함을 구하는 죄인의 기도만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W1.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의인의 기도는 올바른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 우리는 나의 의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내가 선을 행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님의 은혜로 이룬 것이고, 내게 혹 다른 사람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 분야에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부어주신 기름부으심의 은사와 재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 내가 자랑하고 그래서 남을 무시할 아무런 공로가 없습니다. 그래서 의인의 기도는 실패한 기도입니다.

W2. 올바른 기도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죄인의 기도밖에 없습니다.

죄인인 우리는 긍휼이 많으신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양자 삼아 주심으로 기도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른 것입니다. 아버지의 긍휼의 마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도 받았고 기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성도의 기도도 아버지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 외에는 다른 기도가 없는 것입니다.

W3. 하나님은 스스로 죄인 됨을 시인하고 인정하는 죄인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총리로 온 나라를 호령하는 왕 아래 최고의 지존들이었으나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자신을 죄인이라 고백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다니엘 9장 4-6절 말씀을 봅시다.
다니엘 9장 4-6절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죄인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나의 죄인 됨을 인식하고 아버지의 긍휼하심만을 소망하는 기도에 하나님은 놀라운 변화의 역사로 응답하십니다.

T1.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두고, 바리새인이 아니라 오히려 세리의 기도가 의롭다함을 얻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이시고 높이는 자는 낮추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T2,3 개혁자 존 칼빈 선생도

그의 강요에서 올바른 기도의 네 가지 특징을 열거하면서 죄에 대한 고백과 용서에 대한 간구가 기도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강조합니다. 올바른 기도는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구하는데 힘쓰는 기도를 강조하면서 그는 동시에 자신의 죄인 됨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기도가 참된 기도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의로움을 열거하고, 타인과 비교하여 다른 이들을 멸시하는 기도를 드리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인 됨을 깨닫지 못하고 내 죄를 고백하지 못하는 영적인 교만의 기도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바리새인과 같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의인의 기도를 드리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죄인의 기도를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주님이 죽으셔야 했던 그 참혹하고 부패한 나의 상태를 항상 기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참된 회복과 자유를 감사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세리와 같이 자신의 가슴을 치고 비참한 자신의 형편을 회개하고 아버지의 긍휼만을 구하는 죄인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여야 하는 것입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올바른 기도를 드리기를 결단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많은 기도가 오히려 하나님 앞에 정죄받고 끝나는 기도가 되는지 모릅니다. 나의 교만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내 교만을 부추기고 스스로 의롭다고 내게 속삭이는 사탄과 그 아래의 귀신들에게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내 주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구원을 얻은 것이지 1%라도 내 공로로 새 삶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받았으나 여전히 나의 본성에는 여전히 죄인의 죄성이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구원 받고 남보다 좀 도덕적이긴 하지만 결코 죄없이 사는 의로움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나는 죄인이지만 은혜로, 긍휼로 오실 그 하나님을 믿고 알기에 그의 아들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분께 나아가 죄인됨을 고백하고 긍휼을 구하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세리의 기도를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여 풍성히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찬송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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