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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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웃음, 이삭 절망을 기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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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의 첫 문장은 오늘 18장 전체의 요약입니다.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 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으로 인해 아브라함은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에 정착한 이후 다시 다른 곳으로 자신의 거주지를 옮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생각할 수있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거할 수 있는 장소였고, 그중에서도 마므레의 상수리 나무 주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 나무들이 있는 곳, 아브라함이 살던 곳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시간은 아주 뜨거운 낮의 시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남부지방의 정오의 시간은 섭씨 66도 정도까지 올라가는 엄청나게 더운 시간입니다. 보통 그때의 시간에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고 집이나 그늘로 들어가서 쉽니다. 뜨거운 여름에 일하가다는 더위 먹는게 문제가 아니라 일사병으로 죽을 수 도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너무더운 시간이라 장막의 입구 그늘에서 쉬고 있을 때, 아브라함의 눈에 한 무리가 보입니다. 뿌연 흙먼지와 함께 세 사람은 아브라함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2절입니다.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2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자신의 장막 쪽으로 세 사람이 서있었습니다. 아주 뜨거운 여름에 길을 걸어가고 있는 여행자를 보니 얼마나 딱했을까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몸을 일으켜 그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땅에 엎드려서 말하고 있습니다. 3절입니다. 내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이 말을 가지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아보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주여 라는 뜻은 부인이 남편을 높여서 부를 때나, 자신보다 높은 사람들을 부를 때도 내 주여 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하나님을 아브라함이 즉각적으로 알아보았다고 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또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이라는 뜻은 당신의 눈에 보기 좋다면 직역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우리 말로 의미를 살려서 읽으면 저를 수상하게 보지 않고 괜찮으시다면 이런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잠시 들러서 이 더위를 좀 피하고 가라고 한 것이죠,
4절~5절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장막을 지나려는 사람들에게 한 말입니다. 물로 발을 씻고 나무 아래에서 더위를 좀 피하십시오. 그리고 제가 떡을 좀 가져 올테니 좀 드십시오.
그렇게 이야기 하고는 후다닥 장막으로 들어가서 사라에게 고운 가루 세 스아로 떡을 만들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에 곱게 빻은 밀가루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분기계가 없어서 모든 것을 손으로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밀 같은 곡식을 가루 내는 일은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운 가루는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때나 쓰일 정도로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고운 가루를 세 스아를 반죽하라고 합니다. 세 스아 라는 양은 못해도 한 150명이 먹을 만한 분량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분량이죠. 아브라함이 장막 밖에서 사람들에게 한 말은 떡 조금 가져 오겠다는 말이었는데 장막에 들어가서는 엄청나게 많은 떡을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주 좋은 송아지를 잡아서 하인에게 주면서 요리를 하라고 합니다. 송아지 요리는 굉장히 귀한 손님이 오실 때나 하는 요리입니다. 좀처럼 잘 먹는 그런 요리는 아닙니다. 게다가 우유랑 엉긴 젖 아마 요거트 같은 그런 음식인 것 같습니다. 여러 종류의 음식을 내어 놓고 나그네를 대접했습니다. 조금 정리하면 아브라함은 이 세 사람 중에 하나님께서 계신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불러 세워서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음식을 먹을 때 아브라함은 그들 옆에 서있었습니다. 여러분 옆에 서있었다는 말은 아브라함이 그들의 음식 시중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들의 종과 같이 되어서 그들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런 대접은 고대 근동의 관습이기도 하지만 아브라함의 대접은 과한 대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아브라함은 이렇게 과한 대접을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삶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 어떤 율법학자가 와서 물었습니다.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아브라함의 삶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평화, 샬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의 중요한 척도는 이웃과의 평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평화입니다. 이 평화의 방식은 성도가 다른 형제들, 이웃들의 종이 되어서 섬기는 것입니다.
이윽고 식사가 끝났습니다. 9절입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네 아내 사라가 어디있느냐?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말합니다. 장막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년 이맘 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네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여러분 내년 이맘때 라는 말은 원문으로 보면 생명의 시간에 라는 뜻입니다. 조금 의역해보면 생명이 일어나는 시간 만물이 소생하는 시간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그 때에 여호와가 네게로 돌아올 것인데 너의 생명도 소생할 것이다. 그런 의미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11-12절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가 많아서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습니다. 비웃음이죠. 사라는 속으로 말합니다. 내가 늙었고 나의 남편도 늙었는데 내게 무슨 아들이 생길 것인가?
사라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이야기가 들립니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아이를 낳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라는 그것을 비웃었죠. 그랬더니 아브라함에게 그 사람이 말합니다. 왜 사라가 웃느냐?
14절 내가 여호와인데 내가 하지 못할 일이 있겠느냐? 생명이 소생하는 그때 내가 네게 돌아올 것인데 아들이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언약을 받을 때 사실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쨌건 언약을 하면서 할례를 거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 속에서 조금씩 변화가 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결코 그렇게 여유롭고 옆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아내를 팔고 그것을 본 조카는 아브라함을 떠나가고 자신의 아들일 임신한 하갈을 내쫓을 때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삶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샬롬이 있는 것이에요. 오늘 18장에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들을 약속하신 것 처럼 사라에게도 직접 나타나셔서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15절을 두고 사라가 웃은 것 때문에 두려워서 웃지 않았다고 거짓말 했고 하나님께서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라고 말하면서 책망하셨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읽히지 않습니다. 17장의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비웃음, 그리고 사라의 하나님을 향한 비웃음은 이삭 이츠하크 웃음이라는 아들의 이름을 보면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네가 웃었다고 말씀하셨을 때 어떤 의미로 말씀하셨을까요? 너 지금 웃었지? 가만 안둔다 이런 의미일까요? 아니면 네가 지금 웃었구나 하지만 두고 보아라 너의 비웃음을 웃음으로 만들어 줄테니까! 이런 의미 일까요? 저는 이삭의 이름 이삭의 이름이 웃음이기 때문에 후자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중에 이삭을 낳고 나서 매일 이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 마다 아마 이 사건이 생각 날 것이에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비웃었던 것 말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비웃음을 언약을 통해 진정한 웃음으로 바꾸셨다는 것을 매일 기억하면서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렸을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아브라함의 18장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성품이 언약을 통해서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의 주위에는 어떤 평화도 없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평화가 그 주위에 조금씩 조금씩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언약백성의 부족함 믿음 없는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감싸주셨습니다. 사라에게 여전히 있던 불신을 해소하시려고 직접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오셨습니다. 언약 백성들의 삶은 하나님의 너그러움과 평화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너그러우심과 그분을 통한 하나님과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을 둘러싼 사람 사이의 평화가 넘치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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