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5 예배 (요일3:16-18) '죽기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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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1서 3:16–18 NKRV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서론

ㅇ 본문과 관련있는 예화 혹은 성경이야기

ㅁ 인생은 흘러가는 것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klit von Ephesos)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깊은 통찰력을 짤막한 문장 속에 담았습니다. “모든 것은 강물처럼 흘러가며, 이 세상에서 영속하는 것이나 확정적인 것 또는 확실한 것은 없다.” 또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인생을 잡으려 하면, 손가락 틈새로 물이 빠져나가듯 어느새 흘러가 버리고 만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ㅁ 인생의 방향
죽음을 향한 흘러가는 인생에는 정지 상태란 없습니다. 인생은 사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죽는 것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일찍 죽지 않기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오랫동안 장수하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ㅁ 죽음의 의미
그러나 막상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면 누구나 두려워집니다. 세상에서 살면서 먹고 싶은 음식, 살고 싶은 집과 입고 싶은 옷을 마음껏 누렸던 때와 이제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해야 함을 받아들이는 일 때문일 것입니다.
ㅁ 죽음보다 강한 사랑
그래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려고 애를 씁니다. 가정에서 부모로부터이든,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이든, 사랑이 주는 안정감을 맛 본적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찾아 해매이게 됩니다. 죽음으로 흘려가는 인생속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강력한 공동체성으로 고독함에서 벗어나 안정을 취하기 위함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가정과 교회 생활이 이러한 목적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외로움을 달랠 목적으로 모든 일에 열심을 냅니다. 우리의 고독함을 채우기 위해서 더더욱 모이고 단결합니다. 겉으로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라는 일명 히브리서 10장25절 말씀을 잘 실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나의 외로움을 달랠 생각보다 큰 희생이 요구되는 십자가의 길을 제시하면 쉽게 섭섭해집니다. 교회에서 나의 고독함을 채워주는 설교나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다른 교회를 찾아보기 시작합니다.
만약 우리의 삶이 이러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생명을 낳는 열매를 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썩을 것을 추구하는 뿌리에는 생명이 맺히기 어려운 것입니다.
요한일서가 기록될 당시 에베소 지역은 소아시아에 팽배해 있던 영지주의자들의 준동이 극심하였습니다. 물질은 부정하고 악하며 영은 거룩하다는 이원론적 사고로 인해 이들은 인간의 육신을 부정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였고(요일2:22; 4:3), 또 육신은 부정하기 때문에 육신으로 하는 어떤 행위도 구원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자연히 도덕폐기론으로 흘렀고, 그리하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오히려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사들이 영지주의자들 가운데는 더 많았습니다. 이런 폐해로 인해 교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사도 요한은 잘못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로 인해 교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지자 이에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참 인간이며 참 신이심을 분명하게 가르침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이단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바로 오늘의 본문 말씀의 주제를 혼란에 빠진 교회에 그 해결책으로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 사랑은 우리의 욕망과 고독함을 해결해기 위한 사랑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먼저 요한은 우리가 받은 사랑의 성질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우리가 받은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요한1서 3:16 NKRV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교회로서 진정으로 사랑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면, 예수님과 같은 사랑의 레벨로 형제를 사랑하는데에 삶의 목적을 두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의 동기와 목적이 썩어버릴 외로움과 고독함을 달랠 목적이 아닌, 형제를 죽기까지 사랑하는데 두어지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형제를 죽기까지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요한1서 3:18 NKRV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첫째로, 행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1서 3:17 NKRV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요한은 재물을 가진자가 형제의 궁핍함에 대하여 마음을 닫고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우리 안에 거하겠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유 중에 일부를 지체에게 떼어준다는 사실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인식속에 우리의 소유가 우리의 노력의 결과라는 흔적이 생겨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사실이 아닙니다.
시편 100:3 NKRV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편100:3 말씀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우리의 소유는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분명히 깨달아여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소유가 우리의 것이 아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서 내게 붙여주신 지체가 어려움에 빠졌다면 그 자체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고 그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그를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진실함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유 중 일부를 나누면서도 꼭 온갖 생색을 다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갖 영광을 다 받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앞에서 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44 NKRV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요한복음 5:41 NKRV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우리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말씀에 순종하신 예수님의 진실함으로 사랑을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잘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씀하시고 삶으로 실천하신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기도하며 진실함으로 사랑을 행하고자 한다면, 그의 보내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진실한 사랑의 역사를 행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음을 향해 멈춤 없이 흘러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 인생속에서, 죽음을 위로하기 위한 동기와 목적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폐기하여야 합니다.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죽기까지 사랑한다’ 내게 말씀하셨던 그 사랑을 세상 가운데로 온전히 흘려보내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론

ㅇ 주제와 관련 있는 문제제기 (원인과 결과)

ㅇ 해결방법

ㅁ 죽기까지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
1) 진실한 마음
2) 행동으로 표현

ㅇ 나타난 결과

결론

ㅇ 핵심내용 정리

ㅇ 결단할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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