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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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하며 날마다 믿음의 행동으로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일을 이루어 가도록 도전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하며 날마다 믿음의 행동으로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일을 이루어 가도록 도전한다.
[설교도입-인사와 들어가는 말]
할렐루야! 벌써 2021년 3월의 첫째 수요일입니다. 이제 백신도 접종을 시작했고, 이전보다는 더 나은 상황들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마음껏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소리높여 찬송하고 기도하며, 성도간에 넘치는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그날까지 쉬지 않고 기도해야겠습니다.
[들어가는 말]
1960년대 로렌츠라고 하는 기상학자가 자신이 연구한 가설을 기상학회에서 발표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열심히 연구한 어떤 통계적 가설을 사람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임팩트 있게 설명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의 조언을 듣고 학회에 참석한 다른 학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하나 던지게 되는데, 이 질문이 굉장히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됩니다.
그 질문은 바로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미국 텍사스주에서 토네이도가 일어날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조그만 나비가 날개짓을 한다고 해서 그 옆에 있는 사람도 시원하지도 않고, 날개짓을 했는지 미동도 느끼지 못하는데, 그 날개짓 때문에 거대한 토네이도(회오리바람)가 일어나다니요? 그런데 로렌츠는 이 질문은 던져놓고, 자신이 연구한 통계적인 자료와 분석을 바탕으로 그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결론을 제시합니다. 아주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바꾸어 놓은 공기의 흐름이 수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다른 곳에서는 거대한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각인된 단어가 바로 “나비효과”라는 단어이고요. 지금은 이 단어를 단순히 통계적 이론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현상을 나타내는 보편적인 단어로 사용되고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을 만큼 유명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전환문장] 오늘 본문에는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이루어내는 나비효과를 보여줍니다. 본문 안에 있는 나비효과는 무엇인지 한 번 살펴볼까요?
[본문으로 전환 – 누가복음 13장]
누가복음 13장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공간적 배경이 있습니다.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현장이 여러 곳이 있었습니다. 갈릴에서도 말씀을 가르치시고, 이스라엘의 북쪽 다른 여러 지역들에서도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예수님의 사역의 마지막 종착지인 예루살렘에서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십자가와 빈 무덤이라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완성을 앞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실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많은 비유를 통해 전해집니다. 비유의 내용은 다양하지만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자 하시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사역의 초기부터 예수님은 줄곧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셨고,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이며, 어떤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지,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설명하셨습니다. 말로 설명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가 하나님 나라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귀신이 쫓겨나고, 질병으로부터 자유하며, 어두움으로 해방되고, 죽음도 이길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 어쩌면 저와 여러분이 이 시간 이 곳에서 예배하는 이유도 그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전환문장]
많은 하나님 나라의 비유 중에서 오늘 본문의 비유가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모습인가요?
[겨자씨 한 알과 누룩]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3장에 하나님의 나라를 두 가지로 설명하십니다. 무엇과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겨자씨 한 알과 누룩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3:18)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13:20)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겨자씨 한 알과 누룩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고 가르치기 원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씨앗 중에서 겨자씨가 가장 작은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은 난초의 일종인 '에비비틱란과 우란의 씨' 입니다. 서양란의 일종인 에비비틱란과 우란의 씨앗은 어찌나 작은지 약 110만개를 모아야 겨우 1g의 무게가 나간다고 하니 얼마나 작은지 아시겠지요. 하지만 성서시대 당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한 가장 작은 씨는 바로 겨자씨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가장 작은 씨앗 하나, 그래서 바람에 불어 땅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찾기조차 어려울정도로 보잘 것 없는 씨앗 한 알이 땅에 심겨지면 어떻게 되나요? 작은 씨앗에서 싹이나고, 땅 속으로 뿌리를 내리고 점점 자라서는 결국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여 쉴 수 있을 정도로 큰 나무가 됩니다. 실제로 중동지역의 겨자나무는 크게는 2.4m 정도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울창한 나무는 아니지만 그 작은 씨앗으로 볼 때는 큰 나무가 된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다고 말씀하시나요? 그래요.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혹시 빵을 만들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가 마트에 가면 이스트라고 작은 가루를 파는데 이것이 바로 일종의 누룩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서도 어떤 여자가 그 누룩 한 줌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서 말은 밀가루 반죽 40kg 정도로 약 100명이 먹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그런데 가루로 된 누룩 한 줌이 모든 반죽을 부풀게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환문장]
그렇다면 겨자씨와 누룩의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요?
[가장 작은 여인]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바로 앞에 등장합니다. 바로 누가복음 13장 10~17절까지인데요. 우리 성경에는 안식일에 꼬부라진 여자를 고치시다라는 소제목이 달려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18년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등이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고 괴롭게 살아가는 한 여인을 고치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고치실 때 종교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회당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3:14)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매인 바 되었던 이 아브라함의 딸을 그 매임에서 푸는 것은 합당하다고 말씀하시며 그 여인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인 17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볼까요?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13:17)
성경은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고쳐주신 일을 뭐라고 표현합니까? 바로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18년 동안 이 여인은 그 누구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죄를 많이 지어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치부하며 그 여인이 지나갈 때마다 뒤에서 수군수군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녀는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존재, 가장 존재감이 없는 작은 존재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로 그녀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영광스러운 삶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전환문장]
이 여인의 이야기가 왜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분명하게 설명해주는 이야기가 될까요?
[가장 작은 것들의 반란]
이 여인의 이야기를 마치고 성경은 겨자씨 한 알과 누룩의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연결합니다. 바로 우리 성경에 “그러므로”라고 번역된 οὖν[운:]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앞 뒤 문장을 논리적으로 연결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성경은 여인의 이야기과 예수님의 비유는 서로 다른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주제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말씀하고자 했던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 그래서 아무도 그것을 주목하지 않고 별 볼일 없는 것들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적인 권세와 능력을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이라면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의 마굿간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의 왕으로 오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장 낮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너무나 미약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나중은 심히 창대할 것입니다. 많이 들어본 말씀이죠? 우리가 사업장에 걸어 놓기 가장 좋아하는 말씀인 욥기 말씀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 3:3)
바로 겨자씨 한 알과 누룩도 보잘 것 없이 아주 것입니다만 그것이 땅에 심겨졌을 때는 새들이 쉴 수 있는 나무가 되고, 누룩이 반죽에 녹아지면 반죽을 변화시켜 많은 사람에게 양식이 되는 빵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 여인이 “하나님 나라”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그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힘입게 되자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도구로 쓰임 받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작은 자]
지난 설 명절에 집합금지 때문에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아이들과 영화 한편을 봤습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라는 영화입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는 당시에 대기업에 다니는 고졸 여직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가 반영되어 고졸 여직원들은 철저히 약자로 그려집니다. 모두 유니폼을 입고 근무를 하고, 진급도 되지 않는, 그러다 결혼하면 회사에서 정리해고 되는 그런 존재로 그려집니다. 영화의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지만 영화 종반에 주인공인 고아성 씨가 이런 영어대사를 합니다.
I am a tiny tiny person. But how about this. we are great.
해석해보자면 “그래요 나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작디 작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건 어때요? 우리는 위대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반전이 시작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까요? 우리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별 볼 것 없는 작디 작은 존재 아닌가요?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겨자씨 한 알 같은, 누룩 한 줌 같은 그런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작습니다. 우리는 내세울 만한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줄 믿습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죽음도 이길 수 없는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 때문에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하나님 나라의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 자부심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세상 앞에서 당당함을 잃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요?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으로 우리는 위대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환문장]
그렇다면 우리는 작은 존재 그대로 살기만 하면 되는 걸까요?
[죽음으로 살리는 삶]
본문에 있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가장 작은 것을 통해 시작된다는 것 말고 또 한 가지를 찾을 수 있는데요. 그게 뭘까요? 그것은 바로 죽음으로 살리는 삶입니다.
겨자씨는 자라서 새들에게 안식을 제공합니다. 새들이 편히 깃들여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됩니다. 누룩은 또 어떻습니까? 누룩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힘을 주는 양식이 됩니다. 모두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짓밟고,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눠주고, 세워주고,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사는 것은 바로 이런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 씨앗은 심겨져야 합니다. 씨앗이 한 알 그대로 있으면 살리는 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4)
누룩도 마찬가지입니다. 누룩이 녹아 가루와 반응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도 일으킬 수 없습니다. 녹아야 합니다.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생명이 세상 가운데 비로소 꽃을 피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작고 작은 우리의 삶이지만, 세상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품고 죽어질 때, 그 희생과 헌신, 섬김과 낮아짐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화 – 이재철 목사님의 회심 ]
백주년 기념교회를 섬기며 사역하시다 지금은 은퇴하신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중에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제가 내용을 간추려 말씀드리겠습니다.
1984년 36살의 이재철 목사님은 당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새벽 2시쯤 집에 귀하합니다. 보통은 온 식구들을 다 깨우고 들어가 기어코 밥을 먹고 잠을 자는데 그 날따라 열쇠로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엎드린 채 잠이 든 것을 발견합니다. 머리맡에는 성경책이 놓여 있었고, 엎드린 아내의 얼굴 밑에 하얀 노트 한 권이 깔려 있어서 조심스럽게 그 노트를 꺼냈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그냥 그대로 읽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버스를 타고 수유리 너머로 갔다. 시골길을 하염없이 걸으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죽음을 생각했다. 약을 먹고 죽을까 아니면 손목을 그어서 죽을까. 그러나 그것은 내가 취할 길이 아님을 나는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고 되돌아왔다.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께서 주님의 뜻을 위해 내게 주신 남편이므로 나는 사랑해야만 한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 사랑하라 명령하시므로 나는 사랑해야만 한다. 주님! 도와 주세요. 나의 약함을 주님께서 잘 아시잖아요.”
노트는 여기저기 눈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 이재철 목사님은 아내가 불쌍해서, 어머님이 불쌍해서, 그리고 자신이 불쌍해서 몸서리치며 울다 주님의 이름을 불렀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심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고 이재철 목사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로 사역하게 됩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글을 읽으며 저는 이재철 목사님의 사모님의 눈물의 기도가 마치 나비의 날개짓처럼 보였습니다. 남편을 위해 희생하고 기도하지만 여전히 한결같은 남편의 태도를 보며, 죽고 싶은 생각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믿음의 날개짓을 하는 사모님의 헌신과 죽음이 오랜 시간이 지나 하나님 나라의 생명으로 변화되는 역사를 가져올 수 있었음을 봅니다.
[적용과 나가는 말]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나비효과”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나비의 날개짓은 시간이 지나 강력한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에 드러난 하나님 나라가 바로 그렇습니다. 오랜 시간 사탄의 권세에 사로잡혀 살던 보잘 것 없는 한 여인이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며,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겨자씨 한 알이 나무가 되어 새들에게 쉼을 주는 것이고, 작은 가루에 불과한 누룩이 100명의 사람들을 먹이는 빵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매일 살아가는 삶 속에서 우리의 믿음의 행동은 나비의 날개짓과 같을 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내가 속한 가정에서, 회사에서, 모임에서 하는 믿음의 말과 행동이 나비의 날개짓처럼 아무 능력도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는 것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직장에서도 나만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내가 하는 믿음의 말과 행동이 회사를 변화시키기는커녕, 회사에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믿음의 날개짓이 아주 작고 작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읨 날개짓은 결국 큰 나무가 되고,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생명이 되고, 나의 삶을 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증인이 되는 위대한 날개짓이 될 것입니다. 내가 만나고, 내 안에 심겨진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생명의 말씀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나 나의 삶의 현장 가운데서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그러나 위대한 날개짓을 계속하면서 죽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믿음이 나비효과가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계속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