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창에서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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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 : 우리는 지난주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빛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이 빛은 태양의 빛이 아니었어요. 빛이 창조되고, 3일째 되던 날, 빛을 담을 해와 달과 별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빛은 하나님을 아는 영광의 빛이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빛이 비춰지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우리에게 있는 흑암과 혼돈과 공허가 비춰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에게 있는 어둠이 비춰지고, 사라지기를 두려워 했습니다. 왜냐하면 빛보다 어두움, 흑암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죄이며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빛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는 빛 가운데로 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빛으로 나가는 것마다 심판과 책망으로 드러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빛으로 변화되며, 책망을 받지 않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들 모두가 빛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의 어둠과 혼돈과 공허가 물러가고 빛으로 드러나는/ 빛 가운데로 나아가는 빛의 자녀가 되자고 말씀을 나눴습니다.
적용 : 여러분 한 주간 빛의 자녀로 살아갔나요? 우리들의 참된 모습이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하는 모습이 참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 없음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책망을 받아 마땅해요. 그래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비추시는 빛 가운데로 더욱 나가 하나님을 앎이 더욱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럴수록 우리의 삶과 마음은 빛으로 더욱 가득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더욱 채워나가도록 해요.
본론 : 오늘은 둘째 날 창조하신 궁창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천지창조의 말씀을 보면 물이 궁창이 창조가 되기 전, 이미 물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셨다고 나와 있죠? 물로 가득한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질서와 틀을 만드시는데, 궁창(창공)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누셨다고 합니다. 이 위와 아래의 궁창에 하나님께서는 넷째 날,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와 바다의 물고기로 채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1)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궁창이 창조된 둘째 날에는 좋았더라가 없습니다.
8절까지 둘째날 – 9절 부터는 땅과 뭍이 드러나는 셋째 날에 속하는 날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 첫 번째 해석은 타락한 천사가 거하는 곳이어서 궁창의 창조를 좋았더라라고 하지 않으셨다고 해석합니다.
엡 2:2의 말씀을 찾아서 읽어볼게요.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마귀가 거하는 곳이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곳이어서 궁창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건은 아주 미세하게 이사야서 14장에 나옵니다. 바벨론 왕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인데요. 이는 바벨론 왕 이면의 사단을 빗댄 것입니다.
사 14:12-15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결론 : 그래서 공중에서 사람들을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는 마음으로 미혹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하여 궁창에 대한 창조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편적으로 볼 때 이러한 해석이 옳은 듯 하지만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면 이러한 해석이 맞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반문 : 바로 궁창과 공중에 대한 단어가 다르게 사용되었습니다. 공중은 헬라어로 아헤르, 에어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그냥 비어있는 공중, 허공입니다. 사단의 통치가 대단해 보이지만 그의 통치는 하나님의 통치에 비하면 허공에 발길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고전 9:26절은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이 ‘아헤르’라는 단어를 향방 없는 허공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그에 비해서 궁창은 ‘라키아’라는 단어로 단단하고, 튼튼한 곳으로 표현합니다. 욥은 궁창을 욥 37:13 그대는 그를 도와 구름장들을 두들겨 넓게 만들어 녹여 부어 만든 거울 같이 단단하게 할 수 있겠느냐라고 표현하며 넓게 녹여 부어 거울과 같이 단단하게 만든 곳이라고 표현했고, 요한은 요한계시록에 계 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단단하고, 튼튼한 수정과 같은 궁창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궁창은 부정적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계시고, 온전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보좌로 볼 수가 있습니다. 행 7: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2) 궁창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통치를 나타내며, 보이지 않은 아버지의 손길을 나타낸다.
이처럼 궁창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마귀의 다스림과 같이 허공의 다스림이 아닌, 온전하고철처럼 강한 통치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궁창에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발견하고 찬양해야하는 것입니다. 시 150:1은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시는 일을 날마다 묵상하고 발견해 찬양하는 일이 우리의 몫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통치하시며, 천지만물을 통해 보이지 않게도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었습니다. 궁창 아래의 물로 우리에게 물과 생명을 주시듯이 궁창 위의 물로 우리에게 따듯한 온도와 해로운 태양의 광선을 맞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더욱 좋은 온실효과를 주어 많은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살도록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 또한 묵상하고 발견하여 감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일을 그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지 않고, 떠나 산다면 유익은 회초리가 됩니다.(심판의 도구가 됨)
하늘에 있는 궁창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유익과 생명을 보이지 않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는 감사하고 생명으로 누리고, 채워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기를 싫어하고,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채워나가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흘러오는 것이 흘러가야지 막혀버리면 언제가는 무너지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악해지고, 찬양과 감사가 멈춰 궁창의 단단함은 사라지고 점점 약해져만 갔습니다. 하늘의 창이 열리고 터져 내렸다고 창 7:11-12 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노아의 시대에 사람들은 아낌없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내려짐에도 하나님을 찾알지도 못하고, 찾지 않아 그것을 감사하지 않고,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조그만 결핍에도 부족함을 느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사람들을 약탈하여 자신을 배부르게 하기 바쁘던 사람으로 세상이 변해갔습니다. 죄악이 더욱 관영함으로 단단하였던 하늘의 궁창이 약해졌고, 쌓였던 둑이 무너져 쏟아져 내리듯이 그들을 보호하고 아껴주었던 하늘의 궁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랑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던 궁창이 자신의 자녀를 징계하고 심판하는 회초리와 도구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자녀를 때리는 회초리를 기뻐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들은 창조된 세상에서 우리에게 베푸시며 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찬양하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교하여 찾기보다는, 그리고 내 안에서 결핍된 것으로 우울해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라는 존재를, 그리고 나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봐야 할 것입니다.
결론 : 현실의 눈으로 봤을 때 좋아 보이는 것이 전혀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보이지 않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찬양하는 그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궁창에서 선하게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는 우리가 됩시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궁창에 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거하는 믿음을 달라고 그 믿음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과 아들을 아낌없이 주셨는데, 이 믿음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믿음의 눈, 영적인 눈을 주셔야만 하나님을 온전히 발견하고 찬양할 수 있다. 영적인 눈을 들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갑시다.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며 방관하는 친구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습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모습이다. 우리를 아름답게 지으셨고,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사랑이 너무나도 큰데 이것을 우리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지가 참으로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들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내가 없는 것만을 발견하게 하는데 우리는 세상의 시각이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들의 모습이고,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르는 사람의 모습이다. 이 세상의 풍조/유행이 없는 나의 모습에 절망하는 모습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모습의 우리도 사랑하신다. 여전히 기다리시고, 아들을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창조되어진 자신을 발견하는 우리 중고등부 선생님과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