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근심 빛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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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근심 빛이 없더라
다시 근심 빛이 없더라
선지서인 사무엘의 시작
선지서인 사무엘의 시작
에베소 말씀을 끝내고 이제 사무엘을 읽는다. 사무엘상하는 열왕기상하와 함께 선지자적인 관점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는 책이다. 히브리성경을 타나크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Torah, Neviim, Ketuvim의 앞글자들을 따서 하는 말이다. 우리가 말하는 선지서는 후기 선지서이고,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는 선지서에 포함되어 있다.
예언자의 역할이란 현실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해석해주고, 그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말씀에 나오는 인물들과 사건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고, 판단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읽은 말씀에서 엘가나라는 남자에게 한나와 브닌나라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순서로 보니 한나가 첫째 부인인 것 같다. 그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둘째 부인인 브닌나에게는 자녀가 있었다. 그리고 남편 엘가나는 아내 한나를 사랑했다. 남편이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한나에게는 자녀가 없었는데, 그 이유가 5절-6절에 나온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아이를 갖지 못한 한나를 브닌나가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였다고 설명한다. 한나가 아이를 갖지 못해서 브닌나로부터 무시를 당했고,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수치스럽게 했다. 속이 상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의 현실인데, 그 현실 아래에는 하나님께서 아기를 ㅈ가지지 못하게 하셨다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없다. 왜 한나의 태를 막으셨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설명에서 다음과 같은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당신의 뜻에 따라 이끄신다. 당신에 뜻에 따라 인생을 이끄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주권적인 하나님의 섭리이다. 이것은 당연히, 마땅히 그렇게 인정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어떻게 경험하는가? 우리가 뜻하지도 않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죄를 범한 것도 아니고, 실수를 한 것도 아닌데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는데, 혹은 내 뜻과 계획, 내가 의도한 바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로 경험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에는 우리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늘 사무엘서는 왜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이런 결정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선지서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일들을 겪어갈 때, 그렇게 겪은 일이 “좋은 일"이면 우리는 하나님의 결정하심에 대해서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는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들로 경험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결정하심에 대해서 오히려 감사하며 기뻐한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냐 하는지에 대해서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할 때도 힘들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한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길 이유가 없는데, 이렇게 칭찬받을 만한 어떤 일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경험할 때면 왜 이런 일이 생기도록 하셨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묻지 않는다.
그러나 답답하고 하나님이 섭섭할 때가 언제인가? 한나가 아기를 가지지 못하는 것과 같이 간절히 소망함에도 불구하고 응답이 없으실 때, 혹은 원하지 않는 일이 홍수처럼, 쯔나미와 같이 일어날 때이다. 그리고 그 때 기도하고, 여쭈어봐도 대답이 없으시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고 묻고 가르쳐달라고 해도 대답해주시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상황이 견디기 어렵다. 힘들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혹은 원수의 공격인지조차도 분별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사무엘서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기대와 바람과 다를 때가 있고, 우리의 목마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으실 때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한나의 목마름과 고통, 그의 간절한 기다림의 순간에 그가 겪어야 하는 일의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 상황이 징책적이 아니다.
이 상황이 징책적이 아니다.
이 상황이 징책적이 아니라는 사실은 엘가나의 사람됨과 신앙생활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는 매년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는 사람이며, 온 가족이 하나님께 제사하러 가도록 잘 이끄는 가장이었다. 제사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