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하지 말라(6번째 말씀, 제6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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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20:13 살인하지 말라
서론
데칼로그의 6번째 말씀, 십계명의 제6계명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그냥 언뜻 보기에 이 말씀은 우리 삶에 크게 해당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살인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들어가 고민하고 우리의 삶을 살펴보기 시작하면
드물지도 않고,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현대사회속에서도 ‘낙태', ‘전쟁', ‘안락사', ‘자살', ‘사형 제도'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제6계명과 관련하여 어떤 쉬운 답변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거기에 다가 성경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마5:21-22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Matt 5:21-22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to those of old, ‘You shall not murder; and whoever murders will be liable to judgment.’ But I say to you that everyone who is angry with his brother will be liable to judgment; whoever insults his brother will be liable to the council; and whoever says, ‘You fool!’ will be liable to the hell of fire.
살인과 심판을 말씀하시다가, 노함과 심판을 놓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좀 심각해 집니다.
데칼로그는, 십계명은 믿는 자의 가치관에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그 뜻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왜 이 말씀을 주셨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살인의 또다른 이름, 분노
생각보다 살인의 범외가 넓고 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살인이라는 단어가 섬찢한데요. 사전적 정의는 이렇습니다.
살인: 어떤 사람의 삶을 끝내는 행위.
그것은 눈에 보이는 삶 만이 아니라는 데 , 하나님의 금지하신 뜻이 있습니다.
정연철 목사님은 (두 돌판에 새겨진 사랑에서) 이렇게 제6계명을 설교합니다.
“ 흉기를 들고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는 것만이 살인이 아니에요. 우리의 마음에 형제를 향한 미움을 간직하는 것, 우리의 입술의 말로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 친구에 대해 험담하며 차별하는 것, 상대가 모욕을 느낄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 친구들의 마음에 상처와 아픔을 주는 것. 이 모든 것이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할수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분노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분노를 어찌 죄라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울산동부교회 이광수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 무엇 때문에 예수님은 노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워질 때에 노하셨지요. 요컨대 하나님의 진노나 예수님의 분노는 거룩한 분노였습니다. 의를 위한 분노였습니다. 심판자로서의 분노였습니다. 그것은 죄가 될 수가 없습니다.(천국시민의 윤리 중에서)”
그러나 우리의 분노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 입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부끄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의 화내는 것을 정당하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습니다.
또한, 상대방이 나를 화나게 해서 내가 화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할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뭔가 크게 잘못생각하며 지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얼마나 화가 자주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주신 것 같습니다.
에베소서 4:26 (우리말성경) “화를 내어도 죄를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지도록 화를 품지 말며
생각보다, 살인은 ‘나의 삶에서 의도적이든, 아니든 생각보다 자주 행해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2. 직접 살인, 간접 살인
창세기 9:5–6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사람의 생명을 죽이면 안되는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명찰을 달고 있는, 하나님의 뺏지를 달고 있는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사람의 육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혼, 감정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13 (BHS SESB 2.0) 13לֹ֥֖א תִּֿרְצָֽ֖ח׃ ס
김지찬 교수의 데칼로그를 보면,
라차흐 (죽이다) 가 간접적으로 쓰여진 부분을 찾아낸다.
왕상21:19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아합왕은 나봇을 직접 죽인 적이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봇의 사형은 법적으로 아무 하자 없이 적법한 절차를 따라 이루었고, 왕은 나봇에게 손을 직접 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장로들이나, 이세벨이 아니라 아합에게 “네가 죽였다)” 고 말씀하십니다.
소위 정치적으로 법을 이용해서 간접적으로 살해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살해의 도구는 다름아닌 말이라는 것입니다.
“라가라 하는 자,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 이런 말씀을 볼 때 주님이 보시는 살인의 가장 보편적인 도구가 말, 입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진짜 육체는 아니지만, 영을 죽이고 혼을 죽이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봅니다.
이것은, 타인에게 만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됩니다. 육체적 자살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영혼에 대해서도 그럴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것에는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 가인처럼 살 것인가? 예수님 처럼 죽을 것인가?
가인은 죄악된 분노로 최초의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친 형제를 말입니다. 자기가 살고 남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반대이셨습니다.
자신을 죽여 다른 이들을 살리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게 놔두셨을까요? 우리는 머리로는 알지만, 그 비밀과 사랑을 참 잘 모릅니다.
소설가 박완서씨의 이야기 입니다.
‘가톨릭 신자인 소설가 박완서 씨는 슬하에 딸 넷과 아들 하나를 두었습니다. 자식들 모두 건강하고 착하고 공부도 잘해서 일류대학에 척척들어갔답니다. 그중에 아들은 명문대의 의대생이고, 뭐 하나 나무랄데 없이 준수하고 마음도 너그러워서 어머니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던 1988년, 아침에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하고 나간 아들이 저녁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그 때 그 아들의 나이가 26살. 며칠 뒤에 있을 결혼을 준비하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남편과 사별하고 일년뒤 아들까지.
그 고통의 2개월을 담은 일기 가 ‘한 말씀만 하소서'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그중의 고백이다.
“베개가 젖도록 흐느껴 울었다. 죽음이 왜 무시무시한지, 아들의 죽음이 왜 이렇게 견디기 어려운지 정연한 논리로써가 아니라 폭풍같은 느낌으로 엄습해 왔다. 하나의 죽음은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사랑과 기쁨, 고통과 슬픔, 체험과 인식 등, 아무하고도 닮지 않은 따라서 아무하고도 뒤 바꿀수 없는 그 만의 소중하고도 고유한 세계의 소멸을 뜻한다"
저는 이 소설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왜 그 악한 가인도 곧바로 벌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가인처럼 살고 있는 우리를 그대로 두시고, 어이없게도, 그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셨는가?”
적용하기 : 분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하겠습니다 .
또하나, 단순히, 죽이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교살하지 않고, 말과 행동으로 타인의 생명과 영혼을 존중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적극적으로는 화해를 하라는 것입니다.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예, 한꺼번에 다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자이고, 품은 자라면, 가인의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맺는 것 만큼 사람과의 수평적인 관계를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회개의 기도 뿐 만 아니라, 삶의 변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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