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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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12 오늘을 위한 부모 공경
- 영상을 하나 보고 오늘 설교를 시작하려고 한다. 여러분이 다 아는 정인이 사건이다. 근래에 이렇게까지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아동학대라는 이슈에 대해 사회 전체에 경각심을 준 사건은 없었던 것 같다. 정인이 사건 이후 언론에 아동학대에 관한 기사가 쏟아졌다. 그리고 바로 이틀 전 아동학대 살인죄, 일명 정인이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아동을 학대해서 살인한 경우 최고 사형이나 무기징역, 징역 7년 이상에 처한다는 법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선진국들처럼 아동학대 이슈에 굉장히 민감한 나라가 되었다.
- 오늘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묵상하는데 자꾸만 정인이 사건이 떠올랐다.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1) ‘과연 이런 양부모에게도 부모 공경이라는 말씀을 적용해야 하는가?’ (세상에는 선량하고 훌륭한 양부모가 수없이 많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면 또 이런 질문이 생긴다. ‘부모공경은 오직 공경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부모에게만 적용되는 것인가?’ 쉽지 않은 문제다. 솔직히 저는 이 양부모를 공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공경을 받을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성경에는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과 더불어서 부모도 자녀를 괴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한다. 골로새서 3:21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2) 과연 오늘처럼 이렇게 아동학대 문제와 아동의 인권을 강조하는 시대에서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마치 기독교는 너무나 권위만 내세우고 힘없고 약한 자들, 특히 아이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종교로 비춰지진 않는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수님도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시고 자기에게 오는 것을 막지 않으셨다. 누가복음 18:16에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 체벌 문제도 그렇다. 이제 부모는 아이를 어떤 이유로든 체벌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된 것 같다. 징계로서의 체벌과 아동학대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 자체가 사라진 것 같다. 이미 1997년에 미국의 아동 체벌 반대 운동가인 조단 리악이 이런 글을 썼다. “그 어떤 아이도, 그 어떤 명분으로도, 그 어떤 환경에서도, 신체적 폭력을 당해서는 안 된다. 이런 방법이 아이에게 유익한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논쟁은 오래전에 종결되었어야 했다. 보호자가 아이에게 의도적으로 상처를 입히는 것은 아이에게 파괴적인 게 사실이다. (중략) 이들은 때로 자신의 권위를 뒷받침하려고 솔로몬 왕의 잠언을 인용한다. 근본주의자들이 구약 성경의 권위를 내세우는 이유가 자신들의 아동 학대를 변명해야 할 필요 때문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무엇을 말하고 있나? 성경이 말하고 있는 체벌, 징계는 아동학대를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잠언 13:24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이제 이런 말씀은 더 이상 현대사회에는 맞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마 머지않아 자녀를 체벌하다 감옥에 가는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 오늘 우리는 5계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가 지금까지 1-4계명을 살펴보았는데, 잘 알다시피 십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1-4계명)과 인간에 대한 계명(5-10계명)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인간에 관한 계명 중 부모 공경에 관한 명령이 가장 먼저 나온다. 다음 주에 살펴보겠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6계명 ‘살인하지 말라’가 더 중요해 보인다. 하지만 왜 부모에 관한 말씀이 가장 먼저 나오는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의 어떤 관계보다 부모관계, 나아가서는 가족관계가 더 중요한 것이다.
- 사실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창조하신 후 가장 먼저 만드신 제도가 바로 가정이다. 창세기 2:22-23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최초의 가정은 하나님이 보실 때 선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 이후 가정도 망가지기 시작한다. 창세기 4장에서 아담의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끔찍한 일이 나온다. 창세기 9장에는 노아의 아들이 아버지의 허물을 형제에게 알린다. 22절에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어떤 일본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 ‘가족이란 남이 보지 않을 때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앞에서 아동학대에 대해 말했지만 우리가 가장 행복해야 할 가정 안에서 안타깝게도 가장 불행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 하나님은 5계명을 통해 하나님이 만드신 원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하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바로 부모 공경에서부터 시작된다. 케빈 드 영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우리를 다스리는 권위자가 있다는 것,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들을 존중하는 것, 때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된다. (중략) 우리는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세상의 권위 체계에 관해 배운다. 가정은 존경과 복종과 사랑과 보호와 관련된 것을 배우는 장소다.”
- 요즘 우리 사회는 권위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과거 권위주의적인 정권, 권위적인 가부장제 때문에 그런지 이제는 권위라면 무조건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요즘은 권위 있는 부모보다 친구 같은 부모가 더 인기가 많다. 저와 집사람은 별로 인기가 없다. 우리 집에서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내가 네 친구가?’ 서양 속담에 ‘아기를 목욕물과 함께 버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에도 '목욕물을 버리지, 목간통을 버리지 말라'고 말한다. 나쁜 것을 버리려다 정작 중요한 것까지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권위주의를 버리려다 정당한 권위까지 버릴 수 있다. 그러면 질서가 무너진다.
- 종교개혁자 칼빈도 5계명이 넓은 의미에서 우리 위에 있는 모든 정당한 인간 권위에 복종하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나타낸다고 말한다. “이런 복종하라는 가르침은 타락한 인간 본성과 강하게 충돌하는데, 타락한 인간 본성은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갈망에 부풀어 있어 마지못해 복종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본질상 가장 부드럽고 가장 덜 거슬리는 복종의 예를 제시하셨는데, 이로써 우리의 마음을 더 쉽게 부드럽게 해서 복종의 습관을 들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감내하기 가장 쉬운 이런 복종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정당한 복종에 점점 익숙해지게 하신다.”
- 오늘 본문에 나오는 중요한 단어가 ‘공경하다’라는 동사다. 원어로 ‘카베드’인데 ‘무겁게 여기다, 중요하게 여기다’는 뜻이다. 중요한 사실은 구약에서 ‘카베드’라는 단어는 두 대상에만 쓰인다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과 부모이다. 잠언 3:9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이사야 24:15에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여기서 ‘영화롭게 하다’가 바로 ‘카베드’이다.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을 공경하듯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뜻이다.
-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공경하듯 부모님을 공경하는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앞에서도 십계명이 하나님과 관한 계명과 사람에 관한 계명으로 나뉜다고 했지만 1계명과 5계명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 것, 1계명이 무너지면 다른 것들도 무너진다. 이것은 단지 윤리적,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다. 디모데후서 3:1-2에서는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그러면서 4절에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말세에 부모를 거역하는 경향이 많아지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보다 자신과 돈과 쾌락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영적인 문제다.
- 그렇다면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첫째,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신명기 5:16에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단지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관련이 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6:1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우리가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전에 어느 성도님이 부모님과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 나서 부모님과 화해를 한 경우도 있다. 골로새서 3:20에서도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된다고 말한다.
- 두 번째로 부모 공경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여기서 중요한 접속사가 ‘그리하면’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대로 행할 때 거기에 따르는 약속이 있다. 사도 바울도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한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축복이다. 하나님은 무조건 명령하시지 않고 거기에 약속과 복을 담아 두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에베소서 6:3에는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우리가 좋아하는 형통과 장수의 축복 아닌가? 하나님께서 우리가 좋아하는 축복을 부모 공경이라는 그릇에 담아 두셨다.
- 이렇게 말하면 꼭 반박하는 분들이 있다. 부모 공경해도 축복 못 받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원리로 봐야 한다. 세일러라는 교육학자가 이렇게 말했다. “적절한 제한을 점진적으로 가르치고 정하며 시행하는 부모가 자녀를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며 절제하고 자신감 있으며 협력하는 사람으로 기르는 데 가장 크게 성공한다. 이런 자녀들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높은 경쟁력과 높은 자존감을 가질 가능성이 더 높다. 이들은 또한 도덕적 기준을 내면화했으며, 고등학교에서 학업 성취도가 더 높다.” 무슨 말인가?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녀들이 그렇지 않는 자녀들보다 훨씬 더 자기 조절 능력이 강하더라는 것이다.
- 그렇다면 부모님을 어떻게 공경할 것인가? 먼저, 부모님을 존중하는 말과 행위다. 오늘 십계명을 듣는 일차적인 청중은 어린 자녀들이 아닌 30-50대 성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즉, 이들에게 부모는 자신보다 힘도 없고 지식도 부족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노부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구약에서 부모에 대해서 강하게 금지하는 행위들이 나온다. 1) 구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5) 2) 저주: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7) 3) 멸시: “그들이 네 가운데에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에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에서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겔 22:7) 4) 조롱: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 30:17) 5) 착취: “부모의 물건을 도둑질하고서도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 받게 하는 자의 동류니라.”(잠 28:24) 6) 구박하고 쫓아내기: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잠 19:26)
- 부모를 존중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1) “네, 알겠습니다.” 기꺼운 태도로 신속히 복종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방법이다. 2) “감사합니다.” 감사한 일이 있으면 감사를 표현하라. 3) “죄송합니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부모님께 사과해야 한다. 4) “잘 지내시죠?”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는 경우에는 자주 전화나 문자나 혹은 방문해서 안부를 물어야 한다. 요즘 며느리 사이에서 이런 말이 있다. 최고의 시댁은 명절에 자기를 부르지 않는 시댁이라고. 명절이 주는 스트레스는 이해가 가지만 부모를 찾아뵙고 안부를 묻는 것은 중요하다.
- 부모를 존중하는 말과 행위도 중요하지만, 이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드리는 것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란 소설이 있다. 프롤로그에 17살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부모와 조로증을 앓는 16살 늙은 자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 어느 잡지에 실린 독자의 글이다. “아빠가 해외 파병을 나가 있어 나는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나의 친구였고, 나는 할머니에게 감추는 것이 없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특별한 분이셨다. 나는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했다. 할머니가 울혈성 심부전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날 유품을 정리하러 갔다. 냉장고를 여니 내 이름이 적힌 피클 병이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유품을 정리하러 그곳에 올 줄 알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털썩 주저앉아 할머니가 나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피클을 울면서 먹었다.”
- <섬 집 아기>라는 동요를 다 아실 것이다. 1절 가사가 이렇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그런데 2절에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굴을 따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지만 집에 혼자 두고 온 아이가 눈에 밟혀서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는 다 채우지 못한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모랫길을 달려오는 것 아닌가?
-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부모님은 우리를 기다려주시지 않는다. 때가 너무 늦기 전에 이 말씀을 지키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 제 5계명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내 위에 있는 모든 권위에 모든 공경과 사랑과 신실함을 나타내고, 그들의 모든 좋은 가르침과 징계에 대해 합당한 순종을 하며, 또한 그들의 약점과 부족에 대해서는 인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손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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