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받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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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를 비롯하여 고전후,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서등은 사도바울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나 그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주로 훈계, 교훈하고 권고하기 위해 보내진 편지입니다. 오늘 읽은 데살로니가 교회도 마찬가지로 훈계하고 권고하기 위해 보내진 편지인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편지를 쓴 다른 여러 교회보다 특히 많은 칭찬을 받은 교회입니다. 8절에 보니까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라고 이야기 하면서 그들의 삶이 더 이상 말 할 것도 없이 너무 잘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로마서 14장 18절을 보면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바울에게 칭찬을 받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무엇 때문에 칭찬 받았는지 살펴보고 우리 또한 하나님께 칭찬받고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 교회로, 칭찬받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점을 본받아야 할지 고민하고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1장은 첫인사인데 2절, 3절을 보니 그들을 볼 때 하나님께 대해 감사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역사(믿음으로 행한 일)와, 사랑의 수고(사랑으로 행한 수고), 소망의 인내(소망을 지켜나가는 모습)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들에게는 믿음, 소망, 사랑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많이 익숙한 세 단어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고전 13:13 -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 소망 사랑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이 칭찬받을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그들에게는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즉, 믿음으로 행한 일! 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히브리서에서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머물면서 세 안식일 동안, 즉 3주 동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치다가 바울을 시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급히 도망쳐 나왔습니다. 단 3주밖에 가르침을 받지 않았지만 칭찬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고린도 교회는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사도바울이 가르쳤지만 분란과 분쟁, 무질서가 만연하여 많은 책망을 받았습니다.
3주 동안만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들이 칭찬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살전 2:13 -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행 17:2-3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사도바울이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말했다. 곧 성경을 가지고 설교를 한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들려진 이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을 들을 때에 어떤 마음으로 받으시는지요?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신앙생활의 년수를 떠나 목사님을 통해 들려지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칭찬받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굉장히 건강한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입니다. 말씀이 건강한지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먼저는 어떤 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느냐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설교가 신학을 기본으로 하여 준비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세를 이루는 신학들은 “수천년동안, 여러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어졌기 때문에 성경에 오류가 없을 수가 없다”. “성경은 신화적인 요소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또는 신화와 비슷하게 쓰여졌기 때문에 신화적인 요소들을 제거해야 비로서 참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부활 사건, 오병이어 사건, 노아의 홍수 사건등) 이런 신학을 바탕으로 하여 설교가 준비되어 진다면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천제2교회가 바탕으로 하는 신학은 개혁주의, 보수신학 이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 일점일획도 가감치 못할 하나님의 말씀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을 바탕으로 준비되어지는 말씀이기에 설교하는 설교자 자신도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17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무작정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평가를 하면서 듣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예배 가운데 듣고 있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지금, 목사님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에, 살전2:13 -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도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행동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2:14, 17 -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은 죽어 있는 믿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믿음이었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은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 등장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
두 번째는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사랑의 수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결혼하신 분들인데요. 혹시 결혼하기 전에 연애를 하셨을 텐데. 연애하셨을 때가 기억이 나십니까?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안되고 지금 남편과 아내를 생각해야 합니다.
연애할 때 열심히 쫓아다니고 선물을 공세를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연애할 때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감정은 있지만 말이나 선물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관계를 지속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애할 때뿐만 아니라 결혼생활 가운데서도 사랑의 표현이나 선물을 해야 아내에게 구박받지 않고 좀 더 평안 중에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은 연애코치를 해주었던 선배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 보통 “열 번”이라는 단어 때문에 도끼질의 횟수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조금 생각해보니 횟수보다 수고에 초점이 맞춰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열 번을 찍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대충 열 번을 찍으면 넘어 갈 것 같습니까? 아주 날카로운 도끼로 힘차게 두들겨 패면서 땀이 좀 나야 나무가 넘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수고하는 사랑입니다.
원어로 보면 수고(코포스)는 - 때리다, 치다, 강타하다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애통하며 가슴을 치는 것, 육체적 피로를 낳는 고된 일, 노동, 노력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러한 수고가 있었던 교회였는데 그냥 수고가 아니라 사랑의 수고가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갈 5:13 -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이성을 사랑할 때만 사랑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주안에서 늘 사랑의 노예가 되어 수고해야 합니다.
약 2:8 –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사도 바울이 3주만 가르치고 갑자기 떠난 터라 그들이 걱정되고 염려되어 디모데를 보내어 위로해주려고 하였습니다. 위로하러 간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과 사랑의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오히려 바울이 위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살전 3:6-7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사랑은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만큼, 위로를 받을 만큼 사랑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위로를 받는 사랑,,,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랑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는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망하며 기다리는 것, 끈질기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소망하며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한번은 아들을 보고 있으니 참 신기하기도하고 감격스럽기도 하여 참 행복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신앙의 1대고, 아들이 신앙의 2대라 자녀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아가야! 네가 우리 집에 희망이다! 건강하게 잘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그 때에 옆에 있던 아내가 ‘자식에게 소망을 두면 안돼! 다 부질없어! 특히 아들들은 장가가면 끝나더라구요! 오직 소망은 하나님께!’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도 저희 부모님에게 큰 소망이었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장가가니까..... 내리사랑이라고, 그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다른 것이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벧전 2:24-25 –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사람은 연약하여서 멀리 있는 것보다 눈앞에 것을 소망으로 삼기 쉽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영광과 은혜를 바라기 보다는 눈앞에 있는 선악과를 통해 얻어질 것을 소망하였습니다. 우리는 제한적인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지막 소원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소원을 이루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우리의 마지막 소망은 천국에 대한 소망,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다스려주실 것을 기대하며 소망해야 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위해 소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죽어서 천국가면 되지’가 아니라. 이 땅 가운데 천국이 임하길,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를 소망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지 불과 몇십년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다시 오실 주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재림에 대해 약간의 오해가 있어 5장에 그날이 도적같이 이른다는 말씀을 하며 바른 신앙의 자세를 가르쳐주긴 하지만 그들에게는 주를 기다리고 바라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이미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오셨습니다.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선포되고 사랑이 선포되어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곳이 되기를 거룩한 곳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에게는 믿음, 소망,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 세 가지를 항상 가지고 있는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였습니다.
이 세 가지를 가졌을 때 1장 6-7절입니다.
살전 1:6-7 또 너희는 환란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그들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고 또 주변의 사람들에게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각처에 퍼졌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믿음, 소망, 사랑은 정삼각형과 같이 정신앙으로 균형 잡혀야 합니다. 믿음이 있지만 사랑이 없다면 온전한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믿음과 사랑이 있지만 소망이 없다면 그것 또한 온전한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 사랑, 소망을 가진 모습으로, 주를 본받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교회로 칭찬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문이 각처에 퍼져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묵상하며 내가 과연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가진 자로 살아가는 가를 되돌아보고, 또한 믿는 자의 본이 되고 있는지를 되돌아봄으로서 ‘그냥 다 필요 없고 나 혼자 잘 살면 돼. 이정도의 믿음만 있으면 돼.’라는 생각으로 있는 것 그대로 만족하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욱 칭찬 받는 자의 삶으로, 믿음이 계속 자라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오늘 하루의 삶을 드리며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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