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음과 헛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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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과 아벨에 대하여
가인과 아벨 이야기.
가인과 아벨이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가인과 아벨은 자신이 일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왔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가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아벨은 받지 않으셨다.
왜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는가?
일단 이름의 뜻을 보며 가인과 아벨을 추적해 나갈 수 있다.
가인 = 얻음,
하와가 득남하고 지은 이름. 그런데 아벨의 이름의 뜻이 좀 의아하다.
아벨 = 공허, 헛됨, 허무
예배한 제물에 대하여 거부를 당했을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을 하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되돌아 봄
그러나 가인은 그렇지 않았다.
예배 후의 반응 –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함, 결국 동생을 쳐 죽임
동생 아벨을 죽인후의 반응 –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잠언 6장 16-19절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결과로 나타난 죄이긴 하지만 가인은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것들을 행했습니다.
가인이 원래는 착한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
가인의 이런 행동은 갑자기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가인의 살아왔던 삶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가인의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을 목격한 부모가 자녀를 낳고 아벨(공허, 헛됨, 허무)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지금이야 주변에 다른 착한 아이들이 많이 있어서 다음에 태어날 아이게는 소망을 담아 아름답고 멋진 이름을 지어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낳은 자식이 그 모양이다. 말썽피우고 분노한다. 아마 둘째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혹시라도 하나님께서 자녀를 통해 소망이라도 주실 것이라고 기대했던 마음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들의 자녀 또한 죄에 대한 결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 낳은 자녀의 이름을 아벨(공허, 헛됨, 허무)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가인의 삶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삶,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삶이였다.
유다서 1장 11절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만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가인 자체를 받지 않으셨다.(5절)
그렇다면 아벨은 어땠을까?
보통 가인과 아벨을 생각할 때 가인은 흉악한 살인자의 모습으로 아벨은 순한 양, 선한 모습, 연약한 모습으로 생각한다.
가인은 동생을 쳐 죽였고, 아벨은 아무 말도 없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습관적으로 생각의 틀을 고정시켜 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성경을 해석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고 말씀을 통하여 받는 은혜의 다양한 면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요셉과 같은 경우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던 이유는 꿈꾼 내용을 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형들의 미움을 사게 된 이유는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친데 있다.
창세기 37: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가인은 농사짓는 자였고 아벨은 양치는 자였다면 오히려
가인이 조용히 일했을 가능성이 있고
아벨은 소리치며 외향적으로 일했을 가능성이 있다.
워낭소리를 봤나? 농부인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를 아주 감동적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대사가 별로 없다. 묵묵히 소를 부리며 씨 뿌리고, 거두고... 무뚝뚝함의 절정을 보여준다.
카우보이가 나오는 영화를 봤나? 굉장히 활발하다.
아벨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벨 또한 가인과 같이 아담의 후손으로서 죄를 짓는 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고 말씀하셨다.
히브리서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둘 다 똑같이 죄인이고, 죄를 가진 인간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을까?
창세기 4:7절을 읽어보자.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과 아벨 모두에게 죄가 있었고, 말씀대로 죄가 그들을 원했을 것이다.
그중에 가인은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죄 된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살았다.
가인은 죄를 다스릴 줄 몰랐다. 아마도 죄가 무엇인지 조차도 몰랐던 것 같다.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만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가인의 자체도 받지 않으셨다.
반면에 아벨의 제사는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살아가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할까?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우리는 가인과 아벨하고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악한 본성가지고 살아간다.
주인집 할머니 이야기...
구약시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눈을 빼낸다고 해서 굉장히 잔인한 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합리적인 법이고, 심한 악으로부터 보호하는 법, 인간의 죄 성을 제재하는 법이다.
죄가 끊임없이 우리를 노리며 우리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죄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가인과 아벨이 살던 시대보다 더 유리한 시대에 살고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인간인 우리에게 죄성은 남아 있지만 죄의 지배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죄성과 관련된 잦은 오해가 한가지 있는데, 죄성 때문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구원 받은 이후에도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죄를 짓는 일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며 죄를 지은후에 합리화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연합한 이후에는 그 죄성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않으므로 남아 있는 죄성의 유혹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극복할 수 있다!
죄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손짓하며 우리를 원하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죄를 짓는 이유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죄를 지을만한 결정적인 때에,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등을 앞세우기 쉽다.
틱낫한 ‘화’를 읽으면...
남을 미워하면 나도 미움받는다.
화가 났을 때 남의 탓을 하지 마라
성난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라
화가 날수록 말을 삼가라
혜민 스님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
혜민스님은 화가 났을 때는 그 마음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똑바로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화가 났을 때 그 순간에 잠시만 멈추고 조금만 들여다보라셨다
이런 것들이 죄를 짓지 않는 방법 중에 한 가지가 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죄를 짓지 않는 분명한 방법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이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화를 내면서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
요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어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유물을 받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미가 6:6-8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 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을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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