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9 대학3부 공동체예배 설

GBS 2강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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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계신 하나

지금 여기 계신 하나님
서론들어가며(12장에 이르기까지 - 배경설명) 여러분들은 성경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독교 세계관 분야에서 꽤나 유명해진 어떤 책은 바로 이 ‘성경'이 마치 ‘드라마'같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연출하신 무대 위에서 수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다양한 주제와 씨름하며 결국엔 ‘그리스도'와 ‘교회'로 연결되는 ‘드라마'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희는 ‘창세기'라는 드라마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창세기는 총 50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창세기를 딱 ‘반'으로 쪼갠다고 했을때 바로 그 중심적인 이야기는 어디일까요? 창세기가 총50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 절반인 25장일까요? 많은 학자들은 바로 오늘 우리가 볼 창세기 12장이 ‘창세기'의 중간지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창세기의 1-11장은 인류의 역사를 다룹니다. 인간은 언제, 어떻게 창조되었고 창조의 순간은 어떠했는지, 인간은 어째서 이렇게 수 많은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지금 내 옆에 살아가고 있는 수 많은 족속들은 어떤 족보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11장에 와서는 “우리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바벨탑'을 쌓는 인간들이 끝내 실패하고 뿔뿔이 흩어지 벌하시는 이러한 질문들을 기반으로 인간의 전반적인 역사를 설명해주는게 1-11장 입니다. 이렇게 성경의 초점, 렌즈가 ‘인류'라는 거대한 ‘숲'을 조망하다가. 뜬금없이 꽤나 지루한 ‘족보'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1:10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그 후에는 여러분들이 모두 알고 있듯 지루한 ‘낳고 낳고’가 이어집니다. 갑자기 엄청난 인류의창조와 타락, 그 최초의 역사를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족보'라뇨. 그 족보는 바로 이것을 말하기 위한 큰 ‘떡밥'입니다.
창11: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창세기1-11장을 지나 12장으로 들어가는 이 과정을 통해 카메라의 ‘줌'을 당기듯 어떤 ‘가족'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오늘 등장하는 아브람의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아브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으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정체성’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 해보시죠. 아브람을 부르심 창세기 12장이 시작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말을 거십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바로 이 때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먼저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것이죠. 한 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창12: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니 뜬금없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모든것으로부터 떠나라고 하십니다. 비록 제가 충격적이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너무 많이 들었던 본문이기도 하고, 그 만큼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기 모든것으로부터 떠나라는 것이 조금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조금 설명을 보태자면 이 고대 사회에서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는 것은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부족간에 전쟁이 많이 일어나던 때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울타리들, 함께 싸울 가족과, 함께 먹을 음식들 그 모든것을 버려두고 떠나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아버지의 집을 떠난다는 것은 ‘모든 유산’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신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신 말은 한 마디로 너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심지어 죽을 각오를 해야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죽을 각오로 떠나라고 하셨으면 어디로 가라고 말씀을 하셔야하죠. 근데 그 곳이 어디인지 말씀을 안하십니다. 근데 가만히 들어보니 조금 이상합니다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시거든요. 영어 성경을 보자면 “the land that I will show you” 그러니깐, 언젠가 보여줄 그 땅으로 목숨을 걸고 가라는 명령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말씀은 이렇습니다. “너는 가라, 내가 언젠가 보여줄 땅으로, 너의 모든것을 버리고 목숨도 걸면서” 그런데 아브람은 놀랍게도 갑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가요! 아직 보지도 못한 땅을 향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갑니다. 아브람은 갑니다. 아브람은 어떻게 이 명령에 순종했던 걸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놀라워 하듯 신약 시대 그러니까 1세기의 초대교회 성도들 또한 아브람의 모습을 보며 “믿음이란 이런것이다”하며 무릎을 탁 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바라봤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아브람은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순종한 이유는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은걸까요? 여러분 우리의 믿음에는 ‘대상'이 있습니다. 대상이 없는 믿음은 없습니다. 아브람의 믿음의 대상은 무엇이었을까요? 부르심의 절정 - 언약
아브람이 믿은 것은 이것입니다. 창세기 12장 4절 입니다.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서 갔습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던 걸까요? 제가 하나님의 마음에 이입해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아브람이 믿고 따라갔던 말씀입니다. 내가 너로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하게 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아브람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 말씀을 생생하게 체험한다는건 어떤 것일까요. 저희가 감히 상상해보자면 먼저는 두려움이 있었겠지만 그 이후에는 경이로움과 함께 엄청난 전율을 느꼈을 것입니다. 고개를 푸욱 숙이고 그저 깊은 감동 가운데 떨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장엄한 말씀, "너는 복의 근원이 될 지라”. 아브람이 믿은것은, 아브람이 순종한 것은 말씀의 배경은 이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장엄한 선포가 있었기에 아브람은 모든것을 포기하고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람은 그렇게 75세의 나이에 모든것을 포기하고 목숨을 걸고 자신의 고향 하란을 떠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땅 가나안으로 갑니다. 그런데 이 가나안 족속은 아브람의 족속과 매우 사이가 안좋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실 땅이 하필 가장 만나기 싫었던 사람들이 가득한 땅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땅에 갑니다. 심지어는 그 땅에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창 12: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여러분, 그러면 이제 “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읍시다.”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믿음으로 나아갔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 받으며, 그 믿음을 구하며 함께 결단합시다!” 하고 오늘 말씀을 끝내면 될까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혹시 졸았던 분들, 집중 안했던 분들 괜찮습니다. 이제부터 집중하면 됩니다. 이제부터가 제일 중요합니다. 본론: 기근이 들면 애굽을 떠올리게 된다. 제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이 후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람의 결정은 하나님께서 장래의 유업으로 주실 새로운 땅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브람이 “천국은 마치”라는 찬양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천국이라는 밭에 감추인 보석을 위해 자신의 집과 땅과 냉장고를 파는 그 모험 말입니다.” 심지어 아브람은 그 보석을 본 적이 없죠. 있다는 말만 듣고 장래의 유업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들도 이 믿음이 너무 위대했노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여기서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브람의 결단은 너무 위대한 믿음의 행동이었고 우리가 본받을만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당연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등장하셔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너는 복이 될 것이다! 하는 명령가운데 공포와 전율로 몸을 떨고 있는데, 그 감동의 눈물이 가득할때 우리는 당장이라도 하나님을 위해 내 한 목숨 바치겠노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앞에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시던 하나님의 생생한 목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잘 들리지 않을 때, 이 때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결단, 그 영광의 순간 뒤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쓸쓸한 일상의 시간’. 쉽게 말하자면 이런것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큰 기쁨을 누렸는데 내 삶의 자리인 일상으로 돌아갔을때, 우리 집은 여전히 그대로고, 학교, 직장, 그 외에 내가 맞이 하고 있는 모든 현실의 문제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듯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그런 상황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아브람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욱 심했을지도 모릅니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창세기 12장 10절입니다.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아브람에게 ‘기근’, 그러니까 큰 가뭄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축복과 함께 성경기자는 갑작스레 그 땅에 ‘기근’이 찾아왔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기근이 들면 애굽을 떠올리게 된다. 여러분들은 삶의 기근이, 큰 가뭄이 찾아왔을때 무엇을 떠올리십니까? 여러분에게 ‘풍요로움’을 대표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삶이 어려워질때 여러분은 무엇을 찾으십니까. 무엇을 따라 가십니까. 확실한건 애굽은 풍부한 곡식이 있던 곳입니다. 나일강을 기반으로 풍부한 곡창지대가 있던 곳입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애굽으로 가는게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나님이 가라는 땅으로 부터 조금 더 멀리 오기는 했지만, 요셉도 애굽의 총리였고 야곱도 가뭄이 들자 애굽으로 자신의 아들들을 보내서 가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아브람도 단순히 그런 차원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창세기의 저자가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갔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겠지요. 제가 들려드리겠습니다.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 아래에 장래에 받을 유업을 소망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이르러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찬양하기 위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채 두 절도 지나지 않아 가나안 땅을 떠나고 또 두 절도 지나지 않아 “나는 죽겠다”며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그렇게 아브람은 목숨을 부지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잊다. 아브람은 12장 8절에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쌓고 그 앞에서 찬양을 올려드리는데 바로 그 다음에 가뭄이 찾아오자 애굽으로 떠나고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자 그 목숨을 부지하기 위에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심지어 아내를 애굽의 왕궁으로 보내고 돈을 받아옵니다. 물론 저희가 아브람을 비난하면 아브람은 내가 죽을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노라며 항변할 수 있습니다. 그 긴박한 상황과 인간의 한계를 성경 기자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아브람의 위대한 결단 바로 뒤에 아브람의 큰 실수를 이야기하는것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잊은 한 가지, 그것을 일깨워 주기 위함입니다. 아브람이 잊어버린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너로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하게 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아브람은 자신의 기근 앞에, 목숨의 위태로움 앞에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하나님의 약속을 잊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아브람의 모습이 바로 제 모습이고, 제 앞에 앉아계신 여러분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론우리의 삶에 ‘기근’과 두려움이 찾아왔을때 그래서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번 주일 설교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셨고 그 큰 영광과 기쁨에 감격한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이 가져온 ‘물 양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기뻐 뛰며 뒤 돌아갑니다. 아브람은 오늘 “모든것을 버리고 떠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그리고 이어지는 수 많은 축복의 말씀으로 큰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담대하게 본토 아비 집을 떠났을 것입니다. 비록 아버지의 집과 유산과 모든 것으로부터 떠날 그 때에는 큰 자신감을 가지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생각으로 감격에 가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의 삶에는 ‘기근’이 찾아옵니다. 애굽에 내려가서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어쩌면 기근과 두려움이 아니더라도, 큰 영광 가운데 지속되는 작은 일상은 너무나 작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물 양동이를 버리고 마을로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기뻐 뛰며 돌아갔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지만 어쩌면 다음날 다시 물 양동이를 가지러 그 우물가로 돌아갔어야 할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그 감격의 장소에 더 이상 예수님은 계시지 않고 물 양동이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을 보며 “아, 이게 일상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기근, 가뭄이 들었을 때, 약속의 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애굽에 갔을때, 그 가운데 큰 두려움이 있을때, 예수님을 만나고 버려둔 물 양동이를 다시 가지러 가지러 가야할때 우리의 역전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 오늘 설교의 주제는 결국 우리의 역전을 다시 역전시키는 하나님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불변하는 진실이 있다면 하나님은 ‘역전’ 하시는 분이십니다. 설사 오늘 우리가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기근’앞에 무너져 하나님의 약속을 뒤로한채 애굽으로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또 애굽의 왕이 두려워서 “나의 안전"을 위해 범죄함을 짓더라도 끝내 하나님께서는 역전하십니다. 현실의 어려움 가운데 나의 꾀로 "나의 안전”을 도모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하나님의 약속이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모든 상황을 역전하십니다.
끝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내십니다. 창세기 13장 3절 후반부와 4절입니다. 13: 3b-4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가 잊고 곡해함으로 그 명령을 잊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역전을 다시금 역전시키십니다. 그래서 결국 애굽을 떠나 하나님을 찾는 나그네로 만드십니다. 이 시간,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회 (반주 시작)
여러분 우리는 오늘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아브람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해야합니까? 신약시대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아브람’의 이야기를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고, 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떠난 것입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지만 떠났습니다. 설사 애구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아브람이 믿고 따랐던 하나님은, 저기 멀리 계시는, 주일 예배 때만 저희의 예배를 받기 위해 내려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지금, 여기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손에 쥐어야할 실상, 증거는 바로 이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기근이 들었다면, 큰 가뭄이 들었다면 영광을 뒤로 하고 현실의 녹록치 않음에 서러워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딱 하나를 붙잡으십시오. “지금 여기 계시는 하나님”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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