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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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양의 비유
잃어버린 양의 비유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사실 이 본문의 말씀은 잃어버린 양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저에 해당되는 말씀이고, 여기에 계신분들 중에서도 해당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을 제외하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소위 날라리도 살았습니다.
사회생활을 근 30년을 하면서 세상속의 삶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가끔은 후회도 했지만,
그 때 뿐이었습니다.
약 13년 동안 근무했던 회사에서 캐나다 오기 직전 약 3년 동안은 회사의 영업 책임자로 일을 했었습니다. 건설관련 영업을 담당하면서 완전히 피폐된 삶을 살았습니다.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그 삶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었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그동안 외면하며 살아왔습니다.
희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중입니다.
아시다시피 희년(Jubilee)은 레위기 25장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10절에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10절) ···
13절에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지라(13절)
희년에는 종으로 있었던 사람들도 자유를 찾게 됩니다.
제가 한국나이로 51세에 이 곳 캐나다에 왔는데 캐나다에 오니까 놀랍게도 한 살이 줄어 50세가 되었습니다. 비로소 희년이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기회를 맞이하여 소유주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저와 같이 세상속에 방황하던 잃어버린 양에 대한 것입니다.
이 본문의 내용은 누가복음(15:4-7)에서도 언급이 되는데 누가복음에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으나,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잃은 양들”로 보고 말씀하신 것이고, 마태복음에서는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잃은 양들”로 보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목동의 심란한 마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 물음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한 마리를 찾으러 나섰다가 아흔아홉 마리를 모두 잃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정상적인 생각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차라리 한 마리를 잃어버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한 마리만 잃은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를 지켰다는 안도감에 잃어버린 양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안타까운 마음도 버리는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은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잃어버린 양을 찾은 기쁨이 그 양이 다른 양들보다 더 가치가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더 기뻐한다"는 의미는 잃었다가 다시 찾은 기쁨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러분도 꼭 필요한 물건을 찾으려고 하면, 안보이고 나중에 비로서 찾았을 때 기쁨이 배가가 되는 것을 경험해 봤을 것입니다. 바로 그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목자의 기쁨은 모든 양들에 대한 관심, 배려, 그리고 사랑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그 사랑의 깊이는 잃어버릴 가능성에 직면했을 때만 자주 경험됩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핵심을 1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은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작은 자"에 대한 언급은, 고백은 하지만 잘못된 제자들을 포함하는, 다른 사람들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죄의 유혹이나 잘못된 취급으로 인해 제자의 길에서 실족한 제자(18:6-7)나 자신의 정열로 말미암아 죄로 넘어진 제자들을 다시금 가리키고 있습니다. (18:8-9) [1]
예수님의 의도는 실족한 제자들에 대한 관심과 회복의 차원에서 잃어버린 모든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수사 의문문을 던져 그들로 하여금 답변하게 하는 방식을 택하셨다. 본문 12절을 보시면,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아시는 것처럼 수사 의문문은 문장의 형식은 질문을 나타내나 답변을 요구하지 아니하고 강한 긍정을 내포하고 있는 의문문을 말합니다. 수사 의문문은 듣는 자들이 생각하고 답변하게 되면 그만큼 그들에게 그 교훈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 설득할 자료나 기법이 없이 무작정 윽박질러 밀어붙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효과적인 교사, 설득력이 강한 교사였습니다.[2]
본문에서는 실족한 제자들에 대해 회복의 차원으로 비유를 하셨으나, 그것과 더불어 세상에 버려진 양들에 대한 관심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소외되고 방황하는 자를 위해 오셨음을 안다면 그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며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들을 안타깝게 보시고 지금도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의 편안한 삶을 알지 못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살면서 고통 속에 헤매고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다가 시험에 빠져 등을 돌린 수 많은 가나안(??) 성도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나안 성도는 소위 교회 안나가는 성도들을 자조적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왜 낙심하고, 시험에 빠졌는지 위로하고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많은 잃어버린 양들을 찾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서 아흔 아홉 마리의 양떼의 무리로 함께 돌아가야 한다.
바로 그 길이 영원한 생명으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주제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는 바로 하나님이 애타게 찾고 있는 우리를 향한 사랑표현입니다.
세상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고 방황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아직 예수님의 손길을 받지 못한 세상의 많은 길 잃은 양들을 찾아 나서는 길이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에 따라 소명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부디 여러분이 이 땅에 잃어버린 양을 찾을 수 있는 선한 목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 본문을 통해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 대한 교훈을 듣고서 그동안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절망하고 낙심한 주변의 성도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하나님을 외면하게 되었는 가에 대한 생각보다 그들을 비난하지는 않았는지 고백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속으로는 그저 외치는 소리와는 반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여기 있는 전도사들도 때로는 절망하고 낙심할 수 있을 텐데 그 때 누구도 주님처럼 손을 내밀지 않으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하나님!
부디 저희들에게 손을 내미시사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갖게 하시고,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도록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담대하고 따뜻한 마음을 주셔서 세상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외면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전도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삶의 모든 영역과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항상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1] NIV적용주석, 695.
[2] 하우주석, 316-7.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