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씨름할 상대는?

하나님의 전신갑주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8 views
Notes
Transcript
서론 : 여러분 명량이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일본의 수군을 이긴 사건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승리는 정확한 적군의 숫자를 파악하고, 지형과 지리를 이용하여 이긴 승리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수군의 능력 또한 파악하여 최대한의 공격력을 올려 승리하였습니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이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언제나 영적인 싸움을 맞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단은 언제나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우리를 공격합니다.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은 우리의 마음을 뒤 흔들고 사람을 미워하게하고,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싸울 상대가 아닌데 싸우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이 싸움에서 누가, 어떻게 왜 우리를 공격했는지 적을 모르고 서로 싸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까닭이 없는 미움과 싸움으로 서로의 마음에 있는 평안이 깨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패배는 적을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고, 적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패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은 싸움이 있습니까? 겉으로는 평안해 보이지만 서로 싸우는 집안이 있고, 서로 위하는 듯 보이지만 경쟁하며 뒤에서는 칼을 품는 직장이 있습니다. 친구 사이에도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헐뜯습니다. 이러한 싸움의 원인은 야고보서를 보면 “너희가 싸우는 것은 너희의 욕심 때문이라”고 말하듯이 우리의 죄성으로 인한 결과가 주된 원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죄성을 이용해서 싸움과 씨름을 만드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고 준비하여 영적인 전쟁과 씨름을 승리로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본론 : 오늘 에베소서에서 바울 사도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 영적인 전투를 할 준비를 갖추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준비해라가 아닌, 싸우는 상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 상대가 누구라고 말씀하고 있죠? 바로 마귀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영적인 존재와의 싸움입니다. 오늘 본문은 11-12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오늘 본문은 우리가 씨름해야 할 영적인 존재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바로 통치자들과 권세들,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로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강한 순서대로 나열한 듯 보입니다. 오늘은 이 세 가지 영적으로 싸움을 걸어오는 존재들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우리는 이러한 공격에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지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적용 : 우리의 삶에 이해할 수 없게 다가오는 시험과 싸움, 가정 안에서-직장 안에서-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찾아오는 시험에 혈과 육으로 이 싸움을 대하는 것이 아닌 이 것이 영적인 싸움임을 깨달아 악한 영들을 대하듯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 싸움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1) 먼저 이러한 영적인 싸움을 가장 또렷하게 싸운 인물을 중심으로 이 존재들을 비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시험이 공관복음에 414에 나오죠. 예수님을 시험했던 이 시험과 에베소서의 시험하는 마귀의 종류가 잘 대비가 됩니다.
첫 번째 마귀의 간계는 하늘에 있는 악의 영입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제일 먼저 공격한 것이 욕구였습니다. 가장 굶주리고, 힘든 시기에 예수님에게 다가가 돌덩이를 떡덩이로 만들어 먹으라고 한 것이죠. 사단은 가장 하나님의 자녀를 욕구로 시험합니다. 욕구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식용과 수면욕, 여러 가지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해질 때 탐하는 욕심이 될 때가 문제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라 하듯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게 하고 더 많은 것으로 하나님이 아닌 더 좋은 것으로 채우려 하는 욕심이 우리에게 찾아 왔을 때 마귀의 간계임을 깨닫고 우리는 겸비하게 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악의 영은 에베소서에 살펴보면 이 세상의 풍조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죄를 짓게 만드는 영이라 볼 수 있습니다. 풍조는 사람들이 따르는 유행이라고 볼 수 있는데, 동성애와 여럿 문란한 죄악들이 이제는 죄가 되지 않고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즐기고 쾌락으로 채우는 그 모습에 우리도 빠져들어 갈 때 우리는 영적인 씨름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서로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끊어지지 않을 때도 악한 영의 시험임을 깨닫고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닌 영적인 싸움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의 마귀의 간계는 바로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산위로 올라가서 천하만국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이 세상의 주관자이며, 자신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신 분에게 이 말을 함이 너무 우습기는 하지만, 인간으로 삶을 사시는 예수님에게는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모든 것을 얻는 방법은 바로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얻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길을 걸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마귀의 시험은 고난을 피하고, 천하만국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간계였습니다. 바로 마귀는 성도들에게 고난을 피하고 쉬운 길을 가도록 유혹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고난의 길을 걸으며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포기하고 쉽게 가기를 유혹한다는 것이죠.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과 주님의 말씀을 잠시만 등지면 더 많이 벌고, 더 쉽게 누리는 이 길의 유혹이 다가올 때 우리는 영적인 전투를 준비하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 마귀의 간계는 통치자들과 권세입니다. 마귀는 성전 꼭대기로 가서 예수님보고 떨어져 보라고 시험합니다. 그러면 천사가 와서 구해줄 것이라 말하죠. 이 시험은 하나님보다 앞서는 마음을 가져다주는 시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는 마음이 오는 시험이고, 하나님보다 높아져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것입니다.
에스겔 28장에 보면 이 세상의 통치권자인, 강대한 왕 두로 왕에게 에스겔이 말합니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 하나같이 이 세상의 통치자와 권세자들이 되면, 자신의 능력으로 이 모든 것을 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헤롯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여 벌레가 먹어 죽었다고 말씀하며, 이 세상의 많은 정치가들도 자신의 능력으로 이러한 영광을 만들어 냈다며 자신의 공적을 찬양합니다. 이러한 시험은 너무나도 교묘해서 알아차리기 힘이 듭니다. 교역자들도 사역이 잘되거나 기쁨이 넘치는 날이 오면 내가 잘해서 오늘 이런거라고 마음이 들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간계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러한 마음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 우리에게 아낌없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기보다 자신의 능력으로 이룸을 더 뿌듯해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지 않고 이제는 자신의 방법으로 사업을 이끌어나가는 시험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보다 높아진 마음이 찾아 올 때, 우리는 이러한 시험 또한 영적인 싸움으로 여겨 자신을 겸비하게 세워야 할 것입니다.
적용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영적인 전투 앞에 우리는 무력합니다. 사단에 대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싸우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데, 그러기 전 우리는 기본인 십자가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십자가이며, 죄와 사망을 이기신 곳이 십자가이며, 예수님을 따르려면 반드시 져야 하는 것이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러므로 날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죄의 문제, 시험의 문제를 십자가 앞으로 가져가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를 질수록 짐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를 가져다주며,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내가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살았음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세 가지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심으로 유일한 존재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십자가로 인해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죄의 문제로 아무리 사단이 우리를 시험하여도/그 어떠한 시험에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십자가입니다. 사단이 나에게 주는 여러 가지 간계와 시험에 나는 유혹을 받을 수 있지만 내가 죄에 대해 죽었듯이 유혹과 시험 앞에 나를 죽이는 십자가입니다.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이 말씀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과 기쁨이 더 큼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듯이, 내가 남을 위해 지는 십자가입니다. 가정 가운데, 직장 가운데, 교회와 구역, 부서에서 연약하고 고난당하는 자를 위해 지는 십자가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의 성도들은 아직 부활의 믿음에 이르지 아니한 성도들을 위해 함께 고난을 당하고 부활의 믿음에 이르도록 환난을 당했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에 감당키 힘든 시험과 씨름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이 싸움을 혈과 육의 문제로 해결하려 하지 마시고, 영적인 싸움임을 자각하여 주님께로 나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으며, 예수님처럼 시험에 이길 수 없습니다. 나를 부인하는 방법은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내가 죽었음을 확인하고, 나를 날마다 부인하는 방법이 가장 잘 이기는 방법입니다. 무엇보다 나에게 보내주신 이를 위해 함께 십자가를 지고, 함께 고난을 당해 승리하는 성도가 됩시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