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선택한 그 길

종려주일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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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 나무는 영어로 palm tree입니다. 그래서 종려주일은 영어로 palm sunday 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의 가지를 흔들며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한 날이 오늘날도 하면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시간으로 그 주간에 십자가를 지시는 d-day를 향해 걸어가신 것입니다.
오늘은 종려나무를 흔들며 예수님을 맞이했던 그 본문을 함께 나누며 십자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으신 수난주간의 시작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가장 먼저는 그 주님을 맞이하는 불쌍한 인간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1. 때로는 먼지 처럼 가벼운 것이 인간입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호산나는 “지금 구원하소서" 라는 뜻입니다.
종려나무 가지는 아무때나 드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기원전 167년에 이스라엘 백성이 수리아를 물리치고 성전을 회복한 것을 기념하여 수전절(하누카) 절기를 지키게 되었는데 그 때 부터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오늘날의 이스라엘 화폐에도 종려나무가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런 종려나무를 흔들며 예수님을 환영한것입니다.
며칠 후면 ,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칠 사람들입니다.
“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라는 한 소설의 제목처럼, 이런 인간들의 모습이 한 없이 가벼워 보입니다.
시편 1: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psalm 1:4 The wicked are not so, but are like mchaff that the wind drives away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존재가 인간 아니겠습니까?
1년동안 예배드릴 처소를 주십사 기도해서 이번에 나가게 되는데, 감사보다는 답답함과 고민이 더 많으니, 저를 보면서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기준에 조금만 좋은 것 같으면 하늘을 날아갈 듯 하다가
또 조금만 힘든게 나타나면 금방 막 힘들어 하는 모습. 그게 바로 제 모습입니다.
어떻게 하면, 좀 묵직하게 견고한 신앙을 가질수 있을까요? 누가 뭐라 그래도, 제대로 선하게 평강가운데 살수 있을까요?
적용) 하나님께 붙잡혀 있어야 합니다. 성령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내 의식의 흐름대로, 걱정했다가 기분좋았다가, 하는게 아닌것이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게을리하면 안됩니다.
그런가 하면,
2. 주님은 세상의왕과는 다른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순례를 온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종려나무가지' 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면서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를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갑자기 ‘어린 나귀'를 보고 타셨습니다.
왕은 전통적으로 가장 좋은 말을 타지, 나귀를 타지 않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스가랴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Zech 9:9 Rejoice greatly, O daughter of Zion! Shout aloud, O daughter of Jerusalem! Behold, your king is coming to you; righteous and having salvation is he, humble and mounted on a donkey, on a colt, the foal of a donkey.
의 말씀을 성취시키시기 위해 나귀를 타셨습니다.
광주소명교회 , 박대영 목사님은
“ 무리의 환호에 화답하시려면 사실 예수님은 말을 타고 입성하셔야 옳습니다. 그런데 나귀를 타셨다는 것은 그들의 환호를 수납하시면서도 자신은 그들이 기대하는 왕이 아니라는 것을 완고하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의 환호에 들뜨지 않으셨습니다. 아마 그 때에 큰 군마를 타셨다면 환호소리가 더 커졌을 것입니다. 그게 세상왕의 방식입니다.
성경에서 나귀는 겸손함과 평화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며 이러한 ‘상징성'을 모르셨을리가 없고, 스가랴서의 말씀의 예언도 성취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나라가 로마의 군마를 탄 왕이 다르시는 군림하는 나라가 아니라, 겸손과 평화가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 오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예수님의 의도를 이해할수 없어서 웃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용납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무런 고민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항상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통에 맞는가? 이것이 관습에 맞는가가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평강과 겸손을 반영하는가? 를 물어야 합니다.
독일의 순교자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이 세상의 교회는 십자가 아래 있는 교회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는 교회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라고 할 정도로 세상과 달라야 함을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길을 따르는 제자들이라면,
높아지는 것이 아닌 낮아지는 것에 진심이어야 합니다.
바울도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사도행전 20:35 (NKRV)
35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그런면에서 저는 우리교회에 이런 모습을 기대합니다.
저를 포함한 리더들은 더욱 섬기는 자들이 되고, 교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여러분들이 더욱 교회에 더 많이 involve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새로운교회의 새예배처소와 관련하여, 여러분들이 교회를 어떻게 섬기실지를 고민하십시오. 어떻게 참여하실지를 고민하십시오.
예배와 관련하여, 방송, 인터넷, 홈페이지, 찬양, ppt, 의자 정리, 청소, 장식, 안내, 전기, 페인트, 베이비 시터, 전화받기 등등.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일들이 또 몇몇 사람들에 의해 도맡아 지는 것은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창한 비전과 순종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스스로 어떤 정체성으로 오셨는지를 말입니다.
3. 주님의 뜻을 이해해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삶에서 한절 한절 깨닫기 전까지, 성경의 수많은 내용들은 단순한 정보일 뿐입니다.
내가 살아내지 못한,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지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눈 앞에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도 당시의 군중들과 특별히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 조차도 이 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요12: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John 12:16 His disciples did not understand these things at first, but when Jesus was glorified, then they remembered that these things had been written about him and had been done to him.
눅18: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Luke 18:34 But they understood none of these things. This saying was hidden from them, and they did not grasp what was said.
먼지처럼 깃털처럼,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께 자신이 묶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행 20: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Act 20:22 And now, behold, I am going to Jerusalem, constrained by the Spirit, not knowing what will happen to me there,
이 구절은 사도 바울이 왜 하나님이 예루살렘으로 이끌고 가는지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자신을 강하게 예루살렘으로 이끄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순종하기로 선택합니다. 물론 어떤 자세한 일들인지는 다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서 알게 되겠지요.
제자들은 종려나무와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관계성을 이후,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그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 다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그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내 삶이 그 뜻을 반영해 내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을 반영해 내야 합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기도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예배 처소를 마련하여 가는 그곳에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가는 교회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수 있을까요?
또한, 몇가지. 그곳에 교회 전용 주차장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 조금 일찍 오셔야 할겁니다. 걷기에 아주 좋은 분위기의 장소이지만, 자칫하면 예배에 늦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의 멤버입니다. 준비된 예배에 참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예배를 준비하고, 참여하고, 마무리하는 것을 함께 해야 할것입니다.
자꾸 거창하게 예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그렇게 해보십시오.
결론)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셨습니다. 깃털 처럼 가벼운 환호를 이전에도 경험하셨지만, 이번에는 거부하지 않으십니다.
이제 그 사랑을 완성할 때 즉, 십자가를 지실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선택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 주님의 십자가 선택 안에서 그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 입니다.
이번 주간 예수님이 왜 그 길을 선택하셨는지를 깊이, 그리고 가까이 깨닫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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