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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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2장 13-53장 3절
S1. 환영과 인사
S1. 환영과 인사
반갑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인내하며 삽시다’하고 인사 나누십시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은 종려주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 날입니다. 종려주일이라함은 예수님께서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하고 예수님을 환영한 것을 두고 말합니다. 호산나는 아람어로는 ‘만세’, 혹은 ‘찬양합니다’라는 말인데, 원래 이 말은 히브리어의 ‘구원’이라는 뜻에서 유래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호쉬아나’라는 원래 구약의 언어를 잊어버리고 거기에서 변용된 아람어 호산나를 그대로 사용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그날을 기념하여 종려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종려주일은 주님의 고난을 상징하는 날입니다. 겉으로는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환영하여 ‘만세’를 불렀지만, 이들은 곧 태도를 바꾸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일을 행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십자가에서의 죽음의 길을 걸어가셔야 했던 분이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 예언된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함께 묵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S2. 본문의 주제
S2. 본문의 주제
우리 사람들은 종종 성공을 꿈꾸며 큰 영광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도록 교육하고 훈련받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대학 시절에는 자동차 엔진이나 로보트 공학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기술 발전을 통한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 저의 큰 꿈이었습니다. 보통의 우리는 이러한 영광의 꿈을 존중하고 칭찬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오늘 선지자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실 여호와의 종, 이스라엘의 구원자는 고난의 종이 될 것을 알려 주십니다.
이사야 52장 14절
14.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선지자는 여호와의 종의 외모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는 다른 사람에 비해 너무 상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놀랬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오실 메시야의 모습은 나라들과 왕들을 놀라게 만들어 그 입을 봉하고 아무 말도 못하게 했습니다. 15절 말씀을 봅시다.
이사야 52장 15절
15.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분명 13절에서 시작할 때 여호와의 종은 높이 들여 지극히 존귀한 자가 되실 분이었습니다. 13절을 볼까요?
이사야 52장 13절
13.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그런데, 이 높이 들려 존귀하게 되실 메시야는 나라들을 놀라게 하고 왕들은 너무 놀라 입을 봉할 정도로 심한 고난을 받아 무너지고 깨어진 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아직 이들에게 전파되지 않은 비밀들을 이들이 듣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누구나 예수님은 존귀한 메시야로 영광을 받으실 분이지 결코 고난과 질고를 지게 되실 분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S3. 문제 제기
S3. 문제 제기
사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메시야에게 고난이 있으며 복음을 순종하고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박해와 혼란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가 되었고, 지금부터는 하늘의 복을 누리고 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세상에도 교회가 이름을 내고, 그 이름으로 이 땅을 선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 고난이라니? 고통이라니? 어떻게 복음을 믿고 창조주 하나님을 따르고 사는 데 낮아지고 박해받는 고난이 있단 말인가? 하고 질문하게 되는 것입니다.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방법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방법
그러나 이러한 모든 질문은 이 땅에서의 현세적 성공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타락의 문제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CS 루이스의 환타지 소설인 나니아 연대기 1권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는 마녀에게 떡 하나 받아먹고 그녀의 종이 된 에드먼드의 죄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그를 사망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는 나니아 세계의 유일한 왕인 사자 아슬란이 대신 잡혀 죽음으로 그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인간은 죄의 문제를 가볍게 다루려 하고, 죄와 관련된 하나님의 심판이 언제나 과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러한 깊은 죄와 타락에 빠진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을 결코 쉽고 가볍게 대하지 않으십니다.
1741년 미국의 1차 대각성 운동을 시작했던 조나단 에드워드는 ‘진노하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이라는 설교를 통해 복음이 아니면 결코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는 죄인들이 살아날 길이 없다고 역설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가 없다면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의 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거두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여 그 길을 걸어가셨고, 오늘 종려주일을 통해 교회는 그 은혜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신인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고난의 종이 되심으로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진노를 사랑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은혜를 행하신 것입니다.
J2. 예수님의 신성
J2. 예수님의 신성
예수님은 하나님의 두번째 위격으로 우리의 구원을 오신 메시야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신성에서 동일하신 본질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분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이 본성으로 존재하시고, 또한 죽음을 이기시는 창조주의 능력이 있으십니다. 죄인인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사망을 이기는 힘이 있어야 하고, 죄를 이기는 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는 바로 이 생명과 의가 충만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람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셔야 죄인을 위해 대신 죽으실 수 있으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만 우리를 위해 계시지 않으시고, 사람을 입으신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께서는 신성과 인성이 함께 하는 놀라운 아들의 위격을 가지신 중보자가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심으로 인류를 대표하실 수 있으셨고, 하나님이시기에 사망의 권세를 파괴하고 부활의 생명을 가질 수 있는 분이 되셨던 것입니다.
J3. 예수님의 인성
J3. 예수님의 인성
이 예수님이 사람을 입고 이 땅에서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구원이 임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고난의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사야 53장 1절 말씀을 봅시다.
이사야 53장 1절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도대체 누가 우리가 듣고 전하는 이 말씀을 믿을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팔, 곧 권능이 어떻게 이렇게 나타날 수가 있는가? 하고 선지자는 고백합니다. 이 말씀은 아무도 선지자의 말씀을 믿을 수 없고, 하나님의 구원의 권능이 이렇게 연약한 인간에게 나타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고난당하시는 메시야 안에서 어떻게 우리가 구원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고난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능력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2, 3절의 예수님의 모습을 같이 봅시다.
이사야 53장 2, 3절
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람들은 연약하고 멸시와 고난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며, 심지어 선지자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그로 인한 타락을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당하시는 이 낮아지심과 받으신 고난을 겪게 하시며 우리의 모든 악과 저주를 거두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야말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신 은혜의 길인 것입니다.
W1. 우리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성도를 구원하십니다.
W1. 우리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성도를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부끄러움과 수치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으로 성도를 구원하신 은은혜의 길입니다. 주님은 고난받으시면서 결코 자신을 연민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 고난이야말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진노하심 앞에 서 있는 연약한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한 섬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인 우리는 주님의 고난을 통해 우리 자신의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죄가 나를 얼마나 파괴했고, 하나님 앞에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있는지, 나 자신을 연민하고 나를 위해 울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3장 27, 28절을 봅시다.
누가복음 23장 27, 28절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슬피 우는 여자의 무리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는 우리와 우리 자녀의 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두고 가슴을 치고 통곡해야 합니다. 내 죄를 위해 하늘의 하나님이 죽음의 고난을 겪으셔야만 해결이 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그냥 그 아들의 고난을 내 고난으로 믿고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W2. 고난은 또한 성도의 이름표이기도 합니다.
W2. 고난은 또한 성도의 이름표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의 삶은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함께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이런 전제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4절을 봅시다.
요한복음 17장 14절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미움을 받고 복음이신 예수님과 같은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성도의 이름표입니다. 구약 성경에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은 오실 메시야 예수님을 증거하는 특별한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과 신앙적 사건은 오실 예수님의 무한하신 모습을 우리에게 계시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냥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구약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측면 중에서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인물과 사건들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예언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의 경우, 에서는 세상적으로 보면 언제나 성공적인 삶을 살지만, 야곱의 경우는 고난과 실패가 많이기록되어 있습니다. 형을 속이고 아버지의 복을 가로챘다고는 하지만 그의 인생은 결코 형을 이길 수 없는 연약함에서 시작했고, 차남의 불리한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이후로 일마다 때마다 그는 이용당하고 실패하며 고난의 순간순간을 보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택함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시고 그에게 그리스도 예수님의 삶을 증거토록 하셨고, 또한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연단하시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다른 많은 이름과 함께 고난의 이름표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성도인 우리 모두의 이름표입니다.
W3.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성도를 구원하시고, 고난의 자녀로 불러 주셨습니다.
W3.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성도를 구원하시고, 고난의 자녀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은 그리스도를 닮은 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 곧 성령님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들의 이름도 성령님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의 부으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 예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로서의 사역은 십자가의 고난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에도 고난이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고난의 타는 불 속에 던져져야 했습니다. 우상에 절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왕의 명령을 어기고 불에 던져짐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불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 다아 남아 놀라우신 하나님을 증거했고, 그들의 소명을 감당했습니다. 어쩌면 그때 천국으로 가는 것이 그들에게 더 큰 복이었겠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고난을 증거하기 위해 그들은 불에서 건짐을 받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T1. 선지자는 오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증거했습니다.
T1. 선지자는 오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 증거를 믿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자신도 오해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기적과 이적을 행하실 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시자 제자들부터 다 도망가고 예수님을 홀로 남겨 두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부활 이야기가 나오니까 예루살렘을 떠나 혼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했습니다. 이런 그들을 주님이 찾아오셔서 고난의 메시야를 알려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25-27절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구약 성경에서부터 그리스도는 이미 고난을 받고 영광으로 나아가실 것이 예언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난을 회피하고 고난받는 종을 거부한 것입니다. 제자들도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T2.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은 고난보다는 복지와 행복을 추구하고 삽니다.
T2.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은 고난보다는 복지와 행복을 추구하고 삽니다.
물론 현대인들의 이런 가치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천국의 복지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주님은 그 나라의 영광으로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분명 고난을 거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일반적인 원리도, 영적인 원리가 아니라도 우리에게는 고난이 영광의 길임을 알만한 증거들이 많습니다. No Cross, No Crown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고난을 회피하거나 고난 앞에서 떨지 않아야 합니다.
T3. 성도의 삶에도 고난이 있고, 고난이야말로 우리 성도의 영광의 길입니다.
T3. 성도의 삶에도 고난이 있고, 고난이야말로 우리 성도의 영광의 길입니다.
믿음의 길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길에 고난이 없기를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과 저의 삶에도 고난이라는 여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이야말로 성도를 영광으로 인도하는 소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에서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께서 그 앞의 기쁨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영광을 위해 고난을 인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되고 영원한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고난이 우리의 삶에 낯선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미움을 받고, 때로는 가족에게도 무시를 당하고, 배척을 받기도 합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이런저런 불이익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우리의 삶을 위축하거나 그래서, 도피하는 삶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고난은 성도가 하나님의 참 자녀된 증거이고 흔적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의 흔적을 교회와 복음을 위해 받는 고난으로 자기 몸에 새겼다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7절을 봅시다.
갈라디아 6장 17절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삶에 있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영광을 소망하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삶을 가져야 합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는 내 삶에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을 인내하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은 신앙을 위해 학교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직장에서, 일터에서 복음으로 인해 차별받을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말씀대로 살기 위해 내 감정과 내 생각을 내려놓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우리 가정이 혹은 내가 더 손해 볼 수 있다고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회복과 영광을 향해 나아가는 길입니다.
이번 한 주는 고난 주간을 앞두고 특별 기도회를 가집니다. 새벽에, 저녁에 함께 모여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이로 인해 우리에게 주신 회복의 은혜들이 무엇인지를 소망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손해 보아도, 세상에서 고난을 경험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회복과 영광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 우리 모두는 내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놀라운 구원과 하나님 백성의 놀라운 새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마음으로 고난을 결단하고 주님이 주시는 영광을 소망하여 고난으로 예수님을 증거하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