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배신한 사람들

요한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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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배척과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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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대적합니다.

예전에 일때문에 만났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기독교의 진리에 관하여 알고 싶었는지 여러가지를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라는 것은 틀렸음을 증명하려고 물어보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잡아 온 대제사장 안나스 역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묻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John 18:19 NKRV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왜 대제사장 안나스가 예수님에게 그 교훈을 물어보았을까요? 예수님으로 부터 무엇인가 배우려고 물어 보았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John 18:20–21 NKRV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예수님은 안나스가 물어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 헛점을 찾아 내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목적에서 물어 보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예수님에 관하여, 교회에 관하여 관심이 있는 것처럼 물어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궁금해서라기보다, 기독교는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혀서 물어 보는 것입니다. 특히 소위 말하는 이단들이 그러합니다. 그들은 기존의 교회가 잘 못되었다는 강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교회 다니는 사람을 찾아 교리에 대해 신앙에 대해 꼬치꼬치 묻습니다. 그들의 의도는 배우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기존 기독교는 틀리고 자신들의 신앙이 맞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회에 대해, 신앙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을 가장 견제 하십시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와 보라" 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전환문> 또 예수님을 사람들은 이렇게 대적합니다.

2. 세상사람들은 신앙을 냉소적으로 무시하며 예수님을 대적합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이 아마도 교회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에게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총독 빌라도 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재판해 달라고 자신에게 데려 왔을 때, 그는 자신이 재판하기는 불필요한 일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문제는 유대인들 사이의 문제이지, 로마제국과 관련이 없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들의 사사사로운 문제는 너희들끼리 해결하라고 말합니다.
3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John 18:31 NKRV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빌리도는 예수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습니다. 또 자신의 통치 지역에서 일어나는 유대인들 그들만에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강하게 재판해서 예수를 죽여달라고 요청하자 어쩔 수 없이 재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매우 성의없이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3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John 18:33 NKRV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빌라도가 의례 하듯이 질문합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 질문은 당시 로마로 부터 독립하려고 반란을 일으킨 죄수들에게 묻는 의례적인 질문입니다. 당시 유월절이 되면, 여러 사람들이 자신이 메시야라고 주장하고, 즉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 자칭하고 독립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은 그러한 테러범들을 잡아 반란죄로 십자가 형을 내렸습니다. 빌라도가 십자가 형 정도 내리려면, 예수가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써 반란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John 18:37 NKRV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예수님은 이 세상의 왕이 아니라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온 왕이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진리의 왕이라는 말입니다. 빌라도가 듣기로는 엉뚱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미친 놈이 한명 들어왔구나 정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완전히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진리 라는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38절에서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부터 아무런 대답도 듣지 않고 심문을 마칩니다. 여기서 “진리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은 진리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정도의 뉘앙스의 말입니다. “진리? 그게 뭔데?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그냥 예수님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고 무시하는 말입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나, 진리에 대해서 매우 무관심합니다.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예수님에 대해서 열변을 토해도 “너나 열심히 잘 믿으세요"라는 반응을 얻는 것입니다.
<전환문> 그런데, 이러한 진리에 무관심한 사람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예수님을 대적합니다.

3.신앙이 있는 우리들도 예수님을 대적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대제사장으로 부터 은 30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 넘긴 사람입니다. 그가 오늘 본문에서 로마군인들과 대제사장의 하수인들을 데리고 기드론 시냇가로 왔습니다.
2절과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John 18:2–3 NKRV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12명의 제자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는 3년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러한 그가 자신의 스승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배신 했습니다.
왜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했을까요? 이에 관하여 여러 해석이 있으나 우리가 읽는 요한복음에는 그 가룟유다는 돈을 사랑하는 즉, 돈 욕심이 많아서 예수님을 배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절에서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John 12:4–6 NKRV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한복음에서는 가룟유다는 돈괘를 맡았는데, 그 돈을 훔쳐가는 도둑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따랐던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서 돈 벌이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더 이상 돈 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자 급기야 예수님을 돈을 받고 팔아 넘긴 것입니다.
오늘 날도 수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예수님을 배신합니다. 교회를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소망하기 보다, 예수님을 하나의 자판기처럼 생각해서 나에게 물질과 부를 가져다 주는 어떤 신 정도로 여깁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부자가 될까요? 예수님께 기도하면, 하는 사업이 잘 될까요? 주식이 팍팍 올라갈까요? 부동산 투자가 잘 될까요? 물론 잘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지금 현세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지금 잘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습니다. 꼭, 일이 안될 때만 예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면, 예수님을 떠납니다. 아니 더 돈이 생기는 곳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교회를 비난합니다. “교회 다녀봐야 아무런 소용 없어"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가룟유다와 같이 “차리라 나지 않았으면 좋을” 그러한 배신자 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만 예수님을 배신 했을까요? 아닙니다. 소위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 했습니다. 그것도 닭이 울기 전에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John 18:17 NKRV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베드로는 문지키는 여종이 “너는 예수님의 제자 맞지?” 라고 하자 “아니야!”라고 부인합니다. 이것은 첫번째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입니다.
25절과 26절을 연속해서 두번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입니다.
John 18:25–26 NKRV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왜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 했을 까요? 그는 예수님이 잡혀 가시는 순간 예수님을 지키려고 칼을 빼서 호위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소위 적군의 심장까지 따라 들어가 예수님의 옆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심지어 이전에 그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겠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13장 3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John 13:37 NKRV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이랬던 자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절대 변하지 않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가 칼을 빼들고, 또 예수님이 잡혀간 그 위험한 적진까지 따라 들어갔지만, 자신이 불리하거나 이득이 없다고 판단 될때에는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제일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나도 신앙적인 사람입니다. 너무 열정적으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완벽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연약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예수님이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이 내 삶에서 불편하거나 불이익이 되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우리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모른다고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가룟유다처럼,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연약한 사람임을 알고 계십니까?
<전환문>
John 18:20–21 NLT
Jesus replied, “Everyone knows what I teach. I have preached regularly in the synagogues and the Temple, where the people gather. I have not spoken in secret. Why are you asking me this question? Ask those who heard me. They know what I said.”
John 18:20–21 RSV
Jesus answered him, “I have spoken openly to the world; I have always taught in synagogues and in the temple, where all Jews come together; I have said nothing secretly. Why do you ask me? Ask those who have heard me, what I said to them; they know what I said.”

4. 결론

지금까지 오늘 본문에 살펴 본대로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 부터 대적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 조차도 순간순간 예수님을 대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우리들과 매우 다릅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세상 사람들로 부터 대적을 받을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제자들로부터 배신을 당할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러한 세상사람들을 원망하기 보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17장의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줍니다. 예수님 18장에서 곧 잡혀서 19장에서 갖은 고문을 당하시고 고통스러운 십자가 형벌을 받고 죽임을 당하시기 전, 예수님은 자신을 대적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기 혈안이 된 사람을 위해서 지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무시하고 냉소적으로 비아냥 거리는 사람을 지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자신을 배신한 제자도 역시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들로부터 대적당하고 배신 당하지만, 우리를 원망하시지도, 책망하시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묵묵히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오늘 부터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고난 주간입니다. 그리고 다음주 4월 4일은 부활절입니다. 한 주동안 이러한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묵상하고 그 분의 고난에 동참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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