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부활전

누가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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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이 부활에 있습니다.

[서론]
여러분은 죽음을 두려워하시나요?
아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가 별로 없죠?
저는 20, 30대때에는 정말 너무 건강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40대가 되고 나니깐 몸에 한 둘씩 고장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죽음이 엄습해 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몸에 어떤 건강 이상신호가 오면 혹시나 이게 큰 병의 싸인인가 싶어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다른 말로 말해서 죽음에 점점 가까이 간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랑 아내랑 하는 소리가 있어요.
누군가 건강에 위험신호같은 게 오면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 먼저 죽어도 결혼하면 안돼 혼자살어 뭐 이런 이야기,,,아니면 나 죽을 때 같이 죽어...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우리가 장례식장을 가면 죽음에 대한 간접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분명 며칠전에 보았던 분인데 갑자기 죽는 사람을 보게 될 경우 정말 허망하고 혼란스럽죠.
죽음이 정말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잠시나마 깨닫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코로나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이 적지만 엊그제 뉴스를 보니 브라질은 매우 심각하더라구요.
사람을 묻을 곳이 없어서 오래전에 죽은 사람을 다시 무덤에서 빼고 금방 죽은 사람을 묻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루에 몇 천명씩 죽으니까 자기 가족, 친구, 옆집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니까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런데 만약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죽음을 뒤엎는 반전이야기가 바로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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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1]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난 후 일어난 일에 대한 것입니다.
앞서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산헤드린 공의회 사람이 예수님의 시신을 빌라도에게 받아서 자신이 사놓은 무덤에 장사지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향품과 향료를 사용해서 장사지내려 했습니다.
그녀들은 예수님을 향한 마음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신 날 이후 곧바로 안식일이 시작되어 바로 행동하지 못하고 안식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안식일이 금요일 저녁 6시-토요일 저녁6시까지니깐 그 후 여인들은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들은 그 다음날 새벽, 즉 일요일 새벽에 자신들이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에 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이 치워져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놀라서 그 안에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신도 사라져 없었습니다.
여인들이 어쩔줄 몰라하고 있을 때 천사 둘이 나타나 예수님을 왜 여기서 찾느냐며 물었습니다.
여기는 죽은 자들만 묻히는 곳인데 왜 살아계신 분을 여기서 찾느냐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이 예고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합니다.
그제서야 여인들은 예수님이 전에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는 이 모든 사실을 예수님의 열 한 제자들과 다른 이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제자들 조차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말도 안되는 미친 소리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말을 듣고는 무덤으로 달려가 살펴보았습니다.
정말로 그 곳에는 시신을 감았던 삼베만 놓여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그는 이상히 여기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이 부활 이야기의 대략적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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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2]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3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왜 부활의 첫번째 증인이 여인들이었나 하는 점입니다.
당시 문화에서 여인들은 법적 증언 능력이 없었습니다.
여자들의 사회적 위치가 너무나 낮았기 때문에 증인으로서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성경은 부활의 첫번째 증인을 여자들로 삼았을까요?
만약에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더 잘 믿게 하려 했다면 여자들이 아닌 아리마대 요셉이나 학식과 지위가 있는 남자들을 증인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거짓말할리가 없다고 사람들이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증인으로 여자들을 선택하신 것은 여자들이 소문을 빨리 내기 때문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 여자들이 본 게 사실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적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처음 부분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첫번째 목격자들이 누구였나요?
바로 목자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목자들은 소외되고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이 어마어마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가장 먼저 전해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의 마지막에 등장하고 있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도 바로 여자들입니다.
어떤 여자들입니까?
이름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첫번째 이름이 등장하는 막달라 마리아가 누구인가요?
성경에서 그녀는 일곱귀신이 들렸다가 치유받은 여인입니다.
귀신들렸던 여자라면 그녀 말에 더욱 신빙성이 떨어질 텐데 놀랍게도 세명의 여인중 첫번째 부활의 증인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당시 어느 누구도 제대로 이름을 불러주지 않던 그런 여인들인데 성경에서 그들은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 세 여인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한 게 보잘것 없는 시작같지만 이후 기독교 복음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있는 것도 이 세 여인이 처음 부활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작고 미약하게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위대한 일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목자들, 여인들을 통해 이 위대한 일의 시작을 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선한 일이 작고 보잘것 없는 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작은 일을 통해 위대한 일을 시작하십니다.
19세기에 미국에서 수많은 대학생들이 전 세계 선교사로 파송된 때가 있었습니다.
그 처음 시작은 4명의 대학생들이 건초더미에 모여서 기도한 것이었습니다.
그 기도회가 커져 전국 대학으로 이어졌고, 수많은 대학생들이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우리나라까지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같은 최초의 선교사님들이 올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우리나라에 수많은 대학교와 병원, 교회들을 세우셨습니다.
두번째는 이러한 예수님의 부활을 빈 무덤이 증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9세기 계몽주의 학자중 다비드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라는 학자는 부활이 신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단군신화 이야기 알죠?
쑥과 마늘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신화라고 말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또한 루돌프 불트만이라는 학자는 부활은 그냥 제자들의 주관적인 경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제자들 마음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부활은 결코 신화가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 정신의 부활 이런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사실은 가장 강력한 부활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증명하기 위한 많은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핵심은 부활인데 그 부활이 거짓이라면 기독교의 믿음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런 시도들이 성공했을까요?
아마 성공했다면 기독교는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결국 사라졌을 것입니다.
지금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합니다.
이걸 시비걸거나 태클 걸기에는 너무나 많은 증거들이 있어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장하는 대표적인 것이 2가지 있습니다.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렇다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도둑질 했다는 것 아니면 예수님이 실제로는 죽지 않았다는 것, 이 두가지입니다.
먼저 첫번째 주장으로 누군가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질 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제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럼 결국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는 말인데 그런 거짓말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가장 중요하게 전한 게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그들이 만약 스스로를 속이면서 부활을 전했다면 자신의 목숨까지 버려가며 전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게 진실이 아니라면 자기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두번째 주장은 예수님이 죽으신 게 아니라 기절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지 않았는데 무덤에 가둬놔 다시 정신차리고 도망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죽음을 연구한 의학자,과학자들에 따르면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실제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물과 피를 쏟으셨다는 성경의 증언이 말이 안됩니다.
십자가 처형을 받은 자들은 마지막에 로마군인이 살았는 지 죽었는 지 확인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둘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설령 예수님이 죽지 않으셨더라도 심각한 부상상태에서 그 무덤을 빠져나오셨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가장 신경썼던 게 예수님의 부활 소문이 퍼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문으로 백성들이 또다시 동요한다면 자신들이 예수님을 죽인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에 두 명의 로마군인까지 배치했습니다.
동굴은 1000킬로가 넘는 바위로 입구를 막았고, 봉인을 했습니다.
그 봉인을 제거한 자는 죽임을 당하기 때문에 절대 제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시체를 도둑질한다거나 무덤에서 도망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 그러면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사실과 잘못된 주장들을 우리가 모두 반박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모두 믿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제자들의 모습을 한번 보겠습니다.
세번째 우리가 봐야할 점은 제자들이 믿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왜 제자들은 여인들이 전한 부활을 믿지 않았을까요?
그 당시 여자들의 말이 증언의 효과가 없었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무덤에 달려가 예수님의 빈무덤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상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합니다.
왜 제자들은 믿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를 여인들과 비교해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실제 본 게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것은 천사들이 그들에게 해 준 말 때문이었습니다.
천사들이 뭐라고 했나요?
천사들은 너희들이 들었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었던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여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지 않았지만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부활은 여러가지 증거를 다 보여준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는 역사다라는 실제 스토리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있습니다.
넷플릭스에 있으니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기자입니다.
미스테리 살인 사건을 파헤칠 정도로 매우 뛰어난 추리력을 가진 기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 부인이 어떤 계기로 교회를 다니게 된 겁니다.
그 후로 자꾸 남편을 전도하려고 하는거죠.
그때부터 부부간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어떻게든 자기 아내를 다시 돌이키려고 그는 예수님에 대한 조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가장 걸렸던 문제가 예수님의 부활이었어요.
그것만 거짓으로 증명하면 자기 아내가 돌아올 거라 믿고 열심히 조사합니다.
그래서 저명한 의학자, 법학자, 과학자, 심리학자 다 만납니다.
결국 모든 자료를 모아 몇날 며칠을 분석하면서 결론을 내립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객관적 결론은 어떻게 부활이 일어난 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부활이 일어났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해서 그가 그럼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괴로워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기자인데 자료가 말해주는 데로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죠.
결국 그는 아무리 확실한 자료가 있어도 믿거나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밖에 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다행히도 나중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수없이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아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증거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믿음의 문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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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기독교에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마치 번데기가 나비가 되지 못하고 멈춰버린 것과 같을 것입니다.
부활은 역사적 팩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느냐 못믿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부활이 중요한 이유는 그 부활이 예수님의 모든 기적과 삶, 말씀을 모두 진리로 결론내려 주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십자가로 인해 우리를 구원해주셨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영수증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지적인 동의가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제가 대학시절 어떤 직업을 선택할까 고민하다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결정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한 2년 빡세게 공부하는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다가 부활이 사실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성경의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나를 만드시고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분명히 있으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뜻에 맞춰 살아가는 삶이 가장 의미있는 삶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선 더이상 세상이 요구하는 삶, 주변 사람들이 요구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선한 일들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 일들을 하다가 실패하거나 넘어져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게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마치 패자부활전이 있다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막판 뒤집기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다카포 식구들이 이런 하나님의 패자부활전을 믿고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다가 패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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