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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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9일 새벽기도
찬송가 : 505장 온 세상 위하여 나 복음 전하리
본문 : 에스더 9장 17-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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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크게 두 그룹이 잔치를 베풀어 즐긴 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두 그룹은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과 ‘수산에 사는 유다인’인데, 수산 성 밖에 살고 있는 유다인들은 17절을 보면 아달월 십사일에 쉬며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수산 성 안에 살고 있는 유다인들은 18절에 아달월 십오일에 쉬며 이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수산 성 안에 있는 유다인들과 성 밖에 있는 유다인들이 서로 잔치를 즐긴 날짜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이렇게 잔치를 즐기는 날을 지키라고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을 향해 글을 보내고 있습니다. 멀고 가까이 사는 것과 관계없이 규례를 세워서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에 이 잔치를 지키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날이 유다인들이 대적에서 벗어난 날이며,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어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고 합니다.
유다인들은 이미 자기들이 시작한 대로, 그리고 모르드개가 보낸 글대로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에 잔치를 베풀며 이 날을 부림일이라고 정합니다.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유다인들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감으로 하만 자신이 준비한 나무에 달려 죽고 말았습니다. 유다인의 무리는 이 부르, 제비뽑기의 이름을 따서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자기들과 자손들이 해마다 정해놓은 이 두 날, 부림일을 지켜 계속해서 기념하도록 합니다.
결국 부림절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페르시아 전역에 사는 유다인이 진멸당할 위기에 처했는데 이 위기가 면해졌다는 것입니다. 슬픔이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페르시아에 남아있는 유다인들, 성전을 건축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페르시아에 남아있는 이 유대인들을 향해서도 이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대에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학개와 스가랴 뿐 아니라 느헤미야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가운데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을 재건하는 유대인들 가운데 함께하시는 역사를 볼 수 있지만,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함께하시는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에스더서 안에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것 또한 이러한 의미로 에스더서에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데 하나님이 이들과 함께하시는가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서에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서도, 페르시아에 남아있는 이 유대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림절, 슬픔이 기쁨이 된 날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읽는 우리는 에스더서, 부림절의 말씀을 볼 때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페르시아에 남아있는 유대인들을 지키신 것과 같이 이 세상을 다스릴 뿐 아니라 택하신 우리들까지도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만의 꾀에 의해 그들이 생명이 죽을 뻔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인도하셔서 유대인들의 생명을 건질 뿐 아니라 도리어 그들의 생명을 빼앗으려 한 하만을 심판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사망과 죄악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해 죽게 하심으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생명과 기쁨과 화평 가운데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으로 살도록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부림절에 기뻐하였던 것보다 더 큰 기쁨, 말할 수 없는 기쁨, 영원한 생명 가운데 우리가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들은 참된 소망을 가지고, 이미 이긴 승리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 악한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3장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우리 곁에 부당하고 악한 자들이 있는데 이들에게서 건져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기도문에 나오는 것처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와 같은 내용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한 영이신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지만 우리 가운데 있는 옛 본성, 썩어질 몸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의 본성이 우리를 악한 유혹과 시험 가운데, 우리 곁에 있는 악한 모습, 세상을 위해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유혹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혹 가운데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미쁘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직한 분, 그의 약속을 지키시고 우리를 악에서 지키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러한 악한 시험 가운데 빠지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살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곁에는 얼마나 유혹되는 것이 많습니까? 가정과 사회 생활 속에서 세상이 말하는 명예와 아름다움이 우리를 얼마나 유혹하는지 모릅니다. 그러한 유혹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께 기도해야 합니다. 미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굳건하게 하셔서 악에는 미련하고 선한데는 지혜롭게 하여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은혜를 날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에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하고 잔치를 베풀었지만 우리들은 매 주일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 말씀을 기억하며 이 말씀을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고 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셔서 우리가 매일매일 아버지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이루도록, 유혹에 빠지지 않고 굳건하게 살도록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우리에게 크나큰 기쁨이요, 생명이요, 의와 평강과 희락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는 미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오늘도 성령 하나님과 함께 아버지의 나라를 이루어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