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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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1일 새벽기도
찬송가 :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본문 : 사사기 17장 1-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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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장부터 16장까지는 여호수아 이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셨던 하나님을 버리고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다른 이방 민족에 의해 넘겨짐을 당하였고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이가 바알이나 다른 신들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제 17장부터는 사사기의 부록과 같은 것으로 당시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의 타락과 얼마나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사사기 17장은 에브라임 산지의 미가라는 사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미가의 이름은 ‘누가 과연 하나님과 같은가?’라는 뜻으로, 이름만 보면 마치 신실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큰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작 미가는 어떤 자였습니까? 자기 어머니의 재산을 몰래 도둑질한 자였습니다. 더군다나 도둑질한 재산이 은 천백 세겔로 일하는 자가 적게는 30년 많게는 100년 동안 일해야 얻을 수 있는 큰 돈이었습니다. 그 돈을 처음에는 잠자코 몰래 가지고 있다가 자기 어머니가 도둑질한 자를 저주한 후에야 그 저주가 너무나 두려워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17장 2절에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미가의 어머니가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복 받기를 원한다고 말할 때 마치 이 미가의 어머니가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여길 수 있으나 이것은 철저하게 당시의 이방 신에게 맹세하던 방식을 따라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신에게 맹세할 때 잘못되게 맹세하였거나 그것을 되돌리고 싶을 때, 그 신의 이름으로 맹세를 번복하거나 그보다 더 큰 신의 이름으로 복을 내리면 전의 맹세가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이방신의 풍습을 가지고서 여호와 하나님을 이름을 부르며 행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부르지만 다른 신과 섞인 혼합적인 신앙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그 어머니가 신상을 만들었다는 것에서 더욱 잘 보여줍니다. 분명히 출애굽기 20장에서, 신명기 5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의 내용을 기록하여 우상을 새기지 말라고 명백히 기록해놓았으나 미가의 어머니는 가나안의 다른 신들처럼 은 200세겔로 신상을 만들어 그것을 미가의 집에 두었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혼합적인 신앙, 가나안의 신과 하나님을 섞은 신앙은 그 아들의 집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5절에 보면 미가에게 신당이 있다고 말하는데, 원어상으로 보면 이것은 ‘벧 엘로힘’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처럼 미가는 자신의 집에 하나님의 집을 만들고 제사장이 입던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어 마치 이방신을 섬기듯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를 두고 하나님의 평가는 무엇입니까? 6절입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러한 미가의 신앙은 유다 베들레헴에서 온 레위인에 의해서 더욱 난잡해집니다. 베들레헴을 떠난 레위인은 에브라임 산지의 미가의 집에 이르게 되는데 미가는 이 사람이 레위인이라는 것을 알자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기를 구합니다. 당시에 아버지라는 것은 단순히 혈연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스승이자 가르치는 자를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미가는 아마도 이러한 의미로 레위인이 자신을 가르치는 자가 되기를 구한 것 같습니다. 레위인은 해마다 주는 은 10세겔과 옷, 먹을 것, 거주할 곳을 얻자 만족하여 미가의 집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점차 이 관계가 어떻게 변질됩니까?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어달라고 했던 미가는 이 레위인을 자신의 아들과 같이 대합니다. 또한 이 레위인도 미가가 자신을 아들처럼 대하자 그것으로 인해서 만족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미가의 집을 위한 제사장이 되고 대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미가는 레위인을 자신의 집의 제사장으로 삼고 나서 말합니다.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미가의 이러한 모든 행위들을 요약하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부르나 그 속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과연 하나님과 같은가?’라는 이름을 가진 미가가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방신을 하나님과 섞어서 자신의 집을 위한 제사장을 만들고, 하나님의 집을 만들어 그곳에서 자신에게 복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성막 같이 제사장을 만들었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신의 복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순전히 자신의 복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나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하나님의 집을 만들고 에봇과 드라빔을 두었으나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를 세웠으나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호세아 6:6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에봇과 드라빔, 제사장이 있으면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까? 집에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제단을 만들어놓으면 복을 받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 때 복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의 복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참 복되신 그 분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우리의 거룩한 삶으로 그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되지 않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습니다. 시편 29편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우리는 삼위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미가와 같이 이방 사람들의 모습과 섞인 모습이 아닙니다. 말씀의 기준 앞에 하나님께서 기뻐 받기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대의 교회 모습은 어떻습니까? 기복주의, 물질 만능주의, 돈이면 다 되고 교회 다니는 것이 결국 복 받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미가의 모습과 무엇이 다릅니까? 비록 하나님을 말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보다 자신이 받을 복이 더 중요하고 크고 높은 건물을 가졌지만 참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세대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데살로니가전서 2장 12절입니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그분의 나라를 생각하며 그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답게 살라고 말합니다. 사사 시대의 미가의 집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친 백성답게,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자처럼 살라고 합니다. 오늘 하루도 아버지의 영광과 나라를 위해 합당하게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