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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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9일 새벽기도
찬송가 :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본문 : 욥기 34장 16-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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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욥에 대한 하나님과 사탄의 인식]
계속해서 우리는 욥의 고난에 대해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욥기의 서론에서 우리가 살펴보듯이, 하나님과 사탄이 욥을 두고 대화를 합니다. 하나님은 욥에 대해 의롭고 경건한 자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사탄은 욥이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준 복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사탄은 욥이 가진 것을 빼앗아버리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에 대해 허락을 하십니다. 만일 욥이 하나님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버리면 사탄이 이기는 셈이며, 욥이 끝까지 하나님에 대해 인내하고 참고 견디면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 이기시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욥의 세 친구들은 계속해서 욥과 변론하고 그 뒤를 이어 젊은 엘리후가 욥에 대해 비판과 비난을 합니다. 세 친구와 엘리후는 계속해서 욥이 의롭지 않아서,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고난을 받는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엘리후의 말도 그러한 내용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정의 : 엘리후]
엘리후는 욥기 34장 10-15절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다룹니다. 엘리후는 하나님께 대하여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않으시며,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며, 공의를 굽히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그 공의의 하나님께서 이 땅을 다스리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을 정하시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육체가 다 죽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만큼 엘리후는 하나님의 정의와 다스림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정의 심화 : 하나님 앞에 악함은 심판받는다.]
엘리후는 이렇게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며 공의로우시다는 것을 전제로 한 뒤에 그것을 역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정의를 미워하시는 분이라면 어찌 다스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정의롭고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정의 앞에 왕도 무용지물이고 지도자들도 악하며, 고위 관리들도, 부자들도 낯을 세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다 지으셨기 때문이며, 지으셨기 때문에 이들의 악함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악함 때문에 그들은 한밤중에 순식간에 죽으며, 백성들은 떨면서 사라지고, 세력이 있는 자도 사람의 손 없이도 제거를 당하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공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해 반박할 수 없다 : 하나님은 다 아시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엘리후는 21절부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고,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악을 행하는 사람은 숨을만한 곳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악한 자들을 사람들의 눈 앞에서 치시는데, 사람들은 이 악한 사람의 악한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하나님이 왜 침묵하시는가? 왜 얼굴을 숨기시는지 반박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악에 대해 동일하게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엘리후 말의 요약]
결국 오늘 엘리후가 말하는 내용을 요약하면 무엇이라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또한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이기 때문에 악한 자들, 왕과 권세자들과 부자들을 심판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심판을 받는 자들은 악을 저지른 자들이며, 엘리후가 이야기하는 욥 또한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심판을 받는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욥은 의인인가 악인인가?]
엘리후의 말을 들어보면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와 악을 미워하시는 분이시며,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걸음과 생각을 감찰하시며 그 모든 것들을 살펴보시고 하나도 빠짐없이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들을 잃고 아내가 떠나가고 몸의 질환을 겪는 욥도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일까요?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사람들 앞에서 욥이 심판받게 하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욥기 42장에 가면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에 대해 분노하시며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왜 찾아오는가?]
우리는 고난에 대해 생각할 때, 이 고난이 우리가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왜 나에게 이러한 고통과 시련과 어려움이 찾아왔는가? 특별히 이것은 교회에 처음 온 초신자보다, 신앙생활을 오래한 신자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교회 생활과 이웃 사랑도 잘 하였는데 왜 나에게 이러한 참을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주시는가? 왜 나에게 욥과 같이 자녀를 잃으며, 재산을 잃으며, 사랑하는 이를 잃는 고통을 겪게 하시는가하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문제를 잘 생각해 볼 때 주의해야 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고난이 나의 잘못과 악 때문에 오는 것인가?입니다.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삶]
우리가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고난이 찾아오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의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악을 행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채찍을 맞으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악도 없으시나, 우리를 교회의 신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도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그 말씀을 따라살 때 고난이 없었습니까? 야고보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의 사도들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 권세자들에게 핍박을 받아 죽었습니다. 구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을 인도할 때, 끊임없는 모략과 반대를 받았으며 선지자들도 고난 가운데, 마음의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주님을 믿는 가운데 받는 고난과 오래참음, 인내를 견디라고 합니다. 야고보서 5장 10절에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 고난은 함께하는 것입니다.
[고난 뒤에 소망이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고난을 받을 때 우리는 말로 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겪습니다. 자녀를 잃고, 사랑하는 이를 잃는 고통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다시 만날 재림의 날을 기다리며 참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의 소망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에게 생명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다시 영원히 살아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받은 고난과 절망, 인내를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가장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주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아시고, 또한 우리의 고통스러운 환경 가운데 함께하셔서 우리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위에 살아갑시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약속 위에 살아갑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지켜주겠다 약속하신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려주셨으니, 우리가 주를 위해 받는 고난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가정을 책임지어 주시고, 우리가 주를 위해 죽음을 당한다 하더라도 주께서 약속하신 그 복을 주실 것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난 가운데 그 약속을 지키시며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도 주를 위해 고난 받으며 살아갈 우리들은 이 하루도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금 되새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처한 환경에 대해 주님께 기도하며 주님께서 이 삶을 책임져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우리의 받은 사명, 주님을 증거하는 일에 충성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