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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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2일 새벽기도
찬송가 :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본문 : 욥기 31장 24-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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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1장에 나타난 오늘의 본문은 세 친구에 대한 욥의 마지막 변론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크게 2가지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자 합니다.
첫째로 위에 계신 하나님을 진실하게 경배하는 것입니다.
욥은 24절부터 27절까지 계속해서 ‘만일’이라는 말, 히브리어로 ‘임’을 반복해서 쓰고 있습니다. 만일 나의 소망을 금에다가 둔다면, 그리고 그 금에게 너는 나의 소망이라고 한다면, 만일 재물의 풍성함으로 내가 기뻐하였다면, 그리고 손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면, 만일 해의 빛과 달의 빛을 보고 움직였다면, 그리고 내 마음이 유혹되고 내 손에 입맞춘다면. 이처럼 계속해서 만일 내가 무엇을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28절에서 말합니다. 만일 이러한 것을 한다면 이것은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며,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요약하면 이것은 재물과 자연에 대한 숭배입니다. 재물에 소망을 두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요, 자연을 숭배하는 것 또한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라 합니다. 이것의 요약은 무엇입니까?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입니다. 십계명의 1계명과 2계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욥은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결국 욥 자신이 하나님을 속이는 것, 우상 숭배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욥은 세 친구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그 마지막 답변으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우상 숭배의 죄를 짓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러한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떳떳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속일 수 없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이 진실하고 떳떳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욥은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욥을 향하여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탄 또한 욥이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욥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하나 욥에게서 빼앗아가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욥은 이러한 상황 가운데, 자녀들이 죽고 그 아내가 떠나가는 상황에서조차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자신의 태어난 날을 저주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욥의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욥은 자신의 재산이 많고 부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녀들이 혹시나 부지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을까 번제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19장에서 재물이 많은 청년을 만나셨을 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시면서 낙타가 바늘귀를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유념을 해야 합니다. 우상 숭배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재물, 돈입니다. 바알과 아세라가 이 재물의 풍족함과 관련되어 있었고, 맘몬 또한 돈과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혹은 교회를 다니면 부딪치는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돈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가장 깊숙한 곳을 들어다 보면 사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한 문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서 이러한 재물이 다른 형제를 돕는 것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돈과 재물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재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 많은 청년이 자신의 재산을 염려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위에 계신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며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속이고, 능멸하고, 모욕하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재물에 우리의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주이시며, 하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시편 42편은 계속해서 무엇이라 말합니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우리의 소망이시요, 구주이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그의 자녀로 부름받은 우리의 바른 태도인 것입니다.
둘째로, 옆에 있는 이웃을 헌신되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머지 본문에서도 ‘만약’이라는 표현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29절부터 만약 내가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고 그의 재난을 즐거워하였는가? 장막에 거하는 사람들, 나그네, 이웃에 대한 악행, 이웃에 대한 계약에 대한 부분들이 등장합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40절에 가시나무와 독보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의 요약은 무엇입니까 바로 5계명부터 10계명까지 이르는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입니다. ‘너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인 셈입니다.
욥은 여기서도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았고, 그의 재난과 악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장막 사람들에게 고기를 배부르게 먹였으며, 나그네가 거리에서 자지 않도록 행인에게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십계명에서 말하는 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하지 말라, 하지 말라에서 이웃 사랑의 측면, 미워하는 사람의 멸망과 고통을 기뻐하지 않았고, 집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고기를 배부르게 먹였으며, 나그네가 길거리에서 잠을 자지 않도록 초청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웃 사랑의 진정한 측면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일을 하셨습니까? 우리가 모든 죄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을 떠나 도무지 하나님을 알 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그의 뜻을 떠나 살며,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없을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직접 성육신 하시어 우리의 죄를 대신 받으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며,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또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의를 전가해주셔서 우리를 의롭다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공로나 노력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웃 사랑의 뜻입니다.
우리는 이 이웃 사랑,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이 사랑을 우리의 곁에 있는 이웃에게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에게 비치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의 사랑을 드러내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의 곁에 있는 자들을 헌신되어 사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따라 끝까지 순종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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