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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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일 새벽기도
찬송가 : 170장 내 주님은 살아계셔
본문 : 욥기 20장 1-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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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에 대해 다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욥기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바로 고난입니다. 성도에게 닥치는 고난, 그리스도와 교회에게 일어나는 고난이 바로 욥기에서 말하는 바입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우리에게 임했을 때 우리는 이 욥기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욥기는 우리가 고난에 처해있을 때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를 믿도록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참된 지혜입니다. 하지만 욥기를 읽기에는 약간의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바로 욥과 친구들의 변론입니다. 욥기에는 욥의 친구들,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등장하면서 욥에 대해 다양한 비난과 충고와 조언을 합니다. 이러한 논쟁들이 우리가 욥기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도록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 42장에 나옵니다. 42:7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엘리바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욥의 친구들에 대해서 화를 내십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잘못된 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욥은 어떻게 대답합니까? 42:6에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 회개하나이다” 하나님을 대면하게 된 욥은 자신의 성급한 불평과 하나님께 대한 요구들을 용서해달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욥기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욥기, 세 친구와 욥의 말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배울 수 있습니다. 단순히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찾아라가 아니라 세 친구와 욥과의 대화 가운데 다양한 사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20장은 바로 소발의 말입니다. 소발의 말은 욥의 말 다음에 나오는 말입니다. 19장 21절을 보면 욥이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친구들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지 않고 도리어 욥에게서 죄의 원인을 찾으려 하니 욥은 그 친구들을 향해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너희는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친구들이 말한 것에 대해 심판을 받을 것이라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소발이 2절과 3절 특별히 3절에 ‘내가 나를 부끄럽게 하는 책망을 들었으므로 나의 슬기로운 마음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는구나’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욥의 질책, 너희들이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니 소발이 그 말을 듣고 초조하여 욥에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소발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악인들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그러면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악인의 존귀함이 하늘에 닿고 그 머리가 구름에 미칠지라도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 말합니다. 그가 어디에 있느냐 하고 꿈과 같다고 하고 밤에 보이는 환상이요, 다시는 그를 보지 못할 것이라 말합니다. 즉 다시 말해 악인들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소발은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욥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욥 네가 알지 않냐? 사람이 생긴 때로부터 악한 사람들은 다 사라져왔다. 그러니 너도 이와 같이 계속 악한 곳에 거하면 너 또한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소발의 말을 잘못된 말일까요? 아닙니다. 악인은 결국 사라질 것이다라고 하는 소발의 말은 맞습니다. 참으로 악인들은 바람의 나는 겨와 같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악인들은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고 반드시 망하는 길입니다. 악인들은 소망이 없고 오직 의인, 그리스도의 의를 받은 자만이 소망이 있습니다. 시편 39편 6-7절입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의인들은 악인들과 달리 참된 소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발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잘못된 일반화입니다. 악인들은 사라지고 그 길이 패망의 길인데, 욥 또한 고난의 길 가족과 재산이 다 사라진 패망의 길을 가고 있으니 욥이 악인이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가지고 우리에게 권고할 말씀을 2가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고난 받는 것이 악한 것에서 비롯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욥이 왜 고난을 받습니까? 사탄이 여호와 하나님께 상정했기 때문입니다. 욥기 2장 3절을 보면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라고 합니다. 욥의 고난 받는 이유가 욥이 악해서가 아니라 사탄이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충동질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발은 어떻게 말합니까? 욥이 악한 일을 저질러서 그가 그러한 고난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와 한 몸 된 자들이 좋지 않은 형편과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그것이 성도의 악함 때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고난이 악함 때문에 올까요? 우리의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무죄함 가운데 고난과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고난과 어려움은 참으로 신비로운 것이라서 이러한 시험 받음을 도리어 성화의 방편으로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대교리문답은 주기도문의 시험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95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시험을 받게 된다면, 우리를 자기 영으로 강력히 붙드심으로 시험의 때에도 든든히 서게 하시고, 혹 넘어지더라도 거기서 다시 일어나 회복되게 하셔서 그 시험 받음을 도리어 성화의 방편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시기를 기도하고, 우리의 성화와 구원이 온전하게 되며, 사탄이 우리 발아래에 짓밟히게 되고, 우리가 영원히 죄와 시험과 모든 악에서 완전하게 자유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 곁의 지체가 고난을 받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고 회복시켜 주셔서 모든 시험에서 자유하기를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악한 것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소발의 말과 같이 악한 것은 모두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들은 이렇게 사라지는 것, 없어지는 것들에 대해 많은 욕심을 갖습니다. 이런 것들이 5절에도 나오듯이 경건하지 못한 자의 잠깐의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것들을 할 때 우리는 약간의 희열과 기쁨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그 악행에 대해 심판을 받아 그 잘못한 것들에 대해 후회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사라지는 것, 악한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영영한 것, 존귀한 것들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1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이 믿음의 소망이 우리의 자랑이요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을 받기 전의 우리들의 사욕과 악한 것에 대한 관심을 끊고 우리를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가 받는 고난에 대하여 함께 기도합시다. 그리고 로마서의 말씀처럼 선한 데는 지혜롭고 악한 데는 미련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염광교회가 한 몸이 되어 서로의 아픔에 함께 울어주고 그리스도의 순결함을 따라 거룩하게 살아가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정결한 신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