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부활 (33-49, 73-74문)

Jooahn Kim
제네바 신앙교육서 해설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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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Luke 15:22–24 NKRV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서론

지난 주

우리는 지난 주 요한복음 15:13 의 말씀, 그러니까
John 15:13 NKRV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얼굴을 어떤 모양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드러내셨는가? 했을 때, 바로 죽음의 모습으로 드러내셨다라는 것입니다.
그 모습은 마치 구약에서 그려지는 모습으로 “아사셀의 염소"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사셀의 염소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광야를 향해 버려지는 존재,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진 채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였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사셀의 염소의 모습은 바로 사람이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그 모습과 연결되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신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셔야 했던 이유는 바로 경이롭고 아름다운 그 희생의 죽음이 드러내는 사랑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시고, 아사셀의 염소와 같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시는 그 모습을 통해서 경이롭고 아름다운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왜 예수님은 하나님의 얼굴을 굳이 죽지 않고 드러내실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왜 굳이 죽음으로 드러내셔야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통 없이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기쁨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함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즉, 고통과 기쁨의 관계는 서로 떨어지지 않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고통이 있어야 우리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고, 우리가 기쁨을 만끽한다는 것은 곧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 고통이 없다면, 슬픔이 없다면, 어둠이 없다면, 이 세상은 행복도 없고, 기쁨도 없으며, 빛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둠을 통해서 빛이 있음을 느끼고, 슬픔과 고통을 통해서 기쁨이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셨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은 바로 오늘 본문을 통해 가장 경이롭고 아름다운 그 하나님의 얼굴, 완성되어진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에게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본론

본문 살피기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이야기이고, 제가 한번 설교했던 적이 있는 본문으로, 바로 돌아온 탕자 이야기 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 해당합니다.
Luke 15:22–24 NKRV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돌아온 탕자 이야기의 결말은 아들이 모든 것을 다 잃고 나서 아버지의 종이 되어야 겠다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탕자를 본 아버지는 멀리서 부터 신도 신지않은채로 달려와 아들을 끌어 안으며 자신을 종으로 삼아달라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오늘 본문을 말한다라는 것입니다.
먼저,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합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와서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주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는 또 종들에게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서 우리가 먹고 마시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메시지를 던지는데, 그것은 바로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얻었다는 것입니다.

포인트 : 아버지가 기준이다.

지금 아버지는 자신을 떠났다가 돌아온 아들을 향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라고 표현하고,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다라고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따르면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는 것은 곧 죽게 되는 것이고, 잃어 버림을 당하게 되는 것으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아들이 자신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보고, 아버지를 떠난 자신의 모습이 비참한 상태에 있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아들은 그제서야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자신의 비참함 속에서 떠올린 아버지, 그 아버지가 없이는 자신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때에야 아버지를 향해 돌이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돌이켜 아버지의 품 속으로 아들이 향하여 갈 때, 그 아들은 아버지에게 다시 찾은자가 되고, 살아난 자가 된다는 것이죠.
바로, 오늘 본문에서 아들의 존재는 아버지로부터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를 떠난 아들은 죽은자, 파괴된 자, 사라진 자가 되는 반면, 아버지의 품 속으로 돌아온 아들은 산자, 찾은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들이 다시 생명을 얻기 위해서 가야 할 곳은 바로 아버지의 품이다라는 것이죠.
오늘 본문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면 죽은자요, 잃어버림 당한 자이지만,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면 살아난자, 다시 얻어진자 즉 찾은자라는 것입니다.
바로 아버지를 기준으로 생명과 존재가 결정된다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의미 : 나와 하나님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품에 어떻게 거할 것인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우리는 죽은자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핵심 : 예수님의 부활과 그 결과

우리는 지 지난주 부터 지난주 까지 하나님의 얼굴을 드러내신 예수님에 대해 살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얼굴을 어떤 모습으로 드러내셨는가?라고 했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얼굴,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셨다는 사실을 살폈습니다.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사랑,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그 사랑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드러내셨다라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그 절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어떻게 거할 것인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께 붙어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에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부활을 통해서 드러내신 하나님의 얼굴이 가져다 주는 유익이 바로 우리를 하나님의 품 속에 거하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전서 1:3-4 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1 Peter 1:3–4 NKRV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드러내신 하나님의 얼굴, 그러니까 그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유익은 바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살아있는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이어가게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우리가 유업 그러니까 가업을 이어주고, 이어가야 할 사이가 된다는 것은 곧 우리가 하나님과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형성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드러난 하나님의 얼굴은 바로 아버지의 모습, 부모님의 모습이다라는 것이죠.

본문 적용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죽은 자가 되고, 하나님의 품에 거할 때 우리는 살아있는 자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가능하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가는 자들 즉, 하나님의 아들이 됨으로 인하여 우리는 요한복음 20:31 이 말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John 20:31 NKRV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오늘 본문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죽은자와 같은 인생에서 살아있는 자와 같은 인생을 누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도바울의 회심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얼굴, 그러니까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갈 자로서의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것입니다.
옛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안 하던 행동을 했을 때, 우리가 할 것이라 예상되지 못했던 일, 아침부터 일어나서 공부하거나, 혹은 친구들이 연락와서 놀자는 그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공부할 때, 우리 부모님들 혹은 우리 주변 사람들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말은 그만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했다라는 말로 사람이 바뀌는 것이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이라는 의미를 드러내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어렵고 어려운 사람의 인생을 한 순간에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드러내신 하나님의 얼굴이 바로 이러한 힘을 지니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형성되는 순간 우리의 인생이 바뀐다라는 것이죠.
성경은 이토록 놀라운 힘을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보여줍니다.
그는 바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쳤던 사울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며,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앞장서며 예수님으로 인하여 갖은 고문과 핍박을 당하는 바울의 인생으로 바뀌었던 사도 바울의 인생입니다.
그리고 사울을 바울로 바꾸었던 그 힘이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임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 가고 계신다라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되었다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떠났을 때, 죽은자, 잃어버림을 당한자였다면, 아들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왔을 때, 그 아들은 산자, 찾아진자 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품 속에 있을 때,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저주했던 사울이 오히려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핍박 받으며, 저주 받기를 자청했던 바울로 바꾸었던 힘입니다.
바로, 그 힘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임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을 바꾸어 가시는 그 힘, 그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있든지, 우리의 인생을 바꾸실 그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그 하나님의 얼굴을 드러내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시고, 그 부활의 기쁨으로 충만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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