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떠나가신 예수님

정사 예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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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일 정사 예배 설교문
요한복음 19장 17-30절

S1. 환영과 인사

네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렇게 수난 예배를 기억하고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우리 주님의 은혜와 위로가 성령님 안에서 풍성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이 시간에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사랑 안에서 충만하세요’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고 자합니다. 한 주간 우리는 고난 주간을 통해 고난 당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회복의 은혜들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으로의 부르심을 가져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옛 어둠에 살던 어둠의 것들을 다 풀고 우리 속에서 떠나 보내십니다. 엉어리지고 감추어진 모든 아픔들은 주님의 빛 아래에서 이제 더 이상 나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던 딱딱하고 굳은 견고한 진들도 주신 십자가의 고난 안에서 다 녹아지고 풀어집니다. 우리의 가정도 묵은 모든 죄악들과 견고한 진들, 귀신과 악의 도전과 불행의 고통 속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은 고난의 죽으심 이후에 성령님을 교회에 보내시고 중생과 그 은헤를 실제적으로 부어주심으로 우리 성도들이 세상을 이기고 복음과 천국을 구하고 전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놀라우신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감사의 삶을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S2. 본문 주제 제시

그런데 이러한 크고도 놀라운 은혜는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시고, 중생의 은혜와 이를 체험케 하시면서 주신 그 모든 하늘의 은사들과 능력들은 모두가 주님의 죽으심의 고난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이야말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는 은혜의 근원이며, 성령님을 통해 중생하는 새 길을 여신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마음에 기억하고 그 죽으심의 은혜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새로움을 감사하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그것을 행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S3. 문제제기

물론 어떤 이들은 하나님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우리에게도 고난이라는 이름표를 주시는 것에 대해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지난 주일에 살폈던 대로 세상이나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었던 유대인들마저도 고난당하시는 메시야를 받아들 일 수 없어 그들도 예수님을 부인했었습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의 마음에 유쾌하지 않을뿐더러 주님을 닮아 나도 고난당한다는 사실은 신앙생활에 큰 걸림돌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 안에서 우리의 깊은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가면 갈수록 우리의 그 큰 죄의 값을 지신 예수님의 사랑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아무런 의도 없는 인간이 그저 내가 자유의지 가지고 바로 살면 되지 하는 그런 말을 믿거나 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다른 길도 열어 놓으셨면 왜 예수님을 죽게 하셨겠습니까? 사람이 결심하면 되는 정도의 일이었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결심시키시지 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까? 사람만 똑똑하고 하나님은 무지하신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고난당하시는 예수님을 거부하고 복음이 아니라 자신의 종교를 만들고 있기때문에 고난은 거절되고 복음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참 진리는 오직 죽으신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J1. 하나님의 심정과 속성, 그리고 방법

하나님은 우리의 죄의 심각함을 아시기에 예수님을 분명히 죽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죽으셨는지 정확하게 보여 주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로마의 십자가 형을 통해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죽으셨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의 파송을 받은 총독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사마리아와 유대의 총독으로 파견이 되었으나 팔레스틴 전체를 다스리는 로마의 고위 행정 관리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죄없다고 주장했는데도 유대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심지어 자기들에게는 하나님이 아니라 로마의 황제 외에는 아무 왕이 없다고 우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민중 봉기의 정치적 압박 속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도록 총독의 허락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가 한 일은 예수님 십자가 위에 팻 말을 써서 예수님이 유대의 왕이었다고 선언하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우리 본문 19절 말씀을 봅시다.
요한복음 19장 19절
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빌라도는 이 과정에서도 유대인들의 저항을 받기는 했지만, 그는 분명히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로마에 대항한 정치인들이나 악질적인 노예들에게나 집행하던 십자가 형으로 죽게 했습니다. 교회가 고백하는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주님이 고난 당하셨다는 사도신경의 고백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죽음의 길을 가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확정합니다. 악랄한 악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죽으실 수 있겠느냐? 그냥 죽으신 척 하신 것이라고 사람들을 속이고 거짓 이설들을 주장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이루어진 공적 일이었을 분명히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J2. 예수님의 신성

그리고 예수님은 죽으시기 전에 성경을 다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예언의 말씀들을 마지막까지 성취하시고 죽으셨던 것입니다. 로마의 군인들은 예수님의 겉옷을 취하여 나누어 가지고 속옷은 제비로 결정하여 가져갑니다. 이것은 시편 22편에 나타난 정확한 메시야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시편 22편 18절을 봅시다.
시편 22편 18절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또한 예수님은 드시지 않으실 신포도주를 요청하시듯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 내가 목마르다고 외치십니다. 28, 29절을 봅시다.
요한복음 19장 28, 29절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님의 이 말씀은 특별히 시편 69편 21절에 예언된 말씀을 이루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같이 볼까요?
시편 69편 21절
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의 모든 순간이 결코 우연이, 아무런 뜻없이 지신 고난이 아님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실 메시야, 구원자 하나님으로서 그렇게 고난을 받으셨고, 죽음의 길을 걸어 가신 것입니다.

J3. 예수님의 인성

이처럼 자신에 대한 모든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옮겨가십니다.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은 이제 한계의 시간에 죽음을 겪으십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죽음을 정확하게 기술합니다. 19장 30절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묘사하는 요한의 기록에 유의하게 됩니다. 우리 말에는 주어로 나타나 있는 영혼은 실제 원어 본문에서 보면 목적어로 나타납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때가 되자 머리를 기울이시고, 자신의 영혼을 ‘넘겨주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파라디도미’라는 동사는 ‘hand over’, 혹은 ‘give up’이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죽음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이 자신의 영, 곧 ‘프뉴마’를 넘겨 주셨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록을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은 분명히 아버지의 뜻에 마지막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자발적인 의지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께 온 마음을 다하여 순종하심으로 죽으신 것입니다. 빌라도의 선언도, 유대인들의 간계도 예수님을 죽인 직접적인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자신의 선택에 의한 죽으심을 통해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생명을 잃으실 수 없는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의 죽음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W1. 이처럼 예수님은 성경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시며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죽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왜 예수님께서 죽음을 택하시는가? 하늘 군대를 동원하여서라도 체포를 피하시고 안전을 누리셔야지 어떻게 죽음을 걸어가시는가? 하고 불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의 모든 심판을 대신 받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체포되는 그 순간에도 제자들의 안전을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8장 6-8절 말씀을 봅시다.
요한복음 18장 6-8절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예수님이 처음 ‘내가 그’라고 하실 때 군인들은 물러가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이것은 뒤로 나자빠졌다고 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엎드려졌다’는 ‘핖토’라는 단어는 한 층에서 다른 층으로 떨어지는 말합니다. 뒤로 떨어졌으니 나자빠지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이 권능을 자신의 안전을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안전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삶을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에게 주신 사람들, 자기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놓으신 것입니다.

W2. 십자가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수고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가 고난인 것을 아셨지만 이 고난의 길을 자의로 선택하시고 마지막 순간에는 죽음을 통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독특하게도 ‘사랑’을 ‘수고’라고 표현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장 3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 봅시다.
데살로니가 전서 1장 3절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여기에 보면 바울은 사랑이 수고라고 말합니다. 수고하지 않고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수고를 감내하심을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증거해 주신 것입니다.

W3. 우리 하나님은 성도인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사랑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최고로 의로우시고 완전하신 예수님을 통해 사랑받고 의로운 백성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하나님의 의의 백성으로 인정하시는 은혜입니다. 성도는 십자가를 통해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는 자들이 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순종을 내 순종으로 여겨주시고, 나는 순종하지 못해도 그 순종으로 나를 이미 자녀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 아버지의 인정받는 아들과 딸들이 된 것입니다.

T1.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무수한 죄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는 은혜의 능력이었습니다.

독일 종교 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죄인인 우리를 의의 백성으로 인쳐주신다는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진리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가시밭길 같은 고난의 길을 걸어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존 칼빈은 우상숭배의 게으름과 무지에 빠져 적당하게 신앙 생활하던 어느날 하나님께서 갑작스럽게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고 그를 악에서 건지셨다고 고백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의 복음이야말로 적당하게 살던 이 지성인을 변화시켜 온 땅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알리는 개혁의 일군으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T2. 안타깝게도 오늘 세상은

십자가보다는 돈으로, 고난보다는 영광으로 높낮이를 결정하고 사랑과 인정의 깊이를 재기도 합니다. 세상은 십자가가 아니라 영광을 소망하고 낮아짐이 아니라 높아짐만을 자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의 영원한 구세주가 되셨고 이로 인해 아버지의 택하신 모든 자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사랑을 누리게 된다고 성경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0절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우리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온전해 지셨습니다. 고난을 통해 성도와 하나가 되셨고, 고난으로 인해 우리의 참 구원자가 되심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참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고난은 세상이 말하는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참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시는 능력이요 권능입니다.

T3. 성도는 고난의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을 누립니다.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난을 통해 우리는 영광을 누리고 주님의 고난 안에서 우리 모두는 평화를 누립니다. 이미 이사야는 53장 5절에서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를 죄에서 놓임을 받게 하고, 그의 징계로 우리는 화평을 얻고 그의 채찍 맞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깊이 마음에 모시고 성령님이 주시는 충만한 은혜로 그 사랑을 마음에 체험하고 그 은혜를 자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것은 성도인 우리를 자기의 백성을 삼고자 가신 길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는 어둠에서 빛으로 옮김을 받았고, 그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우리 모두는 내 삶 속에 있는 모든 어두움과 굳고 딱딱해진 죄악을 씻게 되었습니다. 성도의 삶에 주신 그리스도의 이 놀라운 은혜는 성령님 안에서 우리 모두에게 항상 풍성하게 부어지는 영적 체험의 은혜 속에서 놀랍도록 우리를 새롭게 하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성령님을 힘입어 주님의 고난이 주신 은혜들을 내 삶의 모든 자리에 임하게 해야 합니다. 나의 굳은 마음을 녹이시는 은혜를 누리고, 견고한 진들이 악한 영들의 대적 기회가 되지 않도록 성령님의 은혜와 능력이 나와 나의 가정과 그리고 우리 교회 위해 항상 함께 하시기를 힘써 구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L6. 또한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이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신 그 날 밤을 기념하는 날, 우리 모두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나도 그 은혜를 힘입어 복음을 위해, 형제를 위해 사랑을 행하는 삶을 결단합시다. 우리는 연약해서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성령님의 은혜 안에서 참 사랑과 그것을 행하는 권능이 우리에게 부어질 줄 믿고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갑시다. 우리에게는 이미 코로나라고 하는 모두 겪지만 또한 나만의 특별한 고난을 만났습니다. 한 해의 남은 날들 동안 이 코로나라는 고난을 친구삼아 우리의 모든 삶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을 행하는 영광의 삶이 되기를 결심하고 간구하셔서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는 주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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